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영웅은 기둥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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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민
작품등록일 :
2024.09.06 19:45
최근연재일 :
2024.09.10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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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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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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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4화_떠나는 자와 머무는 자

DUMMY

**


한편 용맥 골짜기 드워프의 왕.

김오지르는 출정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우리 용맥 골짜기 드워프가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역사적인 날이다!”

“우와아아아!”

“여기 무대에 오른 이 얼굴을 기억하라! 운철을 찾기 위한 수색대로 뽑힌 우리의 얼굴이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지! 하하하하!”

“하하하하!”

“사실 조금 긴가민가했었지.”


김오지르가 웃음기를 싹 빼며 말했다.


“운철 용광로의 수명이 다 됐음을 느낀 터라, 일선에서 일하는 국민의 안위가 무척이나 걱정됐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드워프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마침 나의 오랜 벗이 나를 찾아왔었지.”


김오지르의 오랜 벗.

바로 미르였다.


“나에게 제련을 맡긴 그 친구에게 앞뒤 설명하지 않고 부탁했지. 이유를 물어볼 만도 한데, 우리의 용사 미르는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지. 정말로 멋진 친우가 아닐 수 없지.”


다들 그렇다면서 웅성댔다.

김오지르가 손을 휘적이자, 어수선하던 장내가 정리됐다.


“이제는 용사를 그만두고 신의 가호도 없을 그 친구의 완력에 운철 용광로가 부서지는 모습을 봤을 때는 아찔했었다. 내 직감이 옳았구나. 자칫 우리 백성이 고된 노동을 하다가 재수 없게 죽을 수도 있었겠구나.”


눈시울을 붉히는 드워프가 보였다.


“나의 직감과 그 친구의 완력 덕분에 우리는 기회를 얻었다. 아직 용맥 골짜기 드워프가 건재함을 알리는 기회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기회를!”


김오지르가 주먹을 쥐며 높게 쳐들었다.


“우리는 기필코 다시 운철을 확보해서 용광로를 재개한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서 한 단계 발전한 기술력으로 우리의 명성을 이어가자! 우리는 해낼 것이며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구인가. 용맥에 터를 잡은 용맹한 드워프지 않는가!”

“우와아아아아!”

“이만 잔소리 같은 출정 연설은 이쯤하고 연회를 시작한다!”

“오오오오오오!”


용맥 공동(空洞)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단상에서 내려온 김오지르가 부관들이 차려놓은 식탁으로 갔다.


“이번 사건에 그런 뒷일이 있었을 줄이야.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푸른 수염의 드워프가 잔을 따르며 말했다.


“허허. 그 친구는 용기가 있거든, 미움받을 용기. 미움받기를 두려워해서 뒤에 숨는 나보다 백배는 나은 친구지.”

“아닙니다. 국왕님. 당신이 아니셨다면 의미 없는 개죽음 당했을 백성들을 생각하면 용단을 내리신 거나 다음 없으십니다.”

“하하하. 그렇게 되나?”


김오지르는 기분이 좋았다.

술잔을 들어 올렸다.


“자, 이제 우리는 용맥 골짜기의 명운을 어깨에 짊어지고 세상에 나가는 것일세.”

“역시 백성보다 앞으로 나가는 국왕!”

“멋있으십니다!”


쇠잔이 부딪혔다.

모두가 꿀 맥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시원하게 넘어가는 꿀 맥주에 기분이 안 좋으려고 해도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캬아! 이거지! 바로 이거야!”


김오지르는 오랜만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런데 국왕님.”


노란 수염의 드워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불렀다.


“뭔가?”

“마녀의 저주는 어떻게 됐습니까?”


마녀의 저주.

친구, 미르의 거처를 숨겨주려다가 마녀의 화를 사서 걸렸었다.


“하하하. 괜찮네.”


그가 시원하게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곳에는 분명 보라색으로 물든 마녀의 저주가 있어야 했다.


“그가 나를 믿듯이 나도 내 친구 미르를 믿는다네.”


미르가 그랬다.

마녀와 혼담을 나눌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역시 두 분의 역사가 깊어서 그런지 우애도 깊습니다.”

“당연하지. 미르가 용사행을 세 번째로 나설 때 나를 찾아왔었으니.”

“끌끌끌.”


그때 테이블 끝에 앉아 있던 늙은 드워프가 웃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거, 장로는 괜한 말 말게나. 다들 어렴풋이는 알고 있으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국왕 폐하. 다만, 그 시절 용맹하고 활기 넘치던 우리 국왕 폐하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웃은 것이지요.”

“그 사람도 참. 크흠!”


세 번째 용사행을 떠날 당시.

미르는 용맥 골짜기를 찾았었다.

가는 길에 장비를 수리하고 짐을 들어줄 수단이 필요했었다.

당시 국왕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어든 아들내미가 골치였다.

아픈 손가락이고 자식이라 내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에게 한 줄기 구원이 찾아왔었다.


“그때 두 분은 정말이지. 저희 세대에 있어서 우상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괜한 추억팔이에 김오지르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린 날의 치기에 불과한 것을. 자자. 마시고 즐기자고. 오늘이 가면 내일부터는 노숙해야 하니까!”

“용맥 골짜기의 번영을 위해!”


그렇게 용맥 골짜기는 다시 한번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한 걸음을 뗐다.


**


“여기 사람들은 활발하네요.”


아랫마을 사람들을 본 시로후키가 말했다.

내향적인 그녀는 벌써 기가 빨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자리를 잡은 이유기도 해.”

“그래요?”


시로후키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처음 여기 왔을 때가 생각나네.”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때가 되면 천천히 알려줄게.”

“그 말씀은?”


미르는 가만히 웃었다.


“미르님!”


멀리서 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헐레벌떡 달려오는 모습에, 미르는 걱정이었다.

그의 눈에는 코흘리개 꼬마였다.


“그러다가 넘어져서 뼈 부러지면 어쩌려고.”

“후. 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촌장은 미르를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용사님, 조금 전에 봤습니다!”

“한숨은 돌리고 말해라. 그러다가 진짜 숨넘어간다.”

“하하하.”


촌장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연안은 걱정하지 마라. 내가 잘 정리했으니까.”

“감사합니다. 미르님! 바쁘실 텐데,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주시고.”

“아니다. 덕분에 옛 친우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어.”


애초 멀더와 봤던 낚시 너튜브 때문에 움직였지만, 촌장의 마음이 무거워질까 봐 사족을 넣었다.


“앗!”


하지만 촌장도 이제 어엿한 한 마을을 관리하는 인간이었다.

미르가 아주 오래전에 봤던 코흘리개가 아니라는 거다.


“역시 제 마음속에 용사님은 미르님 한 분뿐입니다.”

“뭘.”

“슬슬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연안에 골칫거리가 처리된 걸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본 터라, 미르님께서 오시면 축제를 열자고 모두가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미르가 활짝 웃었다.


“하하하. 역시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촌장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분은 어디서 많이 뵀었는데?”

“아아.”


미르는 시로후키를 소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시로후키. 설원의 마녀야.”

“······!”


매우 놀란 촌장이 반 발짝 뒷걸음질 쳤다.


“······”


시로후키는 이런 반응에 마음 쓰지 않았다.

자신이 표현하지 않아서 쌓인 오해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돼.”


미르가 말했다.


“생각보다 괜찮은 여자거든.”

“······!”


두 사람이 놀랐다.

시로후키는 입술을 말아 넣으면서 고개를 떨궜다.

화끈거리는 얼굴로는 미르를 쳐다볼 수 없었기 때문.

반면에 촌장은 미르가 인정한 여자여서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


촌장에게 물었다.


“아, 그, 그게.”


촌장은 예전에 있었던 일을 끄집어냈다.


“마을 처녀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지 않습니까?”


촌장이 소개한 마을 처녀들은 제국에서 열린 미인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을 가진 여성들이었다.

그만큼 외적인 모습은 뭇 남성들의 낭심을 떨리게 만들 수준이라는 것.

그런데도 미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마음을 보지 외관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기 마련이거든.”


화무십일홍.

어떤 꽃이라도 10일이 지나면 지기 마련.

시간에서 조금 벗어난 미르는 외적인 모습이 하등 쓸모없다는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던 것.


“시로가 낯을 많이 가려서 그렇지. 마음은 따뜻해. 떠도는 소문과는 다른 사람이야.”

“아.”

“······”


시로후키는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로 미르의 얘기를 귀에 담았다.


“그리고 네 번째 부인이 될 사람이야.”

“네에?!”


촌장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왜 그렇게 놀라?”

“너무 뜬금없어서···.”

“하하하! 그렇지? 나도 말하고 보니까. 뜬금없기는 하네.”


엉덩이를 털면서 일어난 촌장이 시로후키를 보면서 고개를 숙였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그.”

“시로라고 불러주세요.”

“아, 하하···.”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는 촌장.

그러다 혼자 놀라면서 손뼉을 쳤다.


“맞다! 이럴 시간이 없었네요!”

“응?”


미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르님의 네 번째 결혼을 축하드려야죠!”

“아냐. 작게 둘이 정수물 떠놓고 하면 되는데.”


촌장이 처음으로 그에게 눈총을 줬다.


“미르님. 아무리 시로님께서 당신께 마음을 줬다고 해도 결혼식은 두 분이 살아가는 과정 중에 한 번뿐이지 않습니까. 두고두고 후회하실 겁니다.”

“응?”


촌장이 조금 울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경험담입니다. 미르님···.”

“아.”

“풉!”


미르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쳐들었다.

옆에서 촌장의 열변을 듣던 시로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녀의 웃음 덕분이었을까.

촌장은 그녀가 소문의 마녀가 아닌 것만 같았다.


북부 도시 하나를 완전히 얼어버렸다는 냉혈한은 아닌 거 같은데?


촌장은 웃음으로 눈동자를 숨겼다.

눈동자는 마음의 거울이다.

마녀는 그런 부분에 정통했다.

혹시라도 책 잡힐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미르님께서 인정한 분이시다.

내가 괜히 재단할 부분은 아니지.

그리고 몇 마디는 안 되지만, 나눠보니까. 오해가 쌓였을 가능성이 크겠어.

현실의 문제를 속으로만 짊어지는 그런 사람처럼.


촌장은 마음이 측은해졌다.


**


───태엥!


“축하드려요! 미르님!”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한 용사님은 미르님이지!”

“아름다운 사랑 하세요. 미르님!”

“설원의 마녀가 아니라 순백의 미녀가 더 맞는 거 같은데?!”

“진짜 아름답다···.”

“역시 미르님이셔!”

“용사님이 일전에 마을 처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건 다 이유가 있었어.”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이제는 나이가 지긋하게 든 마을 처녀였던 아낙이 남편의 옆구리에 리버샷을 날리며 위협했다.


그렇게 모두의 축복 속에 소박하지만, 미르와 시로후키.

두 사람의 결혼식이 치러졌다.

식이 끝나고 마을은 축제 분위기였다.

다친 용병들이 시로후키 앞으로 줄을 섰다.


“미르님···.”

“괜찮대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저희가 너무 받기만 하는 게 아닌지.”

“시로가 자기를 있는 그대로 봐줘서 고마우니까. 이렇게 하는 거지. 내가 시킨 게 아니야.”

“하!”


촌장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설원의 마녀, 용사행에 참여했던 시로후키는 저주와 치유 마법에 능한 자였다.

그런 사람이 지금 마을에서 고용한 용병의 장애를 말끔히 낫게 해줬다.

모르는 자가 본다면 기적이라며 메시아로 추대할 수준의 마법이었다.


“볼 때마다 경이롭다니까. 시로의 마법은.”


미르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시로후키의 치유 마법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아름다웠다.

특정 공간에만 내리는 함박눈.

눈을 맞은 병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나았다.


“이, 이게 대체!”

“성국 수도의 사제도 이런 기적은 못 일으켜!”

“역시 그 말이 사실이었구나!”

“무슨 말?”


소리치던 용병에게 시선이 쏠렸다.


“사실 설원의 마녀라고 불린 이유가 성국이 따라가지 못하는 치유 마법 때문에 질투심을 자극해서 그렇다고 들었어.”

“그게 사실이야?”

“저번에 북쪽 유랑민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 마차가 전복되는 사고 때문에 대부분 죽을 뻔했을 때, 설원의 마녀를 만났다고 하더라고. 저기 계신 분 덕분에 모두 살 수 있었다고.”


모두의 시선이 시로후키에게 쏠렸다.

덤덤한 표정은 그녀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평소였다면 이런 관심이 무척이나 불편했겠지만, 지금은 미르의 앞에서 사람들이 칭찬해서 좋았다.

그러다 문뜩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미르와 눈이 마주쳤는데, 미소를 띤 그의 얼굴을 보였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는 시로후키는 실수로 마법 출력을 높여버렸다.


“끄아아악!”


용병의 다리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쉿! 다들 조용히 해. 마녀님 심기 불편하게 만들지 말고.”


다들 소리를 죽이면서도 시로후키를 응시했다.

경이로운 마법과 아름다운 그녀의 미모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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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화_오크도 튀기면 맛있다. 24.09.09 30 2 14쪽
9 09화_계절을 먹다니 신기하네(4) 24.09.09 40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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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6화_계절을 먹다니 신기하네(1) 24.09.08 125 2 15쪽
5 05화_썰매는 누구나 좋아한다 24.09.08 175 5 15쪽
» 04화_떠나는 자와 머무는 자 24.09.07 225 5 13쪽
3 03화_크라켄을 낚았다(2) 24.09.07 283 6 14쪽
2 02화_크라켄을 낚았다(1) 24.09.07 397 7 14쪽
1 01화_해신을 낚았다 24.09.07 528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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