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9년 산 드래곤이 환생했다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뽀랑.
작품등록일 :
2024.09.14 04:02
최근연재일 :
2024.09.20 17:46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148
추천수 :
0
글자수 :
56,721

작성
24.09.14 04:02
조회
30
추천
0
글자
10쪽

프롤로그

DUMMY

 0화


 <프롤로그>




 검게 치솟은 불길.

 피에 뒤덮여 비명을 지르는 꽃.

 검은 불꽃들 사이사이에 남겨진 수많은 검흔(劍痕)들.


 불길 사이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크흐···”


 정복자(征服者) 알라니스.

 그가 쥔 은빛 장검의 매끈한 굴곡을 타고 선혈이 흘러내린다.


 모든 드래곤의 군주이자 생명체 위의 생명체.

 세계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골드 드래곤 시온.

 언제나 찬란한 금빛을 띠던 그의 비늘이 생기를 잃은 채 메말라 가고 있었다.


 죽음.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


 “···너는 대체.”


 알라니스의 어깨 너머로 쓰러진 그모스의 모습이 보인다.

 홀로 국가 하나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레드 드래곤 그모스.

 그는 날개와 다리가 잘려 나간 채 목숨을 잃었다.


 그 옆으로 가슴팍에 구멍이 뚫린 채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는.

 소드 마스터, 이반 레이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인간의 몸으로 8서클의 경지에 오른 대륙 최고의 대마법사 안나 스트라우스.

 저 멀리, 모든 마나를 소진하고 쇼크 상태에 빠진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대체···!”


 대륙을 지배하던 패자(覇者)들이 모두 목숨을 잃었다.


 좀처럼 숨을 쉬기 힘들다.

 그 이유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인간의 몸으로···. 그 기운은 대체···.”

 “하등 쓸모없는 질문이군.”


 고개를 들어 냉소를 머금고 있는 알라니스를 바라보았다.

 인간 따위가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어딘가 이질적이고 낯선 마나.


 알라니스 역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다.

 몸의 절반이 날아가고도 여유가 넘치는 그의 눈빛에서는 어떠한 적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세계의 흐름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너희가···. 그 위대한 변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제 곧 죽을 놈이···.”


 그 순간 알라니스의 눈빛이 시온에게 닿았다.

 광기에 휩싸인 눈동자.

 동시에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눈동자.


 그와 눈을 마주친 후에 그제야 시온은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껴진다.


 저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 ‘누군가’가.


 드래곤 로드나 소드 마스터 같은 속이 빈 수식언이 아닌.

 태초(太初)와 창조(創造).

 모든 것의 본질(本質)과 맞닿아 있는 이가.


 “그런가···.”


 시온은 깨달았다.

 애초에 그가 저항할 수 있는 물길이 아니었다.

 범람하는 거대한 흐름에 그는 그저 휩쓸려 떠내려갈 뿐이다.


 “다시··· 돌아오겠다···. 내게 주어진 숙명을 다하기 위해···.”


 잠시 비틀거리던 알라니스의 몸이 이내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것은 영원의 끝이자···. 또 다른 영원의 시작.”

 “···닥쳐라.”


 시온은 드래곤 하트에 남은 마나를 모조리 끌어올렸다.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

 이것은 죽기 전 그의 마지막 몸부림이자.

 범접할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무언의 외침이었다.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6서클 마법, 블러드 데토네이션(Blood Detonation).

 대상의 상처에 흐르고 있는 피를 폭발시키는 마법.


 원래라면, 언령(言令)만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지만.

 지금의 몸 상태로는 마법을 온전히 구현하기도 버거웠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검붉은 오망성이, 처절한 빛을 내뿜었다.


 콰앙!


 짧은 파공음.


 투두둑-


 인간의 살점과 피가 땅에 떨어지는 역겨운 소리가 들린다.


 알라니스는 죽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적막과 함께 그의 마음속에 공허함이 맴돌았다.


 “허망하군···.”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을까.


 눈이 감기고 자꾸만 졸음이 밀려왔다.


 9000년이 넘는 아득한 삶.


 길고 긴 시간 동안 그를 스쳐 지나간 인연들.

 자신의 주변에서 삶을 마감한 이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이제는, 그의 차례였다.


 **


 얼굴이 달아오른다.


 죽음?

 이게 바로 죽음일까?


 시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갓 태어난 해츨링(Hatchling) 시절에는,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드래곤의 수명은 평균적으로 1만년을 상회한다.

 영겁에 가까운 그 시간이 끝날 거라는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그렇게 오백 년을 살아 성룡이 되고 처음으로 인간 세상에서 유희를 즐겼을 때.

 고작 몇십년을 살아가는 빈약한 몸으로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미천한 생물들을 처음 접했을 때.

 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보았다.


 역시나, 크게 와닿지 않았다.

 전 세계에 그를 죽일 수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드래곤 하트에 무한한 마나를 담고, 웜(Wyrm)급 드래곤을 거쳐 에인션트(Ancient) 드래곤으로 거듭날 무렵.

 전대(前代) 드래곤 로드가 죽음을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


 - 이런 말이 있지. ‘죽음은 태어나기 이전의 나 자신이다.’

 - 그게 무슨 개소립니까?

 - ···그런 게 있어.


 개소리다.

 태어나기 이전의 나 자신?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린가?


 이토록 공허하고, 허망하고,


 ···고독한데.


 죽음은 죽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얼굴이 자꾸만 뜨거워졌다. 


 “···아, 뜨거워.”


 어라?


 “어라?”


 말이 나왔다.


 분명 말이 나오면 안 되는 상황인데.

 귓가에 또렷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기를 쓰며 뜬 눈으로,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었다.


 “···햇빛?”


 뜨겁다.

 눈이 부시다.


 그리고···

 피곤하다.


 여긴 어디지?

 죽은 게 아니었나?


 그가 눈을 뜬 곳은 자그마한 침대 위였다.


 “···꿈인가?”


 꿈이다.

 꿈이었다.


 너무나 생생한. 그리고 너무나 지독한.

 악몽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닥칠 위험에 대비하라는 신의 경고였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시온은 그의 둥지에서 따사로운 아침을 맞이했···


 콰앙!


 “야! 얼른 일어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주황머리를 한 앳된 소년이었다.


 “첫날부터 늦으면 교관들한테 찍혀, 인마!”


 시온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냐 네놈은?”


 여기가 어딘가?


 드래곤의 군주, 생명체 위의 생명체.

 불사(不死)의 몸으로 영겁의 시간을 살아가는···


 아, 물론 꿈에선 죽긴 했지만.


 아무튼 위대하고 전지전능한 골드 드래곤의 레어 아니던가?

 감히 인간 따위가 문을 박차고 들어올 곳이 아니란···


 빠악!


 “아오! 빨리 준비하라고. 나까지 찍히기 싫으니까.”


 뒤통수에 얼얼한 감각이 느껴졌다.

 꿈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저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에 대한 분노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오늘은 내 기분이 좋으니 한번 봐주마. 당장 무릎을 꿇고···”


 빠아악!


 “아, 꺼져! 나 먼저 간다? 오든 말든 알아서 해!”


 ···아프다.

 아무리 폴리모프한 상태라고 해도 고작 인간의 주먹질에 통증을 느낄 리가.


 “···그런가. 범인(凡人)은 아니란 말이군. 좋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위대한 드래곤에게 두 번의 자비란 없다.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미쳐 날뛰는 저 벌레 같은 놈에겐, 어디보자···


 옳지. 이게 좋겠군.


 에인션트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에 축적 된 무한에 가까운 마나.

 그중 일부를 끌어올렸다.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용언(龍言).

 마법에 통달한 드래곤들은 단순히 마법명을 영창 하는 것만으로도 5서클 마법 정도는 무리 없이 시전할 수 있다.


 이제 곧, 저놈은 천지를 가르는 번개를 맞고···


 어라?


 “···꿈꿨냐?”


 시온의 뒤통수를 두 번이나 가격한 소년은 여전히 한심하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 돼.”

 “뭐?”


 마법이 발동되지 않는다.

 아니, 그건 둘째치고.

 마나가 전혀 모이지 않는다.


 지금쯤 저 인간은 몸이 갈기갈기 찢긴 채 절명했어야 하는데.

 어리석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아오, 씨. 빨리 준비해서 대강당으로 와! 나 진짜 먼저 간다!”


 소년이 뒤돌아 방을 나갔지만 시온은 그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일단 현신(現身)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비좁은 공간에서 폴리모프를 해제한다면 건물이 박살이 날테지만,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폴리모프 해제.”


 하지만 역시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대체···.”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마법을 시전 해보았다.


 섬 하나를 궤멸시킬 정도의 위력을 가진 9서클 마법 메테오 스트라이크(Meteor Strike)부터, 어제 마법을 배운 초짜도 구현할 수 있는 1서클 매직 애로우(Magic Arrow)까지.


 “···안 돼.”


 하나도.

 단 하나도 발동 되는 게 없었다.


 “이런 시발!”


 명확해졌다.

 그의 몸에는 드래곤 하트는 물론, 한 줌의 마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바아아아알!”


 위대한 드래곤 로드이자, 신의 대리자.

 9서클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초월자, 골드 드래곤 시온.


 그는 인간이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또다른 인간으로 환생했다.


 그것도 마나를 다룰 수 없는, 순정(純正) 상태의 인간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9999년 산 드래곤이 환생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 10.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죠. (1) NEW 6시간 전 3 0 11쪽
10 머리를 좀 다쳐서... (5) 24.09.19 5 0 11쪽
9 머리를 좀 다쳐서... (4) 24.09.18 8 0 12쪽
8 머리를 좀 다쳐서... (3) 24.09.17 7 0 13쪽
7 머리를 좀 다쳐서... (2) 24.09.17 11 0 12쪽
6 머리를 좀 다쳐서... (1) 24.09.16 16 0 11쪽
5 이게 어떻게 된 거지? (4) 24.09.15 13 0 11쪽
4 이게 어떻게 된 거지? (3) 24.09.14 16 0 12쪽
3 이게 어떻게 된 거지? (2) 24.09.14 19 0 12쪽
2 이게 어떻게 된 거지? (1) 24.09.14 20 0 12쪽
» 프롤로그 24.09.14 31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