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는 신을 찢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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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석
그림/삽화
Ai
작품등록일 :
2024.09.09 19:12
최근연재일 :
2024.09.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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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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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14. 천마 신앙 (4)

DUMMY

“개인 침대도 있고, 신식이 다 되었다더니.”


입소대에서 훈련소로 넘어왔다.

막사가 의외로 멀끔한 것을 보며 내가 알던 군대와 진짜 바뀌었나 생각했다.


안에 들어가니 옛날 군대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침상이다.

비데도 있다고 자랑하더니 달랑 하나 있었으며, 정작 화장실 수 자체가 부족한 상태.


관물대에 박혀 있는 저 수많은 CS복들은 대체 뭐냐.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인가.


“오늘은 비가 오는 관계로 훈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군기가 흐트러지지 않게 수양록을 작성하며 정좌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젠 내가 대답을 하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제대로 된 미친개가 들어왔다고 소문이 자자한 모양이다.


“혹시 이번 달인 생일인 사람 있습니까?”


세 명이 손을 들었다.


“여러분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국민의 혈세로 케이크를 준비했으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알겠습니까?”

“감사는 니미럴.”

“315번 훈련병!”

“억지로 끌고 왔으면서 감사하라? 내가 널 개인 노예로 부려줄까? 생일 케이크 정도는 줄게. 존나게 감사해 해라. 지랄하는 순간 턱주가리를 뽑아버릴 테니까.”


이를 갈던 조교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소대장에게 보고하러 간 거겠지.

나 같은 버러지 새끼는 통제 못 할 것 같다고.


“그래도 챙겨주는 게 어디에요.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 뭐라도 더 챙겨주고, 서로 관계가 좋아지죠.”


조교가 사라지자 이한결이 나무랐다.


“지랄.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좋아져서 뭐하게?”

“······.”

“노예 마인드가 뼛속까지 박혀있구나? 계속 참으니까 계속 개 같은 대우를 받는 거야.”

“뭘 해야 하는데요?”

“끈질기게 물어뜯거나, 도저히 각이 안 서면 딴 데 가거나.”


그런 의미에서 유스티티아에게 감사한다.


이 엿 같은 곳에 안 오게 해줘서.

힘도 없을 때 왔으면 화병으로 뒤졌을 것 같네.


조교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소대장에게 뭔 소리를 들었는지 똥 씹은 표정이었고, 그의 손에는 케이크 상자가 하나 들려있었다.


“생일자는 축하해주고, 사이좋게 잘 나눠 먹습니다.”

“잠깐. 왜 하나뿐이냐? 이번 달 생일인 사람은 세 명인데.”

“그럴 때도 있습니다.”

“관대하네? 너보다 센 놈들한테만.”

“······.”

“눈 뜨는 거 봐라. 한 판 뜰까? 마. 자신 있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어버린 그를 지나쳐 생활관 밖으로 나갔다.


“315번 훈련병! 어디 갑니까?”

“쫄다구 갈궈봐야 의미 없으니 직접 조지러 간다.”


복도로 나온 나는 행정실이라고 쓰인 곳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등장한 내 모습에 안에 있던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훈련병? 조교는 어쩌고?”

“케이크 내놔. 2개 더.”

“뭐?”

“삥땅치지 말고 생일인 사람 숫자대로 내놓으라고.”

“······.”


상사가 눈을 끔뻑였다.


“저놈이 입소대에서 그 유명한 개차반입니다.”

“허······.”

“누가 빼돌렸냐?”

“315번 훈련병. 계속 이렇게 나오면 퇴소 조치할 수도 있습니다.”

“하든가.”


어디 보자.

대충 냄새를 맡아보니 저쪽인 거 같은데.


행정실 내부에 있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쾅!


발로 차서 열었다.


“케이크. 여기 있네?”


부식 창고인가 보다.

건빵도 있고, 맛스타나 라면도 있고 한 걸 보면.


많이도 쌓여있다.

보통 보급품은 그때그때 불출하는 게 규정이라고 했으니, 이건 빼돌린 것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이거 전부 꿀꺽하려고 했냐?”

“315번 훈련병!”

“감당 가능해? 내 아버지가 포 스타인데.”


앞에 수식어가 붙는다.

(전), 혹은 (예비역)이.


“······.”


상사는 입을 다물고, 머릿속으로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다.


어이가 없네.

혹시나 해서 해본 말이었는데, 내가 직접 으름장을 놓는 것보다 만 배는 효과가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아까 올 때 보니 병사들은 잡초 뽑게 시키고, 헌터 출신은 죄다 열외던데. 그거 맞아? 국방부 지침이냐?”


내가 미친놈인 건 맞지만, 트집 하나 잡아서 게거품 무는 게 아니다.

보는 것마다 다 미친 상태라 어디서부터 망가진 건지 감도 안 잡힐 지경이었다.


“아무리 아버지가 대장이라고 해도 315번 훈련병은 병사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자.”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땅 아래를 가리켰다.


“뭔가 오고 있는데 괜찮겠어? 느껴지는 거로 봐서는 너희 다 뒤질 것 같은데.”

“······뭐?”

“오고 있다고. 괴물들이.”


입소대에서부터 느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땅 파는 속도도 비정상적으로 빠르고, 진동도 기묘할 정도로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단단한 지하 암반을 부드럽게 유영하는 느낌이었다.


“뭐, 알아서 하시고. 이건 내가 가져간다.”


당장 쳐죽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곧 다 뒤질 테고.

나보다는 괴물에게 죽는 게 더 큰 형벌이 될 테니까.


***


“저, 저, 저.”


상사는 렉 걸린 고양이처럼 버벅댔다.

20년 동안 복무하면서 저런 상또라이는 처음이었다.


“저 훈련병 누구야? 진짜 부친이 포 스타 맞아?”

“잘 모르겠지 말입니다.”

“야 인마. 행정병이 모르면 누가 알아? 서류 확인 안 했어?”

“아직 입소대에서 보고가 안 왔지 말입니다. 딱 저 훈련병이 포함된 소대만 안 왔습니다.”

“군대 돌아가는 꼴 봐라. 아주 그냥 개판이야.”


그 개판에 일조하고 있는 사람이 말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지만, 행정병은 적당히 넘겼다.


말년이니까.

제대만 하면 저 더러운 꼴 안 봐도 되니까.

근데 말년 병장인데 왜 난 아직도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답은 간단하다.


후임이 한 명밖에 없으니까.

애가 좀 띨빵해서 일 처리를 진짜 못한다.


후임이 실수라도 하면 귀찮아지는 건 자신이니 그냥 하고 있다.

어차피 제대만 하면 내 일 아니니 그때까지만 참자는 심정으로.


“근데 말입니까. 아까 한 말은 대체 뭐였······.”


그의 의문은 곧 풀렸다.


삥! 삥! 삥! 삥! 삥! 삥!


짧은 경보음이 연이어 흘러나왔으니까.

기계 오작동인가 생각했지만, 경보음이 훈련소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걸로 보아 가벼이 여길 사항은 아닌 것 같았다.


“진도개 하나잖아!”


상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역시 20년 군 생활 짬밥이 어디 간 건 아니었다.


“논산에 진도개 하나?”


최전방도 아니고.

이 시대에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다고 해도 계엄령이 내려지진 않을 것 같고.


“무장탈영인가? 아니면 총기 탈취?”


삐이이익! 삐이이익!


상사의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렸다.

마치 옛날에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했을 때 울러 펴졌던 그 경보와 비슷했다.


- 재난 예언. 현재 북한에서 깊은 곳에서 땅굴을 파고 논산 훈련소로 향하는 중. 조속히 대응할 것.


상황이 이쯤 되자 현실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총기분출 합니까?”

“생각을 해라! 입소 첫날에 무슨 총기분출이냐?”


전쟁이 나도 훈련병은 훈련을 받고, 자대배치 이후 전투에 투입된다.

하지만 훈련소가 공격받는 상황이라면 교관의 지휘에 따라 방어전에 투입될 수 있다.


말년 병장은 그런 규정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저 상사 놈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동안 자기 이메일까지 나한테 주면서 관리하고, 중요한 일만 보고하라고 했으니 모를 수밖에.

알았다고 해도 까먹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대기한다. 훈련병들은 전부 제 자리에 있으라고 해.”

“예!”


말년 병장은 방송 마이크로 향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훈련소에서 ‘전투 배치! 전투 배치!’를 외치는 건 오히려 혼란만 가중할 것 같은데.


- 행정반에서 전달합니다. 금일 오후······.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쾅!


연병장 한가운데 거대한 뱀이 튀어 올랐으니까.


말은 뱀 같다고 했지만, 지구에서는 저렇게 생긴 뱀은 볼 수 없다.

흉측하기 이를 데 없고, 머리에는 네 갈래로 갈라지는 거대한 입이 있으며, 안에는 수천 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다닥다닥 박혀 있었으니까.


쾅! 쾅! 쾅!


한 마리가 아니다.

연병장마다 튀어 올랐으니 대충 봐도 수십 마리.


그리고 벌어진 입에서는······.


- 키에에에엑!


온갖 괴물들이 괴성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말년에 엿 됐네.”


쏟아져 나온 괴물들이 막사를 덮쳤다.


군대라고는 해도 훈련소다.

그것도 갑작스러운 기습.


정부에서 날아온 경고는 너무 늦었고, 쏟아져 나온 괴물의 숫자는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저리 가! 이 괴물아!”


주둥이가 귀밑까지 쭉 찢어지는 짐승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와 공포를 자아냈다.

단지 외형만 험악한 것이 아니라는 듯.


빠직.


괴물들은 반항하는 인간을 뼈까지 통째로 씹어먹었다.

그 모습을 보자 다들 반항할 엄두도 못 내고 숨만 죽였다.


짧으면 며칠, 길면 몇 주 정도 전까지 학생이었던 몸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도 버티기 힘든 공포 속에서 제대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헌터가 괴물에게 질 것 같냐! 사냥꾼은 우리다!”


스걱-


그나마 헌터 출신의 신병이 제각기 신력과 스킬을 쓰며 격렬하게 반항했지만,


“나쁜 아이네.”


뒤이어 등장한 악마에 의해 순식간에 피떡이 되었다.


“다들 잘 들으렴.”


엄청난 근육질의 남성형 악마였다.

얼굴은 흉측하기 이를 데 없지만, 어깨에는 매우 귀여운 고양이가 올라가 있다.


또, 목소리는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것이 카스트라토를 닮았다.

고음역을 유지하기 위해 변성기가 시작되기 전에 거세하는 18세기 이전의 가수.


“얌전히 따라오면 아무 문제 없을 거란다. 하지만 반항하면 나는 용서해도 이 아이들이 어찌할지는 모르겠네~”


세상에 훈련소에 입소한 훈련병을 납치한다니.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이었다.


아니, 발상 자체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전략적으로 의미가 없으니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이겠지.


하지만 악마에게는 분명한 의미와 목적이 있었다.


“자, 다들 선택하렴.”


악마는 손에 마기를 모았다.

마치 보랏빛 태양이 뜬 것처럼 하늘마저 가려버렸다.


헌터나 신도가 아닌 이들도 바로 알아차렸다.

저 악마는 너튜브에 나오는 잡몹이 아니며, 하이 랭크 헌터가 다발로 달려들어도 쓰러뜨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대악마라고.


“죽거나, 따르거나.”


***


“어, 어쩌죠······?”


이한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기대 안 했는데······.”


놀랍다.


“의외로 맛있네.”


생일로 나온 떡 케이크.

나는 떡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건 먹을 만했다.


이렇게 맛있는 걸 삥땅 치려고 했단 말이냐.

더 괘씸하네.


“형. 어떻게 하죠?”

“못 들었냐? 죽거나 따르라잖아.”

“형은 해결할 수 있잖아요.”

“그랬구나.”

“예?”

“어쩌다 세상이 녹슬었는지 알 것 같다고.”


저쪽 세상에서도 많이 봤다.

그저 의지하고 기도만 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부류.


“어떤 타락한 신학자가 말하더라.”


유스티티아를 모시는 사제였으나, 불의의 마왕 피카레스크의 속삭임에 넘어가 변절한 자.


“권위에 의지하면 개인은 편해진다고. 교리를 공부하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보다 그냥 신에게 빌거나 용서를 구하는 게 편하다고. 자신은 그 바람을 이뤄주었을 뿐이라고.”


그의 말을 듣고 결심했다.

앞으로 아가리를 잘 터는 놈이 적이 된다면, 뭐라고 하기 전에 죽여버리겠다고.


쓸데없이 괜한 망설임만 생기잖아.


“무서우면 대가리 처박고 기도나 해라. 신이 응답해주지 않거든 악마와 손을 잡고.”


기대는 없지만, 이것은 시험이다.


만약 스스로 일어선다면 도와주겠다.

하지만 일어날 생각도 없이 징징 짜기만 한다면, 나 역시도 손을 뻗어줄 이유가 없다.


“그것이 녹슨 세상에 어울리는 인생 아니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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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009. 해후 (2) 24.09.15 154 3 14쪽
8 #008. 해후 (1) +1 24.09.14 194 2 14쪽
7 #007. 신화의 탄생 (3) +1 24.09.13 199 5 15쪽
6 #006. 신화의 탄생 (2) 24.09.12 196 4 12쪽
5 #005. 신화의 탄생 (1) 24.09.11 206 5 13쪽
4 #004. 성대한 환영 24.09.10 215 4 13쪽
3 #003. 신살자의 귀환 (3) 24.09.09 256 5 12쪽
2 #002. 신살자의 귀환 (2) 24.09.09 292 7 14쪽
1 #001. 신살자의 귀환 (1) 24.09.09 351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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