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망한 서버의 망한 길드의 망한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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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검[飛劒]
작품등록일 :
2013.03.05 14:00
최근연재일 :
2013.04.0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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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23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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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DUMMY

숲의 영혼 길드원들이 주저하지 않고 쭉 빠진 탓에, 시엘-블레안에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눈이 덮여 있었던 길이 평범한 흙길로, 이내 다시 풀이 돋은 평야의 길로 바뀌었다. 길을 따라서 쭉 오다 보니 이윽고 거대한 부활석이 어렴풋이 들여다보이는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부활석 주변으로 상대편 길드원들이 몰려든 것을 보니 강희성은 불야성이 이런 짓을 꽤나 여러 번 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핫!”

기합성과 함께 가장 먼저 튀어나간 것은 역시나 현시언이었다. 강희성은 학살에 깊이 참여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후방에서 간간히 화살을 쏘며 천신혈갑이라는 사람을 눈으로 찾기 시작했다.

이미 승패는 무의미한 수준이었다. 숲의 영혼 측은 주요 전투 인원 중 상당수를 알카스 서쪽 협곡 전투에서 잃어버렸다. 현시언을 비롯한 불야성의 길드원들은 언어 그대로 일방적인 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성역 효과가 사라져 이제는 같은 길드원들의 스킬에도 피해를 입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확히 상대편 길드원만을 골라 없앴다.

“이 미친 새끼들아! 이겼으면 됐지 뭘……!”

누군가가 항의하듯 고함을 지르다가 그대로 현시언의 칼날에 목이 꽂혀 생명력이 0이 되고 말았다. 강제 로그아웃되는 그를 보며 현시언이 있는 힘껏 비웃었다.

“한두 번 당해 봤냐?”

그리고선 휘리릭 다시 은신 상태가 되어 사라졌다.

강희성은 그 잔혹함에 혀를 내두르며 빠르게 전방을 훑었다. 기사라면 분명히 전방에 있을 것이었다. 만에 하나 누군가가 스킬을 쓴다고 해도 도발 스킬로 자신이 대신 맞아줄 수 있었으니까.

3분이나 찾았을까, 저 앞에 까무잡잡하고 큰 덩치에 초대형 방패를 든 사내가 눈에 보였다. 머리 위에는 ‘천신혈갑’이라는 닉네임이 보란 듯이 있었다.

‘아, 저깄다.’

환영검사인 천령은월보다 훨씬 두터워 보이는 강철 갑옷이 전신을 빈틈없이 싸매고 있었다. 강희성은 그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대화할 틈이 나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광전사가 아닌 이상 다시 접속하기까지 30분이 걸리는 데 비해, 불야성 쪽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블레안의 부활석 앞이 조금씩 한산해지기 시작했다. 강희성은 전선이 아예 저 뒤로 밀린 것을 확인한 뒤에 천신혈갑에게 다가갔다.

“저기, 천신혈갑 씨.”

부르자 그가 돌아봤다. 꺼먼 피부에 거친 듯한 흑발에 비해서는 준수한 캐릭터 얼굴이 드러났다. 하늘색 눈동자가 그의 닉네임을 훑었다.

“어, 그…… 이드 누나가 말한, 맞지요?”

캐릭터와는 달리 다소 푼수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캐릭터의 몸집에 조금 위압되었던 강희성은 내심 안심하곤 씨익 웃었다.

“네. 잘 부탁합니다.”

“저야말로.”

두 사람은 미묘한 미소를 말없이 주고받았다. 서로 어떤 사정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공통된 분모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자들만의 웃음이었다. 비록 게임 캐릭터였지만 그 너머에 있는 감정만큼은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천신혈갑은 부활석 근처를 힐끗 보고서는 방패를 내리고 비전투 모드로 들어갔다. 거대한 방패 탓에 오히려 위축되어 보였던 캐릭터의 덩치가 더욱 강조되게 드러났다.

“말 편하게 하세요. 이드 누나한테 듣기로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다던데. 저 아직 스물한 살이에요. 저도 형이라고 부를게요.”

“그래? 그렇다면야.”

다소 험상궂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성격 좋아 보이는 말투에 강희성은 다소 마음이 놓였다. 제멋대로의 끝을 달리는 이드에 비교하면 사람다운 사람을 이제야 만났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하며 두 사람은 전선(前線) 뒤쪽으로 물러났다.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지자, 강희성은 본격적인 화제를 꺼냈다.

“너도 김예빈 때문에 이리로 넘어왔다면서?”

“아…… 맞아요.”

확실히 이드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닌 듯싶었다. 꺼멓고 골격이 단단한 얼굴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드 누나 덕분에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영 뒷맛이 씁쓸하긴 해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의 물음에 천신혈갑은 그저 눈만 또르륵 한참을 굴렸다. 한 번 더 재촉하자 그가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냥 뭐, 흔한 얘기에요. 템이고 뭐고 다 갖다 바쳤지만 결국 어장관리 당하는 물고기였다는 거.”

아무래도 이드가 말한 ‘아주 제대로 낚싯바늘에 코 꿰여서 피 질질 흘리면서도 떡밥 맛있다고 하는 머저리 새끼들’ 중 하나였던 모양이었다. 강희성은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사실 김예빈하고 전 다른 게임에서 먼저 만났거든요. 그 때 걔는 고등학생이었구요.”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김예빈은 천신혈갑에게 어려서 돈이 없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캐시 아이템과 선물을 얻어냈다. 하지만 천신혈갑은 김예빈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으로만 착각하고 자신의 용돈과 아르바이트 비용을 털어서 값비싼 선물을 스스럼없이 해주었다. 나중에는 김예빈이 천신혈갑에게 고백을 해서 두 사람은 사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예빈은 해킹을 당해서 할 맛이 안 난다는 이유로 하던 게임을 홀연히 접어 버렸다. 그러다가 천신혈갑이 이 게임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김예빈은 그와 같은 서버에서 게임을 시작했다. 얼마 후 김예빈이 PK가 하고 싶다는 이유로 레드 페어리 서버로 같이 넘어오게 되었다.

“PK? 김예빈이 그렇게 말했다고?”

김예빈이 말했던 ‘전 남자친구’가 천신혈갑이라는 것도 상당히 놀라웠지만, PK가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 그녀 쪽이라는 것도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던데요. 거대 길드가 있으니까 적당히 즐길 수 있을 거라고.”

강희성은 곰곰이 얼마 전 했던 김예빈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나한테는 전 남자친구가 PK를 좋아해서 여기서 키웠다고 했었는데 말이지.”

천신혈갑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그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형,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걔가 순전히 오자고 해서 간 거예요.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레드 페어리로 넘어온 김예빈은 마치 그러기로 예정했던 것처럼 천신혈갑을 이끌고 불야성 길드로 들어갔다. 당시에도 큰 세력이었던 불야성은 두 사람을 군말 없이 받아주었다.

그 후로도 천신혈갑은 영혼까지 빼줄 듯한 기세로 김예빈의 모든 것을 도와주었다. 그러던 중 이드가 접근해 왔다.

“이드 누나가 그러더라구요. 나보고 병신 호구새끼라고. 진짜 엄청 쌍욕을 해대면서 다짜고짜 두들겨 팼죠. 처음엔 얼마나 황당했던지…….”

“허, 그 누나 원래 성격이 그랬구나.”

강희성은 칼집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던 이드를 생각하며 관자놀이에 손을 짚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요란한 사람이었다. 천신혈갑이 그의 얼굴을 보더니 공감한다는 듯 실없이 웃었다.

“말도 마요. 그 누나 얼마나 폭력적인데요. 하는 말이야 다 맞는 말인데 표현 방식이 너무 격해서 어휴…….”

잠시 말끝을 흐리던 천신혈갑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드 누나랑 저는 그 전에는 별로 안 친했거든요. 그런데 이드 누나가 김예빈이 다른 길드원하고 얘기하는 걸 들었다나 봐요. 지금이야 서로 원수처럼 그러지만 예전에는 김예빈하고 이드 누나가 꽤 친했거든요.”

“그, 그런 적도 있었어?”

지금 보이는 적개심을 고려하면 도무지 상상이 안 가는 이야기였지만, 천신혈갑의 얼굴은 매우 진지했다.

“김예빈이 다른 돈 많은 다크 게이머(게임을 직업으로 하는 자)하고 양다리를 놓은 거죠. 불야성은 돈 될 만한 필드는 거의 점령하고 있어서 템 작업하기가 되게 쉽거든요. 게다가 여긴 거래소가 서버 통합이니까 더 좋죠.”

“하긴.”

대답하면서 강희성은,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던 의문이 스르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불야성이 이 정도로 단결력을 유지할 수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돈이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었겠지만 PK서버에 처음 왔다는 사실 때문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음이라.

“그 때 이드 누나가 김예빈에게 그러지 말라고 충고를 했었는데, 걔가 뭐라더라? 저는 그냥 충실한 노예 같은 거라고 그랬더라고요. 제가 안 믿으니까 메신저 기록하고 대화 동영상을 싹 다 모아서 보내 주더라구요. 그 때 얼마나 충격을 먹었던지…….”

쓰디쓴 그 말투에서 강희성은 천신혈갑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은 진심으로 좋아해서 모든 것을 다 퍼줬는데, 알고 보니 상대는 그저 자신을 물질적 노예로만 여겼다는 상황. 누구라도 상처를 받을 터이다.

“제가 이상한 걸 알아차리고 김예빈이 이드 누나를 추궁했어요. 결국 이드누나는 화끈하게 ‘넌 진짜 인간 쓰레기년이다’라고 선언했죠. 그 다음부터야 뭐 항상 저렇고요.”

“용케 길드 탈퇴는 안 했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강희성은 진심으로 아직도 길드에 남아 있는 그와 이드가 존경스러워지려 했다. 지금 두 사람과 김예빈을 놓고 누가 더 불야성에 영향력이 큰 지 비교하면 당연히 후자가 답이었다.

“보통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직접 쫓아내지는 않더라도 눈치 엄청 줬을 텐데.”

“네, 장난 아니었죠. 근데 워낙 길드가 사람이 많은데다가 길마는 중립이어서요. 김예빈이 꼬리는 엄청 치지만 리느테스 챙기기 바쁘죠.”

“리느테스…… 여자친구였어?”

보는 사람 속이 니글거릴 정도로 과했던 애교가 절로 떠올랐다. 허나 천신혈갑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아뇨. 여자친구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촌 여동생이에요. 듣기로는 달라붙는 여자들 떼어내려고 일부러 그렇게 짜고 행동한다던데…… 모르죠, 뭐.”

“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였지만, 딱히 리느테스에 관해서 크게 궁금한 건 없었기에 두 사람은 빠르게 원 화제로 돌아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김예빈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좀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찌 저찌 탈퇴 안 하고 버티고 있죠. 사실 여기 탈퇴하면 게임 제대로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바로 한 시간 전에 같은 길드원이었어도 지금 적이라면 지체 없이 쳐버리는 게 불야성이고 현시언이니까요.”


작가의말

헉헉; 아슬아슬하게 올리네요

사실 강희성은 그렇게까지 찌질한 캐릭터로 잡은 게 아니었습니다...만..

표현력의 부재인 듯 합니다. ㅠㅠ

강희성이 바보가 아니에요. 이드가 무지 폭력적인 겁니다!....ㅠㅠ...

지금이야 처음 와서 눈치 보느라 저러지만.. 흑..

 

 24일 추가사항 )

소제목을 바꾸었습니다. 원래 이거였는데 어제 너무 급하게 올리느라 제엔자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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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5. 네가 성(城)이면 우리는 파성(破城)이다! 의지는 좋았지만… +11 13.04.02 3,384 24 9쪽
23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7) +6 13.03.30 3,528 21 9쪽
22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6) +15 13.03.29 3,269 27 9쪽
21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5) - 수정본 +18 13.03.28 3,452 19 15쪽
20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4) - 수정본 +11 13.03.27 3,569 20 9쪽
19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3) - 수정본 +13 13.03.26 3,475 20 12쪽
18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2) +12 13.03.25 3,260 20 10쪽
»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7 13.03.23 3,711 17 11쪽
16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7) +9 13.03.22 3,578 17 13쪽
15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6) +11 13.03.21 3,550 23 10쪽
14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5) +10 13.03.20 3,544 13 9쪽
13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4) +6 13.03.19 3,583 15 10쪽
12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3) +13 13.03.18 3,628 19 13쪽
11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2) +8 13.03.16 3,756 17 11쪽
10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10 13.03.15 3,969 19 9쪽
9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4) +8 13.03.14 3,800 18 11쪽
8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3) +13 13.03.13 3,972 12 13쪽
7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2) +11 13.03.12 4,058 16 10쪽
6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8 13.03.11 4,042 13 12쪽
5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4) +5 13.03.09 4,216 13 12쪽
4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3) +8 13.03.08 4,188 14 8쪽
3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2) +12 13.03.07 4,562 18 7쪽
2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4 13.03.05 4,954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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