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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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2.02.0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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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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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2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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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의 이야기 16

DUMMY

공작가의 밀실.

흑단으로 된 탁자에 킴이 앉아 있었다. 그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유심히 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것이 당신이 말씀하신 청동거울인가요?”

“그래.”

그가 내게 거울을 건넨다.

나는 그 거울을 꼼꼼히 살폈다. 매끈하다. 그러나 빛에 비추어 바라보면 실금이 표면 전체에 나 있었다. 그것도 매우 불규칙한 모양으로.

“말이 거울이지 사실은 보석함 같은 거야. 그가 내게 부탁하더군.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함이 필요한데 아무나 열 수 없어야한다고. 특별한 열쇠 없이도. 그리고 그 함은 함인지 몰라야한다고.”

“그래서 이 거울을 제작하신 거군요.”

“나로서도 어려운 작업이었지. 설계부터 난항이었어. 제작 또한 그렇고. 어쨌거나 만들었지. 두 번 다시는 안 만든다 했어. 너무 어려웠고 오랜 과정이었기에 질렸었으니까. 그러나 그 분은 매우 흡족해하셨지.”

킴이 청동거울을 다시 가져갔다. 책상 위에 융으로 된 천을 깔았다. 그리곤 양 손으로 거울을 감쌌다. 이리저리 힘을 주며 비틀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거울이 조각난다. 보자기 위로 조각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그리고 그 속엔 열쇠가 있었다.

“바로 이 열쇠구나.”

전에 얻었던 열쇠와 흡사한 모습. 늘 투명하던 킴의 두 눈이 열쇠를 보곤 불타오르는 것만 같이 변했다.

“궁금하지 않느냐? 그 문이 열렸을 때 무엇이 있는지.”

“무엇이 있을 거라 예상하십니까?”

“연구자료 따윈 관심 없다. 그분. 그분의 자취가 남아있길 바란다.”


-----


두 개의 열쇠를 넣었다. 열쇠를 동시에 돌리자 묵직한 마찰음과 함께 문이 서서히 열렸다. 킴이 허리에 찬 두 개의 단도를 꺼내들며 말했다.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나 또한 도끼를 꺼내 쥐었다.

킴은 기관을 돌려 문을 다시 닫았다. 빛이 너무도 없어 내 눈에도 사물을 분간할 수 없었다. 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횃불을 꺼내 불을 붙였다.

“원래 이런 밀폐된 곳에서 횃불을 꺼내는 건 자살행위지. 공기가 다 타버리거든. 이럴 땐 내 몸뚱이가 죽어있다는 게 참 유리하단 말이야.”

킴이 콧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니 무척 설레나보다.

내부 공간은 생각보다 깊었다. 백 걸음을 걸었을 때쯤에야 새로운 문이 나왔다. 다행히 그 문엔 아무런 잠금장치도 없었다.

문을 열자 문이 툭 떨어진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경첩이 다 녹이 슬었나보다.

“정말 대단하군요.”

방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개방형 수납장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는데, 수납장엔 목판이 가득 놓여있었다. 한 구석엔 작은 금고도 있다. 금고를 여니 약병이 하나 들었다. 나는 킴에게 약병을 건넸다. 킴은 약병을 품에 조심히 챙겼다.

킴이 첫 번째 목판을 집어 든다.

“이게 그 연구 자료구나.”

무어라 쓰여 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왠지 알아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판을 전부 꼼꼼히 읽어본 킴은 목판을 모두 부숴버린 후 불을 놓았다. 그는 다가가지 않고 묵묵히 서 있는 내를 보며 웃었다.

“제법 영리하구나.”

“어떤 내용인지 여쭤 봐도 됩니까?”

“어디까지 알고 싶으냐?”

“제가 알아도 상관없는 만큼이면 됩니다.”

킴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분은 자신의 태생을 해명하기 위해 생명이 없는 생물을 탄생시키고자 했다. 뭐 우리 또한 생명이 없다고 봐도 되겠지만 좀 다른 것이니.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변한 것이기도 하고. 간단히 말하면 이것들은 일종의 키메라에 대한 연구다.”

“키메라요?”

“그래. 서방의 고대 신화에 나오는 생물이지. 무서운 짐승들의 위험한 부분만을 합쳐 만든 괴물로, 신들이 이것을 이용해 신에 대적하던 무리들을 짓밟았다고 하지. 그는 이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처음엔 생물체들을 합했고, 후엔 우리나 우리와 비슷한 비틀린 존재들을 합했다고 한다.”

“그게 제가 본 그것이겠군요.”

“그렇지. 그 후엔 애초에 생명이 없던 광물이나 유기물 등으로 실험했다고 하네.”

“성공한 것입니까?”

킴이 고개를 젓는다.

“여기부턴 말해줄 수 없다.”

“그럼 그 분의 단서는 찾은 것입니까?”

“그렇다. 직접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짐작할 수는 있다.”

“그곳으로 가실 겁니까?”

“그래. 그분을 만나는 것은 내가 정말 바라던 일이니까.”

킴은 돌아서 타고 있는 목판에 다가갔다. 불길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인다는 것은 내 착각일까? 긴 세월을 거쳐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는데 왜 그의 표정은 저리 고독해보일까.

“너도 같이 가겠느냐?”

“당신이 원하신다면.”

“가자. 너도 가자. 너는 볼 자격이 있다.”


-----


안개가 자욱하다. 찬 공기가 온천을 만나며 생긴 물안개다. 열원이 바로 가까이에 있는지 물의 온도가 높아 빠져죽은 사슴의 몸이 다 익었다. 사방에 유황냄새가 진동을 한다.

안개 사이로 그림자가 보인다. 사람이다. 크고 당당하다. 조잡하게 만든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동이 트는 것을 보고 있었다.

“모투. 당신이십니까?”

킴의 물음에 그가 일어선다. 뒤를 돌아본다. 남부인 특유의 검은 피부에 바짝 깎은 머리. 크고 툭 튀어나온 두 눈은 소처럼 순하지만 날렵한 코 선이 순함을 상쇄시켰다.

그가 크게 미소 지었다.

“오랜만이구나.”

“당신을 찾아다녔습니다. 무척이나 오래 걸렸습니다. 다행히 시간은 저를 빗겨갔습니다.”

“내가 남긴 것들을 따라왔구나.”

모투의 시선이 나를 쫓는다.

“뒤에 서 있는 건 누구냐?”

“저의 창조물이죠.”

“이곳까지 데리고 오다니. 의외로구나.”

“이 아이는 다릅니다. 내가 만든 다른 창조물과는. 그는 나와 같습니다.”

“그렇구나. 이해된다.”

모투가 우리에게 손짓을 했다.

“앉자.”

우린 모투가 가리킨 통나무 의자에 걸터앉았다.

킴이 모투에게 물었다.

“목판의 쓰인 것을 읽었습니다. 진전이 있었습니까?”

“그래. 난 많은 것을 확인했다.”

“그럼 그 내용들이 진실이란 말입니까?”

“그렇다. 그 증거들도 있었다.”

모투가 하나의 석판을 내민다.

“이것이 그것들이 있는 지도다.”

킴은 그것을 살폈다. 그리고 파괴했다.

“제가 살던 곳 근처군요.”

모투가 웃으며 킴의 머리를 만진다.

“이제 때가 되었구나.”

킴이 양 팔을 벌려 모투에게 안겼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모투가 환하게 웃었다.

“나는 나의 진리를 보았다. 그리고 얻었다. 너는 너의 진리를 감당할 준비가 되었느냐?”

“저는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긴. 그게 너답다.”

모투가 킴을 마주 안았다. 서로는 그렇게 꼭 안았다.

“모투. 이제 저의 목표를 이루겠습니다.”

킴이 품에서 약병을 꺼내든다. 모투가 약병을 보며 웃는다. 그러더니 자신의 품에서 약병을 하나 더 꺼내 킴에게 건넸다. 킴이 두 병을 모두 마신다.

그리고…….

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두 눈을 의심하며.

킴은 모투를 먹어치웠다.


-----


세상이 눈으로 덮여있다. 밤새 눈이 내리더니 어느새 무릎까지 쌓였다. 체력이 좋은 나였지만, 눈이 계속 발목을 잡아 걷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진다.

눈이 달빛에 반짝인다. 별도 반짝인다. 어둠속에 빛나는 그 보석들은 언제 봐도 즐겁다.

추위 속에 손을 비비며 호 불면 입김이 나올 때가 좋았다. 나는 밤공기를 채우는 입김을 보는 걸 좋아했었다. 요즘 같은 날씨엔 그게 아쉽다. 숨을 쉬지 않는다는 사실이 말이다.

멀리 오두막이 보인다. 덧문 사이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온다. 마당 한 쪽엔 커다란 목양견이 매어 있다. 그 개는 나를 보고도 짖지 않는다. 아마 주인의 영향 때문이리라.

문을 열자 온기가 후끈하게 느껴진다.

“왔구나.”

중저음의 목소리가 방을 채운다. 한 청년이 벽난로의 모닥불을 응시하며 흔들의자에 앉아있다. 대략 이십대 후반쯤 되어 보인다. 곰 가죽으로 된 외투를 입고 있다. 한 손엔 읽다 말았는지 반쯤 벌어진 책을 쥐고 있다.

“오랜만이에요. 킴.”

킴이 나를 돌아본다. 그의 성인이 된 모습을 보는 건 아직도 어색하다. 앞으로도 어색할 것이다.

킴이 웃으며 말했다.

“앉으렴.”

나는 그의 손짓에 따라 침상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넌 아직도 내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구나.”

“저는 기다릴 뿐입니다.”

나의 대답에 킴이 고개를 끄덕인다. 흡족한 표정을 애써 숨기려하지 않는다.

“내게 가장 궁금한 것이 무어냐?”

“당신은 이제 나이를 먹는 겁니까?”

킴이 고개를 젓는다.

“시간은 아직도 날 비켜가고 있다.”

“그럼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환상입니까?”

“아니다. 네가 보고 있는 것은 실제니라.”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일족의 모임에 죽음을 가장하고 탈퇴하신 것도 외형의 변화와 관계가 있습니까?”

“그래. 신체변형의 이능이 없는 내가 모습이 바뀐 걸 알면 그들은 의문을 갖게 될 테니까. 그리고 이제 난 그들의 울타리가 없어도 문제없다.”

“결국 뛰어 넘으셨군요.”

“나는 이제 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럼 앞으로 보기 어려운 겁니까?”

“한동안은……. 하지만 때가 되었을 때 내가 널 찾을 것이다.”

킴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책이다. 나에게 건넨다.

“이제 너의 것이다.”

표지도, 속지도 깨끗하다. 이제 막 만든 것처럼. 나는 책을 펼쳐보았다. 내용이 낯이 익다.

“이것은 모투의 일지 아닙니까?”

“그래. 그동안 나왔던 그의 연구를 모두 담았다. 그리고 적혀있지 않았던 내용 일부도.”

“왜 저에게 주시는 건가요?”

“꼼꼼히 읽고 태워버려라. 그것을 다 읽고 나면 넌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너는 나의 업이다. 유일하게 의사를 묻지 않고 일족으로 만들었기에 늘 신경이 쓰였다. 너와 내가 같다고 했던 말은 그 때문이다.”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선택되어진 삶을 살았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너의 선택에 따라 걸어가거라.”

킴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게 다가온다. 그의 두 눈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내 발치에 무릎을 꿇고 나의 다리에 머리를 기댔다.

“미안하다. 이 말이 꼭 하고 싶었다.”

나는 그의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만져졌다.

“아닙니다. 당신을 만남 생명을 잃음으로써 오히려 저의 삶은 인간다워졌습니다. 저는 당신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킴이 몸을 일으킨다. 그는 애써 웃음을 짓는 것 같다.

“고맙다. 다시 만날 시간이 있을 거다. 이곳은 너에게 맡기마.”

그는 그렇게 떠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제 그의 뒷모습은 크다. 나보다 더.

그가 앉았던 의자에 몸을 묻었다. 책을 펼쳐본다. 속지의 감촉이 제법 부드럽다.

그가 말한 갈림길이 무엇일까? 기대된다. 선택하는 삶이라. 이제 시작이다. 한 발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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