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용병대의 천재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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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1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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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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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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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DUMMY

“미친!”


에이트가 불길에 휩싸인 바깥을 보며 입을 쩍하고 벌렸다.

카이런을 비겁하다고 말했던 걸 잠시나마 취소하고 싶을 정도의 장면이었다.

루시아나 또한 얼굴을 굳힌 채 마차 밖을 돌아봤다.


“이상하다, 이상해······.”


카이런이 적염석에 담겨있던 마력을 전부 끌어다가 일으킨 마법.

그것의 위력은 루시아나가 진심으로 사용한 고위 화염 마법에 필적했다.


“적염석이 원래 이런 유물이었나?”


유물에는 비공식적인 등급 체계가 존재한다.

유물이 제작된 개수가 적을수록, 그 희소성에 따라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적염석은 유물 중에서도 그나마 흔한 축에 속한다.

먼 과거로부터 적염석의 사용자가 몇 번이나 등장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염석의 마력을 한 번에 끌어다가 폭발시키듯이 사용한다는 건 전례가 없는 일.


복수의 적염석을 갖고도 지금 같은 무식한 화력을 선보였다는 기록 또한 없었다.


“루시아나! 다행히 목걸이는 무사해요.”

“······.”


아무리 생각해도 카이런이 사용한 적염석은 너무 이상했다.


*****


“하루만 머물다 가시죠!”

“누먼 남작. 나는 다른 일정이······.”

“딱 하루만!”


누먼 남작은 의뢰를 마친 뒤 떠나려는 에이트를 붙잡았다.

어떻게든 대접을 하고 싶다는 모양이었다.

그 덕에 나는 하루 동안 남작가에 머물게 되었다.


“크으! 이거지!”

“그렇게 맛있어요?”

“그걸 말로 해야 아나?”


내 옆에 앉은 루시아나가 포도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귀빈에게만 허락된 식탁에 우리를 데려온 누먼 남작은 음식보다도 술을 선호하는 그녀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술에 무척 강한 여성이로군.”

“마법사니까요.”

“마법사는 전부 술에 강한 건가?”


누먼 남작은 마법사에 관해 잘 모르는 귀족이었다.

영지의 크기가 작고 기사들의 수준도 썩 좋지 않은 만큼, 그의 지식이 모자란 것도 이해는 되었다.


“누먼 남작. 우리가 처음 만난 게 5년 전이었던가?”

“사교 파티에서 처음 뵀었죠. 그때는 에이트 님께서 제게 이렇게나 도움을 주실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듣자 하니 이곳은 에이트의 가문인 파라봄 백작령에 속한 가문이 아니었다.

단지 가문의 명성을 드높이겠다는 이유로 찾아온 것일 뿐.


“언젠가는 저 또한 에이트 님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파라봄가를 적대하지 않고 지지를 보내주는 것만으로 충분해.”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장남인 유피 님이 아니라 에이트 님께서 파라봄가의 후계자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지.”


조금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내젓는 에이트.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기에 나는 식탁에 차려진 때깔 좋은 음식을 양껏 즐기기만 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도적으로부터 빼앗은 목걸이를 루시아나에게 보여주었다.


“[칼마의 목걸이]야. 고대에 칼마라고 불렸던 거미 형태의 괴물에게서 뽑아냈다는 거미줄로 만든 무기지.”

“사용법은요?”

“한번 뽑아봐.”


촤앙!


도적이 선보였던 것처럼 목걸이의 장식을 손으로 뽑아내자 거미줄로 추정되는 여러 가닥의 물체가 아래로 늘어졌다.

손으로 만져보면 끈적거리는 느낌은 전혀 없고 유연하면서도 아주 질기다는 것이 느껴졌다.


“기본적으로는 채찍처럼 휘둘러서 사용할 수 있어. 다만 진짜 사용법은 그게 아니라 거미줄을 뽑아서 조종하는 거야.”

“조종이라······.”


거미줄을 1가닥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손잡이에서 거미줄을 뽑아버렸다.

뽑은 거미줄을 빙빙 꼬아서 손가락에 감아도 보고, 냄새를 맡는 건 물론이고 혀로 직접 핥아서 무슨 맛인지 확인도 해봤다.

그러자 루시아나가 기겁했다.


“야! 그걸 핥을 생각을 해? 적어도 3천 년 전 고대 괴물의 부산물이라고!”

“괜찮아요. 안 죽어, 안 죽어.”

“미친놈······.”

“그래도 이렇게까지 해보니까 느낌이 왔어요.”


내 손바닥 위에서 아래로 힘없이 휘어져 있던 거미줄 한 가닥이 순식간에 빳빳해졌다.


깡! 깡!


손으로 가볍게 튕겨보니 아주 단단한 물체를 튕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 단단함은 돌이 아니라 철과 비교해봐도 밀리지 않을 정도.


“쓸만해 보이죠?”

“······어떻게 한 거야?”

“글쎄요? 그냥 느낌 가는 대로요.”

“그런 방식의 사용법은 들어본 적 없어.”

“이제부터 알게 되겠네요.”

“으으음······.”


나는 턱을 쓰다듬는 루시아나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적염석을 잃었음에도 아주 좋은 느낌이 들었다.


*****


다음 날 아침.

누먼 남작가의 저택에 전서구가 도착했다.


“에이트 님께 편지가 왔군요.”

“내게?”


수신인은 누먼 남작이 아니라 손님인 에이트였다.

편지에는 파라봄 백작가의 인장이 찍혀있었다.

예고 없이 전달된 편지에 에이트는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빠르게 편지를 읽어내리는 그의 미간이 점점 좁혀졌다.

마지막에 한숨을 내쉰 그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잠시 가문으로 돌아가야겠다.”

“의뢰는 여기서 끝인가요?”

“아니. 금방 다시 나올 거니까 너희도 따라와. 앞서 처리했던 의뢰의 보상을 먼저 정산해주마.”


의뢰 3건으로 이미 3개의 유물을 확보한 상황.

유물을 주겠다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누먼 남작가를 떠나서 파라봄 백작령으로 향했다.

달리다 지친 말을 중간중간 새로운 말로 교체하면서 쉬지도 않고.


“어지간히 급한 일인가 봐요.”

“먼 지역에 계시던 형님께서 돌아오셨다.”

“그래서요?”

“······가면 알게 될 거다.”


아침에 출발한 마차는 해가 저물 즈음이 돼서야 호수 위에 부유하듯 세워진 파라봄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에이트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에이트 님께서 오셨습니다!”


백작가의 병사들이 에이트에게 경례했다.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외부인인 나와 루시아나를 훑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을 텐데.

지금의 난 여유롭게 하품이나 뱉고 있었다.


끼이익!


직계 혈족과 귀빈의 출입 시에만 사용된다는 커다란 성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 뒤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아버님! 돌아왔습니다.”

“루가 남작과 누먼 남작으로부터 소식은 전해 들었다. 수고가 많았구나.”

“아닙니다.”

“뒤에 있는 자들은 누구지?”

“남작가의 문제를 해결해준 용병들입니다.”


파라봄 백작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대들이 쓰레기 용병대라는 자들인가.”


루시아나는 고개만 살짝 숙이고, 나는 마치 기사처럼 절도 있는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백작이 짧은 감탄사를 냈다.


“호오, 기사의 예법을 익힌 모양이로군?”

“인생을 살다 보면 뭐든 필요한 순간이 오는 법이지요.”

“하하. 보기보다 재밌는 성격이로구나.”


사기를 치려고 배웠다고는 말 못 하지.

어찌 됐건 썩 나쁘지 않은 첫인상을 남긴 것 같았다.


“혹시 형님께선······.”

“마침 저기 오는구나.”


에이트의 앞으로 유피 파라봄이 걸어왔다.

깔끔하게 생긴 에이트와는 달리 볼살이 안쪽으로 푹 꺼져있는 마른 남자였다.


그런데 잠깐만······.

저 얼굴, 묘하게 낯이 익은 느낌인데.


“어딜 다녀온 거냐, 쓸모없는 동생아.”

“······!”


이런. 저 얇은 목소리를 들으니 기억났다.

저 남자는 내가 과거에 사기를 쳤던 호구 중 하나다!

그때는 술에 잔뜩 취한 그와 통성명도 나누지 않고 돈만 들고 달아났었지.

하필이면 지금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마주치게 될 줄이야.


“으흠.”


나는 애써 무표정을 유지한 채 고개를 숙였다.

내 행색이 과거와는 많이 다르니까 날 알아보기 쉽진 않을 것이다.


“예의 없는 놈! 형님께서 1달 만에 집으로 돌아오시는데 감히 자리를 비운 게냐?”

“밖에서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내 복귀보다 중요한 일이냐?”

“······그럴 수도 있겠지요.”

“입 다물어.”


싸늘한 표정이 된 유피 파라봄이 살기를 내뿜었다.

에이트는 그것이 익숙한 듯 시선만 바닥으로 깔았다.


“둘 다 적당히 해라.”


유피는 백작이 개입해서야 에이트를 향한 비난을 멈췄다.

내가 사기를 쳤던 때도 그랬지만, 저놈의 성격이 여전히 개판이로군.

어찌 됐든 짧은 인사를 마친 뒤 나는 루시아나와 함께 손님용 방으로 안내받았다.

단둘만 남은 공간에서 그녀가 말했다.


“그 유피라는 놈······. 우리한테 냄새나는 것들이라고 했어.”

“그랬죠.”

“죽여버릴까?”


루시아나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농담 같으면서도 숨길 수 없는 진심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잠이나 자요.”

“술 좀 먹고!”

“술이 어딨어요?”

“짠!”


루시아나가 품속에 숨겨뒀던 술병을 꺼내들었다.

남작가에서 우리에게 선물해준 것들이었다.

마차에 실려있던 걸 대체 언제 챙겨왔담.


“미리 경고합니다. 옷 벗지 마세요.”

“답답해서 싫어.”


입고 있던 장비를 속옷만 남긴 채 훌러덩 벗어던지는 루시아나.

나와 같은 방을 쓰고 있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장비를 정리해둔 뒤 홀로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중 속이 조금 답답해져서 방을 나섰다.


“어딜 가는 거지?”

“잠깐 걸으려고요. 금방 돌아옵니다.”

“경고하는데, 성안에서는 소란을 떨지 말거라.”

“예, 예.”


다행히 날 따라오지는 않는군.

근처에 있던 병사를 지나쳐 성의 복도를 걸었다.


“후우.”


이제야 살 것 같다.

전체적으로 좋은 향이 풍기는 귀족의 방은 내게 너무 낯설었다.

손님용 침대 또한 내 한 달 벌이보다 비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허리에는 더 저렴하고 딱딱한 침대가 어울리는데 말이지.


“음?”


그때 나는 주변에서 들려온 소음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걷는 방향을 바꿔 도착한 장소는 어느 기사가 지키는 문 앞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유피와 에이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네까짓 게 감히 날 무시해!”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찰싹!


문 너머의 상황을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대강의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문을 향해 돌진했다.


“멈춰라!”


문 앞을 감시하던 기사는 무서운 얼굴로 나를 제지했다.

아까 유피의 옆에 있던 놈이었다.

내가 경고를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자, 그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놈! 여기부터는 출입 금지······!”


촤아악!


칼마의 목걸이에서 튀어나온 거미줄 한 가닥이 내 의지에 따라 기사의 팔을 튕겨냈다.

그대로 벽에 찰싹 달라붙은 거미줄은 기사가 벽에서 떨어지지 못하도록 했다.

나는 당황한 그를 무시하고 방 안에 있던 에이트의 옆으로 붙었다.


“카이런? 네가 어떻게······.”

“넌 뭐야!”


유피는 갑자기 난입한 나를 강하게 노려봤다.

그를 지키는 기사마저 나를 향해 검을 들이댔다.

하지만 나는 귓구멍을 후비며 말했다.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나서 와봤어요.”


우리 호구······.

아니, 물주님은 안전하게 지켜드려야지.

내가 여기서 뽑아먹을 게 많이 남았다니깐.


*****


루시아나는 술병을 거꾸로 기울여 남은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벌써 병의 바닥이 보이다니.


“쩝.”


입맛을 다시며 술병을 내려놓은 그녀의 시선은 고요한 방 안을 스치다, 이내 카이런이 사라진 문을 향했다.

아까 전 그가 사용한 화염 마법이 여전히 그녀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적염석이 이상한 게 아니었겠지.”


어떤 일을 ‘할 수 있다’와 ‘잘 한다’는 개념은 다르다.

같은 적염석의 주인이라도 모닥불을 피우는 것에 그치는 사람이 있지만, 실제 전투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마검사로 이름을 떨쳤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루시아나가 보기에 카이런은 역사 속 그 누구보다도 적염석의 힘을 완벽히 끌어냈다.

그 재능은 필시 적염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리라.


“과장 따위가 아니라, 카이런은 정말로 ‘모든 유물의 주인’이구나.”


루시아나는 마법과 진리를 탐구하는 자로서 뒤늦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왜 더 일찍 알아보지 못한 걸까?

대장은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걸까?

눈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재능이, 바로 옆에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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