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기 만들다 회귀한 게임디렉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이슬같은
작품등록일 :
2024.09.06 10:01
최근연재일 :
2024.09.18 20:2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569
추천수 :
27
글자수 :
54,818

작성
24.09.08 20:20
조회
102
추천
6
글자
12쪽

001. 뒤늦은 후회

DUMMY

나는 8년이라는 시간을 땅바닥에 버리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아, 아니야···. 아니잖아.”


나는 모니터에 비친 그래프를 보며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오늘이 어떤 날인가.


내가 만든 창작물이, 내가 기여한 게임이 발매한 날이다.


머나먼 이국, 미합중국이라는 땅에서.


지갑과 통장을 텅텅 비워서라도 게임을 발매하겠다는 집념으로 남은 이 회사에서.


8년이라는 시간을 갈아 넣으며 만든 히어로슈팅 FPS 게임이 발매되는 날이었다.


그렇기에 이 게임은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내가 갈아 넣은 시간을, 정성을, 집념을 보답 받기 위해서는··· 이 게임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허나, 당연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피크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동접자 수는 1000명조차 넘지 못했고.


판매 수는 첫날인 것을 감안하여도 1만 장조차 넘지 못했다.


이 게임 개발에 추정 2000억 원라는 돈이 들어갔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이 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했다.


‘흥행의 대참패’.


나의 첫 AAA급 게임은··· 나의 인생을 바쳐 만들어낸 이 게임은.


최초이자 마지막 망해버린 성적표였다.


*


사실 이 배는 언젠가 침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내심 알고 있었다.


—헤이, 한. 이 디자인이 맞다고 생각해? 사회 기득권층인 백인 남성은 이 게임에 어울리지 않아. 이건 소수자들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메세지가 담긴 위대한 게임이라고!


—아, 아니 대표님. 소수자와 같은 메세지 이전에 캐릭터 자체적인 매력이 없습니다···. 캐릭터 디자인은 둘째 치고 게임성부터—


—후우··· 한. 어떤 창작물이던 간에 ‘주제의식’이 확실하게 잡혀있어야 결과도 좋게 나오는 거야. 이 게임의 메인 디렉터는 나야. 그러니까 조용히 따라오기나 해.


해당 게임을 처음 기획할 때 메인 디렉터가 했던 말은, 나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게임에 주제 의식이 들어가는 것은 뭐, 나쁘지 않다.


해당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들에게 보편적인 교훈을 주는 경우는 꽤나 많았으니까.


허나 간과하면 안 될 것은, 게임은 어디까지나 ‘놀이’라는 점이었다.


플레이어가 플레이하며 원초적인 재미를 느끼고, 계속해서 플레이할 수 있게끔 하는 이유를 부여해야 한다.


즉, 주제의식은 항상 ‘보조’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지 게임의 본질적인 ‘재미’를 해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허나 나는 대표의 말에 침묵했다.


내가 이 회사를 들어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추억인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의 노력을 거듭해 한국대를 졸업했고.


온라인 게임 시장보다는 콘솔이 좋았기에, 콘솔에 친화적인 미국에 인턴쉽을 신청했었다.


그렇게 일반적인 프로그래밍 회사에서 3년을 버틴 뒤 입사한 곳이, SIE(소네 인터랙티브 엔터테이먼트)의 자회사였으니.


나는 이 동아줄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어, 내 스스로 내 두 눈을 가려가며 일에 매진했었다.


—옷의 디자인은··· 아! 해당 캐릭터가 갖고 있는 소수자 정체성을 나타내는 프라이드 플래그를 채택하죠!


캐릭터성이랑 전혀 맞지 않는, 원색의 옷을 입힐 때에도.


—···음, 그러니까 하반신 장애를 겪고 있는 흑인 장애인에 양갈래 아프로라는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는 데다가 트렌스젠더라는 거죠?


—그래, 아주 정확해. 아, 스타킹도 입고 있어야지. 트렌스젠더를 상징하는 하늘색과 핑크색과 흰색이 섞인 스타킹이 좋을 거 같아.


괴상망측하기 그지 없는 캐릭터 디자인을 논할 때도.


—당연히 가격은 40달러 정도는 받아야지. 이 위대한 게임은 분명 그 정도 값어치는 할 테니까.


심지어 말도 안 되는 가격 정책을 펼치려 할 때에도, 나는 침묵했다.


왜냐고? 회사에서 이런 불만을 갖던 것이, 거의 나 밖에 없었으니까.


—미스터 한··· 혹시 인셀이야?


어느 날 메인 프로그래머였던 상사가 내게 찾아와 갑작스레 물은 말이었다.


—···예?


나는 그녀의 질문에 머리가 차가워졌으나.


—아니, 너무 사람이 혐오주의적이야. 성소수자를 대변하는 게임이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잖아.


—그런 게 아니라, 게임은 기본적으로 놀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원초적인 ‘재미’를 따지는 게 우선 순위이지 그 안에 들어가는 메세지는 부차적인—


—하아, 그래. 알겠어. 동양인들의 보수주의적 관점 또한 포용해 주는 게 맞겠지. 하지만 우리가 같은 팀인 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법이야.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


—···.


—너의 ‘잘못된’ 의견과 가치관을 표출하는 건 뭐 막을 생각 없는데, 프로그래머면 프로그래머 답게 코딩이나 열심히 해. 알겠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꾸 이상한··· 성 상품화가 심한 디자인과 스토리 라인을 가진 기획서를 들이미는데. 그만 기획팀에 알짱거려. 당신은 기획에 재능 없어. 그걸 좀 받아들이라고.


—···예.


이내 그녀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를 세뇌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내가 틀린 것이라며, 세계의 중심인 미국적 가치관을 이해 못하는 것이 비정상인 것일 거라 생각하며.


그들의 의견을 따랐다.


아무리 내 눈에 재미가 없어 보여도.


아무리 보편적인 미의 기준에서 동떨어진, 기이하고 괴상한 디자인을 가졌더라도.


나는 군소리 없이 계속해서 명령어만을 입력해왔다.


그렇게 대망의 작품, ‘콩고드’가 출시되었을 때.


그리고, 출시로부터 1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어마어마한 절망감을 맛볼 수 밖에 없었다.


“···하하.”


1주일 동안 벌어들인 돈은 1백만 달러.


한화로 약 8억 원 정도의 수익을 낸 것이지만.


약 2000억 원의 비용 중에서 0.5%조차 회수하지 못한 돈이다.


타사의 AAA게임의 개발비가 2000억 원보다 낮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콩고드’가 얼마나 심각한 참패를 겪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참패로 인해 생긴 여파는, 안타깝게도 회사의 존망과도 연결이 되어 있었다.


—미스터 한, 미안하지만 오늘부터 안 나와도 돼.


“···지랄 났네, 씨발.”


—뭐라고?


“···알겠습니다.”


월요일 이른 아침에 그들은 내게 해고를 통보했다.


더 이상 회사에 나는 필요 없다고—물론 게임이 폭망했으니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렇게 되었을 테지만—말이다.


영주권도, 미국 국적도 없이 취업 비자로 미국에 있었던 나에게 이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월세는···? 월세는 어떻게 하지?’


뉴욕만큼은 아니더라도 워싱턴의 월세는 파멸적이다.


지금까지 나는 AAA급 게임을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이곳에 남았다.


항상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의 순환을 거치며 살아왔던 나로서는, 이곳에 계속 남아있을 자금이 없었다.


그 순간 가슴에 날아와 꽂힌 감정은 ‘절망’이었다.


천애고아로 태어난 내게 게임은 유일한 친구와도 같았다.


고아원 원장님이 들여놓았던 YBOX 게임기는··· 내게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주곤 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게임 개발자를 꿈꿨고, 수많은 노력을 해냈다.


그런 노력을 통해 잡은 기회로 이 미국까지 온 것인데.


나는 하루아침에 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흡··· 우욱···.”


나는 호흡이 뒤엉키는 감각에 정신이 혼미했다.


지금껏 몸과 정신을 갈아 넣은 후폭풍이 찾아온 것이라도 한 것일까.


숨이 막히고 머리는 핑, 하고 돈다.


—털썩.


그 순간, 강렬한 탈력감과 함께 바닥에 쓰러진 나는 생명의 위험을 느껴 911에 신고하려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휘몰아치는 고통은, 그런 나를 움직이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커헙··· 어으윽···.”


그것은 마치 주화입마와도 같았다.


8년이라는 시간을 갈아 넣었던 정신적, 신체적 데미지가 이제야 폭발을 한 것이다.


‘이렇게, 이렇게 죽는다고?’


그제야 나는 죽음이라는, 삶의 종착지를 인지할 수 있었다.


이를 인지하였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은 짙은 후회였다.


만약 미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 빌어먹을 ‘정치적 올바름’을 멀리하고, ‘재미’와 ‘대중성’을 찾았더라면.


만약 그런 게임을 만들었다면 이런 병신 같은 끝을 맞지는 않았을 것이란 확신이, 슬며시 들고 있었다.


‘···소녀전쟁, 그린 아카이브. 다 재밌었는데.’


출퇴근을 하며 했던 게임들이 눈 앞을 아른거린다.


이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나를 항상 지지해줬던 미소녀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원동력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그런 게임을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조금 퀄리티가 떨어지더라도, 내가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면··· 하는 욕심이 이제서야 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후회는 이미 늦었다.


나는 죽어가고 있었고,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


아무리 후회한다고 한들 엎질러진 물.


이를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절대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난 미소녀 수집형 RPG나 만들 거야. 미연시나 만들 거라고.’


나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조차 아닌, 미국이라는 땅에서.


쓸쓸하고도 고독하게 삶을 마감했다.







···라고, 생각했었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으음···.”


몸이 가벼웠다.


과로와 만성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피로는 온데간데없이 깔끔했고.


수없이 쳐다봐왔던 명령어 탓에 안개가 낀 듯했던 머리는 너무나 상쾌했다.


이것은 마치 젊었을 때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 순간 나는 강렬한 위험을 느꼈다.


‘···씨발, 병원비!’


미국의 병원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입원이나 통원 치료라도 했다가는 정말 폐가 망신을 할 수도 있는 상황.


차라리 쓰러진 그 자리에서 죽는 게 훨씬 나았을 수도 있던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주위의 간호사나 의사를 찾으려는 찰나.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긴?”


그래, 이곳은 너무나 익숙한 장소였다.


고아원을 나와 과외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마련한 아주 작은 자취방에, 나는 누워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찌릿.


뇌에 전기가 통하는 자극과 함께, 지금껏 내가 겪은 기억들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간다.


미국행을 선택했던 것도, 프로그래밍 회사에 인턴십으로 채용되었던 것도, 그리고 그 망할 게임 회사에 취업을 했던 것도.


그 때 내가 겪은 모든 기억들을 떠올린 나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난 죽었었어. 과로와 스트레스로, 미국에서.’


내가 회귀했음을.


과거로 돌아왔음을 말이다.


그러자 나는 갑작스레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생에서 나는 하나의 ‘부품’으로서 살아왔다.


어떻게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억제하며, 내 눈과 귀를 가린 채 살아왔었다.


그 결과물이 흑인 양갈래 머리 트랜스젠더 핑크 스타킹 캐릭터였고.


2주 운영 후 서버 종료였다.


허나 지금은 다르다.


아직 바로잡을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다.


매력적인 여성이 가득한, ‘유토피아’를 건설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들자, 내 게임을.”


나는 더 이상 AAA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쓸데 없는 생각을 접었다.


오직 나의 욕망을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성욕이 잘못되었는가?


본질적 아름다움을, 원초적 재미를 찾는 것이 잘못되었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그것은 옳다.


그리스의 신 아프로디테를 모두가 흠모하듯, 아름다운 여성을 찾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그런 이들을 보며 성욕과 매력을 느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는 그런 남성의, 내 욕망을 실현할 준비가 되었다.


나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더 이상 이곳에는 ‘콩고기’로 멸시 당하는 게임의 불쌍한 개발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미소녀와의 아름다운 만남을 그려낼 미래의 디렉터가··· 후회 없이 살아갈 것임을 표명하고 있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겠다.’


2011년 4월, 봄이었다.


작가의말

본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습니다. 저런 게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콩고기 만들다 회귀한 게임디렉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 010. 성우 NEW +1 16시간 전 21 0 11쪽
9 009. 사전 공개 24.09.17 27 2 12쪽
8 008. 데모 버전 24.09.16 38 3 11쪽
7 007. 본격적인 제작 단계 24.09.15 47 2 12쪽
6 006. 최루 게임 24.09.14 48 3 11쪽
5 005. 일러스트레이터 (3) 24.09.11 64 3 14쪽
4 004. 일러스트레이터 (2) 24.09.10 65 3 12쪽
3 003. 일러스트레이터 (1) 24.09.09 66 2 13쪽
2 002. 격동의 2011년 +1 24.09.08 91 3 14쪽
» 001. 뒤늦은 후회 24.09.08 103 6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