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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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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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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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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길을 걸어라(2)

DUMMY

이금경의 나이는 60대 후반이다.

하지만 염색하지 않은 흰 머리카락 때문에 멀리서 보면 그보다 많아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서 보면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힘이 담긴 눈동자와 굳센 성격이 드러난 입술.

흔히 말하는 기가 강한 무속인의 이미지가 이금경에게는 정말 잘 담겨 있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이금경이 붉은 입술을 끌어당겨 웃고는 강형석에게 손짓했다.


"어서 들어와라. 청금아, 차 좀 내주겠니."

"예."


청금이라 불린 여자가 허리를 숙인 채로 자리를 떠난 다음이었다.


"새로 받으신 제자이신가 봅니다."

"너한테 실수는 안 하더냐."

"첫인상이 좋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해해라. 장군 신을 받아서 그런지 성격이 남들 같지 않아."


뭔지는 몰라도 재밌게 풀만한 이야깃거리가 있긴 한 모양이다. 이금경이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한숨을 내쉬는 걸 보니 말이다.


"그래도 제자로 받으신 이유가 있더군요."

"네게 짐승 냄새가 난다고 뭐라 하더냐."


강형석이 놀란 눈으로 이금경을 봤다가 쓴 미소를 지었다.


"알고 계셨군요."

"냄새를 풀풀 풍기는데 모르는 게 이상한 거겠지."


이금경은 얼추 전황을 아는 눈빛이었다.

신점을 잘 보는 무당이다. 이금경은.

그녀의 몸주신은 강형석이 이 산에 도착한 순간부터 모든 걸 알려주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뭔가를 알려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강형석이 이금경의 뒤를 봤으나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다.


"그보다 내게 할 말이 있지 않느냐?"


강형석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가 열었다.

그때였다.


"선생님, 차를 가져왔습니다."


문밖에서 들려온 음성에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소반에 녹차 두 개를 올린 청금이 들어왔고, 녹차는 이금경과 강형석 앞에 한 잔씩 놓였다.

이금경은 청금에게 방 한쪽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다시 조용한 분위기가 잡혔다.


후룩.


이상하게 입안이 마르는 느낌이라 강형석은 녹차를 한 모금 마신 뒤에 입을 열었다.


"창귀에게 쫓긴 건 알고 계실 겁니다."


이금경이 무거운 표정을 유지한 채로 눈빛만으로 그렇다고 말했다.

청금의 얼굴에는 짧은 탄식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노린내의 정체가 생각보다 고약했기 때문이었다.


"몸주신의 도움을 받았고, 무당 방울을 들게 됐습니다."

"신을 받았다는 게냐?"

"그렇습니다."


청금은 아까보다 당황했다.

만약 강형석이 신내림을 받게 된다면, 당연히 이금경에게 받을 것이라 생각해왔다.


'도련님이 다른 신어머니를 둔 건가?'


이금경이 아닌 다른 무당에게 신내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깊은 배신감이 들어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금경은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신어머니를 둔 건 아닙니다. 선생님."

"알고 있다."


청금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강형석을 봤다가 이금경의 시선을 느꼈다.

이금경은 가만히 있으라는 눈빛만 보냈다.

네가 모르는 세상과 경지가 있다.

그러니 가만히 있거라.

눈빛을 읽은 청금은 다시 얌전히 앉아 복잡한 심경으로 강형석을 응시했다.


"창귀에게 쫓기던 중 방울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쫓아가니 무당 방울이 있었고, 방울을 드는 순간 몸주신이 제 안에 들어오는 걸 느꼈습니다."

"방울을 들 때의 결심이 쉽지 않았을 텐데?"

"직장 상사가 옆에 있었습니다."


이금경이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타인을 지키기 위해 결심했단 것이냐?"

"저를 위해서도 든 것도 있습니다. 만약 무당 방울을 들지 않았다면 저는 죽었을 겁니다."


이금경은 강형석이 겸손하게 말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특하듯이 강형석을 바라봐 주었다.


"옳은 선택을 했구나."


무당 방울을 드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강형석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쉬운 선택이 아니다.

삶이 변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결심의 순간을 말할 때, 자신이 아닌 타인을 말했다는 것이 큰 인상을 주었다.


"신을 받을 때 느낌이 어땠느냐?"

"낯설었습니다. 제 안에 다른 존재가 들어온 기분이었는데, 이상하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강형석은 창귀를 쫓아낼 때를 회상했다.

누군가가 육체를 이끄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온전해졌다는 느낌이었다.

신과의 합일.

그 순간만큼은 몸주신이 강형석이었으며 강형석이 몸주신이었다.


"그 무당 방울은 지금 가지고 있느냐?"

"예."

"어디 한번 보자."


강형석은 매고 있던 가방을 풀어 무당 방울을 꺼냈다.


"이것입니다."


이금경과 청금.

두 사람은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무당 방울이 내뿜는 심상치 않은 기운은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있어서였다.

이금경이 손을 내밀었고 강형석은 무당 방울을 건넸다.

그렇게 이금경의 손에 무당 방울이 들린 순간, 청금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위화감이······.'


방금까지 무당 방울에서 느껴지던 기운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덜걱덜걱.


이금경 역시 같은 현상을 알아차렸기에 방울을 흔들어 보았으나 탁한 쇳소리만이 났다.


"평범한 물건은 아니구나."


이금경이 무당 방울을 잔잔히 뜯어 보면서 감탄했다.


"신물이다. 내 신어머니한테 듣기는 했다만,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구나."

"신물이요?"

"주인을 가리는 물건이란 소리다."


이금경이 강형석에게로 무당 방울을 돌려줬다.


딸랑.


그녀가 들었을 때와 달리 무당 방울은 맑은 소리를 냈다. 그리고 사라졌었던 기운 역시 돌아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강형석은 무당 방울을 앞에 내려놓고는 이금경과 시선을 마주했다.


"혹시 손에 생긴 점과도 관계가 있을까요?"


강형석은 손바닥에 생겨난 세 개의 점까지 보여주었다.


"무당 방울을 습득한 순간에 생긴 것 같습니다. 정체는 저도 모르겠고요."


이금경이 손을 잡고는 얇게 뜬 눈으로 손바닥의 점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주름지고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점을 매만졌고, 그 상태로 입을 열었다.


"수계구나."

"수계면···, 불교 쪽 용어잖습니까."


이금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놓아주었다.

자유로워진 손의 점을 보면서 강형석은 한동안 침묵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게 수계라면 그 안에 담긴 의미 역시 가벼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의미가 무엇인지도 알겠느냐?"

"예, 종파에 따라 달라지긴 합니다만······."


강형석은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을 이었다.


"모든 행위를 바르고 선하게 하라."


손은 행동의 시작이다.

그런 곳에 찍힌 수계는 올바른 행동을 강조한다.

그러한 점이 세 개나 찍혀 있다.

분명 각기 다른 의미가 있을 테지만 올바른 행동을 하라는 가르침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구나. 그런 의미로 남기신 거였구나.'


이 수계를 남긴 것은 몸주신이다.

강형석에게 올바른 길을 가라고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거였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어째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수계를 남기셨을까요?"


혹시 몸주신을 받은 게 아닌 건가 싶어 강형석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으나 이금경은 시원하게도 답을 주었다.


"아직 신내림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생님께 신내림을 받아야 할까요?"

"내가? 네게? 말도 안 되는 소리."


이금경의 말에 강형석이 눈을 깜빡였다.

당연히 완전하지 않은 신내림을 받았으니 제대로 된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네게 신내림을 내릴 수 있는 무당은 많지 않을 거다. 어쩌면 만신도 불가능할 거야. 그리고 이미 신을 받은 자에게 무슨 신내림이 필요하다는 것이냐?"

"하지만 방금 신내림이 완전하지 않다고······."

"네가 아직 네 몸주신을 받아 들일만한 그릇이 아니기 때문이다."


꾸짖는 말 같아서 강형석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간 무속과 철저하게 선을 그어온 건 아니다.

그러나 종교인이나 무속인처럼 살아온 것도 아니다.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금경의 말은 질책이 아닌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네 몸주신은 함부로 받을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네가 박수처럼 살았어도 받지 못했을 분이야."

"······."

"뭘 그리 혼란스러워하느냐?"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된 신내림은 받지 못하지만 이미 몸에는 신이 깃들었다.

무속인도 아니고 일반인도 아닌 상태.

그러면서 그를 주인으로 인정한 신물인 무당 방울이 있고, 손에는 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수계가 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무속인의 힘을 주셨는데 정작 무속인으로 활동하기에는 준비되지 않은 게 많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일반인처럼 살기를 바라는 것 같지도 않으십니다."


강형석은 답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금경과 시선을 마주했다.

무속은 답을 준다.

혼란을 벗어난 한 줄기 길을 제시한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무속인을 찾고, 무속인은 그들을 위한 안내인이 되어준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이금경이 입꼬리를 끌어당겨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딱하구나.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 안개 속을 걷고 있는 것이."

"제가 답을 알고 있다고요?"

"이미 네 입으로 말하고 있지 않느냐."


이금경은 고요한 움직임으로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잔잔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말한 그대로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강형석은 눈을 깜빡이며 생각에 잠겼다.

정말 깊고 깊은 고민을 했고, 녹차가 식어 더 이상 수증기를 피워올리지 않을 때쯤 한 가닥 실마리를 잡았다.


"설마······."


강형석은 난처해 보이는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이금경이 고개를 끄덕여 뒷말을 재촉했다.

숨을 크게 들이쉰 강형석은 녹차를 마신 다음에 입을 열었다.


"제가 무당이 되는 걸 바라시지 않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때, 청금은 하마터면 입을 열 뻔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몸주신은 점지한 인간이 무당이 되기를 바란다.

무당이 되기를 거부하면 신병을 앓게 한다.

모진 고통과 심할 경우 소중한 인연을 잃기도 한다.

그렇게까지 무당으로 만들려는 것이 몸주신인데, 강형석의 몸주신은 그를 무당으로 만들려는 게 아니라고?

세상 모든 무당이 한 번쯤은 바랐을 일.

하지만 그런 몸주신은 청금이 아는한 없다.

그런 특혜를 받은 사람 역시 없다.

청금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이때, 이금경이 기특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렇다."


강형석과 청금 모두가 놀라 이금경을 바라봤다.

그러나 이금경은 여전히 평온함을 유지한 채로 강형석만을 응시했다.


"정확하게 짚었다. 네 몸주신께서는 네가 보편적인 무당이 되는 걸 바라시지 않으신다."

"하지만 선생님."

"네가 있을 곳은 당집이 아니란 소리다."


강형석이 얼굴을 굳혔으며 청금이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는 사이 이금경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시선은 강형석의 뒤.

그의 몸주신이 있을 곳.

그곳을 응시하던 이금경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네 몸주신께서는 네게 사람 속에 살기를 바라시는구나."

"다 그렇습니다. 안 그런 무당이 없습니다."

"여기가 네 옆집이더냐?"


툭 던져지듯 들어온 질문에 강형석은 말문이 막혀왔다. 이때 청금과 강형석은 비로소 말뜻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사람 속의 무당.

기존의 무당 보다 가까운 곳에서 사람을 돕는 존재.

수계의 가르침을 나침판 삼아 살아가는 자.

이금경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는 거였다.

답이 나왔으나 강형석은 개운한 표정이 아니었다.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왜 하필 그런 걸 제게 기대하시는 걸까요."


대체 나에게 무엇을 하시길래?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길 바라는 건가.

의문이 깊어지는 이때, 강형석은 갑자기 목덜미의 털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강한 기척이 뒤에서 느껴진다.

몸주신.

그가 그의 바로 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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