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남자(1)
서장.
2005년 3월 13일 월요일 오전 대한은행 여의도 지점 지점장실,
지점장 정창수와 대한은행에서 지난 4년간 일한 내가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나 내용은 그렇게 유쾌한 것이 아니라 정리 해고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은행 때려치우라는 이 말이죠?”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지점에서도 한 명을 정리 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는 바람에···,”
“그래서 지금 나보고 자발적으로 때려치우라는 말이잖아. 안 그러면 자르겠다. 뭐 이런 뜻이고 말이야. 안 그래?”
“야! 강백호! 너 아무리 그래도 말이 좀 심하다.”
“이 개새끼야! 내 말이 뭐가 어때서. 그러니 아가리 닥치고, 내 말 똑똑히 들으라. 안 그러면 진짜 죽는 수가 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선배가 되는 그러나 전혀 존경할 수 없는 아니 존경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지점장 정창수의 말에 욕이 바가지로 튀어나왔으나 일단 그쯤에서 그치고, 왜 내가 그 대상이 되었는지 자세하게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창수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막히고 더 기가 막혔다.
“그래서 직원들이 투표했고, 내가 선정됐다는 거야?”
“그래, 그리고 직원들을 원망하기 이전에 네가 지금까지 직원들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먼저 생각해봐라!”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떻게 해. 자기밖에 모르는 너 같은 개새끼에게는 그렇게 살지 말고,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너 같은 개새끼에게도 그렇게 살지 말고, 오직 출세에만 눈이 먼 너 같은 개새끼에게는 먼저 인간이 되라고 했지.”
“야! 진짜 말 그따위로 할래?”
“이 마당에 무슨 좋은 말. 아니, 너 같은 개새끼에게는 진짜 좋은 말을 하고 싶어도 하기가 싫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 네가 지금까지 은행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먼저 생각해 봐라. 상사에게는 간도 쓸개도 빼줄 것 같이 아부나 하고, 부하 직원들에게는 잡아먹을 듯이 지랄밖에 더했어? 그러니 지금 이 지점에는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연놈, 의리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연놈, 사람 냄새라고는 전혀 나지 않는 연놈뿐이지. 안 그래?”
정말 지랄 맞은 지점이었다.
은행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시기에도 정과 의리는 있었으나 2005년이 되니 이제 정과 의리는 사라지고 오직 경쟁만이 은행을 지배했다.
그러니 동료애라고 있겠는가.
오직 자기만 잘되고, 자기만 안 잘리면 되고, 자기만 아니면 되는 그런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인간이란 생각이 자꾸만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말을 보탰다.
“직원들이 투표했다지만, 내가 보기에는 네가 암묵적으로 강요했겠지. 왜냐하면, 너에게 아부하지 않는 새끼는 나밖에 없고, 싫은 소리 하는 새끼도 나밖에 없고, 네 잘 못을 지적하는 새끼도 나밖에 없으니까.”
“······,”
“말 못하는 것을 보니 딱 그러네. 이 더러운 개새끼야. 그러고 이 시간부터 너는 선배도 뭐도 아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나에게 좋은 소리 들을 생각 같은 것도 하지 마라. 또 나도 자존심이 있는 놈이라서 사정은 안 하겠다. 아니, 사정해도 내가 잘리는 것은 변함없을 것이니 아예 사정할 생각도 없다. 그러고 안 그래도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오히려 잘됐다. 이 개새끼야.”
이 말을 끝으로 지점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아직 업무 시간이었지만,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정해도 사정을 안 해도 이제 정리 해고의 절차만 남은 것이다.
그것도 저성과자로 말이다.
어떻든 그렇게 은행을 나가서 향한 곳은 여의도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마포구 공덕동의 어느 주택가였다.
‘정아, 잘 지내니? 나도 이제 은행을 그만두게 생겼어.’
- 작가의말
미래를 보는 남자 시작합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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