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만 사기카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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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낑깡
작품등록일 :
2024.09.10 11:37
최근연재일 :
2024.09.17 08:1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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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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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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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화

DUMMY

벨이 덜컥 멈춰서 뒤를 돌아봤다.

잘못한 사람마냥 뜨끔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예나프.

그리고 평소와 같은 차분한 얼굴의 엘렌.

다만 악취는 견디기 어려웠는지 살짝 미간이 찌푸려졌다.

벨이 예나프의 어깨를 두드렸다.


“예나프. 소년을 부탁한다. 혹시라도 가족이 있다면 챙겨서 안전한 곳에 대피해라.”

“뭐? 그러면 너는?”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이미 알고 있을텐데?”

“···알겠어. 몸조심 해라. 꼬맹아. 넌··· 일단 누나랑 같이 움직이자.”

“저는 돕겠습니다. 도련님.”


일행이 갈렸다.

벨은 엘렌을 대동한 채로 대놓고 정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연히 벨에게 시선이 쏠렸다.


깡마른 체구의 노인.

볼품 없는 여인.

팔 한 짝이 없는 남자.


마약이라도 했는지 흐리멍텅한 얼굴로 벨을 쳐다보면 깔깔 거린다.


밑바닥이다.

밑바닥인 곳에서도 가장 아래에 위치한 자들이다.

벨은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곤 계속해서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을 한복판에서 젊은 여자를 대놓고 희롱하고 있던 깡패 무리가 보인다.


“어이. 저새끼 뭐냐?”

“엥? 못 보던 얼굴인데? 큭큭 미친놈인가. 여길 기어들어와?”


놈들과 벨의 눈이 마주쳤다.

벨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잘 단련된 놈들이군.’


건들거리는 듯한 말투와 달리 행동에는 절도가 있다. 어쩌면··· 도적으로 가장한 병사들일지도 모르지.


“정의의 협객 나리라도 되시나? 표정이 아주 비장해?”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비아냥 대자 뭐가 재밌는지 양옆의 놈들이 폭소를 터뜨린다.

그들 사이에는 흰자위를 보인채 실신한 여인이 놓였다.

팔에 꽂힌 주삿바늘.

마약이라도 주입한 건가.


“오. 거기 뒤에 여자 잘빠졌네? 뭐야, 상납하러 온거였나? 이거 이거. 아주 기특한 친구네?”

“크히히히히힉! 성의를 봐서 팔 한짝 다리 한짝으로 봐주지.”


썩 기분이 좋은 말은 아니었다.

그 덕분에 녀석들의 수명이 좀 더 단축됐다.

벨은 대검을 빼들었다.


‘신속.’


에테르를 사용해 몸을 폭발적으로 가속하는 기술. 벨 로서도 성광급은 되어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벨의 움직임을 놓친 도적들은 혼비백산 했다.


“고수다!”

“씨이발! 합격진 준비해.”


스걱ㅡ.


벨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찰나에 도적이 반응해서 목 대신에 팔을 베었다.

어느새 나머지가 벨을 포위한 모양새.

확실히 일개 병사라기에는 예사롭지 않은 실력이다.


“기사였나.”


이런 곳에서 도적질이나 하고 있기에 알맞은 실력은 아니다.

저 정도 힘만 갖춰도 훨씬 명예롭고 안정적인 신분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니까.


‘벌레들.’


실력을 떠나서 사람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선이 있었다.

전장에 선 군인은 인간성을 잃는 걸 항상 경계해야 했기에 벨은 선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았다.

저것들은 선을 넘은 자들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자들.

벨은 자비를 버렸다.


“영역전개.”


시간이 멈췄다.


‘그렇게까지 거창한 기술은 아니지.’


단지 이 영역은 벨을 약간 가속시키고 상대를 약간 감속시킬 뿐이다. 그것보다 핵심은 영역을 전개하는 동안 벨의 인지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 된다는 거다.

덕분에 영역에 속한 상대는 마치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역을 유지하는 시간은 길지 않다.


째깍ㅡ.


시곗바늘이 이동했다.

고작 1초 남짓한 시간.

그러나 이 1초는 절대로 짧지 않다.

환몽의 지대에서 귀물을 처리했을 때도 불과 1초면 충분했다.


째깍ㅡ.


벨의 대검이 서서히 움직인다.

이번에는 확실히 이전보다 안정적이다.

몸에 부담이 훨씬 덜어진 걸 체감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탐식으로 롬을 흡수한 게 컸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탐식으로 카르타를 교체한지 12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거다.

그건 도적들을 죽여봤자 경험치를 얻을 수 없다는 얘기니까.


째깍ㅡ.


벨이 휘두른 검이 도적의 몸통을 베어냈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대로 크게 반원을 그린 대검이 양옆의 있는 도적들까지 베어냈다.

셋을 죽였으니 둘이 남았다.


‘다됐군.’


세번의 초침.

벨이 정해둔 영역의 한템포다.

한 템포를 더 끌어다 쓰는 것도 가능하지만, 굳이 조무래기를 상대로 그것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까.

다시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툭ㅡ.


“미, 미친··· 도대체 저런 강자가 여기에는 왜···?”


남은 두 도적은 전의를 상실했다.

그렇다고 도망칠 생각도 없어보였다.

도망쳐 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확한 판단이긴 했다.


얼마가지 않아서 벨의 대검이 나머지 두 도적의 목마저 베어냈다.

전의를 상실한 적과의 대결은 싱거웠다.

다섯이면 몰라도 두 명은 벨은 맞상대하기에는 많이 아쉬웠으니까.

영역전개까지 쓰지 않고도 충분히 적을 처치하는 게 가능했으리라.


“고생하셨습니다. 도련님.”


전투를 지켜보던 엘렌이 다가와 벨의 몸의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그 동작이 사뭇 진지했기에 벨은 가만히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원피스 위로 프릴이 약간 들어간 흰색 드레스를 받쳐입었고, 단정하게 내린 짧은 단발머리와 차가워 보이는 눈매.

외형만 보자면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메이드지만 정작 주인에 대한 존중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가짜 메이드.

하지만 그런 엘렌도 가끔은 메이드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엘렌. 궁금한 게 있습니다.”


청소 당하는 미술품이 된 심정으로 가만히 서 있던 벨이 말했다.

엘렌은 그에게 눈길하나 주지 않고 도도하게 답했다.


“말씀하세요.”

“왜 메이드 컨셉을 계속하시는 겁니까?”

“1년치 페이를 받았으니까요. 메이드로서 도련님을 따라다닌다는 조건으로.”

“꽤 큰 액수였나 봅니다.”

“물론, 큰 액수긴 합니다만 제 돈은 그 액수와는 별개입니다. 대가를 받았으면 걸맞은 의무가 주어지는 게 당연하니까요. 근데 이건 이전에 한번 했던 얘기 같은데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몰랐습니다."

"절 신뢰하지 않으셨단 얘기군요."

"음..."

"농담이에요."


벨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엘렌이 무표정한 얼굴이라 정말로 농담인지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고마워요."

"네?"

"오늘 도련님이 전투하는 걸 보고 느낀게 많았거든요."


주제 전환이 갑작스럽긴 했으나 그냥 꺼내는 아닌 거 같았다.


"뭔가 진전이 있었나 보군요?"

"네, 다 도련님 덕분입니다."


아마도 벨이 사용한 영역 전개를 보고 깨달음이라도 얻은 모양.

벨이 짐작하기엔 엘렌은 이미 벽 앞에 서 있었다.

성광급까지 단 한걸음을 남겨둔 상태.


그녀가 오늘 무언가를 깨달았다면 조만간 그 벽을 넘어설 것이다.

스물이 채 되지 않은 나이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재능이란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하긴.'


지금은 메이드 컨셉질에 취해있어서 가끔 간과하는데(정작 그녀 본인은 직업의식이라 생각하는 거 같지만), 그녀는 전회차에 그 유명했던 광마녀다.

독보적인 재능을 가졌다해서 이상할 게 없었다.


"이상하군요."

"뭐가 이상합니까?"

"도련님의 반응이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감탄을 하는 게 정상이니까요. 심지어 엄격한신 제 아버지도 눈가를 꿈틀 거렸을만한 성취인데 말이죠. 아, 아니면 제게 전혀 관심이 없어서 그런건가요? 동료에 대한 일말의 관심조차 말이죠."

"하하... 그럴 리가요. 어떻게 겨우 두번만 보고 뭔가를 깨달은거죠? 영역은 본다고 해서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게 아닐텐데."

"완전히 엎드려 절 받기가 따로 없네요."

"맞춰주기 어려운 메이드네요."

"그런 말은 부디 속으로만 하시길."


엘렌과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던 벨은 문득 주변에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잠시 잊고 있었던 악취가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자신이야 전회차의 경험 탓에 극악한 환경이 익속한 탓이라고 해도 엘렌의 태연함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보통 저 나이의 여자 같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아니, 많았다.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내심 벨은 엘렌의 평가를 상향조절했다.

가만히 놔둬도 재능덕분에 알아서 성장하고 거의 야생인 수준으로 방치해도 알아서 잘 적응하는 타입.

벨이 생각하는 함께할 동료로 꼭 부합하는 조건이었다.

세력을 일굴 생각은 진작부터 하고 있었으니까.


"마치 저를 상품처럼 바라보는 눈빛이군요."

"설마요."


가끔 눈치가 너무 빠르다는 건 사소한 단점에 불과했다.

벨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만한 소란이 있었는데 도적들이 몰려오지를 않네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단순히 화제만 돌리려는 의도는 아니다.

실제로 벨이 이곳에서 떠들어 댄 건 도적들이 몰려오길 바랐기 때문인데 여태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긴 하군요. 저 사람들도 우리를 바라만 볼 뿐 놀란 기색도 없고요."


마을 한복판에서 살인이 벌어졌는데 이상한 반응이다.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럴겁니다. 아마도 마약을 복용해서겠죠."

"끔찍한 일이네요. 이제 어떻게 하실건가요?"

"정보를 얻어 봐야죠."


주위를 살피던 벨은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남자를 발견했다.

눈이 옆으로 쭉 찢어서 얍상한 인상.


'보통 이렇게 생긴 사람은 눈치가 빠르지.'


벨은 남자를 불러 마을에 도적들이 없는지를 캐물었다.


"도, 도적이요?"

"알고 왔으니 사실대로 말해 주십시오. 물어볼 사람이 당신 뿐인것도 아니니 피차 일을 크게 만들지 맙시다."


벨의 은근한 협박에 남자가 사실대로 털어 놓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며칠전 수십명 규모의 도적들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말이며 무기며 죄다 끌고갔습죠. 분위기가 아주 살벌한 게 척 봐도 보통일이 아니란 걸 알았습죠... 헤헤."

"이상하군요. 밖에서 만난 그 꼬마는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는데요."


가만히 남자의 말을 듣고 있던 엘렌이 의문을 표했다.


"꼬, 꼬마요?"


벨과 엘렌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피던 남자는 뭔가 짚이는 게 있었던지 박수를 탁 쳤다.

그리고는 그 소리가 벨의 심기를 거슬렀을까 싶어 화들짝 놀라했다.


"너무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순순히 협조하는 사람을 죽일 정도로 글러먹지는 않았으니까."

"그, 그그야... 당연히 잘 알고 있습죠! 그럼요. 아마 기사분이 보신 꼬맹이는 바깥에서 기르는 사냥개일 겁니다. 당연히 안에 소식을 하나도 모르겠죠. 사냥개는 마을이 아니라 야생에서 지내니까요."

"음."


사냥개.

벨에게 했던 식으로 희생자를 끌고 오는 아이를 지칭하는 단어 같았다.

남자가 이런 표현을 쓸 정도면 오늘 소년 같은 케이스가 여럿 있다는 뜻이겠지.


"사냥개는 야생에서 길러야 강하게 자란다고 잠도 바깥에서 자게하고 음식도 자급하게 할 겁니다. 아,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녀석들이 그런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왜 도망치지는 않죠?"

"도망요? 어휴. 그런 애들은 도망 못 가요. 도망가면 제 어미나 여자 형제가 어떤 꼴은 당하는데요? 이건... 좀 말씀드리기 조심스럽네. 좀 끔찍하거든요. 그리고 그런 애들만 골라서 사냥개로 뽑으니까요."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네요."


엘렌이 드물게 인상을 찌뿌려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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