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만 사기카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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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낑깡
작품등록일 :
2024.09.10 11:37
최근연재일 :
2024.09.17 08:1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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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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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한 때에 거대한 재앙이 제국을 휩쓸었다."


거친 황야에 남자의 저음이 울려 퍼졌다.

남자는 무너진 건물 잔해에 기대어 앉아 있었고

그를 마주 보고 선 여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독백을 이어갔다.


"지옥에서 올라온 차원 귀물들이 지나간 자리로 지옥도가 펼쳐졌다. 시체가 산처럼 쌓였고 피가 강이 되어 흘렀다. 인세의 종말을 보는 듯했다."

"그때에 불세출의 영웅이 나타났다. 그는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고 힘을 모아 차원 귀물의 군세를 무찌르니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를 칭송했다."


이 이야기는 신화나 전설이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영웅의 이야기다.


"사를로트 대제. 현 제국의 황제이자 가장 위대한 영웅. 나 또한 그를 존경했습니다. 황녀님."

"그만... 벨. 상처가 심해요. 더는 말하지 마세요."


여인의 말에 벨이 고개 저었다.

괜찮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그가 잘 알았다.

무시무시한 강적과 연달아 상대했고, 그 대가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므로.


"왜 저 때문에 벨이 죽어야 하나요. 인정할 수 없어요."


황녀 루에라가 울먹거렸다.

죽어가는 벨의 모습에 감정을 추스르기 어렵다.


"루에라 당신 때문에 죽는 게 아닙니다. 제가 선택한 겁니다. 시답잖은 예언에 지레 겁을 먹고 당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요."

"도망쳤으면 됐잖아요! 왜 도대체..."

"글쎄요. 당신의 기사라서?"


대답하며 벨은 쓴웃음을 흘렸다.

스스로 기사라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죽어가는 와중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스워서.


'제국 제일 검사를 죽였다. 이계에서 올라온 고위 악마를 죽였다.'


그가 여인을 구하기 위해서 얼마 전까지 했던 일들이다.

하나하나가 믿기 어려운 업적이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오늘 벨이 한 업적은 그를 영웅의 반열에 올려놓을 만하겠지.


끝내 루에라의 눈가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이 재능있는 남자가 그 능력을 다 펼쳐보지도 못하고 이자리에서 죽는다.

그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걸로 빚은 갚았습니다. 제가 구했으니 죽지 말고 오래 사십시오. 황녀님."


벨은 웃었다.

모든 걸 체념했을 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눈앞에 여인이었기에 절대로 그 빚을 갚지 못할 거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걸로 됐다.'


지난 십여 년간 황폐해진 전장을 전전하면서 한가지 신념을 가지게 됐다.

아니, 어쩌면 가문이 잿더미 속에 불타 없어질 때부터 싹트기 시작한 신념이 있었다.


운명이란 게 있다면 그걸 바꿀 수 있을 만큼 강해지겠다고.

그리고 오늘 그때 다짐했던 것을 이루어냈다.

세상의 멸망도 막아낸 사를로트 대제도 루에라를 죽이지 못하게 됐으니.


남자는 웃었다.

그렇게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루에라는 말없이 그를 끌어안고 기도했다.


'천상에 계신 지엄한 존재 시여. 부디 이 사람을 다시 제게 돌려주세요.'


눈물이 그의 가슴을 적셨다.



* * *



이 세상은 게임이다.

갓 오브 워라는 제목의 MMO RPG 장르의 게임.

김성우가 전생에 했던 게임이기도 하다.


김성우는 자신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

자신이 벨의 몸속으로 들어온 김성우인지.

아니면 김성우 기억이 벨의 머릿속으로 들어온 건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내 둘을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건■■■■■■■■■■ 카르타 마스터 ■■■■■■■■■■ 회귀】



벨은 눈앞에 수상한 글씨를 훑었다. 이 세상이 게임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날부터 보이기 시작한 글씨다.

아니면, 회귀와 동시에 알게된 글씨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회귀라니.’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는 건 진리나 다름없다.

만약 그 단순한 진리가 깨어진다면 세상은 엄청난 혼돈에 빠질 거다.


'그런데 죽는 순간 회귀하다니.'


오로지 벨만이 전회차를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눈앞의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직 벨만 회귀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할 말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 사용한 카르타 목록 ─────────


◆ 회귀.


0 : 넘버링 : NO 0.

1 : 등급 : God .

2 : 분류 : 일회성.


▶ 고유효과

─ 시전자를 즉시 과거로 보낸다.


▶ 부가효과

─ 시전자는 영혼에 각인된 기억을 자각한다.



────────────────────────────────



카르타를 사용해서 회귀했다. 이 카르타란 것은 벨이 알던 갓 오브 워가 가진 독특한 시스템이었다.

오직 주인공만이 카르타를 다룰 수 있다는 설정.


NO 0. 회귀.


‘아무래도 이 카르타가 날 회귀시킨 게 분명해.’


일회성 회귀 카르다.

이름만 봐도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10,000시간을 갓 오브 워에 매진한 고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카르타를 본 적이 없다는 거다.

애초에 0번 카르타는 미구현이라는 게 커뮤니티의 반응이기도 했고 ‘God’ 등급도 생소했다.


카르타의 종류는 세 가지다.

일반 카르타. 희귀 카르타. 그리고 고유 희귀 카르타.

카르타는 주인공만이 쓸 수 있는 특별한 물건이며 그만큼 효과도 사기적이다.

척 봐도 ‘God’ 등급의 카르타는 그런 카르타들 중에서도 최상위 같아 보였고, 그렇기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실현된 거겠지.


그러니까 받아들이자.

오직 벨만이 회귀했고, 카르타 마스터란 직업이 주어졌다.

죽음으로 끝인 줄 알았던 인생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아무리 못해도 손해는 아니었다.


‘단순한 회귀라기보다는··· 회귀와 빙의를 동시에 한 격이군.’


현 시점은 벨이 죽었던 시기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의 시점. 벨의 나이는 이제 갓 스물이었으며, 가문을 떠나 떠돌이 용병 생활을 하던 시기였다.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시국이다.

제국은 계승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서부에 등장하기 시작한 귀물 때문에 크고 이쪽은 전쟁 분위기나 마찬가지.

하지만 문제는 이게 아직 시작도 안 한 상황이라는 거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힘을 키워야만 했다.

그렇기에 벨은 치열하게 살아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투를 벌였고, 시체가 즐비한 곳에서 먹고 씻고 자는 게 일상이었다.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거로 생각했었다.


‘이번에도 힘을 키운다.’


벨의 입가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조건이 달랐으니까.


미래의 알고 있으며, 오직 주인공만 가지는 특전까지 주어졌다.

남들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시작하는 셈.

언제든 그건 짜릿한 일이었다.



* * *



“벨. 너 정말 귀족가의 도련님이었구나?”


멀리 떨어진 외성을 보고 감탄하던 예나프가 물었다.

벨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띤 검은 머리의 여인.


전회차에선 이 시간 이 자리에 그녀가 없었다.

이즈음 해서 그녀와 갈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었지.’


그녀는 동부에 전선에서 죽은 걸로 기억한다.


개죽음이다.

그걸 알고서 방관하기 어려웠다.

예나프와 동행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아··· 미안. 내가 너무 생각이 없었네. ···좋은 일로 돌아온 것도 아닐 텐데.”


들뜬 얼굴로 성을 구경하던 예나프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벨의 눈치를 봤다.

벨이 가문으로 돌아온 이유는 아버지의 부고 때문이었으니까.

제국의 서부 전선을 담당하는 케시프 변경백.

그 사람이 벨의 아버지였다.


“딱히.”


벨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케시프 변경백과 벨은 혈연관계는 맞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인간적으로 잘 알지 못했다.

벨은 사생아였고 그마저도 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친이 병사했다.

벨은 케시프 가문의 애물단지였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그가 바깥에서 용병 일을 하고 돌아다닐 일도 없었을 테지.


벨이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받고 이곳으로 돌아온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

서부 전선을 담당하던 케시프 가문은 얼마 가지 않아 무너진다.

그걸 기점으로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죽는다.

벨은 그걸 막을 생각이었다.


둘.

이곳에서 희귀한 카르타를 얻기 위함이다.

카르타란 벨이 했던 게임에서 오직 주인공만이 다루는 힘이었다.

그런 만큼 더할 나위 없이 사기적인 능력이다.


벨을 회귀시킨 것도 카르타였고, 죽은 자를 소생시키거나 적을 즉사시키는 것도 가능한 게 카르타다.

그렇기에 벨은 카르타를 파밍하는 걸 최우선 과업으로 잡았다.


그리고 희귀 카르타.

특별한 구역에서만 얻을 수 있는 해당 등급의 카르타는 꽝이 없다시피 하다.

고유 직업을 얻으면서 가지게 된 나침반이 벨의 고향에 그것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었기에 벨은 이곳으로 돌아왔다.


“바로 가게?”

“네. 잠시 들렸다 오겠습니다.”


벨은 여관에 짐을 풀어두곤 내성으로 향했다.

생경한 듯 낯익은 풍경 속을 거닐자 오래된 기억이 머릿속을 잠식한다.

케시프는 오래전에 전란에 휩싸여 잿더미가 된 가문이다. 불굴의 기사들도 천재라고 칭송받았던 형도 모조리 죽었다.

어머니는 벨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기에 얼굴은 모른다.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상처가 심해져서 이번에 돌아가셨고.


‘가족··· 이라고 할 수 있나.’


환대를 바라지 않았다.

벨은 용병으로 떠돌던 사생아.

장례식이 끝나면 미련없이 떠날 것이다.


“이곳은 케시프 가문의 사람만 입장할 수 있다. 물러서라.”


내성 앞에서 병사들이 벨을 가로막아 섰다.

그들은 벨을 알아보지 못했다.

곱상한 소년은 몇 년간 전쟁터를 경험하면서 야생마처럼 자랐다.

병사들은 병장기를 치켜든 채로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를 경계할 뿐 비켜줄 기색이 없다.


‘서신을 보여줘야 하나.’


아버지의 부고를 담은 서신.

이거라면 신분을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벨?”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근방을 지나가던 한 남자가 벨을 알아보곤 말을 걸어왔으므로.

벨은 남자를 돌아봤다.


‘···바쿠야.’


온화한 얼굴을 한 큰 키의 미남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쿠야 케시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케시프 가문의 마지막 가주.

그리고 벨의 이복형이었다.

오늘 보고선 확신했다.

바쿠야가 전대의 힘을 계승했다는 것을.


‘그건 다행인 일이네.’


그럼에도 그는 차원을 넘어온 귀물들의 군세를 막아내지 못했다.

서부 전선은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이 죽는 미래.

하지만 그 누구도 케시프를 탓하지는 못했다.

귀물의 군세는 보통의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재앙 그 자체였으니까.


“벨! 역시 네가 맞구나! 내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서 얘기하자꾸나. 따라오너라!”


바쿠야는 구김 없는 표정으로 벨을 친근하게 대했지만, 벨은 오래만에 만난 이복형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벨의 기억 속의 바쿠야와는 그렇게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으므로.

아니, 형은 늘 바빠서 얼굴을 보는 것도 힘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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