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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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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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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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0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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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매칭 (3)

DUMMY

기숙사로 돌아갔을 때, 나는 내 방 바로 앞에서 소렌과 마주쳤다. 소렌은 먼저 돌아와서 샤워라도 한 건지 촉촉한 머리카락에서는 미미하게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헐렁한 하얀 셔츠는 아직 빳빳한 기운이 보였다. 내 방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소렌을 향해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무슨 볼일 있어?.”

소렌이 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서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훈련을 시작한 이후로는 정말로 오랜만에 마주치는 군. 그런 의미에서 인사라도 해 주려는데 채 붙잡을 틈도 없이 소렌은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나한테 진 게 정말로 단단히 맺힌 건가? 제발 아니기를 빌지. 소렌이 아니면 하이스쿨에 별 의미도 없단 말이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 방으로 돌아가, 욕실 옆에 달린 물을 데우는 버튼을 누르고 침대에 누웠다. 무림에도 이런 게 있었다면 좋았을 걸. 나는 무림의 수준이 낮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마법이 응용된 이런 것들을 볼 때마다 갈수록 무림이 어떤 면에서는 조금 떨어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물이 데워질 때까지 얌전히 쉬고 있으려니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걸쇠를 풀고 문을 여니 그곳에는 제대로 옷을 갖춰 입은 소렌이 서 있었다. 결국 나한테 볼일이 있던 거였는데 왜 나를 피했던 걸까?

“할 말이 있는데 들어가도 될까?”

“들어와.”

다행히도 옷을 벗기 전이라 나는 별다른 곤란 없이 문을 완전히 열어주었다. 소렌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내 방을 슥 훑어보고는 책상 의자를 끌어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소렌은 어차피 같은 모양의 방을 쓰면서 뭐가 그리고 신기한지 방 곳곳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처음으로 온 손님인데 뭐라도 내주는 것이 좋겠군. 간식거리라도 찾으려고 연신 서랍을 뒤적였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간식을 찾을 시간을 벌기 위해 지나가는 말투로 소렌에게 물었다.

“훈련은 어때? 여자들은 상대할만해?”

“전체적으로 많이 부족해.”

그렇게 말하는 소렌의 표정은 나와 마찬가지로 약간의 권태가 엿보였다. 나나 소렌이나 똑같은 심정이라는 데서 조금 안도하며 나는 두 번째 서랍을 뒤적였다. 그러나 결국 과자부스러기 하나 나오지 않아서 나는 그냥 침상에 걸터앉아서 그녀의 용무를 물었다.

“그런데 도군, 혹시 내일 다른 예정이 있나?”

“매칭을 대비한 훈련을 하겠지.”

“내일이 로베른 건국제가 시작되는 날이라 하이스쿨도 그날은 완전히 쉬어.”

이른바 휴일이군. 물론 나는 쉴 생각이 없다. 모자란 만큼 더욱 자신을 몰아붙일 생각이었으니. 하지만 재미없는 대련을 하면서 조금 지쳐버린 걸까? 휴일이라는 말에 조금 마음이 동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그냥 숙소에서 쉬려고 했는데.”

소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일자로 다물었던 입을 우물거리다 천천히 입을 연다.

“그럼 도군. 내일 우리 집에 와.”

“너희 집이라면 옆방이잖아. 새삼스럽게 미리 말하지 않아도 되잖아.”

“내 방이 아니라 폰테일 저택. 아버지에게 무심코 네 이야기를 했더니 널 꼭 불러오라고 하셔서.”

전에도 이런 질문을 해서 거절하지 않았던가? 소렌이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이번에는 어째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반드시 나를 폰테일 저택으로 데려가겠다는 각오마저도 보였다. 그것이 너무 부담스러워 나는 소렌에게 내일 아침에 대답을 들려주겠다고 말하고 일단 그녀를 내보냈다.


문을 닫고 나니 그제야 의문이 몰려온다. 대체 왜 폰테일 공작은 일면식도 없는 나를 찾는 것일까? 아무리 고민해도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몸을 씻으면서도 이불에 들어가고 나서도 계속 생각해 보았지만 마땅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아무 이유도 없는 것 같지만 만약 말도 안 되는 이유가 있다면 어떨까?”

나는 혼돈의 사도다. 하이스쿨에 들어온 것도 혼돈의 사도가 본래 갈 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폰테일 공작과의 만남도 같은 맥락에 있지 않을까? 마치 내가 하이스쿨에 장학생으로 들어와 승승장구하는 기적 같은 상황처럼 나는 혼돈의 사도로서 폰테일 공작과 조우해야 할지도 모른다.

“젊은 나이에 고민이 많군.”

갑자기 낯선, 하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검은 먹물을 진득하게 만들어 쳐 바른 것 같은 목소리. 내가 평생 잊을 수 있을지 의문인 그 목소리다. 나를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한 혼돈이 눈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는 정말 빛살 같은 속도로 정신을 다잡으며 혼돈에게 적개심을 표출했다.

“혼돈, 네가 여긴 어떻게...”

“네게 심어둔 기운은 내 일부. 그것을 품고 사는 한 결코 너는 내게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나는 네가 그때 본 내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 일부에서 파생된 존재일 뿐.”

젠장,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언제 잠에 들었는지 나는 뿌연 풍경의 공간에서 혼돈의 기운에 결박되어 있었다. 젠장, 일단 이걸 풀어버려야 한다. 천의결의 구결을 끌어올리려 하자 혼돈이 키득거리면서 내 머리를 통째로 뽑아버린다.

그러자 시계(視界)가 일그러지며 천의결의 구결이 조금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반면 고통은 조금도 없었다. 꿈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텐데. 나는 의식도 유지하고 있었고 심지어 숨도 쉬고 있었다. 혼돈은 내 머리통을 공중에 띄워놓고 둥실둥실 뜬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조금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지.”

“이건 안 이상한 짓인가?”

“네가 자초한 결과가 아닌가. 그나저나 고민하기 힘들지 않나?”

“신경 끄고 내버려 두시지. 오래간만에 개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서져 잠이 오는걸.”

“두려움을 분노로 승화하더라도 나는 네가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는 명확하지.”

빌어먹을. 아직도 나는 혼돈을 두려워하고 있다. 영혼을 범하던 혼돈의 격류가 주던 억겁의 고통을 꺼리는 것이리라.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천의결을 운용하려 했다. 그때 혼돈이 느닷없이 팔을 뻗어 내 머리를 뽑아내서 종잇장처럼 구겨버린다. 그 탓에 시야가 턱없이 좁아진 가운데 혼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쓸데없는 짓을 삼가라. 멜븐의 육체를 입었다고 내게 너를 모를 것 같더냐 도군?”

내가 혼돈의 영향에서 약간이나마 벗어났다는 걸 알고 있었군. 내가 멜븐이 아니라는 걸 눈치 챘다면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부터 난다. 여기서 내 새로운 인생이 끝나는 건가? 하지만 혼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머리를 다시 원래 자리에 꽂아주고 미소까지 지은 채 친절을 가장하기 시작했다.

“너무 과민반응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영혼과 육체가 부합하지 않는 부조화야 말로 혼돈이기에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런 네가 이 세상에서 발버둥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은 혼란스러워지고 있지.”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군. 왜 이제 와서 꿈에 나타난 거냐?”

“네가 무의식적으로 나를 부른 탓에 나타난 것이다. 굳이 탓하고 싶으면 미욱한 네 정신을 먼저 탓해야겠지.”

결국 내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탓에 혼돈이 나타난 거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배알이 뒤틀리는 것 같다. 이제는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막상 꼴 보기 싫은 놈을 다시 마주하니 이성이 마비되는 것 같다.

“날 완전히 억누르기 전에 결론만 말하지. 폰테일 공작을 만날 생각을 접어라. 그건 혼돈의 사도가 갈 길이 아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서로 피곤해질 뿐이다.”

“널 피곤하게 한다면 내 피곤함 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해주지.”

“쓸데없는 고집이군. 인간이 혼돈을 거스르려 하는 것이냐?”

더 이상 이야기할 가치가 없다. 나는 천의결의 구결을 외웠고 그러자 혼돈의 결박이 풀리며 혼돈의 모습은 흐르는 강물에 떨어트린 먹물처럼 서서히 흩어지며 흐릿해져갔다.

“나를 외면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명심해라. 절대 폰테일 공작을 만나지 마라. 그건 네 운명이 아니다.”

“그럼 꼭 만나야겠군.”

“정 원한다면 하는 수 없지. 하지만 그게 내가 의도한 바라면 어찌 할 생각이지? 폰테일 공작을 만나게 하는 게 내 목적이라면.”

개자식. 날 가자고 놀 작정이군. 혼돈은 안개처럼 흐려진 주제에 입만은 선명히 살아나 열심히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네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나는 혼돈의 편린일 뿐이다. 그리고 너 역시 혼돈이 의도한 사도가 아니지. 진짜 혼돈의 사도인 멜븐은 원래 평범한 학생이다. 하지만 미들스쿨에서부터 두각을 드러내서 하이스쿨에 입학하게 되지. 그리고 하이스쿨에서도 아주 천천히 성장해갔어야 한다. 하지만 너는 갑자기 성장해서 A반에 들어왔고, 그 덕분에 본래 내정되어 있던 길은 모두 무너졌다. 즉, 높으신 공작나리와의 인연은 내가 초래한 게 아니라 네가 자초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는 게 네 농간일 수도 있지.”

나는 이를 갈면서 쏘아붙였다. 혼돈은 비릿하게 웃으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이번에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모양이군. 그래. 내 농간일 수도 있지. 하지만 도군.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려 하지 마라. 혼돈이란 한 가지 잣대로는 측정할 수 없다. 나는 의도하되 의도치 않으며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네가 혼돈의 사도라는 건 결코 변하지 않는다. 폰테일 저택에 가는 너도 혼돈의 사도이고 폰테일 저택에 가지 않는 너도 혼돈의 사도다.”

결국 어떻게 하든 나는 혼돈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건가? 혼돈의 모습이 아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려지고 나는 서서히 잠에서 깨고 있었다. 끈적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네가 어떤 짓을 벌이든 결과는 하나다. 너는 혼돈의 사도가 되어 이 세상을 혼란으로 이끌 것이다. 네가 어떤 짓을 하든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으니 부디 그걸 잊지 말도록..”

“웃기지 마! 내가 네 마음대로......”

거친 잠꼬대와 함께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수정판으로 된 시계는 오전 5시를 표시하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자리에 누웠다. 땀으로 축축한 시트가 뒷목을 감싸온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다시 혼돈을 만나는 것이 두려운 걸까? 거부하고 싶은 운명을 외면하고 싶은 걸까?

“빌어먹을....”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다시 잠들지 못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아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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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새로운 삶 (1) +11 13.02.02 12,543 227 11쪽
6 1. 천하제일의 둔재 (6) +13 13.02.01 11,727 217 12쪽
5 1. 천하제일의 둔재 (5) +15 13.02.01 8,774 131 10쪽
4 1. 천하제일의 둔재 (4) +17 13.02.01 8,632 127 11쪽
3 1. 천하제일의 둔재 (3) +6 13.01.31 9,560 133 17쪽
2 1. 천하제일의 둔재 (2) +4 13.01.31 11,370 147 14쪽
1 1. 천하제일의 둔재 (1) +12 13.01.31 18,719 30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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