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급 사이보그가 이세계를 씹어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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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02 16:16
최근연재일 :
2024.09.0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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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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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1)

DUMMY

꿈이라고 의심할 겨를도 없었다.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으니 꿈이라고 여기는 건 현실을 부정하는, 현실 도피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언짢은 기색인 듯한 남성에게 재빨리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몰라서요. 그······ 그럼 마법이 아니라 신기······를 쓰신다는 거죠?”


“그래. 이 몸은 신기사다.”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얘기해본들.


나는 신기사라는 게 도대체 뭔지 감도 안 잡힌다.


신기사라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거 같던 남자도 내 표정이 영 미묘하단 걸 알았는지 반문했다.


“혹시 신기사가 뭔지 모르나?”


“어······.”


대답을 못 하자 그는 날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정신은 멀쩡한 거 같은데? 혹시 어디 먼 데서 왔나?”


남자의 질문에 힌트를 얻었다.


그래, 이 방법이 있었지.


“죄송합니다. 사실 제가 기억을 잃은 거 같아서요.”


“뭐? 기억을 잃어?”


“네, 네. 죄송합니다. 전 지금 제 이름밖에 기억이 안 나고 왜 여기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기억상실증.


이거라면 질문을 받을 일도 없고 남자입장에선 당연한 질문을 해도 괜찮을 거다.


내 상태에 대해 거짓말을 하니 그는 동정하는 건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쩐지. 좀 이상하다 싶더니. 좋아, 그런 거면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내 집으로 가지. 그런 상태라면 궁금한 게 많을 거 같으니 말이야. 나도 오랜만에 손님이 왔으니 심심풀이 삼아 대화를 좀 나누고 싶군.”


고마운 제안이다.


그리고 여기가 이세계라고 생각하니 뒤늦게 특이한 점을 하나 눈치챘다. 그가 하는 말이 나한테 한국말을 하는 것처럼 의미전달이 되긴 하지만 이상하게 한국어를 하는 거 같지가 않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지금 보니 그는 검은 머리긴 했지만, 이목구비도 서양인에 가까웠고 눈동자의 색도 푸른색이었다.


이제야 뭔가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그럴수록 여기가 현실이라는 방증일 터.


어색하게 굳은 날 두고 그는 괴물의 시체가 즐비한 공터를 앞장서 나갔다.


제안에 동의한 적은 없는데 그에게 내가 따라가는 건 이미 기정사실인가보다.


뭐, 반대할 생각은 없었으니 그를 따라 절벽의 틈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그가 앞장서다 말고 내 쪽을 돌아보았다.


“참. 통성명이 아직이었군. 난 하킨 패드럼이라고 하네. 자넨?”


“아, 전······.”


뭐라고 해야되지?


단순 감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식 이름은 이쪽 세계에선 굉장히 이질적이겠지?


그렇다고 모르겠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참에 이름을 하나 새로 짓자.


오래 궁리할 시간은 없었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와중에 떠오르는 단어라곤.


사이보그.


밖에 없었다.


“아, 저는 사이······ 사이라고 합니다.”


“사이인가. 좋네, 사이. 자네는 정말 운이 좋군. 이런 산속에서 나를 만나다니 말이야.”


“하하, 그러게요.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빈말이 아니다. 정말로 하킨, 이 사람만 아니었다면 난 무슨 일이 벌어진 지도 모른 채 괴물들한테 끔살당했겠지.


하킨은 절벽을 빠져나오고 숲에 난 길을 계속 걸었다. 그리 숲속을 한참을 걸었다.


슬슬 발바닥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을 즈음 하킨이 검지로 앞을 가리켰다.


“걷느라 고생했네. 저기가 내 집일세.”


아까 괴물들이 모여있는 공터만큼은 아니어도 숲 안에 꽤 널찍한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엔 오두막이 하나 우뚝 서 있었다. 집 옆으론 우물도 있었고 장작을 패는 용도로 쓰이는 모탕도 준비돼 있었다.


하킨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생활감이 가득했다. 밖에서 봤을 땐 좁아 보였는데 내부는 그리 좁진 않았다. 사실 여기서 더 좁아봤자 다리 뻗을 공간도 없는 내 방보단 훨씬 나았다. 하킨은 한쪽 벽면에 놓인 의자 두 개를 들었고 하나는 내게 내밀었다.


“하나는 자네 의자니 자네가 들게.”


군말 없이 의자를 들고 하킨을 따라나섰다.


우물 옆에 의자를 놓은 하킨은 우물물을 길어 잠시 목을 축였다. 하킨은 양동이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자네도 마실 텐가?”

“아, 감사합니다.”


갑자기 연달아 벌어진 이상 사태 때문인지 조금 지치긴 했다. 그에게 줄로 연결된 양동이를 받아 우물물을 길어 물을 마셨다.


물은 아주 시원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놓인 진짜 정수가 되는지 의심스러운 정수기의 물보다 더.


물을 마시고 의자를 들어 하킨의 맞은편에 앉자마자 그가 물었다.


“그래.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나?”


“예에.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아니지. 자네 잘못으로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이 몸이 신기라고 했을 때 그게 뭔지 의아했겠구만.”


“아, 네. 그렇습니다.”


설명을 해주는 건가?


나는 귀를 열고 하킨의 얘기에 집중했다. 그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신기(神技)······란, 말 그대로 신의 기술이라는 뜻일세.”


“신의 기술이요?”


따라서 읊조리니 하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간의 육체를 초월해 마침내 신기라 할만한 기술을 터득한 자들. 그런 자들을 신기사라고 하네.”


“마법과는 다른 건가요?”


“다르지. 마법은 마력으로 신비로운 힘을 자아내는 거라면 신기는 마력을 쓰는 게 아닌 오로지 인간의 육체로 이루는 신비니까.”


“그렇군요. 그럼 신기를 익히면 아까처럼 하킨······ 어르신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건가요?”


“어르신?”


하킨은 푸핫, 웃음을 터뜨리더니 턱을 쓰다듬었다.


“요즘 젊은이치곤 예의가 된 친구로구만. 나 같은 무지렁이한테 어르신이라니, 듣기에 나쁘진 않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다. 어르신 정도는 오바하는 것도 아니다.

“무지렁이라니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어르신께선······.”

“아아.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띄워줄 건 없네. 그런 걸 바라고 한 말은 아니니까.”


호들갑이었는지 하킨 어르신은 손을 들어 날 제지했다.


“그보다 신기를 익히면 아까 내가 했던 짓을 똑같이 할 수 있냐고? 흐음, 그건 모르겠는데. 사용할 수 있는 신기는 전부 다 달라서 말이야.”


“······?”


“마법이랑은 다른 성질의 신비라고 하지 않았나. 예를 들어, 이 대륙의 사대 신기사 가문 중 하나로 유명한 루이던 가문의 신기는 몸이 쭉쭉 늘어나는 거라네. 그쪽 가문의 사람이면 아까 같은 짓은 할 수 없겠지.”


“아, 신기란 게 다 똑같은 게 아니었군요?”


“그래. 그밖에도 다른 신기사 가문은 열기를 다루거나 번개의 힘을 다루거나 한다네. 뭐, 그래봤자, 우리 패드럼 가문의 신기사가 한 번 속세에 나서면 그런 신기사들 따윈 전부 범부가 되어 버릴게야.”


그 정돈가?


신기라는 게 신비한 힘이고 초능력마냥 특성이 다르단 건 알았다. 그럼 눈앞의 이 남자, 하킨이 보여준 신기는 대체 뭐지?


무슨 이치로 짐승들을 폭탄이라도 터뜨린 것처럼 펑펑 터져나가게 만든 거지?


나는 새롭게 떠오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물었다.


“그러면. 어르신께서 쓰는 신기는 대체 무엇입니까?”


“나? 나는 진동을 다룬다네.”


“진동······이요?”


팔짱을 끼고 태연하게 대답한 하킨이 자기 주위의 땅을 훑어본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만한 크기의 돌덩이를 들고 와 앉았다.


“진동······ 떨림이라고 할까. 예를 들어 내가 이 주먹으로 이 돌멩이에 충격을 가한다고 생각해보게.”


어르신은 돌멩이를 주먹으로 치는 시늉을 했다.


“그럼 그와 동시에 파동이란 떨림이 전해지겠지. 우리 패드럼 가문의 신기는 바로 이 떨림을 제어하는 것이야.”


파동을 제어한다니.


그래서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건가. 맞게 이해한 건진 모르겠지만 충격으로 생기는 에너지를 자기가 조종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돌멩이를 내려놓고 손을 턴 하킨 어르신. 또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태도였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다.


신기에 대해 알았으니 다음은 현황 파악이다.


“그렇군요. 그럼 이건 다른 질문이긴 한데 현재 저희가 있는 나라가 어딘지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우리가 있는 곳은 가이탄 대륙일세. 이 대륙을 헤미안 제국이 벌써 오백년 가까이 지배하고 있지.”


가이탄 대륙.


그리고 헤미안 제국.


아무리 사이버 아틀란티스 사가 황제처럼 군림한다고 해도 직접 제국을 표방하지 않았다. 근데 여기는 제국이 있다니.


거기다 아무리 산중 생활이라도 집안을 잠깐 들여다봤을 땐 전자기기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더해서 정수기도 없이 우물로 식수를 충당한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보면 아무리 봐도 이쪽 세계는 중세 정도의 문명인 듯싶었다.


“아까 처음 보는 괴물들을 보았는데 혹시 여기엔 그런 게 즐비한 겁니까?”


“베어몽키? 그런 몬스터야 여기가 아니라도 지천에 널려있지.”


“널려 있다구요?”


“그래. 그래서 모험가 같은 직업이 성행하는 게 아니겠나.”


몬스터가 있고 모험가가 있다. 흠흠. 좋은 정보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덕분에 의문이 많이 해소됐습니다.”


“더 궁금한 건 없나?”


“지금으로선요.”


지금 처한 상황을 깨닫고 이곳이 어딘지 알게 되니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 판단했다.


이건 기회다.


어차피 원래 세계에선 비루한 최하층의 삶을 살았다.


그저 기계 몸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기계 몸을 달고 싶어도 최하층 내츄럴로선 그럴 기회를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기계 몸이 아니라고 해도 차별하지 않는다. 차별하고 싶어도 기계 자체가 없는 곳이다.


물론 이곳도 이곳 나름의 고충은 있겠지.


근데 그 고충도 원래 있던 세계보다는 나을 거다.


이곳은 적어도 내겐 기회의 땅이다.


거기다 나는 이쪽 세계로 오자마자 커다란 행운을 잡았다. 바로 눈앞에 있는 하킨 패드럼이라는 존재 자체가 내겐 넝쿨째 굴러온 행운이었다.


이제 문제는 그 행운을, 이 기회를 내 손으로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다.


주먹을 불끈 틀어쥐고 모종의 결심을 하는데 질문이 없다는 걸 안 하킨 어르신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더 궁금한 게 없다면 식사라도 하고 가게. 식사가 끝나면 이 산을 혼자서 내려가는 건 위험하니 배웅해주도록 하겠네. 더 궁금한 게 있다면 마을로 가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도록 하게.”


그럴 순 없다.


나는 괴수를 손쉽게 때려잡는 하킨 어르신의 모습을 보고 이미 결심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냅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머리 위로 당혹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자네······ 대체 이게 무슨······?”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내가 한 결심은 바로 어르신이 보여준 신기를 배우겠다는 거였다.


하킨 어르신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신기만 배워도 이쪽 세계에선 꽤 우대받는 거 같다. 더해서 신기의 위력을 직접 목도 했으니 이걸 안 배우는 게 등신이다.


문제는 과연 나에게 신기를 가르쳐주겠냐는 거다.


기술은 원래 함부로 남에게 가르쳐주는 게 아니다. 독점할수록 대우가 달라지는 게 기술이다. 하물며 신의 기술이라는 이름까지 붙은 기술이라면 오죽할까.


필시 받아 들여준다고 해도 허드렛일부터 시킬 거다. 아마 몇 년은 잡일을 해야겠지.


잡일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짐승 취급을 한다 해도 나는 버틸 자신이 있었다.


뭐가 됐든 원래 세계의 비루한 삶보다는 나았으니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순순히 포기하지 않을 거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반드시 제자로 들어갈 거다.


그런 각오로 머리를 조아리고 대답을 기다리는데.


“좋네.”


“예?”


예상치 못한 답변에 고개를 들어 하킨 어르신을 쳐다보았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좋다고 했는데 뭔가 그 반응은?”


“아, 아니 저······ 이렇게 쉽게 받아 들여주실 거라곤 생각도 못 해서······.”


“뭐? 아, 아아. 잠시 깜빡했군. 자네, 기억이 없다고 했지. 그래서 신기사의 사정 같은 게 어떤지 잘 모르겠구만.”


신기사의 사정?


의아하게 눈만 끔뻑거리는데 쓴웃음을 흘린 어르신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제자로 들어오겠다니 기꺼이 받아들일 수밖에. 허나 가르치고 싶어도 자네가 그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일세.”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여전히 갈피를 못 잡는 내게 하킨 어르신이 쯧쯧, 혀를 차고는 덧붙였다.


“신기를 배우려면 먼저 죽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 말일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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