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만 사기카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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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낑깡
작품등록일 :
2024.09.10 11:37
최근연재일 :
2024.09.1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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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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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DUMMY

* * *



환몽의 지대에서 등장하는 귀물은 장소에 따라 종류와 강함이 천차만별이다.

이곳에 경우에는 벨이 충분히 상대할만한 수준이었다.

1층 정원, 3층 중앙 홀에서 나타난 귀물들을 처리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얘기다.


‘게임으로 치자면 적정 난이돈가.’


더군다나 엘렌의 조력도 있었다.

호기심이 있다 뿐 실력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녀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한 번도 같이 싸워본 적이 없음에도 즉석에서 합을 맞추는 전투 센스였다.


“도련님은 여러 속성을 자유롭게 쓰네요. 첫 방에서는 화기. 둘째방에선 뇌기 그리고 이번에는 빙결이라니.”

“잡기술입니다.”


엘렌의 말에 벨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벨은 특화된 계열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속성도 그랬다. 엘렌이 보기에는 장점이 많아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단점이 훨씬 컸다.

모든 속성을 사용할 수 있는 대신에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으므로.


전회차 때 벨은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특별한 공법을 익혔다.


벨리아의 혼돈공법.

뇌기, 화기, 빙기, 풍기, 토기.

이렇게 다섯 속성을 다룰 수 있으면 약점이 보완되고 또 성취를 높이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공법이다.

하나라도 빠지면 그 위력이 반감되기에 벨이 여러 가지 속성을 사용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걸 덜컥 주다니.’


루에라 황녀가 벨에게 선물한 공법이기도 했다.

그녀는 연고 없는 떠돌이 기사에게 선뜻 지고의 보물을 건넸었다.

지금은 전회차만큼의 성취는 아니다.

정신은 그대로일지언정 육신은 십 년 전으로 되돌아왔으니까.


“잡기술이라니. 도련님은 겸손하신 걸까요?”


엘렌이 눈을 가늘게 뜨고 벨을 바라봤다.

겸손한 척, 신사적인 척하는 귀족 도련님들을 꽤 많이 봐왔으나 벨의 겸손은 약간 결이 다른 느낌이 있긴 했다.

적어도 잘 보이려는 의도로 하는 말은 아닌 거 같았으므로.


“아, 앞으로 저한테 말씀을 낮추세요.”

“저는 이게 편합니다.”

“아하.”


벨은 엘렌의 제안을 고민조차 하지 않고 거절했다.

애초에 그는 정말로 가까운 사람이 아닌 이상 존대를 하는 게 편했다.

전회차 뿐만 아니라 지구의 김성우도 마찬가지였다.


“특이하시네요. 도련님은.”


아니, 어쩌면 특별한 걸지도.

여기까지 오면서 귀물을 상대하는 것만 봐도 범상치 않은 실력.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점은 그의 실전경험이었다.

벨의 전투는 단순히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으로 완성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아마도 수많은 격전을 치렀으리라.


‘저 나이에 저만한 실전을 겪었으면 평탄치는 않았겠네. 귀족으로 태어나서 용병으로 구른 건가. 신기한 도련님이네.’


어느 누가 귀족으로 태어나 천하면서 위험한 용병 일을 하려 들겠는가.

설령 그런 결심을 했다고 해도 현실은 녹록지 않은 법이었다.

그들 열에 아홉은 포기하거나 죽는 게 현실이니까.


“음.”


벨은 짠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엘렌에게 다소 의아함을 느꼈다.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은 분위기.


‘내가 이상한 행동을 했나?’


벨은 회귀자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무심코 하는 행동이 타인에게 충분히 유별나 보일 수 있음을 알았다.

곰곰히 생각했지만, 특별히 짚이는 건 없었다.

반대로 사소하게 걸리는 건 너무 많아서 특정하기 어려웠고.

벨은 애써 화제를 돌렸다.


“이제 마지막 방만 남았습니다.”

“네.”

“그곳에는 아마 여태껏 상대했던 것들보다 더 강력한 귀물이 도사리고 있을 거고요.”


보스로 짐작 가는 녀석이 있었다.


‘아마··· 그 녀석이 나올 거 같단 말이지.’


여태까지의 환몽 구조로 보아서 거의 확실했다.

뉴비 절단기라고 불리는 귀물일 거다.

그러나 짐작이 맞다면 오히려 좋았다.

벨은 결코 뉴비가 아니었으니까.


“제가 도울게요.”

“아니요. 이번에는 저 혼자서 상대하겠습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여기서 벨 도련님이 다치면 저한테도 문제가 생겨서 하는 말이니까요.”

“다치지 않을 겁니다. 한 번 믿어 주시겠습니까?”


정중한 벨의 말에 엘렌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시종일관 저런 태도를 보이니 괜히 자신이 무례해 보인달까.


“그리고 성취가 있을 거 같아서요.”

“···정 그렇다면 알겠어요.”


엘렌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하는 성취가 무엇인지 짐작했기 때문이다.

가끔 전장에서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사례가 있는데 그건 에테르 수행자에게는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천금 같은 기회였다.

벨이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섣불리 돕겠다고 나서기 어려웠다.

돕는 게 아니라 방해라고 생각할 테니까.


‘기가 센 여자야.’


벨이 엘렌을 보며 내심 그렇게 여겼다.

그녀는 쭉 안전한 후방에 있기보다는 전투를 고집했다.

위험을 똑같이 감수하고자 하는 의지가 행동에서 여실히 느껴졌달까. 그녀는 성별을 떠나서 능력만 있다면 싸우는 게 맞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래도 보스는 나 혼자서 처치하는 게 맞아.’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벨이 상정하고 있는 녀석이 보스가 맞다면 오히려 벨 혼자서 상대하는 게 낫다는 게 이유다.

곧이곧대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회귀자라는 걸 밝히지 않고 엘렌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엘렌에게 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환몽으로 진입한 이후로 공법의 숙련도가 비정상적인 속도로 오르는 걸 느끼고 있었다.

이건 아마도 카르타 마스터란 벨의 특수한 직업 때문일 거다.

게임에서도 플레이어는 환몽의 지대에서 경험치 버프를 받았으니까.


‘잘하면··· 벽을 뚫을 수도 있나?’


회귀하면서 정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왔다. 그게 불만인 건 아니지만 약해진 건 사실이다.

즉, 원래의 힘을 회복하는 것이 당장의 숙제였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로 예상했는데, 환몽의 지대의 도움으로 벌써 하나의 벽을 마주했다.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다.


생각을 하면서도 분주히 움직인 결과 목적지에 다다랐다.

미니맵 상으로는 붉은 점으로 표기된 지점.

···여긴 벨에게 익숙한 장소기도 했다.


“제 방이군요.”

“불길하네요. 아, 도련님의 방이라서 불길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오해 마시길. 특히나 이곳의 색감이 더 불길하게 느껴진달까요.”

“당연합니다. 인간은 귀물에게서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끼니까요. 이곳은 그 근원지죠.”

“저 포털은 어디로 통하나요? 저길 들어가실 생각?”

“네.”

“따라갈게요. 여기 혼자 남겨지는 게 더 위험할 거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대신에 안전한 곳에서 대기하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그러죠.”


엘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벨이 위험에 처한다면 끼어들 거란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괜히 말이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들어가겠습니다.”


게이트에 벨이 성큼 발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널찍한 홀로 이동됐다. 넓이도 넓인데 수십미터 높이.

고개를 들자 거대한 세 쌍의 날개를 펼친 귀물이 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악마를 연상시키는 외형.

벨이 알던 귀물이 맞았다.


‘역시. 롬이 맞군.’


롬은 초반부 메인스토리에 등장하는 강력한 귀물이다.

플레이어보다 스펙도 높은데다가 패턴도 까다로워서 인 게임에서 저 녀석을 상대하려면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뉴비에게만 그렇다.

저 녀석은 후반부에 가선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녀석이기도 했으니까.


한마디로 벨은 자신이 없었다.

당연히 저것에게 질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벨은 대검을 곧추세웠다.

동시에 끼에에에엑 거리는 귀곡성과 함께 롬이 활강했다.

벨도 롬을 향해 뛰었다.

지면을 박차고 허공을 부유하며 대검을 휘두른다.


까가가가가가각ㅡ.


칼과 손톱이 맞부딪히며 금속음.

그 소리는 흡사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엘렌은 긴장한 눈빛으로 전투를 지켜봤다.


‘···저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저것이 이제껏 봤던 다른 귀물들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건 모르기 어렵다.

저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본 적 있어.’


딱 한 번 전선에서 본 적이 있었다.

저런 분위기를 가진 귀물이 나타났던 날, 그날 수천 마리의 귀물을 학살한 이름 높은 기사가 죽었다.


‘···성광급 귀물.’


성광급이란 에테르를 사용하는 실력이 극의에 달해서 온몸에서 별빛과도 같은 광채를 뿜어내는 수준.

전장의 판도를 바꿀만한 강력한 귀물이 대체 왜 가장 안전해야 할 내성 안에서 나타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도와야 해.’


벨이 죽으면 다음은 그녀의 차례다. 이건 선택지가 없는 문제였다.

단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손은 이미 땀으로 젖어 축축해졌다.


하지만 벨과 롬의 격돌은 코앞.

어쩌면 돕기에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저 남자의 미약한 빛은 더 강렬한 빛에 삼켜질 것이다.


콰콰콰콰쾅!


굉음이 울렸다.

먼지가 걷히면 드러난 장면에 엘렌이 눈을 부릅떴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결과다.


벨의 대검이 악마의 날개를 찢어냈다.

하지만 악마의 손톱은 벨에게 닿지 않았다.

이건 지금도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벨은 믿기 어려운 속도로 커다란 대검을 휘두르면서도 악마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냈다.

그것도 자로 잰듯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무엇보다 엘렌을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다. 벨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가 그것이다.


‘···성광기사!’


그 남자의 몸에서 피오른 광채는 흡사 별빛을 연상시켰다.

그 빛은 지금이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교전은 일방적이다.

악마가 벨을 공격하면 벨은 곡예사처럼 아슬아슬 피해내며 공격을 가한다.

악마는 벨의 공격을 피해내지 못하고 상처가 누적된다.


엘렌은 일련의 생각에 의문을 느꼈다.

지금 그녀가 하는 생각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적의 공격을 모조리 피하고 자신의 공격을 무조건 성공하면 이길 수 밖에 없지만 애초에 그 전제가 망상에 불과했으니까.

그런데 벨은 지금 그 망상을 현실로 구현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유가 있는지 많아 보일지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젓는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가?’


흡사 지금의 전투양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행동. 그러면 벨은 이보다 더 완벽한 전투를 그릴 수 있다는 뜻인가.


‘구십구··· 백.’


엘렌은 백 이후로는 세는 걸 포기했다. 다름 아닌 벨이 자신보다 대여섯 배는 큰 귀물의 몸에 생체기를 낸 횟수를 말함이다.

불과 십여 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그처럼 많은 공격을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성공했다.

말이 쉽지 지켜보고 있는 지금은 경악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광경이었다.


‘···미래를 보는 건가?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슬아슬하게 귀물의 공격을 피하면서 그것을 베어내는 벨의 움직임이.


쿠쿵ㅡ.


그리고 끝내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악마가 쓰러지며 지축을 울렸다.

많아 보일지 악마의 최후치고는 시시했다.

아니, 악마의 상대가 벨이었기 때문에 시시하게 느껴진 거다.

저 자리에 그녀가 있었다면 결과는 사뭇 달랐겠지.


“거기 계십시오.”


다가서려던 엘렌에게 벨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네?”

“이제 2페이즈라서요.”


긴장기가 하나 없는··· 어떻게 들으면 기대감마저 담긴 듯한 목소리.

엘렌은 금방 벨이 한 말의 의미를 알게 됐다.

다름 아니라 쓰러졌던 악마가 멀끔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분위기를 가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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