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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팜팜
작품등록일 :
2024.09.02 23:19
최근연재일 :
2024.09.09 23:15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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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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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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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정의(2)

DUMMY

이노건이 장상재에게 패배하고 우리 반은 장상재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그는 그 일이 있고 난 뒤 조용히 다녔는데 장상재와 일진들이 따로 건들진 않았다. 아무래도 덩치가 있고 무술을 배웠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장상재가 이노건을 가만히 놔두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은 다른 일진과 함께 그에게 시비를 걸곤 했는데 그때마다 이노건은 말을 얼버무리며 애써 상황을 넘어가려 했다. 명백히 두려움이 느껴지는 행동이었고 장상재 역시 이를 알았기에 만족해하며 그를 자리로 돌려보냈다.


박상철은 완전한 일진들의 꼬봉이 됐다. 등하굣길에 가방을 들고 돈을 상납했으며 숙제를 대신 해 왔다. 흡연 시 망보는 건 기본이고 일진들의 화풀이 대상으로도 쓰였다. 가령 장상재가 선생한테 혼나 열받았다면 박상철은 쉬는 시간에 뒤로 끌려가 그의 분이 풀릴 때까지 싸대기를 맞아야 했다. 그때마다 교실은 늘 도서관처럼 조용해졌고 씩씩거리는 장상재의 숨소리와 뺨을 때리는 찰진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박상철이 저렇게 된 건 안타깝지만 우리한텐 그나마 다행이야.”


어느 날 이덕훈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박상철이 아니었다면 누군가 그 자리를 대신 할수 밖에 없고 그게 우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난 그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박상철이 있으므로 일진들의 뒤치다꺼리가 대부분 해결되었으니까. 그렇다고 그들이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장난식으로든 진심으로든 삼 분의 일 정도는 그에게 괴롭힘당했다.


다행히 나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언제든 그의 레이더에 걸릴 수 있기에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갔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우리 반은 1년간 장상재의 눈치를 보며 가슴 졸이며 살았다.


그렇게 2학년이 될 시기가 오고 반 배정이 이루어질 때 아이들은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일진들과 같은 반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2학년 4반

김하준

장상재

박상철


프린터 된 종이를 본 순간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40명이나 되는 아이 중 하필 내가 장상재랑 같은 반이 되다니.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다음은 생각하기를 멈췄다.


2학년이 된 첫 날.

난 짝궁과 통성명을 나눴다.


“김하준이야.”

“난 이정의.”

“정의? 내가 아는 그 정의야?”

“맞아.”


정의의 생김새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았다. 성격도 얌전한 것 같았고 딱히 특별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초인이 되고 1년간 능력을 알아내기 위해 여기저기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능력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패시브 능력이라고 불렀다.


패시브 능력은 늘 유지되는 능력으로 가장 대표적으로 몸이 변화한 초인들이 있다. 팔이 거대해지거나 동물의 형태로 바뀐 초인들은 그 자체로 능력이 발현된 것이고 죽을 때까지 유지되었다.


이렇게 외형으로 드러난 것 말고도 패시브 능력은 참 다양했다. 장기의 능력이 지나치게 좋아지거나 피하지방이 두꺼워 지는 것 등. 초인이 된다 해도 스스로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 존재했다. 이런 것은 대부분 초인 검사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


다만 초인 검사를 하면 초인 등록이 자동으로 되며 원하지 않더라도 초인등록증을 발급받아 살아가야 했다. 난 그걸 원치 않았기에 굳이 초인 검사를 하지 않고 능력을 알아내려 했으나 당최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건 사람의 외형을 봤을 때 육체를 통해 그 사람의 강함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의는 반에서도 하위에 속할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음. 이 반에서는 정의를 조금 없애야 해.”


내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자 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난 덕훈이가 했던 것처럼 고개를 돌려 장상재를 힐끔 바라봤다. 그리고 그와 아주 똑같이 말했다.


“장상재라고 방금 내가 본 애가 일진이야. 진짜 악질인 놈이거든. 다행히 우린 앞자리라서 괜찮을 거야. 가능하면 뒤쪽에서 뭔 일이 나도 신경 쓰지 말고 쉬는 시간에도 눈에 띄는 행동 하지 않는 게 좋아.”

“알았어. 말해줘서 고마워.”


**


사건은 어김없이 점심시간에 일어났다.


“아. 이 빵 아니라고.”

“이..이거 맞지 않아?”


박상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빵을 잘못 사 온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빵을 제대로 사 왔음에도 장상재가 꼬투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1학년 때도 이런 식으로 폭력성을 주기적으로 보여줘 반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2학년 첫날인 만큼 그는 빠르게 반을 장악하기 위해 박상철을 팰 생각인 것 같았다.


“이런 병신새끼.”

“아.. 알았어. 빨리 다른 걸로 사 올게.”


-짝!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뺨을 때리는 소리가 반에 울려 퍼졌다. 북적이던 반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병신이 한두 번이어야지. 시발 심부름을 시키면 좀 제대로 해 오라고. 이 십새끼야.”


-짝짝짝짝!


장상재가 무자비하게 박상철의 뺨을 때렸다. 아이들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고 1학년 첫날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려 했다. 그때 바로 옆에서 인기척이 강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이정의가 자리에서 나가 박상철을 막아섰다.


“뭐냐?”


장상재가 이노건보다 한참은 부족한 덩치를 가진 이정의를 내려다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괴롭히지 마.”

“괴롭히는 거 아닌데? 빵을 잘못 사 와서 때린 건데? 잘못했으면 맞아야지.”


어처구니 없는 장상재의 논리에 이정의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더니 말을 하려다 말고 몸을 돌려 박상철을 부축했다.


“양호실에 가자.”

“야.”


장상재가 이정의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박상철과 함께 교실문을 나서려 했다.


“야.”


낮게 깔린 장상재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퍼졌다. 분노가 오롯이 담겨 있는 목소리는 곧 무엇인가 일어날 것임을 알려주었다. 이번에도 이정의의 대답은 없었다. 장상재가 발을 굴러 그에게 달려가, 등 뒤의 교복을 낚아채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이정의는 곧바로 방어자세를 취했으나 장상재가 그 위에 올라타 양 팔을 풀어 버렸다. 그다음은 굳이 볼 필요도 없다. 무차별적인 주먹세례가 그의 얼굴에 쏟아졌으니까. 피가 사방으로 튀었으나 아무도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한참을 때리다가 이정의의 의식이 사라진 것을 알고 장상재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이정의가 죽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박상철에게 손을 까딱거렸다.


“처리해.”


**


“괜찮아?”


난 엉망이 된 짝궁에게 물었다. 그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나서지 말랬잖아.”


난 마치 폭행을 당한 것이 내 말을 듣지 않아서인 것마냥 말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매우 의외였다.


“불편하잖아.”


난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의미를 묻기 전에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은 이정의가 폭행당한 것을 확인하고 모든 수업이 끝나고 그를 교무실로 데려갔다. 그렇게 2학년의 첫날이 끝이 났다.


다음 날.

쉬는 시간에 또 한 번의 폭력이 이루어졌다. 역시 가해자는 장상재고 피해자는 박상철이었다. 모두는 조용해졌고 이노건의 사례처럼 더 이상 정의의 사도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난 정의를 힐끔 쳐다봤다.


-덜덜덜.


그의 양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건 분명한 공포심이었다. 그 떨림에 난 그의 손을 잡아주려 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손이 움직이기 전에 그가 주먹을 쥐었다. 아주 강하게 쥐어진 주먹. 그제야 떨림이 멈췄고 난 그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이정의는 또 한 번 박상철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어제와 다르게 저항했으나 장상재를 이길 순 없었다. 그는 어제보다 심하게 맞았고 얼굴에 침이 뱉어지는 모욕을 당했다. 난 돌아온 그를 위로할 수 없었다. 아니 말을 걸 수 없었다. 왜 그런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된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 일은 반복됐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손만 떨던 정의는 나중엔 온몸을 떨 정도로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장상재에게 나서는 시간도 점점 느려졌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떨림을 멈추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늘 옆에서 보던 나는 이정의가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이기지도 못하고 자신과 관계도 없는 아이를 위해 왜 자신을 내던진단 말인가. 이건 누가 봐도 분명 멍청한 짓이 맞았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멍청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정의의 행동에는 멍청함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압도적인 무엇인가가 존재했다. 난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교를 하는 길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

장상재였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 다니는 일진 세 명이 더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정의가 따라가고 있었다. 강한 호기심이 일었고 몰래 그들을 따라갔다.


골목으로 간 그들은 이정의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다. 옷을 벗으라거나 도둑질하라거나. 당연히 이정의는 모든 걸 거부했고 그들은 정의를 폭행했다. 그냥 폭행이 아니었다. 아주 엽기적이고 잔인한 것들. 담배로 피부를 지지고 옷의 지퍼로 살점을 떨어져 나가게 했다. 이정의는 고통스러워하면서 신음을 참아내었다.


문득 언제부터인가 장상재가 박상철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렸다. 이제야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의 타겟이 박상철에게서 이정의로 옮겨진 것이다. 순간적으로 분노가 차올랐으나 이내 차분히 가라앉혔다.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다.


난 경찰에 연락한 뒤 골목을 벗어났다. 그리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두 학년을 겪으며 나를 보호하는 방법은 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운동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가 다니는 곳은 헬스장과 복싱장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헬스만 등록했다.


운동은 덩치를 키울 수 있는 종류로 진행했다. 대근육 위주의 운동. 자세를 몰랐기에 PT를 받으려 했으나 너무 비쌌다. 결국 영상으로 자세를 배우며 운동을 시작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운동을 하는데 문으로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정의였다. 나름 말끔하게 차려입고 온 그는 카운터에 인사하고 복싱장으로 향했다.


“후우.”


왠지 모를 한숨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최근 그의 몸이 조금 좋아진 것 같이 보였다. 난 속으로 언젠가 그가 만화 주인공처럼 멋지게 일진들을 패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10개월이 지나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완연한 가을이 되었고 오늘도 정의는 일진들에게 구타당했다. 자리로 돌아오는 정의를 보며 난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왜 안 때려?”


그가 약간 놀란 얼굴로 날 바라봤다. 그 얼굴의 의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와 짝이 된 지 10개월이 되었지만 대화를 나눈 날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그마저도 선생님이 시킨 일이나 시험 범위 같은 것이었다.


정의는 일부러인지 몰라도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가 원래 과묵한 아이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 역시 굳이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괜히 엮여서 장상재의 눈 밖에 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뭐가?”


정의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척했다.


“너 이길 수 있잖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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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 24.09.02 75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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