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끄래기산 이야기-연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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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거사
작품등록일 :
2024.09.17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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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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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사라져간 것들을 위하여(1)

DUMMY

까끄래기산은 사방 수백 리에 달하는 광대한 산이다.

봉우리는 높고 험준했으며,

골짜기는 어두웠고, 숲은 깊고 푸르렀다.

이 산엔 많은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야생동물들을 잡기 위해

많은 사냥꾼들이 늘 그들과 함께 호흡하였다.

까끄래기산은 태곳적부터의 신화와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영원한 꿈이요, 동경이요, 투쟁의 장이었다.



1



해미는 까끄래기산 일대의 여러 마을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소읍이다.

그곳의 거리는 번화한 도시처럼 분망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단조로운 생활로 무료함에 젖어 있는 볼품없는 산골 촌락도 아니었다.


해미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에 철로가 놓이고 간이역이 세워진 것을 지금까지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노인네들은 오 년 전 하루 두 차례씩 큰 도시와 연결되는 버스가 들어오면서부터는,


“해미도 이제 눈부신 발전을 했어.”


하며 경탄의 눈길로 먼지를 일으키며 산굽이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버스의 꽁무니를 바라다보곤 하였다.




2



그날 해미의 거리는 오전 내내 비 같은 안개가 흐르고 있었다. 급기야 정오가 되면서부터는 굵은 빗방울로 변하기 시작했다.


점심때가 훨씬 지났을 때였다.

검은 콧수염에 푸른 빛 나는 빵떡모자를 눌러쓴 초로의 사내가 우산도 없이 놀거리 모퉁이에 있는 한 선술집 문을 밀치고 거리로 나섰다.

포장이 되지 않은 거리는 반 진흙투성이로 곳곳에 빗물이 고여 있었다.

상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첫눈에 선술집 문을 나선 초로의 사내가 정향 선생임을 알아보았다.

콧수염과 빵떡모자는, 인구가 몇 안 되는 이곳 해미 마을에서 정향 선생만의 전용물이었기 때문이었다.


***


정향 선생은 해미 사람들의 입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는 이곳 유일의 소설가였다.

키가 크고 마른 데다 어깨까지 활처럼 휘어 구부정했는데, 그러한 외모 때문에 그는 전혀 예술가처럼 보이질 않았다.

당연히 존경 또한 받지 못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로부터는 가끔 방문을 받고 긴 시간 동안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정향 선생의 팬들인데, 그들의 특징이라면 대부분 도시물을 조금씩 먹은, 스스로 해미에서 문화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거나, 혹은 큰 도시로 진출하여 출세하려는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라는 점이었다.


이것이 또한 정향 선생이 보수적 경향이 짙은 해미 사람들로부터 구설수에 오르고, 때로 소동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정향 선생과 긴 대화를 나누고 돌아간 젊은이들이 이따금씩 부모들에게 이곳 해미를 떠나 도시로 나가겠다고 떼를 쓰는 일이 벌어지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정향 선생은 큰 곤욕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집 부모들이 정향 선생 집으로 몰려와, 멀쩡한 내 아들 가슴 속에 바람을 불어넣은 게 바로 당신이지! 혹은, 당신 그 잘난 도시물 좀 먹었다고 유세하는 거야! 하며 온갖 모욕과 독설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내용을 알고 보면 이것은 정향 선생에 대한 커다란 오해였다.

정향 선생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해미를 사랑하고 예찬하며, 아름다운 고장으로 가꿔나가려고 애쓰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결코 이곳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히려 언제까지고 이곳에 남아 해미를 지키고, 해미를 가꾸는 일꾼으로서 성장하여 줄 것을 바라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젊은이들을 설득시켜 돌려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정향 선생은 말솜씨가 뛰어나지 못했다.


“사랑하는 해미의 젊은이들이여! 쉽게 말해서··· 도시의 생활은···”


마음이 앞서다 보니 말이 많아지고, 의도한 것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도시 생활은 한마디로 화려함이라 할 수 있다네. 사치와 향락과 낭만과 자유분방함··· 거기에서는 원하는 것은 모두 구할 수 있지. 아니, 그게 아니네. 거짓과 허영과 껍데기뿐이라네. 에, 그러니까······”


이리하여 마침내 젊은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그들의 머릿속에는 도시생활의 화려함과 분방함만이 더욱 선명하게 각인될 뿐이었다.


이들 외에 정향 선생과 교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로는 까끄래기산 일대에서 활동하는 사냥꾼들이 있었다.

요즘은 잦지 않지만 수년 전까지만 해도 정향 선생은 사냥을 즐겨했고, 그 솜씨 또한 여느 전문사냥꾼 못지않게 뛰어났다.

그는 사냥철이 되면 어김없이 까끄래기산으로 들어가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많은 사냥꾼들을 사귀었다.


“반갑소, 나 정향이라는 사람이오. 해미의 삼거리숲 근처에 살지요. 당신은···? 아, 그렇소? 난 전문사냥꾼은 아니오. 내 직업은 작가요. 소설가지요. 사냥이 끝나면 한 번 놀러 오시오. 당신 얘기를 한 번 소설로 써보고 싶군요. 해미의 삼거리숲이오. 해미 알지요? 해미에 와서 정향 선생을 찾으면 친절히 가르쳐줄 게요.”


정향 선생은 해미 사람들에게와는 달리 산에서 사귄 사냥꾼들로부터 오히려 많은 존경과 호감을 받고 있었다.


이따금씩 정향 선생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사냥꾼들이 봄이나 여름이면 삼거리숲에 있는 정향 선생의 집을 방문하곤 했는데, 나도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러한 사냥꾼들의 대부분은 정향 선생의 청대로 자신들의 내력이라든가 까끄래기산에서 겪은 여러 가지 신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향 선생이 대부분의 해미 사람들로부터 그다지 호감과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나는 정향 선생의 껑충하니 마른, 볼품없는 외모를 든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이유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정향 선생을 소개하면서 해미 유일의 소설가라고 했지만, 사실 해미 사람들은 그가 쓴 작품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해미에 서점이 없어서도, 책 사서 읽는 것을 귀찮아해서도 아니었다. 정향 선생이 쓴 소설은 한 번도 잡지나 신문 등에 발표된 적이 없었다.


쉽게 말해서 정향 선생은 해미 사람들의 눈에 말로만 소설을 쓰는 작가, 혹은 콧수염과 빵떡모자 따위의 별난 외양으로 예술가인 체하는 허풍선이로 비쳤을 뿐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쓸 작품 역시 까끄래기산을 소재로 한 것인데, 다른 소설가들이 쓰는 방법과는 전혀 다른 아주 새로운 기법으로···”


처음 서너 번은 이런 진지하고 열에 들뜬 웅변에 솔깃해져서 마음으로부터 존경과 외경심이 일지 않은 바 아니었으나, 삼 년이 지나고 오 년이 지나 십여 년이 되도록 소설 한 편 쓴 것을 볼 수 없게 되자 자연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가벼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가 스스로 작가라고 하니까 작가라고는 불러주지만, 속으로는 제멋에 사는 떠버리꾼 정도로밖에 여기지를 않는 것이었다.


정향 선생 역시 자신이 말로만 소설가입네, 하고 실제로는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함으로써 해미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점이 정향 선생의 가장 큰 고통이기도 했다.


정향 선생은, 해미 사람들의 추측대로 겉멋이 들어, 혹은 해미에서 작가 선생으로 존경을 받기 위해 일부러 작가연 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작가라고 생각했고, 또 온 열정을 쏟아 소설을 쓰려고 애를 썼다.

책상 앞에 앉아 소설을 구상하는 시간 외에 거리를 산책하거나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예술적 영감이 떠오르면 즉시 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꺼내 메모를 할 만큼 창작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바로 이러한 정향 선생의 행동들이 해미 사람들에게는


“공연히 작가인 체하는 꼴이란···”


하고 눈꼴시게 비쳤지만, 정향 선생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리라.

그의 소설에 대한 몰두와 열정이 결코 겉모습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남녀의 그것보다도 더 뜨겁고 깊고 순수하다는 것을.


다만 그가 고통을 받는 것은 도무지 소설을 완성시킬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항상 시작은 좋았다.

그러나 중간쯤 넘어서면서부터 머릿속에 의심이 일며 그때까지 써온 모든 것들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튀듯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던 것들이 한순간에 이르러서는,


‘어찌 이리도 진부하고 평범한가. 도대체 여기에 무슨 감동이 있단 말인가!’


하는 내면의 음성에 더 이상 소설을 진척시켜 나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정향 선생은 열아홉에 작가의 길을 가리라 뜻을 둔 이래 오십대 중반이 넘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소설쓰기를 시도해왔다.


그러나 그가 소설을 완성시켜 잡지에 발표한 것은 고작 세 편에 불과했다.

그것도 도시에서 생활할 때인 이십대 초반에 몇몇 잡지 편집자들과 어울려 다닐 때의 일이었고, 그들과 논쟁을 벌여 다툰 이후로 오늘에까지 그는 단 한 편의 소설을 쓰지도, 발표하지도 못하였다.


그 까닭은 앞서 말한 대로 소설쓰기를 게을리해서가 아니었다.

정향 선생에 있어 소설은 너무나 거룩한 것이었고, 숭고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 모두에게 감동을 주고, 세상 사람 모두를 구원할 정도로 진실해야 했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으로, 절대적인 깨끗함으로 혼탁하게 물든 이 세상을 맑게 정화해야 했다. 이런 소설만이 참다운 소설이었다.


정향 선생은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남들이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절대적인 힘을 지닌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런 소설이 써지질 않는 것이었다.

그것이 정향 선생에게는 가장 이겨내기 힘든 고통이었다.

아니, 진짜로 이겨내기 힘든 고통은, 자신에게 그러한 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러한 소설관을 계속 고집함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위대한 작가로 승화시키려 하는 허황한 열정과의 싸움이었다.


바로 이러한 것 때문에 정향 선생은 해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작가임을 끊임없이 내세우면서, 머릿속에 구상한 소설의 내용을 저도 모르게 떠벌려대는 괴상한 버릇을 지니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정향 선생은 이러한 내면의 갈등과 현실과의 괴리감 속에 해미에 파묻혀 나름대로 소설쓰기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날 궂은 날씨 탓인지 아니면 평소보다 지나치게 마신 낮술 때문인지, 마침내 그는 지금까지 무수하게 겪었을 고통과 굴레에서 벗어나는, 사건이라면 사건이랄 수 있는, 하나의 결단을 내렸다.


더욱이 그것은 아주 순간적이면서도 단호한 결단이어서 정향 선생을 남보다 조금 깊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뜻밖이었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정향 선생은 오랜 갈등과 고통에서 헤어나 드디어 한 편의 장편소설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그것도 단 나흘 만에. 다음은 그 경위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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