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김철수가 최강 빌런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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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썸하군
작품등록일 :
2024.09.08 17:45
최근연재일 :
2024.09.1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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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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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01. 죽음의 문턱에서

DUMMY

001. 죽음의 문턱에서




나는 지금 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죽어가는 중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온몸이 꺾인 채 피를 철철 흘리는 나의 모습을 삼인칭으로 보는 중이었으니까.


오늘은 ‘청솔’ 읍사무소 파견 마지막 날이었다. 난 평소처럼 퇴근하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깜깜하네.’


상권이 죽은 읍은 아무래도 도시보다 금방 거리가 어두워졌다.


‘이 풍경도 오늘로써 마지막이구나.’


당연히 아쉬움은 없었다.


‘어? 언제 신발 끈이 풀린 거지?’


내가 신발 끈을 묶기 위해 몸을 숙였을 때, 운명의 사건은 발생했다. 무언가 번쩍였고, 그대로 내 의식은 날아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릴 새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난 삼인칭으로 날 보고 있게 된 거다. 짐작하건대 나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거리는 불이 거의 다 꺼져있었고, 나의 시신은 길가에 쓸쓸히 누워 있었다. 온몸은 부자연스럽게 꺾여있었고, 시멘트 위에 핏자국이 선명하게 번지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광경을 마치 TV 속 장면을 보듯 무표정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라도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영혼이라는 게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정말 있긴 있구나.’


뒤늦은 깨달음에 허탈함이 밀려오며, 주위를 감싸는 정적이 더욱 깊어졌다.


나를 친 차량의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그는 비틀거리며 내 시체를 향해 걸었다. 누가 봐도 취한 상태였다.


‘음주 운전이었네.’


내 상태를 확인한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부서진 차를 타고 사라졌다.


‘뺑소니까지?’


만약 그 순간에 신발 끈이 풀려 있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신발 끈이 풀려 있었더라도 내가 몰랐더라면··· 혹은 퇴근 시간이 달랐더라면.


미련이 남았다.


돌이켜보면 난 누구에게 해코지하거나 나쁜 마음을 품어본 적 없이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왔다. 누구에게 화를 내 본 적도 없었고, 심지어 화가 난 적도 없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사춘기도 없었다. 군대도 무탈하게 다녀왔다. 이제 내 인생에 남은 목표라곤 차곡차곡 돈을 모아 결혼해서 내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화목한 가정을 이루면서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작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한다고? 그것도 신발 끈을 묶다가? 여자 한 번 못 사귀어 보고?


지금에 와서 그 상황을 원망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억울한 감정이 훅 올라왔다.


‘난 인생을 잘못 살지도 않았는데, 왜···’


“억울한가?”

어디선가 낯설고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침하다고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잖아. 그냥 나약한 인간들과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거뿐인데 말이야.”


갑자기 들려온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마치 내 생각을 읽고 있는 것처럼 즉각 반응했다.


그 존재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본능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난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으려고 했다.


“당연히 읽을 수 있지. 넌 지금 영혼 상태니까. 곧 그 영혼마저도 소멸하겠지만.”


드디어 목소리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나를 압박했다. 거대한 검은 로브가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으며, 로브에 달린 후드를 깊숙이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은 어둠 속에 완벽히 감춰져 있었다.


그가 타고 있는 검은 말은 마치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형상으로, 실체와 비실체 사이를 오가는 듯한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손에 들린 거대한 낫은 검게 빛나며, 그가 있는 곳 주위로는 어둠의 기운이 응축된 듯한 검은 오로라가 펼쳐져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그는 그 자체로 죽음을 상징하는 존재처럼 보였다.


안 그래도 음침한데, 이 모든 모습이 마치 게임에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 같았다.


“게임이라니, 이건 현실이다.”


정체불명의 존재는 검은 오로라 속에서 나를 지켜보며 흥미로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차갑고 무자비했다.


“잡담은 이쯤하고. 나는 나약한 인간, 너에게 계약을 제안하러 왔다. 내 계약을 받아들이면―”

“저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거군요.”


내가 재빨리 말을 가로채자, 정체불명 존재의 눈이 반짝였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스며 있었다.


“제법 눈치가 빠른 인간이군.”

“그리고 그 계약은 당연히 제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담고 있을 거고요.”

“흠, 인간에 따라 다르지.”


조건 없는 호의는 없다. 내가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건 아니다.


“일단 그 조건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죽은 인간치곤 꽤 여유가 넘치는군. 좋아, 이제 조건을 말해주지. 네가 나와 계약하는 순간, 당연히 넌 다시 살아나게 될 거다. 대신 너의 몸과 영혼은 내게 귀속된다. 내게 귀속된 너의 몸에 흠집이 생기면 안 되니 너에게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능력도 줄 거야. 내가 없이도 너를 스스로 지킬 수 있게 말이지.”


정체불명 존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위협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의 말을 천천히 곱씹으며, 이 계약이 내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요약하면, 다시 살려주는 대신, 내 몸과 영혼에 대한 권리를 당신이 가지겠다는 말이군요.”

“하하하. 똑똑해. 아주 똑똑해. 맞다. 그리고 마지막 조건이 있지.”


정체불명 존재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지며 더 음산해졌다. 나는 그의 말을 따라가며 두려움을 억누르려 애썼지만, 불길한 예감이 점점 더 커졌다.


“마지막에 알려주는 걸 보니 조건 중 가장 어려운 조건이겠네요.”


내 말에 반응하듯, 정체불명 존재의 후드 안에서 빨갛게 빛나는 눈빛이 잠시 번뜩였다.


“뭐, 인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너에겐 상당히 어려운 조건일 수도 있겠군.”

“살인이라도 해야 하나요?”

“흐흐흐. 정확해. 넌 7일 안에 살인을 저질러야 한다. 대상은 네가 편한 대로 결정하면 되고 말이야.”


그냥 던져본 말이었지만, 그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살인은 내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때려본 적도 없는 내가 살인이라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게다가 어차피 난 이미 죽은 상태였다.


“호오, 역시 넌 흥미로운 인간이야.”

“그런 조건을 수락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어디 있냐고? 하하하!”


정체불명 존재는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근데 인간, 넌 이미 늦었어.”

“늦다니요?”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거든. 그래서 너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기로 했다.”

“아뇨. 전 그냥 죽을게요. 어차피 죽은 상태이기도 하고요.”

“흠,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군. 내가 말했듯이 너에게는 선택권이 없어.”

“내가 싫다는데 나랑 어떻게 계약하겠다는 거죠?”

“간단해. 네가 싫다고 말할 수 없게 해야겠지.”

“어떻게―”

“너에게는 아마 소중한 가족이 있겠지.”


허를 찔렸다. 내 가족을 인질로 잡겠다는 거네. 확실히 효과적인 대처였다.


“정확해. 네 가족들이 갑자기 의문사를 당하면 네 기분은 어떨까?”


그걸 질문이라고? 당연히 끔찍하지.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이 괴물의 말을 내가 왜 믿어야 하는 거지?


“계속 괴물이라 생각하니 서운하지만, 그 의심은 합당하다. 그러니 친절하게 너의 의심을 지워줘야겠지.”


정체불명 존재가 무언가를 속삭였다. 듣고 싶었지만, 들을 수 없는 무언가를.


“너희 같은 나약한 인간을 죽이는 건 내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로브 속에 감춰진 시뻘건 눈이 번뜩였다.


“죽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요?”


정체불명 존재는 손가락을 튕겼다. 갑자기 내 주위의 풍경이 휙 변했다.


어느새 나는 부모님 집에 서 있었다. 익숙한 거실, 소파, 그리고 텔레비전···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상황은 너무도 달랐다. 거실 바닥에는 아빠가 쓰러져 있었고, 엄마는 그 곁에 앉아 기겁하며 아빠의 몸을 흔들고 있었다.


“지금 뭘 한 거예요?!”

“호오, 이제야 좀 놀라는 모습을 보이는군. 걱정하지 마. 너한테 보여주기 위해 아주 잠깐 심장을 멈추게 한 것뿐이니까.”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마치 이 상황을 하나의 유희로 여기는 듯했다. 그는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탁.


아빠가 눈을 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정체불명 존재가 내게로 다가왔다.


“자, 이제 너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걸 깨달았나?”


그의 말이 날카롭게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저 무력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체불명 존재는 나의 반응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해서 좋다. 이제 계약하도록 하지. 나와 계약을 하겠나?”

“저한테 선택권이 없다면서 왜­”


그의 손가락이 갑작스레 내 가슴팍을 찌르는 바람에 난 끝까지 말을 마칠 수 없었다.


“맞아! 너한테는 선택권이 없지. 그냥 심심해서 물어봤다.”


그가 손가락을 빼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아, 내가 깜빡하고 말을 안 했는데 말이야. 지금부터 꽤 고통스러울 거야. 그리고 만약 네가 이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아마 이 고통이 너를 집어삼키겠지. 그러면 잘 견뎌보라고.”


무언가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고통이 서서히 몸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건 미리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김철수.png


작가의말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꾸벅.

‘김철수’ 이미지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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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06. 사냥감과 사냥꾼 24.09.16 15 1 12쪽
5 005. 불행 24.09.14 14 1 12쪽
4 004. 살인자의 길 24.09.12 20 2 14쪽
3 003. 운명의 굴레 24.09.10 17 1 10쪽
2 002. 불공정한 계약 24.09.09 20 2 14쪽
» 001. 죽음의 문턱에서 24.09.08 34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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