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망한 서버의 망한 길드의 망한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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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검[飛劒]
작품등록일 :
2013.03.05 14:00
최근연재일 :
2013.04.0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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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12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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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2)

DUMMY


30분 동안 강희성은 진심으로, 맨 처음에 저격수를 선택했던 자신을 뼈저리게 원망했다. 아무리 2대 1이었고, 아무리 그가 PK라곤 해본 적도 없는 순수 사냥유저였다고 해도 자기 레벨 반절도 안 되는 상대에게 죽다니! 하다못해 PK에서 중간은 가는 ‘광전사’나 ‘속사수’였으면 상황은 정반대였을 것이다.

물론 강희성은 딱히 심각한 다혈질은 아니었다. 그러나 로그아웃이 완료되는 그 순간까지 비웃음과 조롱을 들었으니 열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PK서버 새끼들은 다 이 모양인건가?”

죽고 죽이는 거야 얼마든지 예상했던 일이지만, 설마 하니 이 정도로 패자한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을 줄은 몰랐다. 로그아웃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온갖 육두문자를 쏟아내던 페르마타의 모습은 살의까지 들게 할 정도였다. 애꿎은 허공에 발차기를 해 가며 화를 삭이는 그의 귀에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책상 위에 대충 내팽개쳐 두었던 휴대폰을 집어 들자, 저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김예빈의 번호가 표시되었다.

“여보세요.”

-선배! 저 이제 막 집에 왔어요.

“그, 근데?”

아직 성질이 덜 식어서일까. 말이 조금은 날카롭게 나왔다.

-‘근데?’라뇨! 저 이제 게임에 접속할 거라구요. 들어오셔야 해요! 서버 이전 끝났을 거잖아요.

강희성은 시계를 힐끗 보았다. 아직 접속이 가능해지려면 2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사망 패널티라고 솔직하게 말할지 대충 얼버무릴지 고민하던 그는 후자를 택했다.

“한 20분 정도 있다 들어갈게. 일이 있어서…….”

-일이요? 음…… 그럼, 저 먼저 사냥하고 있을게요! 들어오시면 메신저 주세요.

“알았어.”

통화를 끊은 뒤 강희성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곤 휴대폰으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평소에 자주 가는 위드 리스 온라인 공식 카페로 향한 그는 PK 게시판에 주목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곳이지만, 저격수로 PK를 하는 요령이 필요해진 지금은 반드시 체크해야만 했다.

‘저격수’로 검색하자 글들이 주르륵 떴다. 그는 가장 댓글이 많은 글을 클릭했다. 잠깐의 로딩이 끝나고 장문의 글과 스크린샷이 나타났다.

[저격수, 선빵필승의 표본이자 길드전의 꽃]

그런 제목의 글이었다. 스크롤을 내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굵은 글씨의 문장이 있었다.

[저격수는 1:1 정식 PVP에서는 절대 못 이김. 일대일 대전할거면 저격수 하지 마라.]

그리고 그 밑으로 더 큰 글씨가 빨갛게 강조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방적 PK라면 이길 수 있음! PVP는 서로 싸우겠다고 선언하고 시작하는 거라 저격수의 이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PK는 그딴 거 없으니까. 우월한 사거리와 한방이 있는 우리의 저격수는 PK에서 선빵을 치면 승리한다!]

그럴싸한 말이었다. 스크롤을 계속해서 내리자 권장하는 장비 세팅과 스킬 트리가 나타났다. 스킬 트리까지 뜯어 고칠 생각은 없었기에 그대로 지나치자 그가 원하는 컨트롤 팁이 나타났다. 두세 번씩 그 글을 정독한 강희성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요점은 어찌 보면 간단했다.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유리한 곳을 선점하고 자신의 위치를 은닉하는 건 필수 사항이었다. 거기에 화살 일체화나 근력 강화 샷 같은 스킬들을 초반에 쏟아 부어서 강력한 선제공격을 날려야 했다.

다음으로, 이 공략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한 부분은 이러했다.

[스킬을 다 썼는데 상대가 안 죽었다? 그럼 저쪽이 오기 전에 자리를 떠야 함. 최대한 멀리 떨어지면서 자기가 있던 자리에 가장 효과적으로 화살을 날릴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함. 왜냐고?

생각해 보쇼. 상대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화살 맞았으면 눈알에 불 켜고 뛰어와서 님들 죽이려고 하지. 속박 트랩 최대한 많이 깔아두고 거리 벌리면, 님은 님이 있던 자리에서 빡쳐하는 상대를 볼 수 있음. 그럼 거기다 쿨 돌아온 스킬 쏟아 주면 됨. 그럼 피가 걸레짝이 되어 있던 상대는 으앙쥬금! 하고 로갓되는 거지. 뭐 저격수가 기동성이 구리네 어쩌네 하는데, 내가 말한 대로 거의 최대거리에 맞춰서 쐈다면 충분히 시간 나옴. 맞다, 그리고 길드전 할 땐 한 명한테 한 발만 쏴여. 그럼 딜은 딜대로 되면서 애들이 다른 우리 길드원한테 신경 쏟느라고 님한테 안 감. 여러 발 맞으면 빡쳐서 입에 거품 물고 쫓아옴.]

글 모양새는 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쨌거나 맞는 말이었다.

‘요는 위치 선정인가…….’

스킬을 쓰거나 조준하는 건 사냥에서도 많이 해봤기에 그다지 어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필드의 지형지물을 파악하여 전투에 활용하는 건 92레벨을 찍을 때까지 전혀 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가 있던 마을 ‘루얀’은 잠시 거쳐 가는 곳이라 지형을 잘 알지도 못했다.

‘어쩐담.’

이럴 줄 알았으면 공략을 미리 찾아본 다음에 지형지물 이용법을 천천히 연습해서 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음이라.

시계를 다시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 접속 가능 시각이 되어 있었다. 강희성은 심호흡을 한 뒤, 가상현실기기 안으로 들어갔다.

‘해 보면 알겠지.’

접속하면 아마 루얀 마을 중심지일 것이다. 게다가 사망 패널티로 전체 스탯이 5분 간 20%씩 깎여 있을 터였다. 스텟이야 워낙 레벨 차가 우월해서 별 상관이 없었지만 문제는 마을 분위기를 그가 모른다는 것이었다.

‘고민해 봐야 어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결론지은 강희성은 공략 내용을 다시 한 번 입으로 작게 왼 뒤 게임에 접속했다.

예상대로 캐릭터는 루얀 마을 중앙에 있었다. 눈앞에는 부활 지점을 상징하는, 날개 달린 거대한 부유석이 떠 있었다. 원체 한적할 수밖에 없는 마을이라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있던 사람들도 강희성의 레벨과 장비를 보고서는 신경을 끄는 분위기였다.

강희성은 재빨리 시선을 돌려 아까의 저격수와 자객을 찾아보았지만, 비슷한 닉네임조차 보이지를 않았다. 아무래도 아직 접속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혹은 먼저 들어와서 이미 다른 곳으로 갔거나.

‘음…… 일단 탁 트인 곳은 위험하겠지.’

다행스럽게도 루얀은 거목(巨木)과 숲의 마을이라, 지형상으로는 그에게 유리했다. 광장 바로 뒷편에 있는 거목은 40m가 넘는 무지막지한 높이를 자랑했는데, 사방으로 뻗친 굵은 가지 위에 여러 NPC들이 있었다. 이동은 나무와 광장 곳곳에 있는 순간이동 포탈로 가능했다.

‘그 놈들이 이리로 올까?’

레벨대를 봐서는 아직 이곳에서 퀘스트를 수행할 때기는 했지만, 꼭 광장으로 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일단 강희성은 포탈을 타고 나무 꼭대기의 촌장 집 근처로 올라갔다. 아찔할 정도의 높이인 촌장 집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각종 상점과 퀘스트 NPC의 위치가 거의 한 눈에 보였다.

‘온다면 분명 무기점에는 들를 것이다. 사망 시에는 내구도가 감소되고, 그 레벨이라면 무기 내구도도 변변찮을 테니……. 게다가 그 자식들 2인 1조였으니까 같이 행동할 테고.’

강희성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적어도 나무에서 떨어져서 2연속으로 죽는 참극만은 면하고 싶었다.

저격수의 큰 특징 중 하나라면, 화살이 거의 직선으로만 날아간다는 점이었다. ‘공격 유도’따위의 특수 스킬을 쓰지 않는 이상은 오로지 정면으로만 들이박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희성은 세심하게 자리를 옮기며 화살을 쏠 위치를 계속해서 가늠했다.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적당히 자신을 가려 주면서도, 화살의 진로를 막지 않는 위치를.

‘됐다!’

진땀나게 움직여서 마침내 찾아낸 위치는, 떨어질락 말락하게 아슬아슬한 나뭇가지 가장자리였다. 우거진 나뭇잎이 시야를 반쯤 가리지만 정말 근소한 차이로 무기점과 잡화상의 위치를 한 번에 볼 수 있었고, 화살로 쏴도 충분히 맞힐 수 있었다.

‘이런 명당이 있었다니…….’

속 편히 사냥 유저로만 살 때에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장소였다.

‘맞다, 김예빈 얘는 뭐 하고 있는 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강희성은 메신저를 띄워 확인했다.

[르웨델(온라인) - 몽환결계 제3구역]

몽환결계는 90레벨 중후반대의 유저들이 많이 가는 사냥터였다. 거기에 제3결계라면 난이도가 상당한 곳이었으니, 아마도 말을 걸 새가 없는 것이리라.

‘차라리 잘 됐나.’

그렇게 생각하며 메신저를 내린 순간이었다.

“아~ 진짜 그런 호구는 처음 봤다니까? 푸하하.”

“지도 죽어 놓고 허세는…….”

“야, 니가 화살 좀만 빨리 쐈어도 안 죽었거든?”

낯익은 목소리에 강희성은 흠칫하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뭇잎 아래로, 목소리만큼이나 익숙한 캐릭터가 눈에 들어왔다. 얼굴은 아슬아슬하게 나뭇잎에 가렸지만 연한 갈색의 가죽 갑옷과 허리에 찬 무기로 알아볼 수 있었다. 위치로 보아서는 강희성의 예상대로 무기점에서 수리를 하려는 듯했다.

‘페르마타! 그리고 플로네레스.’

두 사람의 닉네임을 입 속으로 되뇌며 강희성은 활을 바투 쥐곤 속삭이듯 스킬 명을 외쳤다.

“화살 일체화. 공격 유도. 급소 유도.”

일단 세 개의 스킬을 먼저 조합했다. 아직 고레벨의 스킬을 익히지 못한 그로서는 이게 최고의 데미지를 가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

‘누구부터 쏴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는 로그아웃을 하면서 악에 받쳐 욕을 했던 페르마타를 향해 활을 겨누었다.



작가의말

 

사실 댓글 안 보는 것 같지만 다 봅니다.

댓글 하나 +1 되면 설레이면서 열 번씩 봐요.

전 차갑지만 내 리플에겐 따듯한 사람이니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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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7) +6 13.03.30 3,528 21 9쪽
22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6) +15 13.03.29 3,269 27 9쪽
21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5) - 수정본 +18 13.03.28 3,452 19 15쪽
20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4) - 수정본 +11 13.03.27 3,569 20 9쪽
19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3) - 수정본 +13 13.03.26 3,475 20 12쪽
18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2) +12 13.03.25 3,260 20 10쪽
17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7 13.03.23 3,711 17 11쪽
16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7) +9 13.03.22 3,579 17 13쪽
15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6) +11 13.03.21 3,550 23 10쪽
14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5) +10 13.03.20 3,544 13 9쪽
13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4) +6 13.03.19 3,583 15 10쪽
12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3) +13 13.03.18 3,628 19 13쪽
11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2) +8 13.03.16 3,756 17 11쪽
10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10 13.03.15 3,970 19 9쪽
9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4) +8 13.03.14 3,800 18 11쪽
8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3) +13 13.03.13 3,974 12 13쪽
»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2) +11 13.03.12 4,059 16 10쪽
6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8 13.03.11 4,042 13 12쪽
5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4) +5 13.03.09 4,218 13 12쪽
4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3) +8 13.03.08 4,188 14 8쪽
3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2) +12 13.03.07 4,562 18 7쪽
2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4 13.03.05 4,954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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