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천재 기사단장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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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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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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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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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하다 (3)

DUMMY

“단장님!”


익숙한 목소리다. 백옥이 굴러가듯, 미려하면서도 달콤한 목소리.


아이샤의 목소리다.


격양된 그녀의 음성과 함께, 나무로 된 집무실 문이 벌컥 열어젖혀진다.


쯧. 거의 잠에 들기 직전이었는데.


나는 의자에 기대앉은 자세 그대로 눈만을 게슴츠레 뜨며 이 한낮의 불청객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아이샤 부단장.”


“무슨 일이냐고요···? 지금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집무실까지 달려왔는지, 아이샤의 볼은 약간 상기된 채였다. 금색 휘장이 둘러진 검은 기사단 제복이 가쁜 호흡을 따라 들썩이는 게 보여온다.


그런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건, 다름 아닌 한 장의 서류.


“이게 뭔가요!”


탕 소리를 내며, 그녀가 책상 위로 서류를 내려놓는다.


나는 동공만을 내려 서류를 흘끔 곁눈질했다.


“출진 명령서로군. 내가 자네에게 써준 것 아닌가?”


잇따른 카린달 왕국의 침공. 변경의 병력만으로는 더 이상 왕국의 공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결국 중앙에서 병력이 차출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건, 왕국 중앙군을 이끌고 국경 지대로의 파견을 명령하는 출진 명령서.


기사단에서도 병력을 차출하라는 상부의 압박 탓에 그저께 마지못해 작성한 것이었다.


“뭐, 피곤한 곳에 보내 미안하게 됐다. 그래도 후방에 있으면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전장이라고는 해도 선방에 서지 않으면 크게 위험할 일은 없다. 기사단 부단장씩이나 되는 인간을 선두에 세울 리도 없고, 여차하면 복귀할 수 있도록 손을 써둔 것도 있고.


“적당히 참여하는 시늉만 하다 돌아오라고. 알겠나?”


“······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샤에게 나는 덧붙였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자네 하나 귀환하는 거로는 아무도 트집 잡지 못할 테지. 그래도 지금 당장은 지휘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니──”


“···단장님.”


아이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내 말을 잘라냈다.


“제가 출전하는 것에 무어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왕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따윈 두렵지 않아요. 그런데 단장님은···. 단장님과 다른 기사들은 이 명단 어디에도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고요······!”


아, 그런 건가.


아이샤의 논점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기사들이 전혀 출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불만 섞인 의문에,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양 주먹을 꽉 쥔 채.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아이샤.


그 표정은, 뭐라 설명해야 할까.


저 두 눈동자에 담겨 있는 것을 분노라 불러야 할까, 슬픔이라 불러야 할까.


모르겠다. 나는 결국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늘 그래왔듯.


“우리 기사단에서는, 자네 혼자만 출전할 예정이다.”


나는 또,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다.


“······.”


집무실 안으로 번져 나가는 어색하고도 익숙한 침묵.


오래 지나지 않아, 아이샤의 건조한 대답이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너무도 많이 들어왔던 그 목소리. 그 대답.


······그 실망.


말없이 몸을 돌린 아이샤는, 그대로 집무실을 나서버렸다.


그것이 내가 체포당하기 전.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문득 생각의 틈을 파고든 것은, 낯설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였다.


잡념을 갈무리하자 되살아나는 온몸의 감각.


멸망해 가는 국가의 풍경 한가운데로 되돌아온다.


비릿하게 풍겨오는 혈향. 무언가가 무너지고 불에 타는 소리. 수많은 것들이 죽어가는 소리.


그랬지. 나는 살아 있었다.


조금 전 아이샤의 시체를 보았지만, 그래도 아직 나는 살아 있는 것이었다.


늘 투명하고 현명한 활기로 가득했던 그녀의 몸은, 축 늘어져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성벽에 매달려 있었었다.


그녀의 눈에 마지막으로 떠올랐던 감정은···


분노였을까 슬픔이었을까.


나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잔상처럼 흩어져 사라진다.


그리고는, 내 눈앞에서 비딱하게 걸어가는 소년을 바라본다.


“도착했어요.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여기는······.”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소년이 안내한 장소를 둘러보았다.


폐허가 된 도시를 가로질러 소년이 나를 데려온 곳은, 성 뒤편의 공동묘지.


병사들의 발걸음조차 닿지 않는 스산한 이곳에, 작은 나무집 하나가 보여왔다. 정확히는 판자를 대강 엮어 만든 작은 지붕에 가까웠다.


“네르오스 왕국의 지배자들도, 카린달 왕국의 정복자들도 이 장소는 쉽사리 찾아내지 못하죠. 저뿐만 아니라 여기서 숨어 살던 좀도둑들이 몇 있어요.”


소년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설명했다.


확실히, 이 장소는 좀도둑 같은 쥐새끼들이 숨어다니기 딱 좋은 곳이긴 했다. 누가 이런 음습한 공동묘지에 발을 들여놓고 싶어 하겠는가.


“기다려봐요.”


소년은 성큼성큼 나무집 안으로 걸어 들어가 무언가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잠시 뒤.


“흐음.”


한 움큼 정도의. 동전이 가득 든 주머니를 들고는 터덜터덜 돌아왔다.


퉁명스레 툭 주머니를 던져주는 소년. 손에 잡히는 무게가 가볍지는 않다.


“얼마 정도 되지?”


“정확히는 몰라요. 두어달 먹고 자고에는 문제없을걸요. 젠장. 내 돈이었는데.”


“약속은 약속이니까.”


“쳇. 귀족들은 협박도 약속이라고 하나 보죠?”


“혼용해서 쓰이는 편이지.”


짜증스러운 어조로 투덜대는 소년.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숨을 한 차례 가다듬곤 주머니를 품에 챙겼다.


됐다. 예상하지 못한 일의 연속이긴 했지만, 어쨌건 자유의 몸이 된 데다가 도망 자금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왕국 바깥에는 여가 목적으로 지은 가문 소유의 별장이 있다. 크지는 않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마련해 둔 자금도 있고.


두어 달 정도면 별장까지 가기에는 충분한 시간. 그곳에 도착만 한다면 모든 걸 다시 정상적으로 되돌릴 수 있어.


자금을 모으고, 재차 후일을 도모한다면······.


···후일.


그래, 후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결국 어떠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후일.


‘···내게 도모할 후일이 있던가?’


왕국은 무너졌다. 기사단은 몰락했다. 가문이 멀쩡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왕은 죽었다. 아이샤도 죽었다.


나만 살아 있었다.


그건,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아, 그래. 나는 살아있지.


모든 것이 폐허가 되고 시체가 된 공간에서, 나 혼자 살아 있었다.


오직 나 혼자.









===================================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소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남자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남자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소년을 바라보았고.


“제 칼. 돌려줘요.”

“······.”


“허튼짓 안 할 테니까요. 어차피 제가 무슨 짓을 해도 육체적으로 당신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으니까.”


남자는 말없이 소년을 훑다가, 결국 품에서 단도를 꺼내 돌려주었다. 소년에게서 빼앗았던. 핏자국이 서려 있는 짧은 칼.


단도를 건네받은 소년은 허공에 몇 번 휘두르더니,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칼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쉬는 것이었다.


“좋아요. 돈도 줬고, 도시 바깥으로 안내도 해줬고. 우리 악연은 여기서 끝내는 거로 하죠. 앞으로 당신이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행복하게는 못 살았으면 좋겠네요.”


···네놈은 끝까지 비꼬는 말투로군.


남자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소년에게 물어왔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냐.”


“보면 몰라요? 도시로 돌아가야죠.”


소년은 반파된 도시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검은 연기가 한 마리의 괴물처럼 게걸스럽게 도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한때 그리도 아름다웠던 네르오스에는, 더 이상 색채가 남아있지 않다.


그 처참한 광경을 보며 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도시로 돌아가는 건 자살 행위다. 지금쯤이면 카린달의 병사들이 도시를 완전히 장악했을 거야. 돌아가서 귀중품이라도 더 훔칠 생각인 건가?”


“에이. 무슨 소리세요. 돈이 목적이었던 거면 진작에 당신에게 준 그 돈 갖고 여길 떴지. 전 찾아야 할 게 있어서 계속 남아있는 거예요.”


“찾아야 할 것?”


“네.”


소년의 눈에 일순 차가운 씁쓸함이 감돌았다.


“제 여동생이 저 도시에 있거든요.”


“······.”


여동생이라. 남자는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동생이 저곳에 아직 남아있어서, 그 동생을 찾으러 계속 도시를 들락거렸던 건가.


그렇다고 한들···.


“···안됐지만 그건 네 자살의 괜찮은 사유가 아니군. 여동생이 아직도 저 도시에 남아있다면, 이미 둘 중 하나의 꼴이 되어 있을 거다. 죽었거나 포로로 붙잡혔거나.”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나을지도. 남자는 전쟁 중인 병사들에게 어린 여자아이가 갖는 가치를 굉장히 잘 아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소년 또한 모를 리는 없었다.


“저도······ 알고는 있어요.”


“······.”


“걔가 멀쩡할 리가 없다는 것. 어쩌면 한참 전에 시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굳이 당신이 말해줄 필요도 없어요.”


“······.”


“하지만.”


소년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저 비딱한 소년의 비딱한 시선은 바뀐 것이 없었다.


자신이 지금 하는 것은 자살 행위에 불과하다.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소년은 기꺼이 그러겠노라 말하고 있었다.


“저는 그 애를 지키겠다고 했거든요. 끝까지. 그 애가 죽든, 제가 죽든. 끝까지 네 옆에 있어주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의미가 없는 일이다. 네 약속을 기다릴 여동생은 이미 이 세상에 없어.”


“미안한데, 그건 제 동생한테 했던 약속이 아니거든요?”


“······?”


고개를 갸웃하는 남자를 보며, 소년이 툴툴거리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한테 했던 약속이라고요. 아빠라는 인간과 엄마라는 인간이 무책임하게 저희를 버리고 떠나갔을 때. 나 스스로에게 한 맹세에요. 나라도 끝까지 얘를 지키자. 적어도 내가 죽을 때, 내 시체 옆에 이 녀석이 있도록.”


남자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할 수도 없는 감정에. 설명하기도 싫은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그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죽어버리고 나면 맹세고 가족이고 아무 쓸모가 없다.”


시체는 사랑을 말할 수도, 사랑을 받을 수도 없는 법인데.


“나는 네놈을 오래 보지 않았지만, 네놈을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우린 같은 종이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비열한 짓도, 무자비한 짓도 할 수 있는 놈이니까. 그런데······ 이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이렇게 가까스로 살아남았는데 다시 죽으러 가겠다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을 위해서?”


“그래요.”


소년은,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남자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저기에 내 영혼이 있으니까.”


“······.”


작고 왜소한 소년은.


사람 하나 썰어 넘기기 힘들어 보이는 그 소년은, 그렇게 남자로부터 등을 돌려 멀어져갔다.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우린 비슷한 종 같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비슷할지 몰라도, 우리가 죽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고요.”


반파된 저 도시를 향해.


“···나는 꽃처럼 질 테니까. 처연하게. 당신은 서리처럼 사라지겠죠.”


녀석이 남자에게 왔던 것처럼. 비딱한 뒷모습이었다.









===================================








나는 짜증이 났다.


왜 짜증이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 나를 감싸고 돈다는 것만을 느낄 뿐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름도 모를 건방진 꼬맹이 때문이 틀림없다. 그 녀석의 마지막 말과 마지막 행동이, 나를 이렇게까지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감히··· 네까짓 게 뭐라고···!’


영혼이라니! 뒷골목에서 좀도둑질이나 하며 살던 하찮은 쥐새끼가 감히 영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다니!


나는 네놈보다 훨씬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아왔다. 네놈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저버리며 살아왔어.


단지 한 가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이리 해내었다. 내 삶을 칭찬하던 이들도, 비난하던 이들도 모두 죽었는데. 나 혼자만이 이리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런데···. 감히 좀도둑 따위가 이 삶이 잘못되었다 말하다니?


“······.”


나는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후려갈기듯 스치고 지나갔다.


왕국, 전쟁, 기사단, 가문, 소년, 생존···.


그러다 마지막에는, 아이샤의 얼굴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아이샤 트릴리스.


‘저는 단장님을 존경하고 있어요.’


······이건 언제 들었던 말이었지. 그녀가 처음 부단장에 임명되었을 적이었던가.


어느 휴일에 그녀에게 들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녀는 종종 내게 식사를 하자 청해오곤 했으니까. 늘 나를 보면 한숨을 쉬면서도 그녀는 그랬다.


그래. 죽기 전까지도, 아이샤는 그랬지.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비슷할지 몰라도, 우리가 죽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고요.’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나는 단지 살기 위해 살아왔다.


‘그것이 잘못되었나?’


알 수 없었다. 어쨌건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네르오스 왕국의 마지막 생존자, 베르 켈버트.


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곤 걷기 시작했다. 소년이 돌아갔던 길과는, 반대 방향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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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마탑 폭발 (1) NEW 18시간 전 13 0 12쪽
10 마법사와 검기 (完) 24.09.16 24 0 14쪽
9 마법사와 검기 (1) 24.09.15 31 1 12쪽
8 기사단 죽이기 (完) 24.09.14 37 1 17쪽
7 기사단 죽이기 (2) 24.09.13 41 0 14쪽
6 기사단 죽이기 (1) 24.09.12 52 0 17쪽
5 회귀하다 (完) 24.09.11 55 1 13쪽
4 회귀하다 (4) 24.09.11 49 0 18쪽
» 회귀하다 (3) 24.09.11 62 0 15쪽
2 회귀하다 (2) 24.09.11 65 0 15쪽
1 회귀하다 (1) 24.09.11 7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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