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프롤로그
“선생님, 우리 아빠가!!”
“예. 제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쾅! 쿵, 쿠쾅!!
여전히 멀리 아스라히 포성과 총성이 들려오는 야전병원. 부상병의 딸인 듯한 젊은 처녀는 발만 동동 구르며 내 팔을 붙들었다.
“메스-”
“예!”
“겸자, 그래, 포셉에 니들 끼워서···”
고통에 몸부림치던 부상병의 혈관을 잡아내 지혈하고, 검게 오염된 죽은 조직을 잘라낸 후 실크 봉합사로 한 땀 한 땀 묶어내었다.
뜨거운 빛을 내는 수술등 때문에 이마에 땀이 흐른다. 긴장해서? 그건 아닐 거다.
이런 ‘간단한’ 복합열상(裂傷) 처치와 절단 후처리는 전쟁이 터진 후 수십, 수백 번은 더 해보았으니까. 전쟁터는 외과의를 위한 가장 적절한 배움터라고, 히포크라테스가 그렇게 말했던가?
21세기의 멸균 수술실이 아니라 19세기의 허술한 야전병원에서 기예(技藝)는 빛난다.
이윽고 수술이 끝나고, 기진맥진한 의료진들이 나가 떨어지는 와중 나는 부상병의 딸에게 한 마디 건넬 수 있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이제 아버님이 이겨내시는 건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지요.”
진인사 대천명이라. 이 세계에서 뼈저리게 느낀 그 사실을 담담히 전해 주자 여인이 주저앉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 생각보다 의사로 일하며 자주 듣기는 어려운 말이었다.
대부분의 환자는··· 이런 식이었으니.
“으음··· 으응?”
“안심하십시오. 여긴 병원입니다.”
“병··· 원?”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는 아직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는지 얼빠진 말투로 되물어 왔다. 그러다가 내 얼굴을 보자 확 얼굴을 찡그렸다.
“여긴··· 지옥인가?”
“대충 그렇다 칩시다.”
야전병원만큼 인세에서 지옥에 가까운 곳이 있을까? 하지만 기껏 살려 놓은 환자는 다른 방향으로 알아들은 듯 했다.
“말대답하는··· 깜둥이 악마라니··· 빌어먹을 양키 지옥이구만···”
“이 빌어먹을 딕시 새끼가??”
빌어먹을 19세기, 빌어먹을 인종차별의 시대.
나는 그 시대, 검은 머리 - 검은 얼굴의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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