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급 사이보그가 이세계를 씹어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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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02 16:16
최근연재일 :
2024.09.0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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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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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

DUMMY

짹짹.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눈부심을 이기지 못하고 눈꺼풀을 열었다. 잠에서 깬 직후 특유의 나른함을 안고 상반신을 일으키곤 눈을 비볐다.


뭐지?


아직 잠에 취해 의식이 몽롱하다. 아주 잠시 후에 흩어지는 연기처럼 정신이 개운해지자 의문이 먼저 들었다.


분명 나는 내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여긴 어디여.


양옆으로 숲이 있는 비포장도로에 나는 누워있었다.


왜 내가 여기 있는 거지?


불안함이 듦과 동시에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흐음.”


무슨 조화로 이 알 수 없는 곳에서 깨어난 건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진 알기 위해 일단 숲 사이로 난 길을 무작정 걸어가 보기로 했다.


주위에 사람도 없는 거 같은데. 대체 어찌 된 영문이지?


그렇게 길을 걷는데 얼마 안 가 사이로 조그만 길이 있는 절벽이 등장했다.


길이 좁아서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돌아가는 것보단 나을 거 같아서 조심스럽게 진입했다.


좁긴 했지만, 그래도 성인 남성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갈 정도는 됐기에 걷는 데 지장은 없었다.


그리 걷고 있자니 마침내 끝이 보였다. 출구로 보이는 곳에 햇빛이 비쳐들기에 나와 보니 넓고 둥근 공터가 나왔다.


막다른 공터인가 싶었는데 전방에 있는 절벽에 커다란 굴이 있었다.


근데 중요한 점은 그게 아니었다.


―끼기끽.


공터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생명체들이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적지 않은 수의 미상 생물이 저들끼리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원숭이랑 비슷한 울음소리. 언뜻 보면 생긴 거나 하는 짓도 원숭이와 비슷했지만, 그들은 원숭이가 아니었다.


원숭이와 달리 저 녀석들은 얼굴까지 갈색빛의 털로 덮여 있었고 엉덩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늑대처럼 코와 주둥이가 툭 튀어나왔다.


가끔 껙껙거리며 주둥이를 벌리는 데 그 사이로 보이는 이빨이 맹수 못잖게 흉악하다.


뭔가 심상찮다.


불길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실수로 발뒤꿈치로 돌멩이를 건드렸다. 돌멩이가 구르며 벽에 튕기는 소리에 저 괴물들의 이목이 단숨에 내게로 쏠린다.


그들은 입구에 선 날 보자마자 께엑께엑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오두방정을 떤다. 저들의 말은 알아들은 순 없지만, 저들이 잔뜩 흥분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확실하다. 저건 먹이를 발견해서 흥분한 포식자들의 아우성이었다. 눈을 빛내며 슬금슬금 이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고 나는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도망치려 했다.


투둑투둑. 절벽에서 자갈이 떨어지는 소리에 무심코 위를 올려다보기 전까진 말이다.


―끼렑끼엑!


하나뿐인 퇴로.


그 양옆의 절벽 위에도 이미 저 괴물 놈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도망치려 한다는 걸 알았는지 훌쩍훌쩍 절벽을 지그재그로 타며 단숨에 지면으로 착지했다. 원숭이와 닮은 건 생김새만이 아니었는지 원숭이와 흡사한 몸놀림이었다.


―크에에


그들은 자기들이 굶주렸다는 걸 어필하는 건지 그르릉 소리를 내며 앞뒤로 다가온다.


좆됐다.


뼈가 아다만타이트라고 해도 외피는 평범한 사람. 저들에게 물리면 그대로 골로 가는 거다.


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상황 파악도 아직 못 했는데 갑자기 죽어야 된다고?


억울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캬아아아악!


후방 절벽 쪽에서 나타난 괴물 중 한 마리가 크게 괴성을 지른다. 그 기세에 흠칫 놀라 움츠러들고 말았다.


이대로 죽는 건가.


체념으로 눈을 감는 그때.


“흠, 웬일로 소란스럽나 했더니만.”


별안간 들리는 사람 목소리. 괴물들은 화들짝 놀라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나 역시 그들과 똑같이 고개를 들었다.


방금 괴물들이 있었던 절벽 위에는 어느새 나타난 건지 망토를 뒤집어쓴 괴한이 서 있었다. 괴한이 후드를 뒤로 넘겨 얼굴을 드러냈다.


구릿빛, 태닝한 피부를 자랑하는 근육질의 중년 남성이었다. 겉보기엔 기계 의수도 기계 의족도 없는, 완벽한 내츄럴. 그는 오만한 미소를 짓더니 훌쩍 뛰어 아주 가볍게 절벽에 착지했다.


몸을 굽히며 충격을 줄이지도 않고 지면에 닿을 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다니.


기계 의족이 없으니 착지를 도와주는 체공 부스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그는 착지한 뒤에 아무렇지 않게 내게 접근했다.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자기들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는데도 괴물들은 주춤거리면서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마치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에 있는 포식자가 등장하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


그는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씨익 웃었다.


“간도 크군. 혼자서 베어몽키의 서식지에 뛰어들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베어몽키?


곰 원숭이라는 소리인가? 아는 게 많으면 살기 좀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 열심히 공부했던 나지만 그런 나도 처음 들어보는 학명.


그러거나 말거나 엄지로 이마를 긁적이던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딱히 믿는 구석은 없는 한데 말이지.”


뭐라 대답도 못 하고 주저하는데 그는 답을 기대한 건 아닌지 살짝 웃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망토가 휘날렸다. 휘날리는 망토 사이로 엿보이는 그의 차림은 배와 사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류가 지금껏 쌓아 올린 지식이란 정보는 모두 전자 세계의 가상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덕에 종이로 만들어진 책이란 존재는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건 짧은 생각이다. 메커니즘은 아날로그여도 그 안에 든 내용물은 진짜다.


그렇기 때문에 거렁뱅이 하류층 삶이었어도 책 읽는 건 게을리하지 않았다.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서 말이다.


책은 다행히 아날로그 데이터로 분류되었기에 빈민인 내가 구하기도 쉬웠다.


갑자기 이 얘길 왜 하냐고?


그가 지금 걸친 복장이 인류의 역사를 다뤘던 책에서 보았던 삽화의 복장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벽을 쌓고 농경 생활을 하던 문명인이 아닌, 주로 야만족으로 분류되던 자들의 복장을 말이다.


그 복장 덕에 잠깐 본 거지만 중년남은 근육이 쩍 갈라져서 잘 다듬어진 몸이었다.


문제는 몸을 기계로 바꾸는 게 트렌드인 지금의 인류 사회에선 그다지 부러워할 만한 몸은 아니었단 거지만.


“이놈들. 또 버릇 못 고치고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다니.”


남자가 팔짱을 낀 채로 혀를 차는데 잔뜩 경계하던 괴물 한 마리가 그런 태도가 눈에 거슬렸는지 별안간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목표는 당연히 갑자기 나타난 남자였다. 평균적인 성인 남성의 상체만한 크기의 괴물이 덮치는 데도 그는 태연했다.


그저 왼손을 들어 달려드는 괴물의 이마에 딱밤을 때려줬을 뿐이다.


퍼억


단순히 딱밤을 때린 것뿐인데 수박이라도 부서지듯 괴물의 머리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육편과 피가 흩날리고 도약한 괴물의 파편이 땅바닥에 흩뿌려진다.


뭐지?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지?


기계 의수도 아닌 멀쩡한 사람의 팔로 어떻게 짐승의 머리를 분쇄한단 말인가. 그것도 손가락 하나로.


끔찍한 광경에 놀라기보다 의문이 먼저 들었다. 그러는 동안 생긴 거 답지 않게 동료를 아끼는 건지 다른 놈들도 앞다퉈 달려들기 시작했다.


“잠깐 엎드려 있거라.”


“네? 아, 네!”


날 보호하려는 건지 오른손을 옆으로 들어 물러서게 한 그는 아무렇지 않게 달려드는 괴물들을 처리했다.


머리를 끌어안고 주저앉아서 힐끔힐끔 구경했는데 그가 주먹을 툭 갖다 대기만 해도 괴물 원숭이들은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주먹 정도가 아니라 조금 전처럼 손가락을 대거나 딱밤을 튕기기만 해도 괴물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삽시간에 주위로 괴물의 육편이 낭자하는 참혹한 광경이 연출됐다.


컵라면도 익지 않을 아주 짧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남자와 내 주위에 남은 건 괴물들의 무참한 시체뿐이었다.


“휴우.”


사냥을 끝낸 그가 손을 툭툭 털었다. 마치 집안 청소라도 끝낸 듯한 분위기였다.


분명 그는 사이보그가 아닐 터.


사이보그가 아닌데도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니.


아니지. 아직 모른다. 생긴 거만 저렇고 피부밑은 기계일 수도 있다. 내츄럴처럼 꾸미고 다니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그가 내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은가?”


“네, 네. 괜찮습니다! 목숨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 인사받을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야.”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지금이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일 듯싶다.


“아닙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죄송하지만, 혹시 어떤 의수를 달고 계신지 한 번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의수? 자네 혹시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닌가? 이 몸의 팔이 의수처럼 보이나?”


그러면서 그는 양팔을 휘적거리고 양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럼 아니라는······?”


“당연히 아니지. 대체 뭘 보고 그런 오해를 할 수 있는 거지?”


확실하다. 이 남자는 찐 내츄럴이다. 인간의 피부와 비슷한 외피를 입혀 눈속임을 한 게 아니란 거다.


아니, 그러면 방금 보여줬던 기예들이 기계의 힘도 빌리지 않은 거라고?


“말도 안 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입만 벙긋거리던 순간.


―끄오옹!


괴수라도 울부짖는 듯한, 흡사 뱃고동처럼 아랫배까지 찡하게 울리는 불길한 울음소리와 함께 쿵쿵 소리가 이어졌다.


뭔가 불길한 일이 벌어질 거란 징조에 다시 긴장하는 데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짝다리를 졌다.


“아직 남아있는 놈이 있었나?”


굴에서 메아리치는 울음소리는 다른 괴물들과 음량부터 달랐다. 이윽고 굴을 박차고 괴성의 주인이 나타났다.


방금까지 해치웠던 괴물들은 지금 나타난 괴물에 비교하면 잔챙이라 할만했다.


3미터에 달하는 체구. 다른 녀석들과 달리 좀 더 곰과 가까운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팔다리는 곰보다 더욱 두꺼웠다.


나 혼자서 마주쳤으면 오줌을 지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이었다.


반면 야만인 같은 복장의 사내는 여전히 태연했다.


“믿는 구석이 있었군. 이런 걸 숨겨두고 있었다니.”


―꾸워헝!


머리를 들이밀며 포효하는 짐승. 남자는 괴물의 입냄새라도 맡았는지 손사래 쳤다.


자신을 앞에 두고 겁 없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괴물은 자신의 오른팔을 머리 위로 들더니 남자를 향해 망치처럼 내리쳤다!


흉악하게 쇄도하는 팔을 보고 나는 못 볼 꼴을 보게 될 거 같아 조건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퍼억, 하고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슬쩍 눈꺼풀을 열어 곁눈질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짐승이 내리친 팔을 그는 왼팔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낸 것이다. 나도 놀랐지만, 짐승도 매우 기함한 눈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귀찮다는 듯이 읊조렸다.


“확실히 체급에 맞게 무식한 공격이로다. 허면 그대로 돌려주도록 하지.”


괴물의 팔 밑에서 옆으로 빠져나온 남자는 지면을 박차더니 단숨에 괴물에게 가까이 붙었다. 괴물에게 접근한 그는 오른손을 괴물의 복부에 댔다.


그 직후, 괴물의 배때지에 커다란 빵꾸가 났다.


그걸로 끝.


괴수는 복부에서 피를 쏟으며 육중한 소리와 함께 지면에 널브러졌다.


괴물을 해치우고 가볍게 지면에 안착한 그는 아무런 감흥도 없이 몸을 돌렸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엄청난 기술을 보여주었기에 나는 자연히 경외심이 들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체 어떻게 하신 거죠?”


“어떻게 했냐니. 난 마법사가 아니니 당연히 신기를 쓴 거지.”


“예? 신기요? 그리고 마법사?”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남자가 인상을 썼다.


“신기가 신기지. 신기가 뭔지 모르나?”


“아, 네에······ 그게 뭐죠? 사이버 아틀란티스 사에서 만든 신제품인가요?”


“뭐, 뭔 사? 신제품? 자네, 혹시 저놈들한테 어디 잘못 맞기라도 했나? 아까부터 영문모를 소리만 하는군. 아니면 설마 자네는 이 몸이 마도구를 쓰는지 의심하는 겐가?”


살짝 화가 난 듯한 기색.


불법 상인에게 쫓겨나긴 일이 있긴 했지만, 난 이날 이때껏 눈칫밥으로 먹고산 남자다. 상인에게 가격을 흥정한 것도 반쯤 자포자기해서 그런 거다.


눈치를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서울에서 내츄럴로 살기란 굉장히 힘들었다.


마법이니 마도구니, 영문 모를 소리를 하지만 눈칫밥으로 단련된 내 머릿속에 번뜩이는 게 있었다.


너무 비루한 삶에 낙이라도 될까 싶어 잠깐잠깐씩 봤던 소설들. 전자 세계의 데이터상으로만 있던 소설들을 한 푼이라도 벌어보겠다고 누군가 종이에다 직접 옮겨다 적은 걸 한때 열심히 탐닉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대리만족을 위한 소설을 본 덕에 대충 무슨 상황인지 뒤늦게나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눈을 뜨니 처음 보는 낯선 세계. 그것도 마법사니 마도구니 같은 게 언급되는 세계.


이 경우라면 한 가지밖에 없다.


나는 지금 사이보그의 도시인 서울에 있는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로 오게 된 거다.


기계 문명이 없고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에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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