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만 사기카드 쓴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뭉낑깡
작품등록일 :
2024.09.10 11:37
최근연재일 :
2024.09.17 08:15
연재수 :
9 회
조회수 :
464
추천수 :
11
글자수 :
46,683

작성
24.09.10 18:15
조회
71
추천
1
글자
11쪽

2화

DUMMY

* * *



집무실에 마주 앉은 두 남자 앞으로 메이드 복장의 여성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고맙습니다, 엘렌.”

“별말씀을.”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보이곤 집무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바쿠야가 고개를 돌려 물어온다.


“벨. 저 아가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다.


“너도 이제 슬슬 결혼할 나이지 않느냐.”


벨의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에 바쿠야가 덧붙였다.

그제서야 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의도의 질문인지 그제야 이해했기 때문이다.

다만 결혼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앞으로 닥칠 재앙을 대비하기도 바빴으니까.


“참한 아가씨지요. 하지만 저랑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음?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다. 그녀는 어디에 내놓아도 탐낼만한 신붓감이야. 혹시 그녀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게냐?”


벨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아주 잘 알았다. 굳이 전회차까지 따질 필요도 없이 그는 아주 강력한 기사였으니까.


‘루이스 텔러. 달빛 급 기사.’


일종의 경지다.

현시점 달빛 급 기사는 그 숫자가 많지 않다.

과장 좀 보태자면 루이스는 제국 내에서도 손에 꽂힐 정도의 실력자다.

바쿠야의 뜻은 그만한 강자와 혈연으로 묶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엘렌의 결혼시장에서 가치가 수직으로 상승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외모야 너도 봐서 알겠지만 흠잡을 곳이 있더냐? 아니지. 겨우 그 정도라 표현하는 건 그녀의 미모에 대한 모욕일 거다. 거기다 요즘 여자들 답지 않게 메이드로 일하면서 이것저것 집안을 관리하는 것에도 통달했어. 깐깐하신 내 어머니도 아주 흡족해하며 칭찬하시는 게 보통 야무진 게 아닐 거야. 사소한 결점이 있다면 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건데··· 그거야 결혼하고 나면 나아지지 않겠느냐. 그녀는 또 네가 태어나기 전에도 혼약이 오가던 사이였으니 지금 결혼을 하는···”

“제가 오해하게 해 드렸군요. 제 뜻은 제가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벨은 끊임없이 이어지려는 바쿠야의 말을 끊으며 답했다.

문 너머로 느껴지는 인기척으로 보아 얘기의 소재가 된 당사자는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 얘기니 궁금할 만도 하겠지.

바쿠야 또한 엘렌이 듣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 얘기를 꺼냈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

반겨주는 바쿠야의 호의는 고맙게 생각했지만, 여기에 머물 생각은 없었다.

그건 회귀자로든 빙의자로든 큰 이점을 포기하는 행동이니까.


“갑자기 왜 결혼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장례가 끝나면 다시 떠돌아다닐 방랑자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선을 그었다.

단호한 벨의 표정을 보고 그를 설득할 수 없음을 직감한 바쿠야가 푹 고개를 떨궜다.



* * *



바쿠야는 벨이 가문에 머무를 때 쓰던 방을 배정해줬다.

벨이 적극 요구했기 때문이다.

가문을 떠난 지 삼 년이 지났는데 그의 방은 그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진심이었나.’


바쿠야의 환대는 벨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를 기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걸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던 탓이다.

그래서인지 바쿠야의 태도는 오히려 벨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회귀자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봤다.


‘앞으로의 목적.’


가문으로 돌아온 이유는 단순했다.

이곳에서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케시프의 몰락을 막는 건 부차적인 일이었다.

앞으로 닥칠 환난을 생각해도 성장을 1순위를 놓는 게 맞으니까.


‘어떤 카르타를 얻게 되려나.’


희귀 카르타도 그 종류가 다양하다.

벨을 회귀시킨 카르마처럼 소모성 카르타가 있지만 상시 지속되는 카르타도 있었다.

보통은 소모성 카르타가 그 효능이 훨씬 더 강력한 편이다.

가령 죽은 사람을 소생시킨다거나 반대로 지정한 대상을 즉사시키는 카르타도 존재했다.


‘가능하면 지속적인 카르타를 얻었으면 좋겠는데.’


아직 수중에 카르타가 없는 상태기에 소모성보다는 상시 유지되는 카르타가 더 효용성이 높았다.


‘뭐가 됐든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카르타를 얻으려면 일종의 던전을 클리어해야 한다. 게임에선 던전 대신에 ‘환몽의 지대’라는 명칭을 썼다.

환몽에 지대에서 강력한 귀물을 처치하며 보상으로 희귀 카르타를 얻을 수 있는 식.

환몽의 지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카르타 마스터란 특수한 직업을 가져야 하는데 게임에서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은 플레이어 말고는 없었다.

한마디로 주인공 전용 던전인 셈이었다.


‘내가 주인공이 된 거라고 봐야하나···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야.’


환몽의 지대로 들어가는 입구가 이 저택 내부에 존재했다.


‘그러고 보니 예나프를 깜빡했군. 빠르게 처리하고 돌아가자.’


바쿠야에게 말했다면 그녀의 방도 배정해 줬겠지만 아무래도 그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았다.

벨은 오늘 당장 그곳을 통해 환몽의 지대로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꾸물거릴 이유가 없었으니까.


‘자정까지 기다린다.’


환몽의 지대에 들어가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자정에 들어가서 새벽에 나온다면 눈에 띄지 않고 카르타를 얻을 수 있겠지.

이미 늦은 밤이라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벨은 자신의 무기를 챙겼다.

거대한 것 빼고는 평범한 대검이지만 용병생활을 하는 동안 벨의 목숨을 무던히도 구해준 녀석이다.

무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저 도구는 도구일 뿐이라 생각할 뿐이지.


야심한 시간 벨은 발걸음을 낮춰 환몽의 입구로 이동했다.

저택을 돌아다니던 사용인들도 이미 취침에 들었기에 복도는 인적 없이 조용했다.


‘여기군.’


목적지에 도착했다.

카르타 마스터로 각성하면서 얻은 감지기가 여기가 환몽의 입구라고 말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저택에 있는 많고 많은 방 중의 하나일 뿐이지.

다행히도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조용히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간 직후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저벅거리는 발걸음은 벨이 들어온 방으로 다가왔다. 이곳에 오면서 누군가 미행하는 기척을 느끼진 못했다.

게다가 이렇게 부주의하게 발걸음을 내는 걸로 보아 벨이 여기 들어왔다는 걸 아는 거 같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저택의 사용인이라는 생각.


문을 여는 낌새를 느끼자마자 벨은 침대 밑으로 숨었다.

야심한 시각에 몰래 이곳에 온 걸 알면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으니까.

굳이 발각돼서 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엘렌 텔러.’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불과 몇 시간 전에 봤던 사람이었다. 다름 아니라 바쿠야의 집무실에서 커피를 타줬던 메이드.

또 그가 혼인을 권유했던 여인이기도 했다.


사실 벨에게 있어서 엘렌 텔러는 평범한 메이드 아가씨라기보다는 좀 더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회귀하기전에 유명했던 여자였으니까.


광마녀 엘렌.

그녀는 서부전선에서 수도 없이 많은 귀물과 인간을 죽인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잔혹한 심성을 두려워해 광마녀란 별명을 붙였다.

만약 귀물의 침공이 아니었더라면 영웅은 커녕 흉악한 범죄자로 기억됐을 여인.


그녀가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른다.

그런 걸 알려줄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사실, 루이스 텔러의 딸이라는 것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고.


전대 변경백의 심복이었던 루이스 텔러는 바쿠야가 가주가 된 이후에도 케시프 가문에 봉사했다.

그의 충성심은 이미 입증이 됐다.

어디를 가도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서도 무너져 가는 케시프 가문에서 최후를 맞이한 사나이였으니까.


‘···그나저나 엘렌은 전혀 다른 사람이 돼버리는군.’


저 평범한 아가씨가 그렇게 잔혹하게 변해버리다니.

참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하지만 이번 회차에는 그녀가 광마녀가 되는 미래는 없을 거다.


‘내가 환몽의 지대를 해결할 거니까.’


카르타를 수급할 수 있는 보물창고처럼 말했지만 사실 환몽의 지대는 커다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귀물들이 차원경계를 넘어서 곧바로 침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으니까.


“나오세요.”


그러던 중에 엘렌이 푹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설마 벨이 이곳에 온 것을 알고 하는 말인 건가.


‘발각됐다고?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았는데?’


되짚어봐도 짚이는 게 없었다.

벨은 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태랑 용병이다.

잠입해본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고작 평범한 메이드 아가씨한테 발각된다고?


“지금 나오면 봐 드릴게요. 왜 침입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요. 방에 들어오면 흔적이 남게끔 장치를 해뒀으니까요.”


아무래도 들킨 것 같았다.

벨은 고민하다가 침대 밑에서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불순한 의도로 온 것도 아니었으니 사정을 설명하면 될 거란 생각이었다.


“···설마 진짜로 있을 줄이야. 그것도 당신이었군요.”

“음.”


엘렌의 반응에 벨은 그제야 그녀가 그저 떠본 것이란 걸 깨달았다.


“대체 야심한 시각에 제 방에 왜 침입한 거죠? 지금 말해 두겠는데 저는 결혼을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힘으로 어떻게 해볼 생각이라면 단념하시길. 이래 보여도 호신술을 익혔으니까요.”


그녀가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허벅지 부근에 매어둔 단검을 뽑아 겨눴다. 엘렌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 보였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선 ···저는 이곳이 당신 방인 줄 몰랐습니다. 여자가 머무를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방이잖아요.”


벨이 방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가 머무르는 방이라기에는 화장품도 옷가지도 없었다. 아니, 사람이 머무른다기에 지나치게 물건이 없는 방이었다.


“설마 제게 모욕을 주려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여자 같지도 않다는 그런 식으로?”


엘렌이 미간을 찌푸러뜨렸다.

게다가 단검을 쥔 손은 거두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녀가 소리를 쳐 사람을 부리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잠깐···?”


그녀를 이해시키려 고민하던 벨은 갑작스러운 현상에 당혹성을 냈다. 다름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환몽의 지대로 이동되는 전조가 일어나고 있었다.

지형지물은 그대로지만 공간이 마치 새로운 물감으로 덧칠된 것처럼 색깔이 바뀌었다.

좀 더 검고 불그스름한 색상.


‘환몽의 지대로 넘어왔다!’


벨은 엘렌의 뒤에서 나타난 귀물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오지맛!”

퍼억ㅡ.


벨은 엘렌이 방어적으로 찔러낸 단검을 한 손으로 막아내며 뒤에 있는 귀물을 걷어찼다.

귀물이 날아가며 쾅! 하는 소리를 냈다.

그제야 엘렌은 벨이 자신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벨의 손은 이미 단검에 꿰뚫려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괘, 괜찮아요?”

“진정하세요. 괜찮으니까.”


벨은 당황해서 손발을 주체하지 못하는 엘렌을 다독였다. 그러면서 이 여자가 서부의 광마녀가 맞다고 확신했다.

회귀자이기도 한 자신이 평범한 메이드의 단검을 피해내지 못했다.


‘그저 손바닥으로 막아내는 게 최선이었어.’


어떻게 봐도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혼자만 사기카드 쓴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 9화 24.09.17 20 2 11쪽
8 8화 24.09.16 20 1 12쪽
7 7화 24.09.15 25 1 12쪽
6 6화 24.09.14 35 1 12쪽
5 5화 24.09.13 39 1 12쪽
4 4화 24.09.12 43 1 12쪽
3 3화 24.09.11 52 1 11쪽
» 2화 24.09.10 72 1 11쪽
1 1화 24.09.10 159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