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進化)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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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cha
작품등록일 :
2016.10.22 14:16
최근연재일 :
2016.12.0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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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2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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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안개 속으로

DUMMY

chapter 2. 안개 속으로



쌀쌀한 새벽 공기에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이제 곧 5월이 되어 가는데 오늘따라 날이 차갑다고 생각하며 김민국은 발걸음을 빨리했다.


동이 트기도 전에 숙소의 문을 두드려 댄 베르커스 덕에 잠을 설쳤기에 그의 기분은 좋지 못했다.


지난 며칠간 갑작스럽게 요새의 주인 차대성이 치안대의 감사를 벌이면서, 그 스트레스에 제대로 잠잔 적이 없었다. 그러다 어제서야 깊이 잠들 수 있었는데, 그런 달콤한 잠이 날아가 버렸다.


만약 공적인 일로 온 것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자신이 영입하려고 애쓰는 베르커스라도 좋게 넘어가 줄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났다.


하지만 베르커스는 당장 정찰 의뢰를 하러 떠난다며 여러 물자를 요구했고, 김민국은 기꺼이 손수 군수창고까지 가서 물건을 내줬다. 그만큼 이번 일은 자신에게 중요했고, 그런 일을 베르커스가 직접 나서 준다니 안심이 됐다.


“확실히 글러 먹은 놈들과는 틀려. 역시 베르커스 그 친구는 영입해야 돼.”


요새 밖으로 나가는 걸 극히 꺼리는 다른 간부들과는 질적으로 틀렸다. 그와 같은 인재가 아직 자기 밑에 없다는 게 새삼 안타까울 정도로 그는 달랐다.


언제부터인가 요새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가 수차례 더 확장을 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지금은 약육강식의 시대다.


비록 전국 13개의 요새(fortress) 중에 한자릴 차지했다고 하나 아직은 중소요새에 불과한데, 여기서 멈춘다면 결국 잡아먹히게 될 걸 김민국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게 모두 장준혁, 그 개자식 때문이지.”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장준혁을 생각하자 김민국은 입에서 욕부터 튀어나왔다.


이 모든 게 장준혁 그 새끼가 오고 난 후부터 생긴 일이었다.


요새를 만들 때는 보이지도 않던 잡놈이 간사하게 혀를 놀려대 경호실장 자리를 꿰차더니, 어느새 사람들을 선동해 자신마저 쳐내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단지 사관학교 선후배라는 이유로 묵인하는 차대성이 뒤에 있었다.


“개새끼. 내가 저를 위해 얼마나 개처럼 굴렀는데, 이제 와서 나를 내쳐?”


애초에 차대성의 그릇이 별 볼 일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얼굴 가죽이 두꺼운 놈인 줄은 몰랐다.


“하긴 만만하게 보였겠지. 겨우 배달이나 하던 놈이 자릴 꿰차고 앉았으니.”


물류회사 계원에 불과했던 자신이 부대를 이끄는 자리에 앉으니 뼛속부터 군인인 그들의 배알이 꼴린 게다.


그동안이야 자신이 필요했으니 참았지만, 요새가 안정되자 이제 쳐내려는 것이었다.


겉으로 내색은 안 했어도 자존심이 상해 칼을 갈고 있었을 것이다. 멍청한 자신은 그것도 모른 채 어떻게 하면 요새를 키울 수 있을까 같은 한심한 고민이나 하고 있을 때 말이다.


이번 토벌도 그래서 계획된 게 틀림없었다.


치안대마저 토벌에 동원 시킨다는 게 그 증거였다.


위험지역으로 몰아넣거나 아니면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죽일 작정인 것이다.


눈엣가시 같아도 요새 내에서 자신을 대놓고 죽이면 그 파장이 매우 큰 데다, 평판에 신경 쓰는 장준혁 그 새끼 성격을 보면 확실했다.


“하지만 내년 제사상은 네놈들이 받게 될 것이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김민국은 눈매를 좁혔다. 그런 그의 눈에 언뜻 살기가 감돌다 사라졌다.


어느새 발걸음이 2층 가건물 앞에 이르렀다.


경비를 서던 치안대원 둘이 경례하자 김민국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안으로 들어섰다.


치안대장이라는 한직으로 밀려난 것도 서러운데 이런 가건물 따위나 본부랍시고 내주다니, 그의 눈 밑이 살짝 꿈틀거렸다.


작년에 처음 여기로 출근할 때는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들었다. 주변의 눈이 자신의 몰락을 즐기는 것 같아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직접적인 감시가 덜 하고, 은밀히 여러 가지를 알아보기에도 좋았다.


여러 직책에 있는 놈들의 뒷주머니나 비리들, 그리고 떠도는 소문 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 알음알음 퍼져 나가고 있는 이능력자들에 대한 소문은 중요한 정보였다.


‘신인류라......’


몇 달 전만 해도 황당한 소문 정도로만 치부했던 이능력에 관한 얘기는 지금에 와선 그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이것에 관한 정보를 얻느라 가진 재산의 대부분을 쏟아부을 정도로 중요했다.


그리고 결국 한반도의 3대 요새 중 하나인 대전요새의 간부를 구슬려 특급 비밀이라 할 만한 것을 손에 넣었다.


김민국은 사무실에 들어가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더니 책상에 앉아 품에서 몇 장의 인쇄된 프린트물을 펼쳤다.


<신인류 조사 보고서>


벌써 몇 번이나 읽었기에 겉표지가 너덜너덜했지만, 그는 또다시 정독하기 시작했다.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들이 없어 추측에 불과한 내용이 많았으나 김민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 나갔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손에는 날카로운 바람이 일어나 책상 모서리를 갉아 대고 있었다.



@


어젯밤의 협상은 결국 장호의 승리로 돌아갔다.


장호는 의뢰금 10골드 외에 베르커스 소유의 차량을 인계받는 조건으로 이번 의뢰를 받아들였다. 그에 대해 이산도 별다른 불만 없이(나중에 베르커스의 차량이 뭔지를 알고 나서는 대박! 대박이야! 라고 외쳤다) 장호의 결정을 따랐다.


"흐흐, 랭글러라니. 내가 랭글러 루비콘을 타게 될 줄이야."


"좋냐?"


"당연히 좋죠. 랭글러는 구하기도 힘들고 이미 개조까지 된 거라잖아요."


"그러게. 개조까지 된 차일 줄이야."


"근데, 벨커형 좀 무리한 거 아닌가? 차값까지 치면 거의 130골 인데."


의뢰비용을 너무 많이 올린 것 같아 이산은 살짝 걱정이 되었다.


"지가 먼저 말했으니 뭔 생각이 있겠지. 그리고 벨커는 요새에서 거의 나가질 않으니까 차가 필요 없을 수도 있고, 뭐 다른 차가 있을지도 모르지.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야. 그냥 그놈이 요구한 데로 이번 일 퍼펙트하게 해주면 될 거다."


장호의 말에 이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car)라는 것이 주인 없이 지천에 널려 있으니 일견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대부분 5년 이상 길가에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 많았고, 어찌어찌 멀쩡해 보이는 걸 요새(fortress)로 끌고 온다 하여도 코어연료를 사용하도록 개조하는데 50gold 이상 깨졌다.


게다가 가솔린 차량은 아예 개조할 수 없었고, 디젤만이 가능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매물로 나오는 것도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에 지프 중에 최고라는 랭글러는 상당히 구하기 힘든 차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버려진 주유소 같은 곳의 기름을 사용해서 차를 끌고 다니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젠 그것마저도 고갈되어 개조차량은 더욱 가격이 뛰게 된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던 코란도도 처음에는 기름을 사용하다 개조시킨 경우였다.


"그나저나 이놈 왜 안 와? 오늘 가자고 우기던 놈이 제일 늦네."


"장호형, 근데 정말 우리 셋으로 될까? 형 말 믿고 찬성은 했는데 난 아직 베르커스 형하고 필드에 나가본 적이 없어서리....."


"충분해. 벨커 그놈이 옛날과 별다를 게 없다면."


장호는 심심한지 담배를 하나 꺼냈다.


“벨커, 그놈이 덩치는 커도 꽤 잽싸거든. 이 위대하신 형님의 바짓가랑이 잡을 정도는 되니까 걱정 말아.”


눈을 살짝 감은 채, 장호는 으스대며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였다.


탁-


장호가 막 담배를 입에 물려는데, 갑자기 옆에서 시커먼 손이 나오더니 장호의 손에 들려 있는 담배를 채갔다.


"꼴깝하네. 누가 누구 바짓가랑이를 잡는지 모르겠군."


"어? 왔냐."


베르커스는 강탈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좀 늦었다. 본부에 가서 물건 좀 받아 오느라고."


"물건?"


"어제 말했던 시한굉음탄(시한폭탄[時限爆彈]의 한 종류). 그거 가져왔다."


베르커스는 가져온 배낭을 살짝 들어 보였다.


"어, 근데 커스형님, 복장이 좀 쩌는 데요."


베르커스는 벨커라고 줄여서 부르는 것을 장호 외에는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산은 커스라고 줄여 불렀다. 물론 장호도 벨커라 부르기까지 꽤 오래 투닥거려야 했었다.


"너 부잔가 보다? 이거 2중 하드레더 잖아. 소가죽 같은데."


베르커스는 검은색 면 셔츠에다 그 위에 갈색으로 맨질맨질하면서도 광택을 죽인 2중 하드레더 아머를 겹쳐 입고 있었다. 활동성과 소음제거를 위해 어깨 부위는 없지만, 방어력은 장호나 이산이 입은 누더기 같은 브리건딘보다 훨씬 좋다.


그리고 팔에는 한 눈에도 좋아 보이는 브레이서를 차고 있었고, 하드레더를 겹겹이 엮어 활동성과 방호력 두 가지 모두 뛰어난 데다 징까지 박혀 있는 글러브도 허리춤에 걸려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눈부셔 이산의 눈에 감탄이 어렸다.


그야말로 헌터계의 부르주아라 할 만한 차림이 아닌가!


걸친 걸 모두 돈으로 환산하면 100 gold도 넘을 것 같았다.


100 gold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좀비가 보통 열 마리에 1gold 인데, 그렇다고 1000마리를 잡는다고 벌 수 있는 돈이 아닌 게, 이동과 식사 그 외 잡비 같은 것들과 탄약과 수리비용 등을 빼면 1/3은 날라 가니 1400마리는 잡아야 나오는 돈이었다.


더구나 거기에다 추가로 요새 입장료(요새에 체류하기 위한 세금)와 여관비, 그리고 술과 기타 등등도 써야 한다. 정말 쉽게 모을 수 없는 돈이었다.


문득, 이산은 자신과 장호의 차림을 보았다.


국방셔츠 위에 낡은 브리건딘을 입고, 여러 번 수선한 듯이 보이는 브레이서와 검은색 면장갑이 보인다.


빈부 격차가 여실히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모습에 문득 슬퍼진다.


용병단이 망할 때 입던 장비가 반년째 그대로였다.


분명 벌기는 꽤 번 것 같은데 나아진 게 없다.


이산은 이번 의뢰가 끝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갑옷부터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랭글러를 받고 코란도를 처분하면 그 정도 여유는 생길 터였다.


이런 고대나 중세에 쓰던 갑옷류를 작금에 다시 사용하게 된 이유는 당연히 좀비와 뮤턴트 그리고 변종 동물들 때문이었다.


좀비만 해도 접근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변종들개 같은 경우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게 매우 빨라 근접전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런 이유로 방어구의 필요성이 높아져 작금에는 가죽 갑옷은 기본이고, 어떤 이들은 체인 셔츠나 메일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 갑옷이 무거워도 중화기를 사용하는 이들은 어차피 기동력이 느리기에 무게를 조금 더 감수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갑주류는 전문가가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비쌌으니, 이산과 장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명품을 본 표정으로 장호가 갑옷을 만지려 들었다. 그러자 베르커스가 황급히 물러났다.


"만지지 마!"


"한 번만. 야, 한 번만 만져보자."


"쪽 팔린 줄 알아라. 왕년에 칼바람 용병단은 어디 가고 꼴이 그게 뭐냐? 그리고 니가 만지면 썩어 버릴지도 몰라."


"뭐 인마."


열 받은 장호가 잡으러 달려들자 베르커스는 그 덩치에 안 맞게 잽싸게 도망갔다.


"오지 말라고!"


"한 번만 만져보자니까!"


"뭘 만져! 너랑 달리 난 지극히 취향이 보통이거든!"


"뭐? 저게 진짜. 잡히면 다 벗겨 버린다!"


“뭘 벗겨!”


장호의 말에 베르커스가 크게 소리치며 도망쳤다. 그리고 이 소동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수군거렸다.


관심이 있는 듯, 눈빛을 빛내는 몇몇 이상한 놈들도 보인다.


이산은 자기도 모르게 주춤주춤 물러났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형님들과 일행이 아닌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미치겠다.'


장호 한 명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베르커스도 만만치 않았고, 이젠 시너지효과도 나타나는 것 같았다.


'독립할까....'


작가의말

챕터2 시작.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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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Personacon 깡치
    작성일
    16.11.04 23:16
    No. 1

    이 혼란기가 6년째인데 작년까지 주유소에서 기름을 구해 운행한 차량이 있다?? 정유공장에서 주유소로 판매되는 유류는 첨가물때문에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가솔린의 경우 1년이죠. 생산되고 5년이나 방치된 유류인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Ahcha
    작성일
    16.11.05 11:49
    No. 2

    제가 잘 몰랐네요. 조언 감사합니다. 너그러히 봐주세요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어림없지
    작성일
    16.11.06 20:44
    No. 3

    재미나게 보고 갑니다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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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hapter 1. 지옥에서도 풀은 자란다. (6) +3 16.10.27 3,220 97 9쪽
6 Chapter 1. 지옥에서도 풀은 자란다. (5) +4 16.10.26 3,446 98 14쪽
5 Chapter 1. 지옥에서도 풀은 자란다. (4) +2 16.10.25 3,648 103 12쪽
4 Chapter 1. 지옥에서도 풀은 자란다. (3) +4 16.10.24 3,791 106 12쪽
3 Chapter 1. 지옥에서도 풀은 자란다. (2) +3 16.10.23 4,347 112 11쪽
2 Chapter 1. 지옥에서도 풀은 자란다. +10 16.10.22 5,459 118 11쪽
1 프롤로그 +5 16.10.22 6,620 1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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