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급 사이보그가 이세계를 씹어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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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02 16:16
최근연재일 :
2024.09.0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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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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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꺼져! 거지 새끼가 재수 없게. 어딜 빌붙을라 그래!”


불법 기계의지(義肢) 샵의 주인장에게 멱살을 잡혀 골목길로 내동댕이쳐진다. 그런 날 골목길을 장식한 쓰레기 봉지 더미가 침대처럼 받아준다.


“퉷!”


상종조차 하기 싫었는지 침까지 뱉으며 주인장은 거칠게 문을 닫아버렸다. 밖은 언제나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봉지의 역한 냄새를 머금은 빗물이 입속을 침범했기에 나도 주인장처럼 침을 뱉었다.


씨발.


뒷골목 불법 가게 주인 주제에 고객을 가려 받다니.


마음 같아선 확 불태워 버리고 싶었지만, 주인장의 톱날이 달린 살벌한 기계 의수가 떠올라 얌전히 가게를 뒤로하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가격 흥정을 좀 한 거 가지고 이렇게까지 문전박대를 한단 말인가.


좋아. 결정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힘닿는 데까지 이 가게의 흉을 봐서 평판을 깎고 또 깎을 것이다.


주먹을 불끈 틀어쥐며 그런 결심을 하던 나는 이내 허탈감에 한숨을 흘렸다.


주인장을 열심히 씹긴 했지만, 입장 바꿔 내가 주인장이었어도 나 같은 놈은 그냥 진상 취급했을 거다.


그도 그럴 게, 양지에 있는 가게보다 파격적으로 싸게 운영하는 게 이런 불법 상가들이다. 그런 곳에서 조금만 더 깎아주면 안 되냐고 매달렸으니.


주인장 입장에선 거지한테 기껏 적선해줬더니 조금만 더 인심 쓰면 안 되냐는 소릴 듣는 기분이었겠지.


머리론 이해한다. 단지 가슴으론 동조할 수가 없어서 그런 거지.


이렇게 해서 나는 오늘도 기계몸을 다는 데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라기보단 사육장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법한 싸구려 아파트. 제대로 눕지도 못할 정도의 공간만이 허용된 방이 마이 홈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 무릎을 그러안으며 오늘도 신세를 비관한다.


기계공학이 엄청나게 발전하여 이제는 몸이 얼마나 기계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부의 척도를 가늠하는 시대. 뇌와 심장, 쾌락을 즐기기 위해 생식기 정도를 제외하고 전부 기계 몸인 사람이면 당당히 상류층 꼭대기라 칭할만한 시대.


그런 시대에서 나는 밑바닥 중의 밑바닥 계층의 부모 밑에서 태어나 사지를 기계로 바꾸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바꾸는 이른바 사이보그들이 더 흔해진 세상. 그러다 보니 나처럼 기계 몸이 없는 사람을 아예 내츄럴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내츄럴이라고 날 부를 때마다 마음속으론 나도 기계로 바꾼 부분이 있긴 하다고 항변하고 싶어진다.


몇 년 전에 ‘사이버 아틀란티스’ 회사에서 주관하는 공사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불의의 사고로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었다.


근데 웬일인지 사이버 아틀란티스 측에서 보상으로 부러진 다리 뼈 뿐만이 아니라 전신의 뼈를 아다만타이트로 바꾸는 시술을 해주었다.


아다만타이트는 인류가 발견한, 가장 단단한 금속 물질로 기계 몸에 쓰이는 금속.


그걸 내 뼈와 바꿔주다니!


처음엔 뛸 듯이 기뻤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뼈를 바꾼다는 게 그리 기뻐할 일이 아니었단 걸 깨달았다.


전신의 뼈가 아다만타이트로 바뀌었다?


그래서 뭐?


외피가 사람의 피부 그대로인데 뼈만 바뀐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외장도 단단하고 무장이라도 달아야 뼈를 바꾼 이점이라도 살릴 수 있지. 외피가 그대로니 그저 뼈가 단단해지고 말뿐이다.


그나마 관절염에 걸릴 일은 없으니 좋다고 해야 하나.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기엔 장점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밖에 굳이 장점을 찾아보자면 뼈 부러질 일이 웬만하면 없고 근력이 약간 증가하는 게 전부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이게 사이버 아틀란티스 사의 변덕으로 행한 장난질이라는 걸 깨달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굳이 뼈만 아다만타이트로 바꾸는 사람은 없다.


보상 같은 건 무시해도 되는데 뼈만이라도 바꿔줘서 희망고문을 가하는 거다. 정말로 높으신 분들의 악취미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그 덕에 나도 아예 쌩 내추럴이라곤 할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내 뼈는 아다만타이트였으니까.


하지만 그뿐.


나는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울분이 터져서 그날부터 더더욱 악착같이 일해서 어떻게든 기계 팔이라도 달아 보려고 했다.


근데 그게 쉬운 일일 아니었다. 안드로이드가 있고 사이보그가 있는 이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얄궂게도 앞서 언급했던 사이버 아틀란티스에서 했던 노가다도 기회를 잘 잡아 생긴, 굴러떨어진 행운 같은 일이었다.


결국, 사정이 그렇다 보니 나는 악마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진짜 눈만 주면 공짜로 기계 안구를 이식해주는 건가요?”


“그렇다니까! 난 생체 눈을 모으는 취미가 있어서. 이것 봐! 이 번들번들 빛나는 수정체를. 정말 아름답지 않니?”


불법 사이비 의사는 자기가 수집한 안구 하나를 들며 자랑하지만, 솔직히 뭐가 예쁜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눈을 기부하면 기계 안구를 달아준다는 데 꽤 괜찮은 거래 조건이 아닌가.


그리 판단해서 그에게 눈을 주고 기계 눈을 달았다.


그리고 수술이 끝난 후, 나는 속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분명 최고 사양의 눈을 달아주겠다더니. 내 생체 눈이랑 생긴 것도 그렇고 별 차이가 없었다.


소소하게 바뀐 점이 있다면 시력이 좋아졌다는 걸까. 어두운 데서도 잘 보이는 눈이긴 했다. 하지만 고작 밤눈 하나 밝아지는 정도로 멀쩡한 눈을 넘기려 한 게 아니지 않은가.


따지고 싶어도 수술을 마친 의사는 이미 튀어버린 뒤였다.


그제야 뼛속 깊이 실감했다. 여기 서울에서는 ‘무상’이란 말과 ‘선의’란 단어는 물에 비치는 달처럼 환상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속았단 걸 알고 처음엔 열이 뻗치긴 했지만, 이내 그 사실을 재차 일깨워주었으니 나는 눈으로 비싼 수업료를 치른 셈이라고 여겼다.


이 도시에서 이런 마인드를 가지지 않는 한 오래 살기 힘들었다.


거기다 어쨌든 기계 눈을 달아주기도 했으니까. 아예 눈만 빼가고 장님으로 만들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게 최후의 양심이란 걸까.


아무튼.


그런 사정으로 나도 굳이 분류하자면 사이보그이긴 했다. 사이보그의 끝자락, 말단쯤에 위치해서 문제지.


시력이 생체 눈보다는 좋은 기계 안구에 일반적인 뼈보다 강한 강도의 아다만타이트 뼈까지.


사실상 내츄럴에 극히 가까운 사이보그. 그게 지금의 나다.


무릎을 그러안고 우울감에 빠지고 있자니 어느샌가 잠에 취하기 시작했다. 시간도 늦었으니 오늘은 이쯤하고 자두도록 할까.


내일 인력 사무소에 가서 할 만한 일을 찾으려면 새벽녘에는 일어나야 하니까.


그렇게 제대로 누울 공간도 없는 방 안에서 나는 슬그머니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을 떴을 땐, 내 눈앞에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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