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는 신을 찢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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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석
그림/삽화
Ai
작품등록일 :
2024.09.09 19:12
최근연재일 :
2024.09.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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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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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6. 신화의 탄생 (2)

DUMMY

- 돌입할까요?

“잠깐.”


검진혁 경무관은 경찰특공대의 통솔권을 갖고 있진 않지만, 작전 전체를 지휘할 권한이 있었다.


이는 그가 이 구역을 담당하는 경찰서장이기 때문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헌터이기 때문이다.


“위험하군.”


처음에는 빌런이 잃어버린 막냇동생을 닮은 것 때문에 놀랐다.

하지만 그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인물이 아니다.

잃어버린 막냇동생과 닮았다는 요소는 판단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요소가 그를 망설이게 했다.


기, 마력, 마나 등으로 불리는 신비로운 에너지.

무언가를 측정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하기에 이 신비로운 에너지의 파장을 전투력의 척도로 삼았다.


그런데 저 빌런의 전투력은 1이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간단한 장비가 아닌, 군이나 경찰에서 사용되는 정밀 장치로 확인해 봐도 1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전투력 1이 어떻게 토르 교단의 최상급 심판자들을 족족 제압한단 말인가.


전투력을 속일 수 있는 능력자가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로키 교단의 경우 가장 먼저 배우는 게 기만이니까.


하지만 그런 로키 교단의 헌터조차 힘을 완전히 숨기며 싸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행히 죽이지는 않고 있는데······ 어?”


말 끝나기 무섭다.

새로이 출현한 빌런은 허공에서 검을 꺼내어 토르 교단의 SS급 헌터를 죽여버렸으니까.


사도나 교황급을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헌터가 이렇게 쉽게 죽을 수도 있다니.

검진혁은 진심으로 충격받았다.


“······전원 준비해라.”


아무리 위험한 적이라고 해도.

설령 목숨이 위험하다고 해도.

경찰은 시민의 안전을 지킨다.


그렇게 나서려는 순간.


우우웅!


아무것도 없던 하늘에 찬란한 빛이 거대한 원을 이루더니 이를 중심으로 크게 회전했다.

황혼을 닮은 주홍빛 번개를 뿜어내는 거대한 광전사.


한때는 인류를 지켰으나.

이제는 인류를 억압하는 초월적인 존재.


“뇌신 토르······.”


결국 신이 등장했는가.


“전부 물러서라.”


신이 현현한 이상 인간이 낄 자리는 없다.


이제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다.

모든 것은 우리의 손을 떠났다.


꽉.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검진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막냇동생을 닮은 빌런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다.

만약 신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여파만으로 자칫 서울시가 지워질 수도 있다.


서울 시민들을 전부 대피시키기엔 늦었고.

막기엔 힘이 없다.


거대한 고래 사이에 새우가 된 기분.

그토록 열심히 수련해 왔건만 이리도 무력하다.


“갑호 경비 비상을 발령하고 주변 사람들을 최대한 대피시켜라.”

“하지만······.”

“어서! 책임은 내가 진다.”


안다.


갑호 경비 비상은 계엄이 선포되기 전에나 발령하는 국가 차원의 비상경계 태세.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등 고위 정치인에 의해 결정되는 사항이다.


아무리 검진혁이 경무관에 경찰서장,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헌터라고 해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다.


하지만 한시가 급하다.

한 번의 부딪힘으로 일대가 대파될 수 있으니.


“가용 경력은 전부 주민 대피에 동원하고, S급 이상은 나를 따라라.”


검진혁은 명령을 내리고 자신의 장비를 정비했다.


“피해를 최대한 막는다.”


***


짝!


“아이고 화상아!”


이수정은 이한결을 만나자마자 등짝을 후려쳤다.


“어디서 이상한 괴물을 주워와서!”

“괴물 아니야······.”

“괴물이 아니면? 저기 사람 죽이는 거 못 봤니?”

“시비는 저쪽이 먼저 걸었어.”

“시비 걸었다고 사람을 죽여도 돼?”

“시비 건 사람은 기절시켰고, 그다음 온 사람들도 죄다 쓰러뜨렸어. 죽인 건 이번이 처음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말하려다 이수정은 입을 다물었다.


폭력이 나쁘다고 말하기엔 교단 상당수는 폭력을 행사한다.

그것도 매우 자주.


지금에 이르러서는 고대로 회귀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사적 제재가 횡행하는 야만의 시대로 말이다.


“아무튼 안 돼. 특히 저놈은 너무 위험해. 근처에도 가지 마라. 조선 시대 최악의 망나니도 저것보다는 훌륭하겠다.”


하지만 이한결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체 뭐에 홀린 건지 단단히 맛이 간 것 같았다.


기절을 시켜서라도······.

그때였다.


우우웅!


아무것도 없던 하늘에 찬란한 빛이 거대한 원을 이루더니 이를 중심으로 크게 회전했다.

거대한 뇌운과 함께 영화에서 많이 봤던 금발 벽안의 야성적인 미남이 모습을 드러냈다.


“토르 님······.”

“와. 나 처음 봐. 너 전에 본 적 있어?”

“교단에 입단할 때 멀리서 봤지.”

“저렇게 잘생겼었구나.”

“음? 크고 위엄찬 분이긴 한데, 잘생겼는진······.”


사자 갈기 같은 황금색 머리만큼은 투신이라는 칭호에 맞지 않게 비단결 같기는 한데.


“누나 취향이 저랬구나.”

“누가 봐도 잘생기지 않았냐? 햄식이 닮았는데.”

“옛날 영화에서 토르 역 맡은 분? 전혀 안 닮았는데.”

“음······.”


신을 직접 보았다는 사람은 많다.

토르 역시도 마찬가지고.

휘황찬란한 수식어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토르를 가리켜 ‘크고 위엄있게 생겼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왜 자신에게는 야성적인 미남 배우로 보이는가.


애초에 신은 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나.

책 <인간화된 신>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는 국가, 돈과 함께 인류가 만들어낸 3대 발명품이며, 신은 경제, 사회, 정치, 권력 등의 요구 사항이 맞물려서 조정해낸 관념이다.


“따라서 민중이 믿는 대로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그 신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뜻이다.”


이 모순을 극복할 이론이 없었기에 고대 페르시아의 선지자이자,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자라투스트라.

그리고 이집트 신왕국 18왕조의 10대 파라오이자, 투탕카멘의 아버지 아케나톤은 세계적인 종교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반면 이런 모순과 긴장을 불완전하게나마 해소한 것이 삼위일체의 기독교, 일신론의 이슬람교다.


자신의 이론을 설파하기 위해 불교나 힌두교를 비롯한 동양 종교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의혹.

작가가 이란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무슬림이기에 기독교는 불완전한 결과물이고, 이를 보완한 종교가 이슬람교, 정확히는 이슬람의 수피즘이 완전한 종교라는 듯한 교묘한 표현.


여러 비판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주장은 이 상황을 설명하기엔 꽤 그럴듯해 보였다.


“우리가 보고, 인지할 수 있는 신은 불완전하다. 따라서 저 신은 불완전하다. 마치 인간처럼.”


이수정의 몸에서는 전율이 일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진실.

탄압이 두려워 외면했던 사실.


이를 진정으로 깨달았으니까.


“응?”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빨리 도망가. 너는 스쳐도 사망이다.”

“누나는?”

“특종을 포기할 순 없지.”


15년 전 신들의 귀환 이래, 신에게 저항하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다.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확실히 없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공권력조차 신의 심판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주진 않으니까.


“비록 콩이가 운명하긴 했지만······.”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했던 콩이가 하루살이처럼 추락하는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긴 하지만.

그래도 취재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나도 같이 있을게.”

“위험하다니까.”

“괜찮아.”


이한결은 고개를 들어 신과 당당하게 대치한 검진우를 보았다.

코끼리 간의 싸움 아래 있는 개미처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한 점의 두려움이나 망설임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두려운 것을 정면에서 마주할 때 어른이 된다더니······.”


이수정은 그런 동생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언제까지고 보살펴줘야 할 아기 같은 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마치 자식이 독립하겠다고 집을 나서는 것을 보는 느낌이다.


“그래. 하자. 죽기밖에 더하겠냐?”


***


토르가 완전히 현현하는 모습을 보자,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유스티티아와 달리 짜릿하긴 하네.”


투지도, 기세도 토르가 압도적으로 위다.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


그런 기분 있잖아.


최상위 랭크에서 피똥 싸다가, 부캐로 접속해 낮은 랭크에서 양민 학살을 재미나게 즐기고.

계속 양민 학살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지겨워져서 다시 쫄깃한 승부를 바라게 되는 그런 이중적인 마음가짐.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변태가 되어 있었다.


불의의 마왕 피카레스크를 뚝배기를 깼을 때.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를 처단했을 때.


그때의 희열을 잊지 못하니까.

아마 평생 잊지 못하겠지.


“드디어 무거운 궁둥짝을 들고 나타나셨군.”

[······.]

“꼴에 신이랍시고 무게 잡는 거냐?”

[나는 인간을 잘 안다.]

“뭘 그렇게 잘 아는데?”

[필요할 땐 도와달라고 구걸하고, 구해주면 금방 잊고 신에 대한 공경을 잃어버리지.]

“나도 신을 잘 알지.”

[무엇을 아는가.]

“자꾸 뭔가를 시키고 강요해. 뭐라도 된 줄 아나?”


시키는 대로 하기 싫다.

그래서 집도 나왔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어쩌겠어.

타고난 반골로 태어난걸.


목이 꺾이기 전엔 바뀌지 않는다.


[걱정하지 마라. 너에게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너도 걱정하지 마라. 내가 신에게 구걸하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그가 묠니르를 들어 올렸다.

옛날 만화에서 보던 양손 워해머도 아니고, 미국 코믹스에 나오는 머리가 두꺼운 한 손 망치도 아니다.


자루는 짧고, 머리는 장도리보다 얇다.

언뜻 보기엔 윗부분이 짧은 십자가로 보일 정도다.


[너 같은 결함은 반드시 제거해야만 한다. 그것이 신의 공의(公義 righteousness)일지니!]


쾅!


토르의 묠니르와 신검 스케일이 부딪혔다.

그 충격만으로 용권풍이 불고 주변 건물의 유리창이 깨져나갔다.


“힘은 강한데, 심기는 나약하기 짝이 없네. 겁쟁이다워.”

[······뭐라?]

“뭘 그렇게 두려워하냐. 설마 또 쫓겨날까 봐 무서워?”


유스티티아의 말대로라면 지구는 내 고향일 뿐만 아니라 신들의 고향이라는 뜻도 된다.

나야 유스티티아가 소환하여 강제로 끌려갔다지만, 신들은 어찌하여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는가.


정확한 사정은 모른다.

모르지만, 간단하게 생각하자면 대충 답은 나온다.


쫓겨난 것이다.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토르 신앙을 잊었으니까.


“근데 그거 다 가짜잖아.”


지구 역사상 거인이 존재한 적은 없고, 라그나뢰크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믿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따라서 토르의 위업은 가짜다.

전부 말이다.


“만들어진 용맹 따위 부질없다. 진실은 자신의 신도들이 수없이 죽어 나갈 때도 무서워서 숨어 있던 겁쟁이니까!”


이번엔 내가 검을 휘둘렀다.

그 충격에 대지에 균열이 생기며 일대가 흔들렸다.


[끝까지 모욕뿐이군. 전사로서 자긍심도 없나?]

“꼬우면 너도 하든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니다.

사람과의 전투에서는 적의 흥분을 유도하기 위해 하던 습관이다.


그런데 유스티티아와 싸울 때도 효과가 있더라.

다른 말은 효과가 없었지만, 그녀의 불의를 언급하자 힘이 약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혹시나 해서 집요하게 모독했다.


널 믿고 따르는 주민들을 광기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게 정의냐고.

불의의 마왕 피카레스크도 자신을 따르는 마족에게 그따위 짓은 하지 않았다고.


그러자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힘은 약해졌고, 그 틈을 타 유스티티아를 처단할 수 있었다.


그때 알았다.

신은 그 신을 구성하는 일반적인 인식을 폄하할 때 약해진다고.


다른 말로 하면, 신격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뭘 하든 좋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아둬라.”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전신, 투신, 군신, 뇌신 등 북유럽 최강의 신을 겁쟁이로 모욕하자 확실하게 힘이 떨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특히 ‘힘은 강한데, 심기는 나약하기 짝이 없네.’라는 말에서 극적으로 깎여나갔다.


“넌 오늘 나한테 죽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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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07. 신화의 탄생 (3) +1 24.09.13 196 5 15쪽
» #006. 신화의 탄생 (2) 24.09.12 193 4 12쪽
5 #005. 신화의 탄생 (1) 24.09.11 203 5 13쪽
4 #004. 성대한 환영 24.09.10 211 4 13쪽
3 #003. 신살자의 귀환 (3) 24.09.09 253 5 12쪽
2 #002. 신살자의 귀환 (2) 24.09.09 290 7 14쪽
1 #001. 신살자의 귀환 (1) 24.09.09 350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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