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는 신을 찢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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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석
그림/삽화
Ai
작품등록일 :
2024.09.09 19:12
최근연재일 :
2024.09.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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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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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05. 신화의 탄생 (1)

DUMMY

오늘도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건으로 밤샘 야근을 각오하고 있던 이수정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 누나. 도와줘! 제발!


현실 남매는 얼굴만 봐도 발차기를 날리고, 아무리 잘생기거나 예뻐도 트리케라톱스로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이수정, 이한결 남매는 달랐다.

이상적인 남매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상당히 사이가 좋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끔찍했으니까.


“무슨 일인지 일목요연하게 차분히 말하렴.”


이수정은 동생이 오랜만에 해오는 부탁에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근래에 머리가 커졌기 때문인지 자꾸 독립하려는 태도를 보여서 섭섭하던 차였으니까.


하지만 마음만 앞서 횡설수설할까 봐 일단은 진정시켰다.


- 그러니까······.


이한결은 그간의 일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워낙 상세하게 설명했다.

다만 본인의 머릿속으로도 잘 정리가 안 되는지 매우 난잡했다.


하지만 이수정은 그를 많이 겪었기에 손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어머니는 아이가 옹알이를 해도 잘 알아차리는 것처럼.


“한마디로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있는데, 네가 몸담은 토르 교단의 표적이 됐다. 그러니까 구해달라 이거지?”

- 응.

“전투 헌터들의 싸움에서 내가 뭘 어쩔 수 있는데?”


이수정도 꽤 하이 랭크 헌터다.

하지만 주로 은신과 속도에 특화되어 있지, 전투로만 치자면 C급 헌터보다 못 하다.


- 만약 진우 씨가 이긴다면 옹호해줘.

“먹어야 할 약을 안 먹은 거니? 아니면 먹으면 안 될 약을 먹은 거니?”

- 그게 무슨 말이야?

“토르 교단이라면 한국에서는 손꼽히는 강력한 교단이잖아. 그 교단에 대항하겠다고? 그것도 토르 교단에 몸담은 네가?”

- 누나는 몰라. 이건 부당한 일이야. 다수의 폭력이라고.

“쥐방울만 한 동생아.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단다.”


이수정은 기자로 일하면서 온갖 더러운 일을 많이 보았다.

매스컴에서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끔찍한 일이 훨씬 더 많다는 것 정도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 도와줄 수 있지. 하지만 그 결과가 나와 네 인생의 파멸이라면 도와주는 게 아니라 망치는 거지.”


교단의 어둠을 아는 것 이상으로 그들이 가진 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헤임달, 헤르메스 등은 신들의 파수꾼, 신들의 전령과 같은 아이덴티티를 이용해 뉴스의 신, SNS의 신, 매스컴의 신 등 새로운 권능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비록 현대인의 인지에 모순되는 부분이 있어서 완전한 권능을 얻진 못했지만, 계속해서 착실하게 성과를 얻는 중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같은 신화 소속 다른 신을 보호하고, 그 대가로 다른 도움을 받는다.


신들의 연대.

신들의 카르텔.


이것이 진정한 무서움이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신들의 귀환 이후 탄생한 세대가 기성세대가 될 때쯤엔 인류는 신들의 노예가 되겠지.


이런 거대한 흐름 속에서 교단에 저항하는 건 미친 짓이다.

차라리 잘나가는 교단에 가입해서, 그 꿀을 빠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


자기 합리화를 했지만, 이수정도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한 명의 사람이다.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독립, 안보, 자유, 참정 등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도 알고 있었고.


이한결에게는 엄하게 말했지만, 정작 본인은 이러려고 지금까지 노력했나 자괴감이 들었다.


“허튼짓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아무리 그래도 안전이 우선이다.

안전이······.


‘일시적 안전을 얻기 위해 근본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자들은, 자유도 안전도 가질 자격이 없으며 결국은 둘 다 잃게 될 것이다.’


왜 하필 이럴 때 잊고 있던 벤저민 프랭클린의 좌우명이 떠오르는 걸까.

마치 본능이 이끄는 것처럼.


- 누나가 안 오면 나 혼자라도 할 거야.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 그건 해봐야 아는 거지.

“하아······ 장소가 어디라고 했지?”

- 서울역 근처 공원.

“바로 갈 테니까 꼼짝하지 말고 기다려. 어기면 다신 안 도와준다.”

- 응!


전화를 끊은 이수정은 잠시 심호흡을 했다.

일단 지르긴 했는데, 만약을 대비해 핑곗거리를 만들어 둬야만 했다.


“토르 교단에 대놓고 저항하는 빌런이 나타났다. 그는 A급 헌터로 구성된 심판자들도 가볍게 물리쳤다. 하지만 그의 전투력은 겨우 1······ 특종?”


그래. 이건 교단에 저항하는 게 아니다.


기자로서 새로운 빌런의 출현을 발표하기 위해.

토르 교단의 업적을 대대적으로 선전할 특종을 얻으러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핑곗거리를 찾은 이수정은 곧바로 망원 카메라를 챙겼다.


“혹시 놓칠 수도 있으니까 드론 먼저 보내둘까?”


무척 비싸고, 특종 촬영을 위해 비행 허가를 받는 건 더욱 어렵지만, 이럴 때 쓰라고 준비한 드론이다.

할부도 아직 12개월이나 남았지만, 동생을 위해 과감히 투자한다.


“콩이야. 다치면 안 돼. 알았지?”


그렇게 콩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수정의 작고 소중한 드론은 빠르게 서울역으로 향했다.


***


팟!


날아다니는 드론을 보는 대로 격추했다.

주변에서 앵앵거리는 것도 귀찮지만, 총이나 미사일인지 폭탄인지 모를 무기까지 탑재하고 있는 것도 있었으니까.


근데 카메라만 달고 있는 드론은 누가, 왜 보낸 건지 모르겠네.

이것도 참교육인지 뭔지 하는 방송용인가?


“대학 동아리 시절 만들던 장난감이 무기가 됐을 줄이야.”


하긴. 인간은 무엇이든 무기로 쓸 수 있는 존재지.

심지어 썩어버린 소의 사체도 투석기에 담아 공포나 전염병을 퍼뜨리는 용도로 쓴다.


여러 종족을 만나 함께 해본 결과, 나는 인간의 강함은 지능이 아니라 창의력이라고 본다.


“너희는 그거 안 하냐? 이 세상의 파괴를 막기 위해~ 같은 거.”


처음 만났던 조무래기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다음에 온 심판자인지 뭔지는 화려하게 자기소개부터 했는데.


극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를 빌런으로 삼아 자신들의 화려한 영웅담을 만들기 위한 극장.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어떤 말도 없었고, 가면까지 써서 정체를 철저하게 감췄다.

유일한 단서라는 건 번개가 치는 망치가 그려진 검은 펜던트.


“······.”

“하긴. 그딴 가면을 쓰고 있다는 자체부터 정체를 밝힐 생각이 없다는 거겠지.”


이런 자들을 잘 안다.


밝힐 수 없는, 밝혀져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독검.

존재감과 공포의 잔향만큼은 확실히 남기려고 일부러 단서 하나는 흘리는 이들.


“토르가 시키드나?”

“······.”

“전사의 신이라는 이름이 아깝네. 꼬우면 직접 와야지 따까리나 보내고 말이야. 실은 겁쟁이 아니냐?”


도발의 의미도 있지만, 시험의 의미도 있었다.


‘필멸자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신에게는 이름에 새겨진 숙명이 있습니다. 인간이 따라야 하는 운명보다 더 많은 것을 구속하지요.’

‘인간이 보기에 신은 초월적인 존재지만, 그렇기에 더욱 제약이 많은 존재니까요. 마치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법과 제도, 도덕 등에 자유를 제약당하듯이······.’


만약 유스티티아의 말이 옳다면, 전신이자 군신인 토르는 겁쟁이라는 모욕을 참을 수 없어야 한다.

아니, 참아서는 안 된다.


“······.”

“······.”


그들은 말없이 투기를 고양했다.

아까와는 달리 반드시 죽이겠다는 듯 살기마저 치솟았다.


하지만 토르가 나타나진 않았다.


이 정도 모욕으로는 안 된다는 걸까.

아니면 내 발언은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일까.


일단 전자를 확인해볼까?


“웃기지도 않아. 약자들만 골라서 두들겨 패고 정의를 자칭하는 꼴이라니. 그래놓고 역으로 처맞으면 다구리나 놓고. 그렇게 살면 안 쪽팔리냐? 토르가 그렇게 가르치디?”


이번엔 반응이 제대로 왔다.

일제히 달려들었으니까.


“아, 근데.”


공격이 거의 다가왔을 때쯤 그들이 아주 잠깐 멈췄다.


퍽!


그대로 가까이 다가온 놈들 전부 쓰러뜨렸다.


“아님.”

“······.”


말은 하지 않았지만, 더욱 분노하는 게 기세로 느껴졌다.


“번개를 왜 그따위로 쓰는지 모르겠어. 번개라는 건 말이야······.”


바보는 아닌지 이번에는 놈들도 멈추지 않았다.


콰광!


내가 있는 자리에 거대한 번개가 내리꽂혔다.

내가 쓴 거다.


그와 함께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보는 족족 때려눕혔다.


“번개를 몸 안에 받아들이면 이렇게 빨라질 수 있는데 말이지.”


거짓말이다.

번개는 마법이고, 빨리 움직인 건 체술이다.


전투에서 망설임과 혼란은 틈을 만들기 마련.

거짓 정보를 흘려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려는 개수작이다.


“너희는 번개를 그따위로 쓰니까 안 되는 거야.”


하지만 구라에는 혼을 실어야 속일 수 있는 법.

나는 계속해서 번개 마법과 체술을 병용해서 보는 족족 쓰러뜨렸다.


“싸움이 어려움?”


여기에 조롱을 곁들였다.


“헛수고요.”


흥분해서 알아서 실수하도록.


“EZ.”


그렇게 신명 나게 족족 작살내고 있는데, 뒤에 있는 한 놈이 손짓하자 모두가 뒤로 물러섰다.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다.

자신들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떤 신을 믿나?”


유일하게 말을 하는 걸 보면 이 새끼가 대장인 모양이다.


“난 나밖에 안 믿어.”

“······.”

“나도 하나 묻자.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 그 양아치들이 너희에겐 소중한 가족이라는 거냐?”

“대중은 빌런과 응징을 원하니까.”


빌런과 응징이 필요한 상황에서 마침 교단의 동료를 공격한 내가 걸려들었다.

근데 건드리고 보니 만만치 않아서 자존심과 체면에 스크래치가 났다.

그러니 제대로 응징한다.


대충 이런 이야기인 듯했다.


“그러니까 날 공격한 이유가 딱히 없다는 거지? 그냥 재수 없게 걸린 것뿐이라고. 맞냐?”

“······.”


무언의 긍정.

마음에 들었다.


“합격.”

“뭐?”

“인성 합격이라고.”


혹시나 내가 금기를 범한 건 아닌지 아주 살짝 꺼림칙했는데.

이제 마음 놓고 조져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이유가 없다는 건 딱히 걱정하지 마라.”


나는 전쟁을 안다.

대가리를 꿇리면 나머지는 알아서 기게 되어있지.


“이제부터 너희가 나를 공격해야만 하는 엿 같은 이유를 확실하게 만들어줄 테니.”


아공간에서 내 애검을 소환했다.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가 가호를 내린 검이며, 불의의 마왕 피카레스크를 조질 때 썼던 신검.


“신을 모독한 것만으로 네가 죽을 이유는 충분하다.”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 아니었어? 표현의 자유는 어따 팔아먹었냐? 사실적시 명예 훼손이냐?”

“너!”


스걱-


가장 분노했던 대장 격인 인물의 목이 날아갔다.


“잘 판단해야 할 거야. 꿇든가. 죽든가.”


이후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토르! 이 겁쟁이 새끼! 언제까지 바닥에 대가리를 처박은 채 숨어 있을 거냐! 여기 네 신도들이 죄다 죽고 있다!”


꿇지 않은 녀석들의 목을 족족 날리면서 계속해서 토르를 모욕했다.

대가리를 따지 않으면 전쟁은 끝나지 않으니까.


“계속 숨어 있을 거냐? 좋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게만 강한 쓰레기 교단 따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주지!”


일부러 천천히 죽였건만, 녀석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덕분에 대신 사람은 적게 죽었다.

약간의 시간 덕에 죽음 대신 굴복을 택한 인간이 많아졌으니까.


“아무리 광신도로 보인다고 해도, 한 꺼풀 벗기면 이런 거지.”


그나저나 멀리서 주변을 에워싼 인간들은 대체 언제 다가오는 걸까.

토르 교단 놈들과는 다르게 전술 장비(Tactical gear)를 갖춰 입은 것으로 보아 군이나 경찰 소속 특공대 같은데 말이다.


“온다······ 음?”


오다가 멈췄다.

하늘에 이변이 생겼으니까.


우우웅!


아무것도 없던 하늘에 찬란한 빛이 거대한 원을 이루더니 이를 중심으로 크게 회전한다.

마치 별이 탄생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윽고 그 빛은 번개를 머금고 뿜어내기 시작했으며, 그 안에서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큰, 동시에 엄청난 힘을 뿜어내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단번에 알아보았다.

천둥의 신, 번개의 신, 군신, 전신 등 다양한 수식어가 함께하는 북유럽 최강의 신.


토르.


“드디어 나타났구나.”


난 불의를 보고도 참을 수 있지만, 참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나에게 가해지는 불합리다.


“확실히 보여줄게.”


날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그 상대가 신이라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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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10. 해후 (3) +2 24.09.16 136 1 14쪽
9 #009. 해후 (2) 24.09.15 152 3 14쪽
8 #008. 해후 (1) +1 24.09.14 190 2 14쪽
7 #007. 신화의 탄생 (3) +1 24.09.13 196 5 15쪽
6 #006. 신화의 탄생 (2) 24.09.12 192 4 12쪽
» #005. 신화의 탄생 (1) 24.09.11 203 5 13쪽
4 #004. 성대한 환영 24.09.10 211 4 13쪽
3 #003. 신살자의 귀환 (3) 24.09.09 253 5 12쪽
2 #002. 신살자의 귀환 (2) 24.09.09 289 7 14쪽
1 #001. 신살자의 귀환 (1) 24.09.09 350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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