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가 참교육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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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선
작품등록일 :
2024.09.0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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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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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DUMMY


지옥이 시작된 건 3월 2일.


그러니까 입학식이자 새 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첫날이었다.


“꺄아악!”

“사람이 떨어졌어!”


운동장으로 떨어진 학생.


정확히 내 발 앞으로 떨어졌다. 저 높은 옥상에서.


팔과 다리가 반대로 꺾이고 붉은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난 단번에 이 아이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작년 1년 동안 내가 담임을 맡았었으니까.


“은호야.”


이제는 차갑게 식어버린 아이가 나에게 건넸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괜찮아요, 선생님. 저 진짜 이제 괜찮아요.’


그리고 메아리치는 그 목소리 뒤로.


내가 아이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그러나


그러면 안 됐었다.

진심으로 다시 한 번 붙잡고 깊게 이야기했어야 했다.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나는...


딱 거기까지만 했다.


그 순간에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스스로 자위하며 도망치고 있었으니까.


왕따를 당한다는 것을 알고 징계위원회가 열리도록 건의해 준 건 분명 나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제자를 도왔다.


‘남들 하는 만큼만.’


후속 조치는 내가 아닌 학교와 경찰들에게 떠넘겼다.


이런 일은 제3자가 껴들어봤자 더 어려워질 뿐이라고, 선생이랍시고 주관이 들어가 어쩌면 한쪽에게만 편파적인 말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난 가해자이며 피해자이기도 한,


학생들을 생각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틀리지 않았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니, 허울 좋은 핑계였다.


“그거 들었어? 3반 녀석들. 징계위원회 열린다던데?”

“아, 그거? 근데 걔네 괜찮을 걸? 걔네 아빠 무슨 헌터 협회 간부라던데?”


사실 난 도망치고 있었다. 나에게 피해가 오지 않도록.


내 밥벌이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공무원이 철밥통이란 이야기는 옛말이 된 지 오래였으니까.


‘각성 화에 발맞춰 한국도 내년부터 국립학교 40%를 헌터 아카데미로...’

‘일반 수업20%, 헌터 과목 80%...’

‘이른 나이에 가지게 된 억제할 수 없는 강한 힘. 정부 국영수 빼고 도덕 수업을 남기는 선택....’


세상은 하루 아침에 변했다.


괴물이 나타나고, 헌터라는 초능력자가 나타나는 마치 소설 속 이야기 같은 세계로.


그나마 난 도덕 선생이라는 이유로 다른 과목 선생들과 달리 쫓겨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힘을 상징하는 이상한 등급이 전부가 되어버린 세계.


각성이란 걸 하지 않은 일반인이 언제까지고 교사로 남아 있을지는 모르기에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솔직히.

난 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지금의 세상이 좋았다.


각성자가 나오기 전, 대한민국 교사의 권리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난 선생이 되는 첫날부터 학생과 적당히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이미 교권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세상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그저 선생을 직업으로만 인식하면 되었다.


학생을 위한 선생. 마음을 다 바쳐 학생을 대하는 선생.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런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콘텐츠가 된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난 직업정신이 아닌. 내 밥줄을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쨍그랑-


시야에 담긴 제자의 시체를 보는 순간.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아마 몸속에서 무언가 깨진 것이 분명했다.


이미 운동장은 패닉에 빠졌다. 조회는 불가능해졌고. 시체를 가리기 위해 다른 선생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순간에도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의 마지막 얼굴이 사라지지 않아서.


“은호야...”


다시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이름을 불렀다.


아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 인생이 백팔십도 변한 순간이.


최선을 다했다고 했지만, 사실 난 방관했고.


저 아이가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뿌리친 인간이 되었다.


그래서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자살한 제자를 눈에 담고 있던 그 순간. 괴물이 튀어나오는 이상한 세계로 이동했으니까.


게이트 안에만 있다고 들었던 고블린과 트롤이 끝없이 공격해오고, 물 한 모금 마시다 공룡에게 잡아먹힐 뻔한 일상이 반복되었다.


소설과 게임에서 나오는 이세계라 불리는 곳과 비슷한 곳이었다.


처음에는 이세계가 아닌, 지구의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고 생각도 했었다.


이미 현실에도 게이트가 나타났으니까.


하나 아니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만난 모든 인간에게 물어봐도, 지구라는 곳을 아는 이는 한 명도 없었으니까.


‘여기는 대체...’


이름은 모르지만, 내게 그곳의 이름을 붙여도 된다고 한다면.


지옥.

나는 지옥에 떨어졌다.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죽인 것은 아니지만. 아이에게 손을 뻗을 수 있는 건 내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어린 영혼을 외면한 대가로.

이야기 한 번 제대로 들어주지 않은 대가로.


나는 지옥에 떨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매일 겨우 살아남기를 반복했다.


그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와중에도 내 마음속에서는 죽음보다, 살아남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마음이 하나 피어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다시 돌아간다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진심.


아이의 말 한마디에 집중하고. 겉치레가 아닌, 마음으로.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선생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를 마지막 기댈 곳이라 생각했던 한 아이를.


외면한 내가.


유일하게 속죄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그 다짐을 이루기까지는

정확히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것으로 마지막 수업을 끝낸다.”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책이 덮였다.


[ 사랑과 평화론 ]

[ 저자 : 유성 ]


짝짝짝-


남자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금강석을 깎아 만든 교단에 서 있던 인간 남자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남자의 작은 심경 변화에 우렁차게 울리던 박수 소리에 균열이 발생했다.


교단 앞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남자의 눈치를 보며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그럼에도 인간 남자의 표정이 움직이지 않자,


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더욱 크게 손뼉을 부딪쳤다.


‘뭐지?’

‘우리 또 뭐 잘못했냐?’

‘마지막 수업이라 딴 짓도 안 했는데...’


학생들이 텔레파시를 이용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교단 앞에 앉아 있는 이 세 학생이 대륙 전체를 호령하던 3명의 신이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인간 남자에게 쩔쩔매는 이 상황은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발록.

드래곤.

마왕 메피스토.


알카서스라 불리는 이 거대한 대륙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존재들.


여덟 개가 넘는 왕국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물론이고.숲에 사는 엘프와 정령들. 지하와 화산지대에 살고 있던 악마들조차 그들을 숭배하고.


그들의 힘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100년 전.


이 세계에 유성이 소환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평소에도 통 속을 모르던 스승이었지만, 오늘은 특히 더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제자들이었다.


텔레파시로 서로 대화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스승이 입을 다문 채 짓고 있는 표정을 이해할 수 없자,


“저... 스승님... 저희가 무슨 잘못이라도....”


등 떠밀리 듯 발록이 학생들을 대표해서 입을 열었다.


불안함에 떨리는 동공과 목소리.


악신이라 불리던 과거의 명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제자들의 모습에도 유성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사실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는 것이 맞지만.


제자들의 걱정과 달리 유성은 기분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


벅찬 마음 때문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입을 열면 그 벅찬 감정이 흘러 나와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기에.


그렇기에 유성은 아주 잠시만, 잠시만 더 정적을 유지 시켰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이윽고, 스승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간 있었던 많은 일들이 유성의 머릿속을 지나쳐갔다.


유성의 흑갈색 눈동자가 제자들을 향해 움직였다.


꼭 해줘야 할 말이 있었다.


첫 번째로,


화산지대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던 발록.


“발록. 넌 다시는 화산 터트린다고 까불지 말고.”

“걱정 마세요, 스승님. 다시는 화산 근처에도 가지 않겠습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왕국을 농간하던 절세미녀. 드래곤.


“드래곤. 너 한 번만 더 왕국 사람들 잡아먹으면 죽는다.”

“저 인간 끊었습니다.”


지하세계의 왕이자 증오의 군주 메피스토.


“마왕, 넌... 싸우지 마. 싸우면 알아서 해.”

“절대 다시는 싸우지 않겠습니다. 싸우면 혀 깨물고 자살할게요.”


이세계의 악신이라 불리는 발록과 드래곤, 마왕이 한 인간의 가르침을 깊게 새기며.


두 손을 파리처럼 비비고 있었다.


아마 지금의 이 광경을 대륙 인간들이 본다면 하루 정도 입을 다물지 못 하리라.


인간이 드래곤을 혼내고. 발록을 다그치고. 마왕을 꾸짖을 줄이야.


“그래. 너희와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역시 너희를 만나고 가장 잘한 일은....”


씨익.


유성이 제자들을 보며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너희를 죽이지 않은 거야.”


바람이 불었다.

가벼운 바람.


알카서스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의 꼭대기.


유성이 차린 ‘소카촌 학당’에.


졸업이라는 이름의 바람이 불었다.


쿵!!!


발록의 무릎이.

드래곤의 무릎이.

마왕의 무릎이.


땅에 닿았다.


그리고는, 이마를 차가운 바닥에 박았다.


태고부터 대륙의 신이라 불리던 그들이었다.


어쩌면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스승님!”


제자들의 절을 받는 유성의 얼굴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소가 지어졌다.


너무도 밝은 표정. 그러나 그의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준비 끝났다.”


귀환을 준비하던 대마법사의 등장으로 유성은 터져 버릴 것만 같던 그 감정을 제자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 잘 지내라. 얘들아.”


그렇게.

유성은 이세계에서의 마지막 계도를 끝마쳤다.


그리고


이세계에서 인간으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룬 유성.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였다.


금발의 긴 머리를 쓸어 올리는 대마법사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정말 돌아가는 거야?”

“돌아가야지. 이곳에서 벌써 100년이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이곳에 나는 필요 없어.”


그렇다.

벌써 100년이다.


이 유성이란 인간을 만난 지.


마녀라 몰려 화형당하는 그 순간에 거짓말처럼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었던 인간.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어리숙해 보이고. 몸도 호리호리했는데.


지금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나.

그가 걸어온 100년은.

그 어떤 인간도 살아남을 수 없는 지옥이었으니까.


과거를 회상하던 대마법사가 유성을 향해 물었다.


붙잡지 않으려 했건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꼭 생각처럼만 되지 않는구나.


“꼭 돌아가야겠어?”

“돌아가야 해.”


고민조차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약속이 있어. 이곳에 와서 100년이나 미뤄졌지만. 이제는 꼭 지켜야 해.”

“그 지구라는 곳에서 한 약속 말이야?”

“정확히는 지구에서 이곳으로 넘어올 때 스스로 한 약속이지.”


마지막까지 올곧은 표정이다.처음부터 그랬다.


유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이곳이 아닌, 먼 곳을. 누군가가 있는 그곳을.


그가 온 지구라는 곳에서 한, 지키지 못한 그 약속을.


단 한 번도 그곳에서 눈을 돌린 적 없었다.


그렇기에 대마법사는 마지막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를 사모하는 마음을. 마지막 순간에는 꼭 고백하리라 다짐했건만....


역시.

이 남자는 자신이 잡아 두기에는 너무도 큰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만은 확인하고 싶었다.


대체 그 약속이 뭔지.


“대체 그 약속이 뭔데? 그렇게 중요한 거야? 이곳에서 얻은 금은보화와 드래곤의 피로 얻은 영생의 삶을 포기할 만큼?”


유성은 망설임 없이 대마법사가 만든 차원 이동 포탈에 몸을 올렸다.


그리고


씨익.


“당연하지. 그런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해. 그 약속은....”


파팟!


가장 중요한 말도, 안녕이란 말도 남기지 않고 그는 가버렸다.


지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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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폭력 +3 24.09.10 657 19 11쪽
7 태운 고등학교 +2 24.09.07 684 15 11쪽
6 복직 +2 24.09.06 775 13 12쪽
5 제안 +2 24.09.05 762 12 14쪽
4 대한민국 첫 번째 귀환자 +2 24.09.04 832 12 14쪽
3 신기한 어른 +2 24.09.03 876 15 11쪽
2 귀환 +2 24.09.02 1,066 16 12쪽
» 지옥 +2 24.09.02 1,332 2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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