라스트 앤젤 (The Last An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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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p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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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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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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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DUMMY

그의 팔 다리에 무성히 자란 털과 알 수 없는 수 많은 흉터들이 마치 짐승⎯⎯뼈가 드러나도록 깡마른 그였기에 포식자 보다는 피식자에 가까워 보였다⎯⎯을 연상케 했다. 길쭉한 길이 때문에 그는 더욱 말라보였다. 그의 손톱과 발톱은 안 다듬은 지 오래되어 길고 들쑥날쑥했다.


얼굴은 더욱 처참했는데, 피부는 푸석하고 피골이 상접하여 나이가 포비보다 어릴 것이 분명한데⎯⎯물론 악마들의 나이와 외모는 비례하지 않는다⎯⎯외모로는 포비의 곱절은 되어 보였다. 특이한 점은 여느 악마들과는 달리 눈두덩이를 덮는 새까만 핏줄이 없다는 것이었다.


동굴의 어둠 속에서 한참을 지내서인지 커다란 그의 눈동자는 검게 차올라 흰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동공은 활짝 열려 있어 그의 눈빛은 기괴한 느낌을 주기까지 했다.


그가 목을 좌우로 비틀자 온몸에서 연신 뚜둑하며 관절이 마찰되는 소리가 났다. 한 차례 몸을 푼 그는 입을 열었다.




“포비님···

오랜만에 오셨군요···”




헤르멜의 목소리는 아주 건조했다. 진동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너덜너덜한 풍선에서 공기가 빠져 나오듯 힘 없는 소리였다. 마치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한동안 찾지 않으시더니···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오랜만일세, 헤르멜.

내가 오늘 아주 놀라운 일을 겪고 왔네.

지옥에서의 삶 평생을 이 동굴에서 지내는 자네도 나오지 않은 걸 후회할 만큼 흥미로운 일이지.

하하⎯

그러나 걱정 마시게.

내 자네를 위해 직접 볼 거리를 가져왔으니”




헤르멜은 공허한 눈으로 포비를 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활짝 열린 동공이 어디를 응시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포비를 보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자, 카인⎯

내 친구 헤르멜과 인사하지 않겠는가?”




포비는 몸을 옆으로 돌려 카인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내어주고 그 앞에 손을 뻗었다.


카인은 천천히 걸어 헤르멜의 코 앞까지 다가갔다. 카인의 걸음걸이는 어색하고 무언가로부터 저항하는 듯 보였다.


헤르멜은 자신의 앞에서 굳어 있는 카인을 향해 긴 목을 죽 빼고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이 자는···”




헤르멜은 분명 카인에게서 어떤 익숙한 향기, 향기라기에는 속을 거북하게 만드는 그런 것을 맡았다. 그에 따라 헤르멜이 무언가 말하려 할 때, 포비가 그의 말을 끊고 설명을 이어갔다.




“자네가 지금 보고 있는 그 자는⎯

유토프리움 끝자락에 사는 ‘다마’라는 자⎯⎯바깥 물정에 관심 없는 자네는 누구인지 잘 모르겠지만⎯⎯와 그의 아내로부터 탄생한 자일세.

엄밀히 말하자면 ‘살았던’ 자이지.

왜냐하면 오늘 아침 자네 눈 앞에 서있는 청년이 먹어 치워버렸거든.

이 세상에서 증발해버렸다는 뜻일세.

아침까지만 해도 갓난 아기였던 이 자는 제 부모를 양분삼아 순식간에 이리 자랐지”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포비의 말을 들은 헤르멜의 표정이 굳으며 동공이 흔들렸다.




“헤르멜, 자네도 이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겠지.

‘속죄의 굴레‘에 균열이 생긴 것이야.

생명의 탄생과 죽음···

그것이 드러남으로써 이 지옥의 법칙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야”




헤르멜은 말 없이 포비의 말을 들었다.




“그의 발을 자세히 보게나”




헤르멜은 어둠 속에서 카인의 발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번에는 어둠 속에서도 그의 표정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었다.




“자네라면 분명 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의심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자네 눈 앞에 놓인 그 증거를 보게.

업보가 없는 죄인이라니···”




카인의 발목을 살펴보던 헤르멜은 옅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도 희미해서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무표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들어본 적은 있는가?

하물며 위에서 쫓겨난 자네조차도 벗을 수 없는 업보를 지니고 있는데···”




“포비님⎯

제 것은 당신들이 지니고 있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헤르멜의 창백한 입술에서 나온 뚜렷한 목소리가 포비의 말을 끊었다. 아주 옅게나마 미소 짓던 헤르멜의 얼굴은 다시 차갑게 굳었다. 그의 심기는 왠지 불편해 보였다.




“크흠···

자네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네.

여튼⎯

어떤가?

이만하면 자네를 충분히 흥미롭게 하지 않았는가?”




헤르멜은 가는 손가락을 뻗어 카인의 얼굴을 훑었다. 그는 손가락을 자신의 코에 대며 작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얼굴에 다시 옅은 미소가 번지다가 금새 사라졌다.




“실로 놀랍군요, 포비님.

이 자라면··· 우리의 숙원을 이뤄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비범하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습니다.

허나···”




카인을 살피던 공허한 눈은 포비를 향했다.




“카인···

이 자는 너무 약합니다.

지금 포비님의 힘으로 이 자를 통제하고 있는 것이겠죠?”




포비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헤르멜은 혀를 차며 대답했다.




“포비님···

당신의 심기를 거스르려는 것은 아니나···

이미 당신의 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이 자가 어찌 엘리시움으로 향하는 길을 열겠습니까···”




“카인이 열쇠가 되면 그 뒤로는 내가⎯”




“아니요⎯”




헤르멜이 포비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포비님, 그것은 오만입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저는 압니다.

당신은 보이지 않겠지만 저에게는 보입니다···”




헤르멜은 검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그곳은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결될 곳이 아닙니다···

문을 연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문 너머는···

그들은, 그곳은 아름다운만큼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시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리 당신이 강하다고 하여도··· 당신에 의해 쉽게 꺾일 가시가 아닙니다”




포비는 언짢아 보였지만 그의 말을 진중하게 듣고 있었다.




“흠···

그럼 내가 어찌하면 좋겠는가?

카인은 그럼 아무런 의미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자라는 것인가?”




“아닙니다.

그가 운명이 점지한 열쇠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열쇠가 되느냐의 문제이지요···

지금의 그는 열쇠구멍에 꽂기도 전에 부러질만큼 형편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헤르멜은 카인의 눈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그가 제 부모를 뜯어 먹고 성장했다고요?”




“그렇다네.

참 신기한 일이지.

우리는 누군가의 육체적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일세.

그런데 그것은 왜?”




헤르멜은 다시 생각에 빠졌다. 포비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헤르멜이 다시 입을 열기까지 기다렸다.




“포비님⎯

대동하신 죄인들 중 하나를 불러주십시오”




“무엇 때문에 그러는가?”




“확인해 볼 것이 있어 그럽니다”




포비는 미심쩍어 하는 눈빛으로 헤르멜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깥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바닥에 엎드려 카펫 역할을 하던 노예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날카롭게 솟아 있던 얼음에 박혀 있던 그의 살점에서 피가 길게 늘어져 나왔다. 그는 몸에 크고 작은 구멍이 난 채로 작은 추를 질질 끌며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상처는 점점 치유되고 있었다.




“그 자를 카인과 대면하도록 하십시오”




포비가 그의 노예를 향해 고갯짓하자 그는 천천히 걸어 카인의 앞에 섰다.


헤르멜은 잠시 말이 없었다. 포비는 헤르멜의 행동에 답답함을 느꼈다.




“자, 헤르멜⎯

자네가 알아보려 했던 것이 무엇인가?

이제는 나에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네”




“···포비님.

이제 쥐고 계신 카인의 목줄을 놓으십시오”




포비는 적잖이 당황했다.




“지금 이 통제도 되지 않는 짐승 같은 자를 풀어놓으라고?

그렇게 해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건가?

자네도 그의 부모처럼 고기 신세가 되고 싶은 건 아니겠지?”




헤르멜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노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제가 왜 이 자를 불러 달라고 했겠습니까?”




헤르멜은 손을 내리고 노예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숙여 카인의 눈을 그윽하게 응시했다.




“부모의 살을 취해 성장한 청년···

저는 우리를 구원할 자가 얼마나 더 게걸스럽게 먹고 얼마나 더 거대해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포비는 납득했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외쳤다.




“카인이여⎯

마음에 흡족하도록 먹어 치워라⎯”




포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딱딱하게 굳어 있던 카인의 몸이 그의 앞에 서있던 사내를 거칠게 덮쳤다.




“끄아악⎯”




목덜미를 물린 노예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의 피가 솟구치며 헤르멜의 얼굴에 흩뿌려졌다. 피를 맞은 그는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살점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카인은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에게 포비와 헤르멜은 안중에도 없었다.


전신에 피를 뒤집어 쓴 카인을 보며 헤르멜은 말했다.




“실제로 보니 더욱 놀랍군요···”




“큭···”




헤르멜의 앞에는 포비의 노예가 사지가 뜯긴 채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그의 신체는 조금도 재생되지 않고 검은 피에 물들어 있었다.








카인의 식사가 끝나고, 남자가 누워 있던 차가운 동굴 바닥에는 검은 피로 얼룩진 족쇄와 추만이 남아있었다.




“오···!”




헤르멜은 그것을 보고 감탄했다. 족쇄가 타들어가는 소리를 내며 먼지가 돼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헤르멜은 지옥에서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것에 깨나 놀란 모양이었다.




“크윽⎯”




그때 옆에 있던 카인이 자신의 머리를 부여 잡으며 고통스러워 하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다가 이내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 모습에 포비는 인상을 찌푸리는 한편, 헤르멜은 흥미로워 하는 듯 보였다.



끄아악⎯



카인의 머리 주변으로 일렁거리는 영혼들의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형상들은 일제히 괴성을 내지르며 고통스러워 하다가 이내 허공으로 사라졌다.




“끄아악⎯!”




그와 동시에 카인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뿌드득⎯



이질적인 파열음과 함께 카인의 양쪽 관자놀이 위쪽에서 무언가 솟아 나왔다.


카인은 지친 듯 자리에 주저 앉아 숨을 헐떡였다.


머리를 가리던 카인의 손이 툭 떨어지며 그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5-6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그것은 어린 염소 같은 짐승이나 지닐 법한 각이었다.


카인의 각을 본 포비와 헤르멜은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포비는 말 없이 헤르멜을 향해 미소를 보였다.


헤르멜은 그에 답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포비님···

이제 우리의 숙원을 이룰 때가 진정으로 온 것 같습니다”




“자네가 있어 다행일세 헤르멜.

우리 모두 얼마나 갈망했는가!

이제 우리는 엘리시움을 향한 첫 발을 뗀 것이네”




약간 상기된 포비는 이내 다시 흥분을 가라 앉히고 말했다. 그는 조금 당혹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자들을 카인에게 먹이로 줘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모를 일입니다.

그의 그릇이 얼마나 많은 영혼을 담을 수 있을지···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그릇이 클 수록 우리의 숙원을 이루기 더 수월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도망자들은 어디서 구하면 좋은가?

내 노예들을 계속 먹이로 바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포비님이 다스리시는 서쪽의⎯”




포비의 얼굴이 굳으며 헤르멜의 말을 잘랐다.




“그자들은 안돼”




“···”




헤르멜은 뗀 입을 닫지 못 하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는 이미 어떤 말을 할지 머리 속에 떠올렸지만,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렵사리 입을 뗐다.




“···나머지 <죄가 새겨진 자들>을 치십시오”




헤르멜의 말에 포비는 흠칫 놀라며 말했다.




“협정을 깨라는 말인가?”




포비는 헤르멜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네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그 협정은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 왔네.

자네가 이곳에 떨어지기 훨씬 전부터 말일세.

그 전에는··· 이곳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어.

서로 끝 없이 싸우고, 죽이고···그리고 다시 부활하여 또 죽이고.

도망자들이 직접 칼을 갈아 스스로의 심장에 박아 넣은 꼴이었단 말일세.

지금에 비할 수 없는 고통의 아가리에서 우리는 1분 1초도 쉴 수 없는 전쟁을 셀 수 없는 시간동안 치루고 있었네”




포비는 바닥에 널브러져 고통스러워 하는 카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 협정을 깬다면···

우리는 영영 돌아갈 수 없을 걸세.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는 말이야.

우리는 간신히 균형을 찾았네.

절대 그것을 깰 수는 없어.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야.

아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해“




포비는 단호히 말했다.




“허나 포비님, 균형은 이미 깨졌습니다”




헤르멜은 카인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그 협정이 이제 깨질 때가 온 것일 지도 모르죠.

우리 의지와는 다르게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께 선택권은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헤르멜의 말을 들은 포비의 동공이 흔들렸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고통 안에서의 위태로운 평화를 유지하는 것?

아니면 이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의 땅으로 가는 것?”




포비는 깊은 내적 갈등의 늪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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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화 +2 24.09.13 29 0 13쪽
3 2화 +2 24.09.07 44 0 12쪽
2 <1장. 죄를 먹는 자> 1화 +3 24.09.06 50 0 13쪽
1 프롤로그. 구원 +3 24.09.01 70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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