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이 퇴마를 잘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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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작품등록일 :
2024.09.1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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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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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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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인도를 따르라.(1)

DUMMY

퀘에엥. 챙챙챙챙챙, 투웅! 퉁!


꽹과리를 치는 소리.

북이 울리는 소리.

방울이 떨리는 소리.

넓은 마당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자들은 "으허!" 라거나 "흐아아아!" 같은 함성을 섞었다.

표정은 무겁고 눈빛은 절박했다.

굿판의 한복판이다.

굿의 주인공이자 대상자인 어린 강형석은 멍하니 춤을 추는 무당을 바라봤다.

그녀는 색감이 강렬한 빨갛고 파란 옷을 입은 채 양손에 달아놓은 하얀 천을 흔들고 있었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나는 이 굿판에 있는 것인가.

강형석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무당 뒤에 제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장군처럼 검은 갑주를 입은 자가 서 있었다.

눈에 띄는 차림이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검은 아지랑이로 둘러싸여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강형석을 응시하고 있었다.

간절히 무언가를 바라는 눈으로.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내게서 무엇을 그토록 기대하시는 겁니까.

열리지 않는 입으로 간곡히 물었으나 그것은 답하지 않았다.

요란한 굿판 사이에서 강형석은 의식을 잃었다.



20년 후.



부우우웅.


강원도 깊은 곳의 오지 길이었다.

강형석은 가성비 좋은 은색 승용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조수석에는 같은 회사의 상사인 신정아가 눈썹을 찌푸린 채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하, 꼭 도깨비라도 튀어나올 것 같네."


나이는 두 살 많은 주제에 스무 살은 많은 것처럼 행세하는 신정아의 말이다.

맞장구도 쳐주기 싫었으나 이번만큼은 강형석도 동의한다는 눈빛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밤 안개가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

똬리를 튼 뱀처럼 구불거리는 길.

출장지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시간은 새벽을 달리고 있었고 달은 구름 뒤로 숨었다.

주변에는 가로등도, 다른 차마저 없어서 도깨비가 아니라 귀신이 튀어나와도 올 게 왔구나 싶은 분위기였다.


[사고위험 구역입니다.]


"야! 저거 소리 죽여버려."


신정아가 짜증을 내며 쏘아붙이듯 말했고, 강형석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대시보드에 걸어놓은 핸드폰의 볼륨을 줄였다.


"쯧! 다 마음에 안 들어."


신정아가 등받이를 눕히면서 담배를 꺼냈다.

강형석의 차다.

그런데도 그녀는 아무런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김재식이었나? 네 교수가."


하필이면 강형석의 담당 교수 이름이 튀어나왔다.

대한민국 민속학에서 최고 권위자로 불리는 교수였고, 강형석과는 가까운 친척만큼이나 돈독한 사람이었다.


"그 교수, 나이도 적지 않은데 나잇값 좀 할 것이지. 요즘 시대에 교수 추천이 뭐야, 교수 추천이."


그러니 중소와 중견 중간인 대정물산의 과장 따위가 이런 식으로 말할 사람은 결단코 아니었다.


덜컹!


돌부리를 밟아 요동치는 승용차가 강형석의 심정을 대변했다.

재킷 위에 떨어진 담뱃재를 털어난 신정아가 입술 사이로 연기를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 소개로 들어온 거면 더 열심히 해야지."


강형석은 묵묵히 정면만 바라봤다.

그러다 얼핏 본 룸미러의 신정아는 재미가 없다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너도 이제 3년 차야. 뒤에서 네 말은 안 나오게 해야 할 거 아니야."

"압니다. 저도."


참아주기 힘들다는 감정을 담아서 말했다.

뒤에서 말이 나오는 건 입사한 지 일주일 만에 안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중심에 신정아가 있다는 것도 안다.

유난히 그녀는 강형석을 싫어했는데, 그 이유가 너무 하찮아서 처음에는 말도 나오지 않았었다.


"낙하산이라고 뭐라 하는데, 솔직히 교수 추천이 낙하산이라고 하는 것도 웃긴 거 아닙니까."


솔직히 낙하산이라고 하기에도 그렇다.

김재식 교수가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를 소개해 준 건데, 이게 낙하산이면 세상 어느 누가 저딴 낙하산을 찾을까.


"성질머리 하고는."


돌아오는 비아냥에 강형석은 어금니를 깨무는 것으로 정말 많은 말을 삼켰다.

입사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었다.

신정아는 생긴 것과 다르게 정말 혓바닥이 독하다는걸.

하루에도 퇴사를 세 번은 생각한다.

그런데도 회사에 붙어 있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꾸준히 잘 다녀봐. 네가 모범이 되어야 네 후배들도 취업 자리를 알아봐 줄 수 있지 않겠니.)


우선 김재식 교수가 했던 부탁이 있었고.


'누구 좋으라고?'


강형석의 퇴사를 가장 반길게, 신정아라서 그렇다.

도망치듯 살아본 적 없다.

그래서 오기라도 신정아보다 먼저 퇴사해 줄 수는 없었다.


지이잉. 휙.


창밖으로 꽁초를 던져버린 신정아가 크게 기지개하고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도착까지는 한참 남은 시간.

일만 아니었으면 그냥 숙소를 잡을걸. 이라고 중얼거린 신정아가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야, 민속학."


신정아가 저런 식으로 부를 땐 이유가 한 가지뿐이었다.


"예."

"무서운 이야기라도 꺼내봐. 날씨도 뭣 같은데."


강형석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웃음을 터트리고는 굽이치는 커브 길을 따라 핸들을 돌렸다.


"갑자기 그러시면 뭔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콱 막혀 가지고. 살면서 무서운 일이 하나쯤은 있을 거 아니야."


신정아는 아예 등받이까지 기울이며 김형석의 말을 기다렸다.

이 여자는 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지?

강형석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로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민속학 전공한 이유 모르시죠?"


강형석은 짧게 신정아에게 시선을 주고는 말을 이었다.


"저 귀신 봅니다."


신정아의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었고, 강형석은 점점 짙어지는 밤안개 때문에 속도를 줄였다.

정말 사고가 나도 큰 사고가 벌어질 것 같은 날씨였다.


"처음에 본 게 5살 때였죠. 집에 아무도 없었는데, 부모님 침대 위에 서 있는 귀신을 봤었습니다."


이 정도의 경험담이 나올 줄은 몰랐는지 신정아의 눈이 얇아진 다음이었다.


"모습이 참 더럽더군요. 침대 위를 두 발로 잘근잘근 밟고 있는데 눈알은 새빨갛고."


강형석은 정말로 귀신 때문에 민속학을 전공했다.

민속학에서는 민속뿐만 아니라 전승도 배운다.

두려움은 미지에서 나온다.

그러니 두려움의 대상을 이해의 영역으로 끌고 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방에서 나오려는데 갑자기 눈이 마주쳤었습니다. 그 녀석, 갑자기 네발로 기어 오더군요. 한 번 밟힌 거미처럼 팔다리를 기괴하게 꺾어가면서."


차분한 음성에 주변 환경까지 받쳐줬기 때문일 것이다.

귀신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졌는지 신정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너,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회사에서도 종종 봅니다."

"뭐?"

"이진평 대리 있잖습니까. 나중에 한 번 물어보세요. 전에 개 키운 적 있지 않냐고요."


불신으로 가득했던 신정아의 눈동자에 경계심이 서렸다.

마치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는 눈빛.

알 수 밖에 없는게, 봤기 때문이다.


"나이 많은 흰색 스피츠. 꼬리는 오른쪽으로 좀 기울어진 개일 겁니다."


이진평 대리는 모를 것이다.

그 강아지가 매일 이진평과 함께 출근한다는 걸.

그리고 그의 주변을 떠돌면서 놀다가 만족한 얼굴로 함께 퇴근한다는 것도.


"이 대리한테 들었었어?"

"그럴 사람입니까. 이 대리가."


입이 어찌나 무거운지 개인적인 일은 물론 업무적인 일까지 말을 안하곤 해서 여러 사람이 뒷목을 잡곤 했다.


"아무튼, 제 팔자가 무당이랑 비슷하다고 합니다. 어릴 때 신누름굿도 받아봤고요."

"······."


침묵하던 신정아가 입술을 비틀며 조소 섞인 말을 던졌다.


"잡신이었겠네. 신내림을 안 받은 걸 보면."


젊은 여자 중에는 유난히 오컬트나 무속에 심취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신정아는 그런 사람이라 신내림굿과 신누름굿을 구별할 줄 안다.

어떻게든 강형석의 속을 긁어보려고 던진 말.

그러나 그 말이 가슴에 와닿지는 않았다.


"신누름굿을 한 달 가까이 받았었습니다."


이 아이는 아직 신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유예기간을 주시라.

이것이 신누름굿인데, 한 달이나 걸렸다는 건 그만큼 강형석을 지켜주는 신이 큰 존재라는 거였다.


"무당도 절 지켜주는 분이 누군지 알 수 없다더군요. 만약 신내림을 받았다면 만신이 될 거라 했습니다."


신정아가 입술을 굳게 다물어버려서 차 안에는 느닷없는 침묵이 찾아왔다.

만신이라면 큰 무당을 말한다.

모든 무당의 존경을 받는 무당.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강형석의 고백이 신정아에게는 무시하기 힘든 것이었다.


"재밌으셨습니까?"


신정아가 답을 하지 않아서 강형석도 되묻지 않았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무거운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그우우웅.


그렇게 3분쯤 운전한 강형석은 눈썹 사이를 좁혔다.

조수석의 신정아가 생각이 많은 얼굴로 담배에 불을 붙여서만은 아니었다.


덜컹, 덜컹.


여기가 원래 비포장도로였나 싶을 정도로 자동차가 흔들렸다.


"길 똑바로 가고 있는 거 맞아?"

"외길이었잖습니까."


강형석은 속도를 줄이며 핸드폰을 힐끗거렸다.

핸드폰에 띄워놓은 내비게이션 지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데 짙은 안개 때문인지 기분이 이상했다.

어쩐지 가면 안 되는 곳으로 향하는 기분.

부정 타거나 악귀 소굴이 된 폐가로 향하는 그런 위화감이 성큼성큼 가까워지고 있었다.


화앗!


갑자기 뭔가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고,


끼이이익! 쿠우우웅!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은 차와 그것이 충돌했다.

순식간에 차 안을 채우는 고무 탄내를 맡으면서 강형석은 머릿속이 하얗게 뜨는 걸 느꼈다.


방금 뭘 본 거지.


차와 충돌하기 직전에 본 그것에 정신이 나가 있을 때, 신정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로 파고들었다.


"우, 운전 똑바로 해야지! 뭘 친 거야!"


덕분에 정신을 차린 강형석은 안전 벨트를 풀며 말했다.


"보고 오겠습니다."

"미친 새끼, 진짜 미친 새끼!"


당황한 신정아가 안전 벨트를 푸는 옆에서 강형석은 차에서 내렸다.

그러면서 방금 자신이 본 것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고라니나 새끼 멧돼지는 아니었어.'


그렇다고 사람인 것도 아니다.

이런 외딴 길에, 그것도 인근에 마을도 없는데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짐승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것.

그것과 강형석은 시선까지 마주쳤었다.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소름에 강형석이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핸드폰으로 플래시를 켰다.


"같이 가! 야!"


뒤따라오는 신정아와 함께 강형석은 걸음을 옮겨갔다.

자욱한 안개 때문인지 비 내린 직후의 흙냄새 같은 게 진동했다.


자박, 자박, 자박.


강형석은 발밑을 비춰가며 걸음을 옮겼다.

이상한 감각이 더욱 짙어져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단 것처럼 무거워졌다.

그런데도 갈 수밖에 없는 건 만에 하나 자신이 친 게 사람일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가 없어서였다.


"왜 아무것도 안 보이지. 잘못 본 거 아니야?"


신정아가 뒤에서 중얼거린 다음이었다.


화앗.


핸드폰의 얄팍한 불빛이 쓰러져 있는 그것을 비췄다.

강형석이 발을 우뚝 멈췄고, 곧 따라온 신정아가 그것을 보고는 목석처럼 굳어버렸다.


"저, 저, 저게 뭐야."


그것은 아직 살아 있었다.

크기는 대형견 정도 됐으며 전신에 노랗고 검은 털이 풍성했다.

차에 치였을 때 찌그러진 갈비뼈가 숨을 쉴 때마다 들썩였는데 문제는 머리였다.


중년 남성의 얼굴.


그것이 짐승의 몸에 붙어 있었다.


"쉬이익, 쉬이이익."


찌푸려진 폐로 간신히 숨을 쉬면서 그것이 강형석과 신정아를 핏발이 선 눈으로 노려봤다.

사람의 눈동자처럼 동그란 동공이 아니라, 고양이 과 맹수처럼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로.


지직, 직.


신정아가 기겁하며 물러났는데 차마 신고한다거나 사진을 남겨둬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 하는 듯했다.


"시, 시발. 너 대체 뭘 친 거야! 미친 새끼야!"


강형석은 대꾸 없이 이 사이로 숨을 밀어내며 그것을 내려다봤다.

분명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인데, 어째서인지 저것의 실체가 뭔지를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창귀.


바로 귀 옆에서 누군가가 저것의 이름을 알려주는 듯했다.

머릿속에 든 지식인지 아니면 그를 지켜주는 몸신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창귀······.'


호랑이에게 잡아 먹힌 자의 원혼.

사후에도 성불하지 못하고 호랑이의 수족이 된 귀신.

강형석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창귀의 목적은 하나뿐이다.

호랑이에게 다른 희생자를 인도하는 것.

깊고 짙은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예감이 피부를 찌르듯이 다가왔다.


작가의말

본 소설에 등장하는 무속 명칭과 설명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편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을 참조하였으나 글의 진행과 재미를 위하여 일부 요소가 변형되어 적용되었습니다.

등장하는 특정 장소나 지명은 본 글과 무관하며, 사건 역시 사실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본 소설은 미신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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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옳은 길을 걸어라(1) 24.09.18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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