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이 퇴마를 잘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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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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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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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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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길을 걸어라(1)

DUMMY

창귀를 퇴마했다고 퇴사해도 되는 건 아니다.

직장인인 이상 출근은 해야 하고, 쌓인 업무를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고작 3시간밖에 자지 못했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

안 그러면 퇴근 시간 못 지킨다.


탁.


책상 위에 서류를 정리한 강형석은 넋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텀블러를 홀짝였다.


'죽겠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이러면 죽을 수도 있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 만큼 지독한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신정아를 내려다 주고 집에 오니 새벽 4시.

야밤에 창귀에게 쫓겨 산을 뛰어다니기까지 해서 다리가 퉁퉁 붓기까지 했다.


"강 대리님. 내일 연차 맞으시죠?"


옆자리의 인턴인 남궁민아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풋풋한 외모에 사회의 때가 타지 않은 눈빛.

이게 젊음이구나 싶은 사람이었다.


"예. 왜요?"

"아뇨. 혹시 제가 알아둬야 할 게 있나 싶어서요."


강형석이 쉬면 남궁민아가 의지할 사람이 없어진다.

아마 그걸 걱정하는 모양인데 강형석이 그렇게 허술한 사람은 아니다.


"굵직한 일은 다 끝내놔서 민아씨가 신경 쓸 건 없어요. 내일 출근 잘하시고, 특이 사항 있으면 문자 남겨 놓으세요."

"그래도 쉬시는 날인데······."

"괜찮으니까 하는 말이에요."


인턴 생활은 서럽다.

아무리 교수 추천으로 들어왔다지만 강형석도 짧은 인턴 생활을 하긴 했다.


"감사합니다. 강 대리님."


남궁민아가 정수리가 보일 만큼 고개를 꾸벅였고, 강형석은 짐을 챙기기 위해 가방을 열었다.

일단 노트북부터 담고, 멀티탭에서 충전기를 분리해서 둘둘 말아 쑤셔 넣은 다음, 텀블러는 가방 옆에 달린 전용 수납공간에 끼워 넣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안 불려 가셨네요?"

"예?"

"신 과장님한테요. 오늘은 기분이 좋으셨나 봐요."


이게 말을 조금만 잘못하면 사람 속을 긁어버리는 질문이 된다.

신정아가 강형석을 수시로 갈궈댄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어제 출장으로 피곤하셔서 그런가 보죠."

"그래도 오늘은 잘 넘어가셔서 제가 다 좋더라고요."


강형석은 숨을 밀어내는 듯한 웃음으로 넘겼다.

얼굴을 보지는 못했으나 신정아가 어떤 심정으로 오늘을 보냈을지는 예상됐다.

창귀에 대한 두려움과 얼떨떨함.

아마 평소처럼 강형석을 불러낼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먼저 가볼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강형석은 일어나려는 남궁민아에게 손사래를 쳐서 다시 앉게 했다.

그러고는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골치 아픈 건 나도 마찬가지지.'


무당 방울.

창귀.

손바닥에 생겨난 세 개의 점.

정신없이 몰아치던 회사 생활이 끝나자마자 기회를 노렸다는 것처럼 비일상적인 것들이 몰려들어 머릿속을 채웠다.

강형석은 엘리베이터 앞에 선 채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퇴근하지 못한 사원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집중해서 본 건 하얀 강아지의 혼령이었다.

이진평 대리가 예전에 키웠던 그 흰색 강아지다.

이제는 육체는 잃었는데도 그 강아지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강형석을 향해서 꼬리를 흔들며 작별인사를 해왔고, 그는 가볍게 손을 흔드는 것으로 인사를 받아줬다.


* * *


그우우웅.


회사를 나온 강형석이 향한 곳은 집이 아니었다.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보다 더 굴뚝같은 마음이 있었다.


'선생님이면 답을 알고 계시겠지.'


강형석이 안게 된 문제들에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무당 이금경.


어린 강형석에게 신누름굿을 해줬으며 20년 동안 연락을 유지해 온 무당이다.

그가 가장 잘 아는 무당이기도 하고 가짜 무당이 판치는 요즘 시대에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이이잉!


[독한 것에게 걸려 온 전화입니다.]


내비게이션이 신정아에게 전화가 걸려 왔음을 알려줬다.

강형석은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고는 전화를 받았다.


-야! 너 어디야?

"차 안입니다."

-주차장이지? 기다려.

"운전 중인데요."

-뭐 이렇게 빨리 갔어? 하 씨.


회사에서 안 마주쳐서 조용히 넘어가나 싶었다.

강형석은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고속도로에 진입하고는 2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그럼 없겠어? 어제 일 때문에 그렇지.


평소보다 풀이 죽고 묘하게 울리는 음성 때문에 화장실에서 통화하는 신정아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좀 그래서. 당집에라도 가볼까 하는데 네 생각 좀 물어보려고.

"평소 가시는 곳이 있으시잖아요."

-거기로도 괜찮을까 싶어서······.

"당집은 괜히 안 가던 곳에 가시는 것보다 믿을 수 있는 곳에 가시는 게 더 나아요. 진짜 엄한 곳 가시면 굿부터 하자고 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공포부터 심어주고 적게는 수백에서 수천만 원짜리 굿부터 하자고 하는 곳이 드글드글하다.

그런 곳은 가짜거나 무당이라 해도 제대로 된 무당이 아니다.

잡신을 모시면서 만신처럼 행세하는 작자들인데, 그런 무당들은 돈독이 올라도 잔인하게 올라가 있다.

그 벌을 언젠가 받게 될 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래···? 그, 혹시 내가 주의해야 할 게 있을까.

"아마 노린내 이야기를 할 겁니다."

-짐승 냄새? 어, 어.

"그러면 확실히 뭔가 아는 무당이에요. 아마 부적을 써주려 할 텐데 창귀를 봤다고 하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신정아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커진 게 핸드폰을 얼굴에 바짝 붙이고 경청하고 있는 듯했다.


"한동안 고기와 술은 먹지 마세요."

-식욕이 없어서 하루 종일 안 먹긴 했는데.

"잘하셨네요."


의도하고 한 금식은 아니지만 정말 잘한 행동이었다.


-회사에서는? 뭐 신경 쓸 거 없어?

"제가 봤을 때 별일 없었습니다.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되고, 부적도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세요."

-······.

"또 물어보실 거 있으십니까?"


침묵하던 신정아가 훅 던지듯이 말해왔다.


-야, 민속학.

"예."

-고맙다.


뚝.


강형석은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보면서 눈썹 사이를 찌푸렸다.


'뭔 전화를 이따위로 하지.'


그래도 신정아에게 걸려 온 전화치고는 무척이나 자상한 편이기는 했다.

예전에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에휴."


한숨을 내쉰 그는 운전에만 집중했다.


부우우웅.


창귀를 만났던 강원도의 산길보다는 낫다만 지금 가야 하는 길도 외지기는 마찬가지다.

텀블러에 담긴 커피를 홀짝이면서 그는 천천히 운전했다.

경기도 용인이다.

공장단지가 있는 곳을 지나쳐 좀 더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고, 한참 공사가 진행되는 장소를 지나 어두컴컴한 산길로 차를 몰았다.


덜컹, 덜컹.


이어서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만든 차도가 나타났다.

엄청나게 흔들거리는 좁은 길을 오르며 강형석은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대략 8시에 가까워져 있다.

너무 늦은 시간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른 시간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특히 오랜만에 이금경 무당을 만나 뵙는 것 치고는 더더욱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그르륵.


산 중턱쯤 됐을까.

갑자기 넓진 않아도 평탄한 대지가 나타났고, 강형석은 그 구석에 주차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이금경 무당의 집이다.

절 같은 느낌을 풍기는 한옥이었는데 강형석은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을 바라봤다.


'여기만 오면 그 생각이 나네.'


저 마당 한 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신누름굿을 받던 기억이다.

벌써 20년 전이지만 어제처럼 생생한 터라 강형석은 쉽사리 마당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표준어이긴 한데 전라도 억양이 강하게 묻어있는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강형석이 고개를 돌리자, 스포츠 브랜드의 운동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강형석을 경계하듯 노려보면서 코를 문질렀다.


"노린내가 진동하시네요. 무엇 때문에 오신 분이세요."


강형석은 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저 여자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아서였다.


"제자 분이시죠?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


저 여자는 무속인이다.

속된 말로 새끼 무당이라 불리는 자인데, 무당으로 살아가는 방법부터 굿을 하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배워가는 인턴 사원 같은 거라 보면 된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돌아가시지요."

"꼭 만나 뵙고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돌아가시라고 했습니다."


여자의 인상이 점차 사나워졌다.


"딱 보아하니 어디서 흉가 체험이라도 하다가 뭐라도 씐 모양인데, 왜 제 발로 그런 곳에 기어들어 가서는 경우 없이 도움을 구하러 옵니까."


시달린 게 많은지 여자는 기관총처럼 말을 쏟아냈다.

저 여자에게 강형석은 저 스스로 산행 금지인 곳에 꾸역꾸역 올라가 조난 해놓고, 119에 전화해서 도움을 구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강형석은 여자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저 강형석입니다."

"그래서요?"


나를 알아봐달라는 말투로 한 말이었으나 어쩌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강형석은 입술을 다물었다가 한숨을 내쉬듯 말문을 열었다.


"아들이 되지 못한 놈이 왔다고 하면 아실 겁니다."


만약의 일이긴 하다.

신누름굿이 아니라 신내림을 받았다면.

강형석이 무속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면.

이금경과 강형석은 신어머니와 신아들의 관계가 됐을 것이다.

혈연관계처럼 끈끈하고 절대로 끊을 수 없는 관계다.

이때였다.

여자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지며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이 느슨해졌다.


"어? 도련님이셨습니까?"

"···도련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연락이라도 주고 오시지요. 길이 험했을 텐데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여자가 완전히 달라진 태도로 강형석을 대해왔다.

이금경의 손님을 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중한 음성과 부드러워진 얼굴이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이금경과의 관계, 강형석의 몸주신.

만약 강형석이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 신을 받아들이면 그는 모든 무당들의 존경을 받는 만신이 된다.

그런 강형석이 20년 전부터 이금경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무속계에서 그를 알면서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쩐 일로 몸에서 누린내를 풍기십니까."

"사실 그 일 때문에 온 겁니다."

"아이고, 독한 놈에게 걸리셨나 봅니다. 도련님에게 이 정도로 위해를 가할 놈이면 애사 놈은 아닐 텐데."


강형석이 씁쓸한 얼굴을 끄덕였고, 여자가 창호지가 발라진 나무 문 앞에 멈춰 섰다.


"선생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와라."


안에서 들려온 늙은 여성의 목소리에 여자가 옆으로 물러났다.

그렇게 비켜준 길로 강형석은 합장부터 올렸다.


"선생님, 저 강형석입니다."

"알고 있다. 어서 들어오거라."


강형석은 빙긋 웃고는 청금에게 묵례했고,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정중하게 노크를 두 번 한 그가 문을 열자, 방 안에 고여있던 향냄새가 가장 먼저 반겨왔다.

그리고 불상들과 단상이 그를 맞이했으며, 하얀 한복을 입은 노년의 여성이 바닥에 앉은 채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속인 이금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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