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영웅은 기둥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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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민
작품등록일 :
2024.09.0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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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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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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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화_계절을 먹다니 신기하네(3)

DUMMY

**


“여기는!”


시로가 놀랐다.

아무래도 설원의 마녀라는 이명이 좋은 의미로 붙여졌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당연한 반응이었다.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빨리 움직이다 보니까. 묻지를 못했다.


“이제는 괜찮을 거야.”

“네?”


시로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봤다.


“지난겨울에 시로가 용병들을 치료했었잖아.”

“네.”


그때 보여준 시로의 치료 마법은 기적에 가까울 정도.

팔이 잘린 자에게 팔을 붙여주고 다리가 상한 자의 다리를 완쾌했다.

그러다 보니 용병들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시로를 둘러싼 여러 의혹은 자기들이 싹다 지워주겠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었는데, 내게 말한 용병을 자세히 관찰하니까. 되겠다 싶었다.

이유는 수도의 암흑가 정보상에 소속된 인원이었는데, 그들은 표식을 허리춤에 항상 붙이고 다녔다.

암흑가 정보상이라면서 너무 티 나게 다니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으나, 아는 만큼 보이는 부분이라서 암흑가 정보상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나도 처음부터 그들을 안 것은 아니고 리제와 함께했던 두 번째 용사행 때 우연히 알게 됐었다.


“일단 감사 인사부터 해야겠지.”

“무슨 감사 인사?”

“지금 설원의 마녀가 왔는데도 마법 경보가 안 울리잖아.”

“어?”


리제가 주변을 둘러봤다.


“진짜네?”

“저번에 시로가 치료해준 사람 중에 암흑가 정보상 소속이 있더라고 우연히도.”

“진짜 우연일까?”

“우연이 맞을 거야. 시로가 나한테 오는 건 드워프 녀석들밖에···.”


어?

조금 이상한데?

드워프···.

드워프···.

아, 그랬지.

그 녀석들 망치 드는 손만 무겁지 심심함을 못 이기는 녀석들이라서 입은 가벼웠다.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다.”

“암흑가 정보상은 하늘이라고도 하니까.”

“그렇겠네.”


시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봤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그 녀석들이 이유가 있어서 접근했다면 겨울이 지나고 나서 우리를 찾았을 건데, 그런 기척은 없었잖아.”

“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만약 냄새나는 꿍꿍이가 있다고 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아.”


시로가 자신의 손을 포개며 나를 봤다.


“이야, 우리 미르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뭐가?”

“내가 시로였어도 두근거렸을 거다.”

“미친.”

“홍홍홍!”


어휴, 말을 말자.


우리는 암흑가 정보상이 있는 곳을 찾았다.

소드 마스터나 그 정도가 되는 다른 직업군이 아닌 이상 쉽게 찾을 수 없게 해뒀지만, 나름대로 용사 출신이라서 그들이 있는 곳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골목 뒤편.

민들레 문양의 간판이 있는 선술집.

그 아래에는 꼽추 문지기가 있었는데, 암흑가 정보상의 아지트 패턴이었다.

물론 인식 방해 마법으로 곱추 문지기는 다른 사람에게 미남으로 보여서 이곳에 여자들이 자주 들른다고 한다.


“무슨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전직 용사님.”

“역시 정보가 빨라.”

“이게 우리의 존재 이유니까요.”

“그럼 다른 것도 알겠네?”

“어떤?”

“요즘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게 뭔지.”

“아. 음식을 하신다고. 그래서 마스터가 무척 놀라셨었습니다.”

“그래? 그럼 잘됐네.”

“안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러자고.”


곱추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메케한 연기가 자욱하게 들어찬 그곳에는 수많은 시선이 경계를 보였다.

하지만 내 얼굴을 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조금 우습긴 해도 암흑가 정보상의 실체를 알았을 때, 한 번 크게 뒤집은 적이 있었다.

그 일이 대대로 이어지면서 이들에게는 나를 건들면 조직은 괴멸이라는 관념이 박혔었다.

통로 몇 개를 지나자 커다란 공간이 나왔다.


“이건!”


리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래?”

“공간 왜곡 마법이잖아.”

“그렇네요. 상당한 수준이에요.”

“그래.”


나는 마법에 조예가 깊지 않아서 그러려니 했지만, 두 사람은 다른가 보다.

리제는 불편한 기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시로는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눈으로 관찰하면서 술식을 이해하려는 행동이겠지.


“끌끌끌. 리제님께선 상당히 불편해 보이십니다.”


곱추가 혀를 놀렸다.

지금 리제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데, 척추 펴질 수도 있겠다야.


“왜? 불편한 거 편하게 만들어줘?”


역시.


“앗, 농을 던진 것이 아니오라 붉은 숲의 뛰어나 마법 발전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저희도 나름대로 마법을 발전시켰다는 뜻이었습니다.”


문지기고 곱추지만, 이래 봬도 여기 이인자였다.

그래서 혀를 막 굴리기는 하지만, 눈치가 빨라서 아직 목이 붙은 것을 보면 저 녀석도 죽음의 찰나를 즐기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변태 같은 놈.


“벌레가 있었습니까? 방충 마법으로 날벌레는 없었을 텐데요.”

“아니, 그냥 네 행동이나 말이 가상해서 한 번 털어봤어.”

“끌끌끌. 칭찬 감사합니다.”

“긍정적이라서 아직도 살아있는 건가?”

“끌끌···.”


곱추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길을 안내했다.

미로 같은 곳을 지나서 우리는 허름한 나무 문 앞에 도착했다.

완력으로 부숴도 부서질 것만 같은 문은 강자의 상징이다.

누가, 언제든 와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똑똑


곱추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교성이 들렸다.


“마스터. 미르님과 시로님. 그리고 리제님께서 오셨습니다.”

“앗흥!”


암흑가라서 그런가.

진짜 미친놈들밖에 없는 것 같다.


**


안으로 들어오니 칙칙한 냄새가 났다.

꿉꿉한 냄새가 코끝을 아른거릴 때는 마스터고 뭐고 잔소리를 박아주고 싶었다.


“오! 미르님!”

“오랜만이네.”

“하하하! 미르님!”

“저기 마스터. 너 지금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네? 제가 뭘?”

“옆에.”


시로가 마스터를 내려다봤다.

살기가 실린 눈빛이 설원의 마녀답다고 해야 하나.


“시로. 여기는 암흑가 정보상 마스터. 호가헤아. 저주받은 요정이고.”

“저주받았다뇨!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본능에 충실한 것일 뿐!”

“색욕의 샘물에 몸이 빠져서 머리가 살짝 망가져서 그렇지 본성은 착해.”

“착하면 서방님께 떨어지시죠.”

“하하하! 서방님이래! 진짜 촌스러워. 강한 남자가 속박되는 거 봤어? 반대쪽이 속박되면 속박됐지. 안 그래요? 미르님!”


마스터의 머리를 밀면서 대답했다.


“지금은 내가 속박됐지.”

“네에?! 그게 무슨! 미르님은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그죠?! 그 누구도 소유하지 못 하죠! 신도 그를 해방했잖아요?!”

“순애다. 불쾌하군.”

“쯧. 지금 미르님 인형도 만들어서 재미 보고 있었는데.”

“······”

“아하하하···. 재미없어. 미르님.”


호가헤아는 입술을 삐쭉 내밀면서 자리로 돌아갔다.

다리를 가슴으로 모은 채로 앉은 그녀는 우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미르님은 왜 오셨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데, 붉은 숲 꼰대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을까?”

“홍홍홍! 꼰대라니 말버릇이 여전하구나? 세계수에 버림 받은 천한 것이.”

“버림받았다뇨? 저는 은총을 입은 것뿐이랍니다. 그죠~ 미르님.”


은총.

색욕의 샘물에 빠진 것을 보고 말하는데, 원래 호가헤아가 지키던 세계수 수액은 순수의 샘물이었다.


“그때 미르님께서 저에게 해방감을 알려주셨죠. 진짜 그날 이후로 얼마나 산뜻한지.”

“쯧쯧.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나사가 빠져 있는 거지.”

“헤에~”


호가헤아가 반쯤 뜬 음침한 눈으로 작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색욕의 샘물에 빠져서 그랬다지만, 그쪽은 원래 나사가 하나 빠졌지 않아요? 다 봤는데, 미르님한테.”


───촤랑!


리제가 허공에서 칼을 빼 들어 호가헤아의 목에 겨눴다.

서슬 퍼런 날붙이가 방 안의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다.


“대충 뭔지 아니까. 그만해. 리제.”

“······!”

“시로 앞이라서 참는 거야.”

“홍홍홍! 알고 있었어?”

“그렇게 부스럭댔는데, 못 들으면 내가 용사를 어떻게 했겠냐. 자다가 목이 날아갔겠지.”

“그건 그러네.”


리제가 칼을 거뒀다.


“서방님?”

“아니라고는 안 할게. 그런데 시로.”

“네?”

“너는 지금 아주 매력적인 남자를 남편으로 두고 있다는 거야.”

“······!”

“그리고 그 남자가 너만 보는 거고.”

“······!”


시로가 입을 틀어막았다.


왜 그런지 시로가 말해주기 전까지 모를 테지만, 얼굴을 보니 대충 감동한 것처럼 보였다.

나도 이런 상황을 얼버무리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시로만 사랑하고 있었다.

이 사랑이 언제까지나 지속하기를 바라고 있고.


“자자, 그만하고. 용건만 마치면 바로 갈 거야.”

“그러면 용건을 바로 마치기가 어려울 거 같은데요?”


호가헤아 녀석, 슬슬 수작을 부리려고 하네.


“아냐. 우리는 바로 갈 거고 너는 그걸 들어줄 거야. 이건 용사 경력을 걸고 약속하지.”

“미르님~ 무력으로 어떻게 해보시려는 거 같은데, 그건 안 되죠.”


호가헤아가 한쪽 벽면을 가리켰다.


“저 것 말인가.”


거기에는 내가 호가헤아와 예전에 했던 절대 약속의 계약서가 걸려 있었다.


“절대 계약의 효력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시죠?”

“당연히 아니지. 그러다가 개죽음당할 뿐인데, 내가 굳이?”

“호오~ 그럼요? 미르님께서 어떤 제안을 하실지 무척이나 기대되는데요?”

“너 내 인형으로 손장난 친다고 했지?”

“네.”

“누가 팔 아프게 손장난을 쳐.”

“응?”

“자.”

“이건?”


사진이었다.

신에게 받은 스마트폰으로 촬영이란 것을 하자, 현실로 순간의 정적이 실물로 나타났다.

이게 뭔가 싶어서 찾아봤더니 사진이라고 하더라.


“사진이라는 건데, 내 얼굴이야. 나름 잘 나오게 찍으려고 고생 좀 했어.”

“헙!”

“시로가 고생해줬지. 각도가 딱 그 각도잖아.”


사진에 찍힌 내 얼굴은 무언가를 내려다보는 얼굴이었다.


“서, 설마?!”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니까. 기대해도 좋아.”

“합!”

“그리고 이거.”


얼마 전에 알았는데, 크라켄이 아공간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려고 몸을 상당히 줄였었다.


“내가 사는 곳 해안가에서 잡은 크라켄이야. 지금 크기만 보고 믿기지는 않겠지만.”

“아뇨. 보고 받아서 알고 있습니다. 생김새도 그렇고 그때 잡은 녀석이 맞네요.”

“그래? 그럼 품질 보증은 필요 없을 거고.”

“네?”

“그 녀석 대가리에 내 사진을 붙여봐.”

“······!”

“크라켄이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가서 자기를 보호하는 습성이 있다지?”

“······!”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호가헤아의 표정은 말할 것도 없고 리제나 시로의 표정도 놀란 채로 굳었다.


“녀석이 몸을 줄이면서 밀도가 올라갔을 거 아냐. 그래서.”

“와.”


-짝짝


리제가 손뼉을 쳤다.

어딘가에 감동한 표정인데, 대체 어느 부분에서?


“서, 서방님. 그래도 저 사진은 좀.”

“사진일 뿐이잖아. 나를 만질 수 있는 건 시로. 너뿐이고.”

“핫!”


───킁카킁카!


숨을 크게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호가헤아가 내 사진을 가지고 냄새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책상 위로 흐느적거리는 크라켄의 모습이 들어오면서 어딘가 께름칙한 분위기가 피어났다.


“좋아요. 미르님! 인정! 이거면 당신의 제안을 그냥 들어드리죠!”

“오.”

“약간 배덕감도 느껴지기도 하고.”


뭐야?


호가헤아가 시로를 보면서 실실 쪼갰다.


“뺏 맛도 있을 것 같네요.”

“······”


진짜 미친년이다.


“그럼 고추장이란 걸 얻고 싶은데.”

“해동의 조미료군요.”


이걸 안다고?


“이걸 알아?”

“당연하죠. 대륙 최고의 정보상을 가볍게 보지 마세요. 미르님~”


행실이 그런데 그러기도 쉽지는 않겠다.

아무튼.


“그럼 추가로 정보 제공이 가능할까? 내가 조금 과하게 넘긴 거 같아서 말이지.”

“에이~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럼?”

“한 장 더?”

“······”


시로를 봤다.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치. 그럼 어쩔 수 없고.”

“그럼 나도 안 돼.”

“아아! 알겠어요! 이번만 제가 양보하도록 하죠! 그래서 뭔가요!”

“해동 지역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지역에 대한 정보?”

“위치도 같이.”

“쯧. 오늘 손해 보는 장사네.”


호가헤아가 시선을 옮겼다.

거기엔 크라켄이 있었다.


“너는 오늘 미르님 가고 나서 혼 좀 나자!”


무슨 일이 있을지.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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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화_오크도 튀기면 맛있다. 24.09.09 30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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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화_계절을 먹다니 신기하네(3) 24.09.08 6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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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6화_계절을 먹다니 신기하네(1) 24.09.08 126 2 15쪽
5 05화_썰매는 누구나 좋아한다 24.09.08 175 5 15쪽
4 04화_떠나는 자와 머무는 자 24.09.07 225 5 13쪽
3 03화_크라켄을 낚았다(2) 24.09.07 283 6 14쪽
2 02화_크라켄을 낚았다(1) 24.09.07 397 7 14쪽
1 01화_해신을 낚았다 24.09.07 528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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