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is the residue of design2
응급실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응급 환자의 방문객으로 인산인해였고, 몇몇은 소리 없이 울거나 소리를 빽빽 지르는 등 소란을 피웠다.
“아버지!”
그 중에서 아버지가 보였다. 다행히 소란을 일으킬 정도로 패닉 상태는 아니었다.
“왔구나.”
아버지가 십 년은 늙은 듯, 초췌한 얼굴로 걸어왔다.
눈 밑에는 검은 기미가 끼고 주름이 가득했다. 항상 강해보이셨던 아버지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더 불안해진다. 머릿속에선 최악의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지나갔다.
“어, 엄마는요……? 아니죠? 혹시, 제가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잔뜩 겁먹은 얼굴로 아들이 말을 더듬자, 아버지는 옅게 웃으면서 지우의 어깨를 토닥이며 진정시켰다.
“괜찮단다. 위독하긴 했지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너무 걱정하지 하지마라.”
“휴우우우…….”
아버지의 말에 그래도 걱정은 덜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지우야.”
그런데 아버지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아버지는 눈을 질끈 감고, 무언가 최대한 참아내려는 듯 주먹을 부들부들 떨면서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지만……회사에서……잠시 일하다 온 거란다. 지금은 우리 과에서 중요한 프로젝트가…있단……다……나는……이만 가봐야겠구나……”
말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을 정도로의 고통.
가장인 아버지는 무언의 감정을 참아내면서 지우에게 고통스럽다는 듯이 사과했다.
그도 자신이 얼마나 터무니없을 정도로 정신없는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가족이 사고를 당했다. 그것도 평생을 함께해온 아내다.
아무리 회사 일이 중요하다곤 하지만,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는데 일 때문에 회사에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사람으로서 도저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버지.”
“……그래.”
도저히 아들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조차도 나지 않았다.
인간쓰레기라고 불려도 시원치 않을 정도로의 행동에 아버지는 자기혐오에 빠져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들에게 맞아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아들의 행동은 생각과 전혀 달랐다.
“왜 무리하셨어요? 전화로 저한테 부탁한다고 하시면 되잖아요. 어서 회사로 돌아가세요.”
아버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우는 주름과 굳은살로 가득한 아버지의 손을 마주잡고 걱정을 떨쳐내려는 듯 최대한 밝게 웃었다.
“저, 그렇게 나쁜 아들 아니에요. 철없는 아들도 아니고요. 지하도 철없는 아이는 아니니까 이해할 거예요. 그러니까 뒤는 걱정하지 마시고 얼른 가보도록 하세요. 시간 없으실 테니까 얘기는 다음에 하고요.”
“지우야…….”
회사는 조직이다. 조직은 개개인 사정을 하나하나 봐줄 수는 없다. 아내가 변을 당한 것은 딱하긴 하지만, 회사 입장에선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과장이나 되는 인물이 빠진다면 곤란할 것이다.
아마 대체할 인력도 없을 것이고, 또 아버지는 아마 프로젝트를 전담하는 인물 중 하나일 것이다.
그걸 지금에 와서 바꿀 수는 없었다.
아마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일 것이다.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슬프고 걱정되지만, 가장으로서의 이성 때문에 혼란스러울 것이다.
비록 독심술은 없었지만, 지우는 이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평생을 함께해온 가족이고 아버지다. 아버지는 평소 아내의 불행을 그냥 지나칠 정도로 냉혈무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등을 떠밀어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아버지. 어서요. 프로젝트 잘만 따내면 승진할 수도 있다고요?”
“아아……그래.”
이젠 다 커버린 아들의 상냥한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병원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 지우는 원무과로 가서 어머니의 성함을 알려주고 병실을 물어봤다.
아버지 앞에서 멀쩡한 척 했지만 사실 지우 본인도 상당히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였다.
그는 평소 어머니에게 잘 해주지 못하고, 잔소리가 듣기 싫어 대화도 길게 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을 떠올리곤 스스로를 저주했다.
끝없는 자기혐오를 마음속에서 반복하며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열자 병원 특유의 소독 냄새가 코를 찌른다. 눈처럼 하얗게 물들인 병실 내부의 구조가 보였다.
일반 병실이 아니라 중환자만 들어가는 독실이었기 때문에 내부엔 어머니밖에 없었다.
침대 옆엔 링거가 달려 있어 수액이 한 방울씩 천천히 뚝뚝 떨어지고, 녹색 물결이 삐삐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는 심전도 측정기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를 보자마자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골절을 당하셨는지 오른쪽 다리에 깁스를 했고, 얼굴도 몇 군데 피멍이 들었다. 머리에도 붕대를 감으셨고, 그 외에 신체 군데군데도 붕대를 감아 마치 미라와도 같았다.
“……왔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하야.”
평소에 봤던 교복 차림이 아니라, 간편한 사복 차림을 한 지하가 지친 기색으로 터덜터덜 걸어와 침대 옆에 위치한 간병인 의자에 말없이 앉았다.
“……엄마, 방금 전에 막 잠들었어. 그리고 의사 선생님께서 들은건데 고비는 넘긴셨다네. 다행이지?”
“응…….”
처참할 정도로 죽은 목소리다.
어떠한 일에도 감정을 보이지 않는 지하가 충격이 상당했는지 마른 대지처럼 쩍쩍 갈라진 목소리를 냈다.
“있잖아, 오빠…….”
“응?”
“……그리고…의사 선생님이……엄마, 다리를 크게 다치셔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다.
혹시, 어쩌면 라는 생각으로 자기도 모르게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다. 지우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지하의 뒷말이 부디 그다지 절망적이지 않기만을 빌었다.
“……평…생……못…걸을지도……모른……다네…….”
“…….”
지끈!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파온다.
마음속에서 괜한 원망감이 피어올랐다. 이제 행복해지기만 하면 되는데 왜 자신을 포함한 가족에게 이런 불행이 오나 싶었다.
하늘이 미웠다. 교통사고를 낸 자동차가 싫었다. 운전자를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패죽이고 싶다.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다. 신에 대한 원망이, 하늘에 대한 증오가, 세상에 대한 분노가 끊이지 않고 증폭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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