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기 만들다 회귀한 게임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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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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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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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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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격동의 2011년

DUMMY

현실에 순응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매우 빨랐다.


살을 꼬집으면 아프고, 음식의 맛은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내게 벌어진 회귀가 현실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으니,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어떤 유명한 소설처럼 이 모든 것이 단 한 순간의 꿈이었다는 식의 결말을 맞을 수도 있겠지만.


뭐, 꿈이면 어떤가. 아마 꿈이라 할지라도 매우 행복한 꿈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했다.


그럼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2011년···. 꽤나 바빴지.’


내가 회귀한 연도인 2011년은 생각보다 해야 할 것이 많은 연도였다.


나는 아직 대학교 3학년으로, 열심히 학업에 집중하고 있을 시기였다.


천애고아였던 탓에 나는 독기 가득하게 수석을 유지하며 장학금을 받아왔었는데.


3학년 때에는 콘솔 게임 시장의 분석을 하며, 어떻게든 미국의 프로그래밍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난 다시는 미국 땅에 발 붙일 일 없어.’


허나 이번 생의 나는 미국에 갈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왜냐고? 비만 수용 운동이니 뭐니 하며 건강을 해치는 초고도 비만을 옳다고 긍정하는 나라다(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건 안다).


전통적인 미의식 따위는 결여되어 그들만의 ‘옳은 문화’를 만들어내는 국가에는, 다시는 방문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일본을 가면 갔지 굳이 미국의 ‘선진 문화’를 이번생에서조차 느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물론, 일본도 현재로서는 갈 생각이 없었다.


나는 지금 내 스스로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법인을 세우고, 게임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타국보다 우리나라가 유리한 것이 상식.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현재로서는 우리나라에 남는 것이 맞는 판단이었다.


“그럼 이제 뭘 만들지 정해야 하는데···.”


나는 곧장 책상 위에 노트를 꺼내 연필을 끄적였다.


현재 2011년도의 한국 게임 시장은 온라인 PC 게임이 주력이다.


XD게임즈의 FPS ‘퀵 어택’이나, RPG ‘메이플 테일’.


또, NG소프트의 RPG ‘린에이지’와 ‘에이온’ 등.


사실상 모두 PC에서 온라인으로 서비스가 되는 게임들이다.


허나 아직은 그렇다는 이야기고, 꽤나 흥미로운 일들이 물밑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2011년은 흔히 피쳐폰과 스마트폰의 과도기적인 연도로 일컬어진다.


2000년대 후반에 등장한 사과폰 시리즈와 2010년에 출시한 밀키웨이 S 시리즈가 2011년에 진입하며 보급화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게임 또한 PC 주류 시장이었던 분위기에서 모바일로 꽤나 많은 파이가 옮겨오게 되는데.


나는 그 순간을 노리고 싶었다.


‘2012년은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의 시작이나 다름 없는 해야. 그 유명한 ‘for kokoa’ 시대가 열리는 해였으니까.’


스마트폰이 출시되는 시기와 적절하게 맞물리며 개발된 메신저 앱 ‘코코아’는, 게임사와 협업을 하며 ‘for kokoa’를 붙여 초창기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을 지배하듯 했었다.


2012년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 그 구조를 유지했었는데.


후반에야 양산형이라며 욕 좀 먹었지만, 초반에는 흥행의 보증 수표나 다름 없는 행보를 보였었다.


만약 아직 태동기에 불과한 모바일 시장에서, 이들보다 더욱 빨리 시장에 게임을 출시할 수 있다면?


내 게임이 조금이라도 빨리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면?


만약 이런 나의 계획이 그대로 실현될 수만 있다면.


꽤나 괜찮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모바일 시장만 의식하고 만들면 안 돼. 내가 만들려는 게임은 명백한 서브컬쳐 분야. 서브컬쳐 향유층이 전부 모바일에 있지는 않으니.’


그래서 나는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모바일로 구동하기에 큰 무리가 없으면서도, PC에서도 즐길 수 있는 게임.


또한, 부족한 기반을 갖고 있더라도 상대적으로 난이도도··· 그리고 투자 값도 낮은 게임을.


‘SRPG. 우선은, 인디 게임부터 시작하자.’


내 첫 작품의 장르는 바로, ‘SRPG’.


그것이 내 판단이었다.


*


SRPG는 ‘전략 시뮬레이션 RPG’의 줄인 말로, 여타 다른 RPG와 달리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1:1로 조작하는 것이 아닌 다수의 캐릭터를 ‘지휘’하며 성장시키는 플레이한다는 특징을 지닌 장르였다.


그리고 ‘지휘’를 한다는, 주도적이며 또 한 단체의 우두머리가 된 듯한 느낌을 강렬하게 준다는 점 덕분에.


지금도, 심지어 미래에도 수많은 미소녀 수집형 게임들이 채택하는 장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SRPG로 장르를 채택한 것이었는데, 당연히 이유가 이것 뿐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 ‘욕망’이었다.


미국에서 회사에 재직할 당시, 내 직책은 프로그래머였지만 크게 보면 분명 기획팀에 소속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때때로 팀장은 팀원들의 기획안을 받고는 했었는데.


내 기획안은 그 버러지 같은 팀장에게 항상 잘려나가기 일수였다.


—제가 준비한 것은 바로 SRPG입니다. 마법사, 전사, 성직자, 궁수, 도적 등등 정통적인 중세 판타지의 클리셰 및 직업을 기반으로 여러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3D 모델링으로 구현하고, 이들을 통해 전투를 이어나간다는 구조를 지닌 게임입니다.


—한 씨, 캐릭터들의 여성 비율이 높은 건 좋아. 그런데 왜 캐릭터들의 디자인이 저런 거야?


—그건, 저는 통상적으로 미녀라 인식되는 외형이 좋다고 생각하여—


—후, 진짜 한 씨는 너무 인셀 같아. 아니 왜 아직까지 한 씨가 연인이 없는지 알 거 같다니까?


—···.


—주인공이 남성인 것도 마음에 안 들어. 항상 주도적인 역할은 남성이어야 한다, 이거야?


—아, 아니 그것이 아니고 미소녀 게임이라는 특성 상 남성 유저층이 더 많—


—논바이너리. 그래, 그거 좋다. 남성이나 여성같이 이분법적으로 성별을 나누지 말고, 주인공을 칭하는 인칭 대명사를 모두 ‘they’로 바꾸자. 그거 괜찮네.


—그, 그래선 제가 만들고자 했던 방향성과—


—한 씨, 이게 맞는 거야. 한 씨의 허점 투성이인 기획서를 우리가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있잖아. 그러니까 무작정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 알겠어?


—···.


아무리 직원은 회사의 부품이라지만.


그들은 항상 나를 모욕하길, 핍박하길 멈추지 않았다.


언제나 선민의식이 가득한 채 나나 소비자들을 ‘계몽’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업무를 진행했었는데.


나는 그런 그들 사이에서 일탈을 저지르듯, 계속해서 내 게임을 위한 각본과 기획서를 집필해 나갔었다.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언젠가는 내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꿈을 키워왔었는데.


하루 아침에 과거로 돌아와 조국의 땅에 발을 밟고 있었으니.


이 기회를 하루라도 빨리 살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 때 당시 내 기획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너무 과거로 돌아왔어.’


잘빠진 3D 모델링으로 여캐들의 들어갈 곳과 나올 곳이 완벽하게 부합하는 몸매를 강조하기에는, 지금 시대는 2011년이다.


24년에서 돌아온 내가 봤을 때 11년의 그래픽은 폴리곤 덩어리처럼 보였으니.


그 결과물에 만족하기는 쉽지 않을 듯 했다.


허나, 내가 만들어내려는 것은 SRPG다.


굳이 3D 그래픽이 아니어도.


잘빠진 2D 그래픽이어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게임이었다.


아름다운 여성의 일러스트와 그럴듯한 도트 그래픽으로도 SRPG는 제작할 수 있다.


1990년부터 이어져 온 일본의 SRPG 시리즈인 ‘플레임 엠블럼’이 이를 보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점은, 현재 2011년이라는 시대에 알맞는 성질이기도 했다.


2D 일러스트와 도트 그래픽으로 게임을 만들게 된다면, 최적화만 잘 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현재 모바일 기기에서도 구동이 가능할 수 있다는 소리다.


지금 막 태동기에 들어선 모바일 시장에서, SRPG를 여러 국가 상대로 제시한다?


이는 높은 진입 장벽을 가진 SRPG를 접근성으로 커버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 준다는 소리나 다름 없었다.


허나 아무리 이렇게 계획과 근거가 충분할지라도.


꽤나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나 아트쪽, 즉 그림 그리는 사람이 없어.’


그렇다.


아무리 8년이라는 시간을 깎은 각본과 기획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뛰어난 코딩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캐릭터를 팔기 위한 게임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아트’가 빠진다면, 그것은 절대 성립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즉,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림을 그릴 만한 사람을 구해야 했는데.


‘···이에 맞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지.’


24년에서 과거로 온 나에게는, 이를 해결할 방안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물론 이 시절의 나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인간 관계는 담을 쌓고 지내왔었기에 조금의 애로 사항이 있었으나.


‘해야지. 내 게임을 위해서는 ‘그 사람’이 꼭 필요하니까.’


그런 사소한 문제 때문에 내 게임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전생에서 인셀이라며, 징그러운 너드(Nerd)라며 모욕당해왔던 세월이 있었다.


그들에게 직접 말할 수는 없지만, 내 게임을 통해 내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었다.


그 때의 나는 틀린 것이 아니었다고, 내가 정답이었다고 말이다.


‘일단은, 수업 먼저 듣고 생각하자.’


허나 그것은 그거고 학업은 학업.


아무리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집념이 불타고 있다 할지라도, 대학교 3학년의 학점은 중요한 법이다.


‘그 친구가 제발 게임에 흥미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나는 강의실로 향했다.


*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교수가 전공책을 덮으며 강의의 끝을 알려오자, 수많은 학생들이 분주히 나갈 채비를 한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바쁘다.


다음 강의실로 향해야 하는 이들이 있기도 하고, 친구나 연인과 친목을 다져야 할 이들도 있다.


혹은 공강을 활용해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가는 이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당연히 분주하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하아···.”


예를 들자면 그녀, 서양화과의 최수진이 그러했다.


한국대가 어떤 대학인가. 대한민국 1위의 타이틀을 갖는 대학이다.


그런 대학의 과제를 소화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데, 아르바이트까지 병행을 하니.


1분 1초의 시간이 아까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 또한 가방을 들어 강의실을 빠져나가려 하는데.


“저기요.”


꽤나 낯선 목소리가, 그녀의 뒤에서 들려온다.


“···네?”


그녀는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같이 강의를 들었던, 바로 옆 자리에 앉아있던 남성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 한성근 선배?’


수진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컴공과의 과탑이자 유명한 괴짜이지 않은가.


지금까지 어떤 사람과도 교류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나, 독할 정도로 점수에 미쳐 있던 남자.


사회성은 0에 수렴하기는 해도, 조별과제 팀원으로 걸린다면 학점은 보장되었다고 봐도 과장이 아닌 사내였다.


물론, 그가 유명했던 것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연예인 뺨치는 얼굴을 가진 미남.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기도 했다.


‘뭐, 뭐야? 나한테 관심 있나?’


수진의 뇌내 회로는 매우 빠르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한성근은 일종의 거대한 철벽과도 같았다.


아무리 예쁜 사람이, 아무리 사근사근한 사람이 접근해 말을 걸어봐도 매번 그의 대답은 ‘제가 바빠서요’로 항상 동일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다?


수많은 로맨스 소설과 드라마로 단련된 연애뇌를 가진 유진으로서는, 행복회로를 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네에···. 혹시 무슨 일이신가요?”


그녀는 최대한 애교가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 용무를 물었다.


“아까 전공책 정리하는 걸 봤는데, 혹시 서양화과 맞으십니까?”


그리고는 그가 그녀의 학과를 물었는데, 그녀는 이것을 호감의 표시라고 해석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네, 맞아요! 뭐 때문에 그러시나요?”


카페를 갈까, 아니면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는 것일까.


그녀는 멈추지 않고 미래에 대한 구상을 이어갔는데.


“아, 그럼 혹시 ‘유하나’라는 학생 아십니까? 좀 급히 찾아봐야 하는 사람이라서요.”


···이내 지금까지 자신이 그려왔던 미래가 ‘망상’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아주 짧은 절망과 함께, 그의 질문의 답을 들려주었다.


“···네, 알기는 하죠.”


“아, 다행입니다. 혹시 그 친구 어디에 있습니까?”


“글쎄요, 수업 듣는 거 말고 다른 활동을 원체 안 하는 친구라··· 뭐, 연락 좀 돌려볼까요?”


“예,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한 여인의 꿈이 짓밟혔지만, 그것은 한성근의 알 바는 아니었다.


지금 그의 유일한 관심과 목적은 자신의 ‘게임’이다.


‘유하나’라는 부품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게임을 더욱 완성도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동기들한테 문자 보내보니까, 오늘 판화 실습이라서 실습실에서 수업 듣고 있다고 하—”


“아, 감사합니다.”


그는 그의 목적을 이루자마자 곧바로 그 자리에서 떠나갔다.


“···뭐, 저런 미친 놈이 다 있어.”


최수진이 어안이 벙벙하던 말던, 상관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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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10. 성우 NEW +1 16시간 전 21 0 11쪽
9 009. 사전 공개 24.09.17 27 2 12쪽
8 008. 데모 버전 24.09.16 38 3 11쪽
7 007. 본격적인 제작 단계 24.09.15 47 2 12쪽
6 006. 최루 게임 24.09.14 48 3 11쪽
5 005. 일러스트레이터 (3) 24.09.11 63 3 14쪽
4 004. 일러스트레이터 (2) 24.09.10 65 3 12쪽
3 003. 일러스트레이터 (1) 24.09.09 66 2 13쪽
» 002. 격동의 2011년 +1 24.09.08 91 3 14쪽
1 001. 뒤늦은 후회 24.09.08 102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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