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7 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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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仁伯
작품등록일 :
2018.12.0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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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8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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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행 그리고 역습 1

인공지능, 민주주의




DUMMY

한국노총 광주전남본부 건물을 나선 룩은 바로 앞, 금남로와 경열로가 교차하는 유동사거리 정중앙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사람이나 휴머노이드는 고사하고, 움직이는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발을 뗄 수도 없었다. 그들이 대로변 사거리 중 어느 길을 택했는지 모른다.

더 심각한 건, 만약 그들이 대로가 아니라 골목을 누비는 경우다.

그러다가 바로 숨어버린다면? 무슨 수로 찾아낸단 말인가.


룩은 생각에 잠겼다. 석호필은 어디로 갔을까?

론머맨과 커뮤니케이트해왔던 그가 조달평을 꾀어냈다면, 그리고 네 명의 직능위원과 접선할 가능성이 크다면, 어디일까. 구체적인 장소나 위치를 짐작할 순 없지만 방향이 어디인지는 대충 감이 잡힌다.


그녀는 민얼마을 전방경비단 본부였던 금남로5가역 쪽으로 이동했다.

도로가 건물 쪽에 몸을 바짝 붙이고, 맞은편 건물들의 창가, 건물 사이사이의 골목길까지 구석구석 꼼꼼히 살폈다.

파파가 이미 비숍에게 그를 미행하라고 지시한 바가 있지 않나. 비숍 혹은 다른 감시자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석호필이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을 지도 모른다.


순간 룩의 몸이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었다.

그가 자신에게 따라붙는 눈길을 떨쳐내려 했다면 진작에 했을 것이다. 왜? 그는 반공전략연구소를 해킹한 론머맨과 수시로 커뮤니케이트하는 사이니까. 반공전략연구소 실험유인자들과 긴밀한 사이니까.


물론 눈 앞에 파리가 날아다니고 쥐새끼가 기어다니지는 않는다. 하지만 버그 드론이 없다고 해서 그들에게 다른 눈과 귀가 없는 걸까.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반공전략연구소는 민얼마을 구석구석, 심지어 마을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왜? 그래야 실험데이터를 축적하고 수십수백 가지의 위험요인들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


파파께서 설명해주신 민얼마을이 어떠한 곳인가.

자신들이 제작하고 인격을 양성한 휴머노이드 때문에 가족과 이웃을 잃었음에도 그것들과 절대적으로 평등한 사회시스템에 복종해야만 하는 인간들, 그리고 명목상으로만 평등할 뿐 실질적으로는 인종차별을 방불케 하는 근원적인 불평등 속에서 인간에 대한 원망이 점점 깊어만 가는 휴머노이드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절대적으로 평등한 재화분배니, 촌민들이 선출한 대표들에 의한 공정한 행정과 사법절차니 하는 것들 다 허울이다.

실상은 죽음의 공포마저 압도할 듯한 한과 분노, 갈등으로 인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가식적 평온에 불과하다.


금남로 한가운데로 걸어나오는 룩의 표정은 무거웠다.

이미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 커다란 몸 하나 어떻게든 숨겨보겠다고 건물벽에 붙어서 게걸음을 걸었다니?! 얼마나 우스운가.


아니, 어찌 보면 이 곳의 모든 게 그런 것 같다.

피실험체인 민얼마을 주민들이 실험주관자의 존재를 눈치채고 자신들에게 어떤 실험을 강요하려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래야만 목이 잘리지 않기 때문이다.


피실험체들이 실험주관자의 의도대로 반응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마을 전체가 하나의 연극무대 같다.

모두가 평등한 대접을 받으며,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삶의 여유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연기를 한다.

하지만 태연함을 가장한 배우들의 속은 썩어서 곯아들어간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주위 풍경이 달라보인다.

개량형 BSS/EBF에게 쫓길 당시만 해도 인적이 끊긴 옛 도시 정도로만 보였다.

하지만 단순한 감상의 이면에는 죽음의 이미지가 깔려있다.

이 곳 뿐만이 아니다. 주민들이 거주했던 지역도 마찬가지다. 타의로 이 곳에 갇힌 인간 주민들은 바깥세상을 기약할 수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자신의 의지, 주체성을 버려야만 한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의지대로 영위할 수 없는 삶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민얼마을은 죽은 인간들의 도시다.


그렇게 정처없이 걸음을 옮겼다가 어느 새 금남로5가역 부근에 도착했다.

사거리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로가 양쪽 건물들이 거대한 칼에 베인 것마냥 잘려나가 있었다. 초고열레이저빔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도로 중앙에는 지난번 연구소 휴머노이드들이 인간 촌민들을 무자비하게 실었던 검은색 버스차량 두 대가 세워져 있었다.

KCTV광주사옥건물을 지날 즈음 천교 쪽에서 라이트 핸드에 금속봉을 거머쥔 반공전략연구소 휴머노이드 십여 기가 검은색 버스를 향해 걸어왔다. 레프트 핸드에는 어김없이 팔과 다리가 부러진 촌민들이나 휴머노이드 촌민들의 잘린 헤드가 들려있었다.


버스 안으로 인간 주민들을 집어던지던 휴머노이드들이 룩을 발견했다.

그들의 기다란 헤드가 자신을 향하고 있는 모습에 룩도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도망가거나 숨지 않았다. 그래봐야 아무 소용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왠지 저들이 자신에게 백색광선을 쏘아대지는 않을 것 같았다.

혹여 공격하더라도 자신을 제압하는 정도에서 그칠 것이다.

왜? 자신을 석호필과 조달평에게 데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석호필이 자신을 만나길 원한다? 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도 휴머노이드와 마주하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그것들이 당장 레프트 포어암을 번쩍 들어 레이저를 쏠 것 같았다.


왜 이런 아무 근거없는 직감만 믿고 이토록 무모하게 행동한 것일까.

몸서리치도록 후회하는 와중에도, 마음 한 켠에서는 아무 일도 없을 테니 걱정말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휴머노이드 십여 기가 다가와 자신의 주위를 둘러쌌을 때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그러나 그것들은 암을 뻗는 대신 걸음을 옮겼다. 물리력으로 강제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어딘가로 이끌었다.

아무런 근거 없는 직감이 현실화된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석호필과 가까운 직능위원 네 사람, 그리고 그들을 통해 연결되는 반공전략연구소와 론머맨. 이들이 민얼마을 실험의 핵심이다.

특히 반공전략연구소와 론머맨.

전자는 BSS/EBF의 성능개선을 위해 실험을 주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론머맨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 속내가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오리무중이다.

반동형무소에서부터 삼십 년 넘게 수감생활을 한 석호필을 끌어들였고, 반공전략연구소가 투입한 직능위원들을 제거하려 한다. 반공전략연구소의 실험결과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도출하려 하는 것일까.

또 있다. 민얼마을과 컨트롤 타워를 반공인격표준화정책 기획보도의 마지막 취재목표로 설정했고, 이 기획보도를 자신의 의도대로 편성하려고 한다.


그가 원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 진실이 가지는 모멘텀은 얼마나 파괴적일 것인가. 그리고 그로 인해 세상은 어떻게 변화할까.


그것들은 광주학생운동기념공원 잔디밭으로 걸어갔다. 잔디밭 한가운데 여섯 명이 일렬로 늘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시야에 잡혔다.


제일 먼저 눈에 뜨인 사람은 조달평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몸을 벌벌 떠는 게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왜 저럴까. 노인이 그를 이곳으로 끌고 오기 위해 협박이라도 한 것일까.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석호필. 양쪽에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을 한 네 명의 남녀를 거느린 채 자신을 향해 웃고 있었다.

이 곳에 온 자신을 환영하는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을 왜 환영하는가. 자신이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순간 룩은 노인의 미소에서 왠지 모를 섬뜩함이 풍기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아니, 단순한 착각일까. 아니면 이심전심인 걸까.






유동사거리에서 광주역 방향으로 이동하던 비숍이 다음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었다.

금재로 도로가 오른편 건물 옥상을 뛰어넘으며 그녀를 뒤따르던 나이트는 도로에 인접한 수창초등학교 때문에 부득이하게 로켓부스터로 비행을 해야만 했다.

행여 근거리에서 로켓연소음 때문에 발각될까 싶었지만 비숍은 묵묵히 앞만 보고 나아갔다.

200여 미터를 이동해 대인교차로 오거리에 도착한 비숍은 또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서 독립로를 따라 직진했다.


건물 옥상을 달리던 나이트는 전방에 금남로5가역이 보이자 눈살을 찌푸렸다.

유동사거리에 구 도청 방향으로 쭉 올라오면 될 것은 왜 에둘러 돌아왔을까. 론머맨의 의도가 궁금해진 나이트가 도로가를 내려다본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거의 나란히 걸음을 옮기던 비숍이 사라졌다.

미행중인 자신을 눈치챘나?

아니다. 이미 자신이 한 차례 미행했던 만큼, 이번에도 자신이나 룩 둘 중 하나가 따라붙을 걸 미리 짐작했을 것이다.

룩이나 자신이나, 생각이 너무 짧았다.

그럼 그녀는, 그는 지금 어디···!


그 순간 나이트가 디디고 선 건물의 옥상출입문이 통째로 뜯겨져 포탄처럼 날아갔다.

시멘트 재질의 난간을 부수고도 모자라 맞은 편 건물 벽에 깊숙이 박힌 문짝에 얼어버린 나이트는 비숍이 자신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데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휴머노이드 바디의 아이볼타입 카메라만으로 퀀텀스텔스모드인 자신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걸 수상하게 여길 겨를도 없었다.


“파파가 시켰어? 나 방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감시하라고?”


비숍이 자신과 정확히 시선을 마주치고 있음에도 나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으면 비숍이 자신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그녀의 침묵에 대한 비숍의 반응을 통해 헛된 꿈임이 밝혀졌다.

오른쪽 다리를 번쩍 든 비숍이 발꿈치로 나이트의 정수리를 찍었다.

휴머노이드 바디의 소형부스터를 작동시켜 순식간에 왼쪽으로 미끄러진 나이트는 마치 자신의 회피동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한 비숍의 왼발 돌려차기에 급히 고개를 숙였다.

비숍의 왼발과 정강이에 의해 터지듯 갈라진 바람의 압력이 뒷통수의 스마트스킨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아직도 대답 안 할거야? 아주 밤새도록 할까?”


“알았어! 알았다고······!”


론머맨의 협박에 나이트가 퀀텀스텔스모드를 해제했다.

두 손을 들어 투항의 의사를 표시하면서도 주위를 살폈다.

비숍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실시간으로 영상을 전송해주는 감시시스템이 존재한다. 그게 무엇이고 어디에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가.


“그렇게 한 번 스윽 둘러봐서 찾을 거 같았으면, 민얼마을 주민들은 왜 못 찾았겠냐?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눈 뜬 장님이었겠어?”


나이트의 속내를 꼬집는 비숍의 배배 꼬인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신랄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러한 말투는 나이트가 너무나 잘 아는 한 사람을 연상시켰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비숍을 원격제어하는 이는 론머맨이다. 파파가 아니라.

그럼 론머맨이 파파를 흉내내는 건가? 왜?


“비숍! 왜 파파의 지시를 연거푸 어기는 거야? 파파께 말대꾸하는 것도 그렇고···!”


“야! 피차 대충 돌아가는 사정 파악한 마당에 낯 간지럽게 굴지 말고 다 까고 하자.”


이 또한 나이트에게 익숙하다.

곤란한 답변을 피하려 하거나 이리저리 말을 돌리면서 자신이 가진 패를 들여다보려는 상대방을 위축시키는 동시에, 스스로 패를 까보이게끔 하는 일종의 블러핑이다.

파파만의 거칠고 투박하며 직선적인 화법이다.


그러나 말투와 화법이 익숙하다고 해서 대응까지 쉬운 건 아니다.

더구나 상대는 파파보다 상대하기가 몇 배는 더 까다로운 론머맨 아닌가.

심지어 이렇게 말투를 따라하는 것조차 론머맨과 파파를 혼동하는 착각을 일으켜 무언가 실수를 유도하려는 속셈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패를 다 까자는 제안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가 비숍이 아니라 론머맨임을 이 자리에서 인정해버리면, 언제부터 눈치챘는지, 무슨 근거로 비숍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등등의 추궁에 시달려야 한다.

반면 자신은?

반공전략연구소와 민얼마을 실험, 더 나아가 소피들과 닥터 우에하라, 파파에 관해 론머맨에게 물어보거나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다.

하지만 그가 순순히 대답해줄 리도 만무할 뿐더러, 자신은 보이지 않는 감시시스템에 포착당한 상태에서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비숍의 바디를 장악한 론머맨과 대치하고 있다.


퀀텀스텔스모드도 통하지 않고 로켓부스터비행으로 달아나려 해도 지난 번 광주학생운동기념공원 상공에서 강제구인 시나리오를 예고한 다목적 비행드론 TR-MB 같은 게 공중전을 벌이려 들면 격추당할 수밖에 없다.

모든 시도가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결과만 불러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떻게 할까. 그럼에도 결론은 하나였다.

나이트의 눈빛이 변했다. 그 속내를 간파한 비숍이 즉시 몸을 날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곱 번의 주먹질과 세 번의 발길질을 가했지만, 나이트의 동체시력과 행동예측프로그램이 비숍의 공격을 모조리 읽어냈다.

그리고 대응값이 스파인(인공척추)의 운동신경을 통해 머슬(인공근육)과 소형부스터에 전달되었다.

마지막에 허공에 몸을 띄워 라이트 풋으로 돌려찬 비숍은 무게중심축인 레프트 풋에 가해진 충격에 의해 잠깐 몸의 중심을 잃었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로켓부스터를 가동시킨 나이트의 바디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비숍도 버톡스(buttocks, 엉덩이)가 땅에 닿도록 레그를 완전히 굽히고 바디를 잔뜩 움츠렸다가 땅을 박차면서 뛰어올랐다.

제자리높이뛰기였지만 일반적인 성인의 몇십 배에 달하는 머슬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려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러나 수백 미터 상공으로 날아오른 나이트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뛰어오른 속도는 서서히 줄어들고 어느 지점에서 중력에 의해 아래로 끌려내려갔다.


그러나 그렇게 자유낙하를 시작한 비숍의 바디는 얼마 안 가 다시금 날아올랐다.

불길한 예상은 절대 빗나가지 않는다고, TR-MB이 비숍을 기체 위에 태우고 비행해 쫓아왔다.


깜짝 놀란 나이트는 땅으로 곤두박질치듯이 급하강비행했다.

로켓부스터출력을 높인 채 금남로와 독립로, 금재로 일대의 골목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곡예비행으로도 TR-MB을 떨쳐낼 수 없었다. 백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비숍의 바디중량이 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반중력역추진공학시스템에 기반한 고속비행능력은 완벽했다.


금남로5가역을 지나 천교 쪽으로 빠르게 비행하며 비숍의 TR-MB를 떨쳐낼 방법을 고민하던 나이트의 눈앞이 순간 번쩍였다.

새하얀 광선이 스쳐지나가면서 스마트스킨이 타들어갈 것 같은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지난 번 금남로5가역 인근 건물옥상에서 현장상황을 지켜보는 중에 초고열레이저빔이 뺨을 스쳤던 아찔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때의 충격으로 비행궤도설정을 망설인 사이 십수 가닥의 백색 광선이 한꺼번에 쏘아졌다.


나이트의 예상비행궤도를 교묘하게 가로막는 레이저의 궤적에 로켓부스터의 한 쪽 날개가 잘려나갔다.

수평방향전환이 불가능해진 나이트가 로켓부스터의 비행날개를 분리시켜 떨구어낸 뒤 그대로 하늘 위로 솟구쳤다.

수백 미터 높이까지 날아오른 나이트는 천천히 부스터의 출력을 줄였다. 이대로 서서히 하강한다면 안전하게 착륙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걸 그냥 두고 볼 리 없는 이가 나타났다.

나이트는 TR-MB를 타고 날아드는 비숍이 그대로 몸을 띄워 발차기를 해오자 그 자리에서 부스터의 전원을 껐다.

공중에서 자유낙하를 시작한 나이트가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런 그녀의 부스터 위로 비숍의 발이 지나갔다.


쏜살같이 떨어지던 몸을 향해 TR-MB가 기관포사격을 시작했다.

그러자 나이트는 다시금 부스터를 작동시켜 낙하속도를 감소시켰고, 기관포탄은 나이트의 발밑을 훑었다.


TR-MB를 나이트에게 바짝 다가갔다.

비숍의 접근에 놀란 나이트가 부스터출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지만 위에서 떨어진 비숍이 나이트에게 매달렸다. 레프트 암으로 나이트의 넥을 두르고 레그로는 그녀의 레그를 옭아맸다.


암을 바둥거리던 나이트가 비숍을 가격했지만, 나이트의 근력과 타격기로는 비숍의 바디에 충격을 줄 수 없었다.

그 사이 비숍은 라이트 핸드로 등에 부착된 로켓부스터를 한 번에 뜯어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힘이 한순간에 터져나온 것이다. 론머맨이 비숍의 EB를 해킹하면서, 시오리가 감당하기 힘든 비숍의 인공근력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안전장치로 설치했던 단계별 출력제어시스템마저 무력화시킨 건가.


부스터는 물론 의상과 스마트스킨, 외장까지 뜯겨져 나간 나이트의 등 부위는 처참했다.

로켓부스터가 떨어져나가자 나이트는 조금이라도 낙하속도를 줄여보겠다는 마음에 소형부스터를 모조리 켰다.

그러나 그 또한 비숍의 먹잇감이었다.

라이트 핸드와 레프트 핸드를 바꾸어가면서 그녀의 몸에 부착된 소형부스터까지 일일이 다 뜯어낸 비숍은 빠르게 자유낙하하는 나이트의 빰을 한 번 살짝 꼬집은 후 목을 감았던 팔과 다리를 감았던 두 다리를 풀었다.


그러자 이번엔 나이트가 필사적으로 비숍의 몸에 매달리려고 했다.

비숍은 입꼬리 한 쪽을 비틀어 올렸다.

핸드로 나이트의 핸드를 모두 잡아뽑은 후, 니(knee, 무릎)와 앵클(ankle, 발목)을 풋으로 차 부숴버렸다.

찢어질 듯 눈을 부릅뜬 나이트가 핸드가 사라진 암으로 비숍의 옷자락을 훑으며 어떻게든 매달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그러나 비숍은 그런 그녀의 체스트를 풋으로 거세게 차버렸다. 그 반동으로 떨어지는 속도가 줄어들었을 타이밍에 절묘하게 날아든 TR-MB가 비숍의 바디를 받쳐들었다.


순식간에 깨알같은 점으로 줄어든 나이트의 바디가 독립로 일대 건물 옥상 바닥을 부수면서 산산조각났다.

추락지점으로 하강하여 정밀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하여 면밀히 분석한 TR-MB는 EB시스템을 포함한 나이트의 바디 전체가 복구불능의 수준으로 파괴되었음을 확인하고는 방향을 틀었다.

룩이 기다리고 있는 기념공원 잔디밭으로.




Neo-Familism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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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죽음의 압박 19.06.10 37 1 9쪽
196 민얼마을 해커 2 19.06.09 34 1 12쪽
195 민얼마을 해커 1 19.06.08 32 0 13쪽
194 커져가는 불신 7 - 론머맨에 대한 정하준과 룩의 의심 19.06.07 31 0 17쪽
193 피를 마시는 거목, 그 실체의 끝 19.06.06 36 1 8쪽
192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6 - 진압 19.06.05 31 0 15쪽
191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5 - 혼란 그리고 갈등 19.06.04 42 0 17쪽
190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4 - 무력시위 19.06.03 36 0 15쪽
189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3 - 처형 19.06.02 33 0 9쪽
188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2 - 선동 19.06.01 38 0 26쪽
187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1 - 연출 19.05.31 31 1 13쪽
186 어제의 적, 오늘의 동지 2 19.05.30 35 0 12쪽
185 민얼마을 - 민얼마을의 민주주의, 그 실체 19.05.29 33 0 12쪽
184 민얼마을 5 - 해커 19.05.28 33 1 19쪽
183 민얼마을 4 - 드라이브 19.05.27 37 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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