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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ifle
작품등록일 :
2016.03.19 09:17
최근연재일 :
2019.04.04 19:57
연재수 :
2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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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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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
글자수 :
1,493,079

작성
16.06.04 09:45
조회
997
추천
13
글자
11쪽

37화-마지막 휴가(1)

DUMMY

왕궁으로 걸음을 옮기던 하리드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수없이 빛나는 별. 그것을 담은 검푸른 하늘. 어째서인지 그의 눈동자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산.”


그의 부름에 어둠이 출렁이는 듯 하더니 곧 하나의 인영을 토해내었다. 온몸을 검은 천으로 감싸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조차 불분명한 사람.


“그가 있으니 이리안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겠지?”


“······”


그에게서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도 대답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는 확실한 사실 이외에는 입을 열지 않으니까.


“그는······ 뭐랄까. 무척이나 부러운 사람이더군.”


“······”


“나도 그처럼 거침없이 그런 행동과 언사를 하고 싶은데······”


그의 얼굴에 균열이 생기며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사람들 앞에서 보이지 않는 그의 내면. 오직 디산 앞에서만 보이는 진실한 감정의 표현이다.


“글쎄······ 무리겠지. 이 땅 위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너무나도 잔인하고 이기적이니까.”


“······”


“그래도 별 수 있나. 내 할 일을 해야지. 그래도 오늘 큰 숙제를 풀었으니까.”


그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빛을 머금었다. 후련함을 담은 밝은 미소.


“공주님은 무사하실 겁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하리드의 눈이 잠시 커졌지만 이내 평소의 미소를 머금은 특유의 눈으로 돌아왔다. 진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역시 그렇지?”


별이 무척이나 밝게 빛났다.


* * *


16. 마지막 휴가


쾅! 쿠콰쾅!


“으아아! 도망쳐!”


“시약 잘못 넣은 거 어떤 놈이야!”


“으아! 제기랄!”


유구한 역사와 명성을 자랑하는 아드리아 아카데미. 아카데미 내에서도 가장 높은 명성을 지닌 마법학부는 오늘도 상큼한 폭발음과 함께 일상을 시작했다.


“콜록, 콜록. 괜찮냐?”


“어이, 죽은 사람 손 들어봐.”


“정신 잃은 사람이랑 다친 사람은 손들어봐.”


“아아아, 새로 산 옷인데.”


가지 각색의 신음과 헛소리들에 여기저기 누더기가 되어 쓰러져 있는 학생들. 대부분의 학생들이 쓰러져 있는 가운데에서도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휘유, 이것 참. 주의하시라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이렇게 되네요.”


참상이라면 참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그 풍경을 보며 아인즈는 한가로이 중얼거렸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모두가 좋아하고 모두가 싫어하는 실습 시간이 되면 항상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아무리 주의를 주고 감독을 해도 의미가 없었다. 심지어는 능력을 사용했는데도 통제가 불가능 했으니까.


‘어쩌면 하늘의 뜻일지도.’


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는 손뼉을 쳐 학생들의 주의를 환기 시켰다.


“자자, 여러분. 자리를 정리 하시죠. 오늘도 폭발이 일어났으니 실습은 여기에서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지시에 학생들은 제각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혹은 불평을 늘어놓으며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아아, 겨우 끝났다.”


“으으으······ 마가 낀 건가? 왜 이리 사고가 많이 나.”


“크으, 어떤 놈이 배합을 잘못 한 거야.”


입으로는 여러 말들을 내뱉지만 이미 익숙한 듯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기구를 정리하는 사람, 시약을 정리하는 사람, 이곳 운동장을 복구하는 사람까지. 제각기 일을 배분해 처리하기 시작했다.


“헤헤, 오라버니 저는 안 해도 돼죠?”


애교를 부리며 물어오는 이리안에게 아인즈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주었다. 승낙의 뜻이라고 생각한 걸까. 환하게 밝아지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그의 입술이 열렸다.


“가서 정리하세요.”


“네에······”


이미 여러 번 있었던 일인지라 그 외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그저 오라비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일 뿐이니까.


“에게, 그거 그렇게 하면 안되지!”


금세 학생들 사이에 스며들어서는 작업을 이끄는 그녀를 보며 아인즈에게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확실히······ 저런게 태생적인 왕족이라는 거겠지.”


그녀에게서는 카리스마가 흐른다. 흔히 생각하는 위엄서린 카리스마가 아닌 좀더 친근하고 좀더 아래쪽의, 낮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범할수도 없는 미묘한 선이 존재했다.

그 탓에 사람들은 그녀에게 친근함을 느끼고 은연중에 그녀의 뜻을 따르지만 선을 넘지는 않는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성군의 자질이네.”


태평성대에 난 왕에게 있다면 전에 없을 중요한 재능. 하지만 그녀에게 그 재능은 그저 골목대장의 지도력 정도의 역할밖에 못해줄 터였다.

전날 만났던 이 나라의 세자는 너무나도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뭐, 상관 없나.”


하지만 결국 자신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그는 정리를 마무리한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자, 오늘은 공지가 있습니다.”


그의 그 한마디에 학생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그가 공지를 했던 것이라고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과제들을 내어 줄 때 뿐이었으니까.

예컨데

‘4000년대의 마법 추세와 유행’ 이라던가

‘2000년대 가장 유명했던 마도서와 그와 관련된 사건에 관한 고찰 보고서’ 라던가

‘마법과 검. 전혀 다른 두 부류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새로운 시선의 토론’ 같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학생 수준에서 해결이 가능한 곤란한 주제들 뿐이었다. 그 덕에 도서관 고서 보관실의 사서노인이 간만에 적적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는 후문이 있다.

학생들의 잔뜩 경직된 표정을 본 그의 얼굴에 장난기가 떠올랐다. 물론 언제나 그려진 미소에 의해 가려져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흐음, 다들 마음에 드시지 않으신가 보군요? 그럼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할까요?”


‘네!’


‘제발 그렇게 해 주세요!’


하지만 절박한 그들의 소망은 그저 입안에서 안타깝게 메아리 칠 뿐.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불과 한달여 전 정말 공지를 띄우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 마법학과는 아카데미의 학생들 모두가 기습적으로 생긴 휴일을 만끽하러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강의실에서 아인즈의 수준 높은 강의를 들어야만 했다.

그날의 악몽이 떠오른 것일까. 몸을 부르르 떤 학과 대표가 정말 싫어하는 기색으로 앞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은 한순간에 십년은 늙어버릴 듯한 모양을 했다.


‘으으, 내가 하고 싶어서 하게 된 것도 아닌데!’


정말 억울했다. 운명의 그날. 개학 첫날 길을 잃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터였다.


‘으으으! 다들 없는 사람을 지목할 건 또 뭐냐고! 결국 귀찮은 일은 몽땅 내 차지잖아!’


불과 10여분. 그 사이에 자신의 아름다운 아카데미 생활은 언제나 총대를 메고 있어야 하는 선봉의 슬픈 운명으로 바뀌고 말았다. 오늘, 지금, 이 순간 처럼.


‘으으으.’


“저기, 그래도 공지는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자신의 얼굴 근육이 경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입가를 덜덜 떨고 있는 그를 보며 아인즈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려 상당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아아, 크흠. 그렇죠? 음······ 보자. 아, 그렇네요.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는 그를 보며 모두가 숨을 삼켰다. 도대체 무슨 과제를 내 주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거기에 얼마나 상세한 주제이길래 그걸 기억해 내기 위해 저 괴물 같은 교수가 잠시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모두의 우려를 한 몸에 받던 아인즈의 입이 열리고 그의 공지를 들은 학생들은 모두 경직되고 말았다.


“어라? 왜들 그러시죠? 뭔가 잘못된 거라도 있나요? 분명 다음주에 해안지방으로 일주일간 실습을 나간다고 했는데······.”


“흐으으읍!”


그 순간 학과대표의 얼굴이 숨이 넘어갈 것처럼 변하더니 곧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우와아아아아! 실습이다!”


“으아아아! 해방이다! 해방!”


“휴가! 휴가! 휴가! 휴가!”


마치 광신도 집단과 같은 기세에 아인즈조차 움찔했다.


“하, 하, 하······”


스스로가 그렇게 몰아 붙였으니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다만 왠지 지금 추가적인 실습 요소를 공지하면 업이 무한에 가깝게 쌓일 것 같은 불안을 느낄 따름이다.


‘음, 가서 기사와 마법사, 정령사, 주술사의 마나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토론이 계획되어 있는데······’


지금 말하면 저 환호가 절망과 비난이 되어 자신을 강타할 것이 분명했다.


‘뭐, 한번 정도는 넘어갈까.’


* * *


“나도 갈래!”


“안됩니다..”


“갈 거야!”


“저, 저기 이나니스······!”


“몰라, 몰라! 갈 거야! 갈 거라고오!”


“스, 스승님······”


수도에 위치한 아인즈의 저택이 소란스러워진 것은 한시간쯤 전의 일이다. 아인즈는 일주일간 쓰일 짐을 챙기러 저택에 들렀고, 그 소식을 들은 이나니스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도 가고 싶다고! 언제까지 이 좁아터진 집 안에만 있어야 하냐고! 나도 바다 보고 싶다고!”


“안됩니다.”


“이, 이나니스 진정, 진정······”


“몰라! 몰라! 갈 거야!”


계속해서 반복된 상황에 아인즈의 얼굴에 금이 갔다.

그녀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 오랜 시간을 그저 존재만 할 뿐이었으니 갑갑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은 공무로 가는 겁니다. 제가 사사로이 처리해도 좋은 그런 일이 아니에요.”


“몰라! 갈거라고! 가 거야!”


“이나니스······ 이제 그만······”


이건 무슨 코흘리개 꼬마도 아니고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는 이나니스와 그런 그녀를 달래려 진땀을 빼는 아니마의 모습에 제법 불쾌해지고 있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안 되는건 안 되는 겁니다. 저는 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만.”


쾅.

쌩하니 나가버리는 그의 뒷모습에 잡을 생각조차 못한 채 이나니스는 그저 멍하니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더니 지금까지는 연기였다는 듯 옷을 털었다.


“에휴, 쯧. 역시 안 되네.”


“에? 에? 이나니스?”


상황이 그렇게 되자 당황한 것은 아니마다. 방금 전까지의 모습은 뭐란 말인가.


“뭐야, 설마 내가 진심으로 그렇게 행동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이가 몇갠데, 라며 중울거리던 그녀가 피식, 웃으며 아니마의 볼을 잡았다.


“으이구, 어쩌려고 너는 그렇게 순진하냐.”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쉰 그녀는 손을 머리 뒤로 가져가고는 방안을 서성였다.


“아, 그나저나 나도 가고 싶은데······”


그러던 그녀의 시야에 복도를 지나쳐가는 시리아의 뒷모습이 보여졌다. 그 순간 기가 막힌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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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8화-마지막 휴가(2) 16.06.04 1,081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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