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용병대의 천재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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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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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화

DUMMY

“역시 리온이야. 자비롭게 목숨은 살려줬네.”

“주제도 모르고 쓰레기 용병대에게 달려들다니.”

“예전에도 이름만 듣고 무시하다가 된통 혼난 놈들이 있었지?”

“가끔 저렇게 순진한 놈들이 등장해서 재밌다니까.”


이런 결과일 줄 알았다는 듯 떠들어대는 용병들.

덧붙이자면, 저 중에 우리처럼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숙소로 이용하는 용병대는 거의 없었다.

다시 시끌벅적해진 술집에서 바텐더는 자꾸만 나를 힐끗거렸다.

여기서 이런 시비는 수도 없이 봤을 텐데, 내게 호기심을 보이는 것이다.


“카이런! 너 마법을 배운 거냐? 대체 무슨 수로?”

“훗! 그게 궁금한가?”

“정말이지 놀랍군! 나는 네가 리온의 뒤만 졸졸 쫓아다니는 쓰레기인 줄 알았다.”

“아니······.”


젠장.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서 부정할 수가 없다.

쓰레기 용병대에서 가장 평범했던 나의 변화에, 몇몇 용병들도 나를 보며 웅성거렸다.


“저런 쓰레기를 데리고 다닌 이유가 있었구나.”

“괴물의 똥도 때로는 약으로 쓰일 때가 있다더니만.”

“과연, 이럴 때 쓰는 말이로군.”


나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거의 바닥이나 다름없었다.

사기꾼으로서 온갖 욕을 처먹었던 놈으로서는 딱히 신경 쓰이지 않지만 말이다.


“내가 말한 대로 다른 의뢰를 준비해둬.”

“그러지. 곧 연락하마.”


마땅한 의뢰를 찾지 못한 우리는 무력화된 검은 설사 용병대를 두고 술집을 나섰다.

쓰레기 용병대는 이 근방에서 여러 실적을 쌓은 용병대인만큼 여기저기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받는 돈을 줄이면 유물 1개 정도는 덤으로 지급할 수 있는 고객을 만날 수 있겠지.


“멈춰라!”


그런데 길가를 걸어가던 중.

유물을 빼앗긴 용병대가 우리를 멈춰 세웠다.

내가 챙긴 유물의 본래 주인이었던 용병은 시선을 내게 고정한 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당장 그걸 내놓아라!”

“내가 왜?”

“이것들이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검은 설사 용병대라며.”

“자꾸 설사라고 하지 마! 폭풍이라고!”


그는 유물을 빼앗긴 것보다 용병대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것에 더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거만한 말투는 물론이고 하얀 피부와 눈썹마저 깔끔하게 다듬어진 것이 더벅머리를 제외하면 그의 몰골은 평범한 용병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쟤는 꼭 귀족같이 생겼어.”


루시아나 또한 나와 비슷한 인상을 받은듯했다.

하지만 용병을 자처하는 이상 귀족이든 뭐든 내 알 바 아니지.

나는 가볍게 검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건 네 목숨값 대신이야. 우리 대장한테 고마운 줄 알아.”

“그래 봤자 그건 네놈 따위가 사용할 수 없는······!”


나는 시험 삼아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유물에게 인정받은 주인이 아니라면 검집에서 아예 뽑히지 않거나, 다 낡아빠진 검이 보여지겠지.

그러나 내가 가볍게 뽑아 든 검에서는 술집에서 봤던 것처럼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캬! 때깔 곱다.”


은은한 빛이 검신을 타고 흐르는 것이 마치 검 자체가 생명력을 지닌 것만 같다.

루시아나는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그 자체로 마력을 벨 수 있다는 [절마검]이야. 고대에는 많은 전사가 애용했다고 전해지지.”

“미, 믿을 수 없어······!”


유물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자 경악하는 용병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이내 분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어째서냐, 절마검! 왜 그런 하찮은 놈에게 너를 허락한 것이냐!”


왜긴 왜야.

내가 모든 유물의 주인이니까.


*****


쓰레기 용병대가 떠나간 자리.

유물을 빼앗긴 남자 용병은 무릎을 꿇고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까맣게 타버린 동료 용병들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에이트 님. 괜찮으십니까?”

“······네 눈에는 내가 괜찮은 것처럼 보이느냐?”


신경질을 내는 에이트를 향해 용병들이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본명 에이트 파라봄. 그는 평범한 용병 따위가 아니라 비싼 값을 내고 용병들을 고용한 파라봄 백작가의 차남이었다.

뒤에서 한숨을 내쉰 한 용병은 바짝 탄 머리를 어색하게 긁적거렸다.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용병이란 건 그다지 낭만 가득한 직업이 아니라고요.”

“그, 그런 건 나도 진작 알고 있었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문과 책으로만 용병을 접했던 에이트는 용병 생활에 대한 환상과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덕분에 직접 용병을 겪어보겠다는 그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의뢰를 받아들인 용병들은 난처해 했다.


“하지만 그 쓰레기라는 놈들에게 이토록 허무하게 밀릴 줄은! 너희는 너희가 이 일대 최강의 용병대라고 했으면서 꼴이 그게 뭐냐!”

“그, 그놈들의 전력이 예상외라······.”

“쓰레기라는 놈들이 왜 그렇게 강한 거야!”

“······.”


경력과 실력을 부풀려 돈을 챙긴 용병들이 은근슬쩍 고개를 돌렸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에게 적당히 어울려주며 돈만 뽑아먹으려 했다는 의도를 밝힐 수는 없었다.

대머리와 뽀글머리가 된 그들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에이트는 이를 깍 깨물었다.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다······!”

“또 싸우려는 생각이라면 반대입니다. 우리와 상성이 좋지 않아요.”

“혹시 빼앗긴 유물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아니야. 절마검은 어떻게든 돈을 주고 구하면 그만이지만, 이건 내 자존심의 문제다!”


돈을 잃은 건 상관없으나 귀족으로서 자존심이 짓밟힌 건 참을 수 없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에이트는 카이런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봤다.

카이런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자, 그는 마치 사귀던 여자를 빼앗긴 남자처럼 이가 갈렸다.

그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용병이 말했다.


“설마 기사들을 데려오실 생각이십니까?”

“그런 멍청한 짓을 했다간 아버지께서 날 죽여버릴 거다. ······하지만 듣자 하니 그놈들은 유물을 찾는다고 했었지.”

“네?”

“오냐. 그놈들이 원하는 유물, 내가 제공해주마!”


*****


용병 조합의 전서구가 쓰레기 용병대의 숙소를 찾아온 건 늦은 밤이었다.


펄럭! 펄럭!


날갯짓하며 땅으로 내려온 비둘기가 내게 경례했다.


“구구!”

“이거나 먹어라.”


나는 잘 훈련받은 비둘기에게 과자 쪼가리를 던져주었다.

녀석이 뾰족한 부리로 과자를 쪼는 사이 얇은 다리에 묶여있는 종이를 떼어냈다.

용병 조합에서 보내온 의뢰서였다.

나는 그걸 슬쩍 훑어보고는 에로앙에게 던졌다.


“뭐야? 왜 나한테 줘.”

“글씨체가 이상해서 못 읽겠어요.”

“귀족이 직접 적은 건가.”


길바닥 출신인 나로서는 귀족들이 애용하는 꼬부랑 글씨체를 읽기 힘들다.

그놈들은 반듯하게 생긴 글자를 왜 그렇게 꼬아서 적는지 알 수가 없다니깐.


“의뢰자는 바무아 남작가. 성공 보수는 요청했던 대로 유물이고, 의뢰 내용은······. 저주받은 숲의 정화네. 남작가에서 소유한 숲에 저주가 퍼졌다나 봐.”

“후후! 내가 나설 차례인가!”


루시아나는 술 대신 물이 가득 담긴 맥주잔을 치켜들었다.

이따금 들어오는 저주 정화 의뢰는 마법사가 포함된 용병대에게만 들어오는 것.

원인 모를 저주가 찾아온 지역은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칠뿐더러, 농작물이 자라지 못하고 괴물의 출현빈도까지 높아지는 탓에 매번 골칫거리로 여겨진다.

확실한 해결책은 교단에 정화를 맡기는 거지만, 필요한 비용이 몇 배는 더 비싸다는 이유로 지금처럼 용병 조합에 의뢰가 넘어오는 때가 있다.


“대장. 반드시 어두운 밤에 와서 처리해달래.”

“햇빛 아래에서는 존재를 감추는 저주인가. 어지간한 용병들은 꺼리는 의뢰겠지.”

“위치는 어딘지 알겠다. 여기서 1시간이면 도착해.”


지리에 밝은 에로앙의 말을 듣고서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각자 무장을 갖춘 뒤 의뢰서에 적힌 장소로 이동했다.

숲 안으로 들어서는 입구쯤에 다다르자 횃불을 들고 있는 경계병이 보였다.


“정지! 어디서 온 누구냐?”

“바무아 남작가의 의뢰를 받고 찾아온 용병대다.”

“너희가?”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우리를 향했다.

인원수도 적고 초라해 보이는 용병대가 남작가의 의뢰를 받았다는 것을 믿기 힘든 것이겠지.

하지만 남작가의 서명이 담긴 의뢰서를 보여주자 경계병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기보단 실력이 괜찮은 모양이야. 안으로 들어가도 좋아. ······그다지 추천하진 않지만.”

“그게 무슨 뜻이지?”

“몇 달 전 이 숲에서 한 사제와 그의 호위들이 죽었다.”


뭐야.

이미 교단에서 다녀갔다는 소리잖아?


“그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끝내 저주는 풀지 못했어. 저주의 범위가 더 커지지 않았기에 지금처럼 외부의 접근만 막아두었지.”

“혹여 목숨이 아깝다면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충고 고맙군.”


경계병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루시아나가 생성한 빛 덩어리에 의지하며 숲 안으로 진입했다.

조금은 위협을 느낄법한데도 우리를 이끄는 대장에게는 한 치의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걷는 속도를 낮춘 루시아나는 말했다.


“슬슬 숲에 깃든 저주가 느껴져.”

“종류는?”

“체력을 서서히 갉아먹는 느낌······. 정신적으로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 이곳에서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벗어나기가 더 힘들어질 거야.”


그렇게 계속 안으로 진입하던 그때였다.

나는 품속에 넣어둔 [별빛의 호리병]에서 작은 떨림을 감지했다.


“왜 이래?”


호리병을 밖으로 꺼내어 살피자 병 안에 담긴 액체가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그때 루시아나가 내 옆으로 달라붙었다.


“막내야! 그건 유물이 반응하는 거야!”

“그래요?”

“한번 써보자!”

“뚜껑 따볼게요.”


끼릭! 끼릭!


나는 와인의 코르크 마개처럼 생긴 뚜껑을 힘을 주어 빼냈다.

그러자 병을 기울이지 않았는데도 작은 입구를 통해 하얗게 빛나는 가루들이 흘러나왔다.


“호오······!”

“별빛이다.”


정말로 하늘의 별처럼 보이는 별가루들이 바람을 타고 허공을 날았다.

잠시나마 허공에 머무는 그것들은 주변을 밝혀주며 용병대가 마법에 의지하지 않고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끔 했다.


“밝아서 좋군.”


어두운 숲으로 들어온 내내 답답해하던 제피스의 표정이 풀렸다.

그리고 호리병의 내용물은 주변을 밝히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건 또 뭐야.”


내 앞에서 한점으로 모여든 별가루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화살표가 되었다.

내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꿀 때마다 한곳을 가리키며 조금씩 회전하는 모습은, 마치 나에게 방향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장을 그걸 두고 턱을 쓰다듬었다.


“유물이 의미 없는 짓거리를 할 리가 없어. 카이런, 이제부터 네가 앞장서라.”

“사고 터져도 난 모릅니다.”


한층 밝아진 숲에서 나를 앞세운 용병대는 걷는 속도를 높였다.

어디선가 괴물의 기척이 느껴질 때마다 모두가 경계심을 높였지만, 기묘하게 방향을 틀어대는 화살표 덕분인지 우리가 놈들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루시아나가 땅 위에 덩그러니 자라난 검은색 나무를 가리켰다.


“찾았다. 저주의 발생지!”

“예? 진짜로요?”

“이런 말도 안 되는······.”


놀랍게도 우리는 저주받은 숲에서 제대로 된 전투 한번 치르지 않고 저주의 원인을 찾아냈다!

심지어 지금은 해가 완전히 떨어진 밤.

갑자기 기습을 당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에, 너무나도 쉽게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다.


“카이런이 완전히 복덩어리인데?”

“심지어 막내가 가진 저 호리병, 별빛을 받으면 재활용도 될 거야.”

“이 자식! 너 사실 굉장한 놈이었구나?”

“억.”


팡! 팡! 팡!


에로앙은 칭찬의 의미로 내 등을 세게 두드렸다.

이제껏 내가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준 것 외에 이렇게 고평가를 받은 적이 있던가?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었다.

대장 또한 나를 향해 말했다.


“잘했어.”


찌르르르—!


차마 설명하기 힘든 감각이 내 전신을 감쌌다.

매우 낯설면서도 두근거리는 기분.

그래, 이건 내가 생각하는 그거다.


오랜만에 맛보는 ‘성취감’이라는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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