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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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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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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1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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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3]

DUMMY

봉인기만술이 유지되는 시간은 매우 한정적이었기에 바토리는 마음이 급했다. 회생의 술도 함께 발현돼서 완치될 때까지 안개화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았지만, 그 괴물 같은 놈은 정녕 만만치 않은 상대라 시간을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젠장, 어떻게 날 밀어낸 거지?’


실은 안개화 함과 동시에 놈의 내부로 슬쩍 침투해서 바로 끝내려고 했었다. 한데 몸 안에 무슨 방어막이라도 있는 건지, 기이한 힘에 막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에는 후퇴하고 말았다.


‘그 빌어먹을 와류도 그렇고.. 도대체 저놈은 뭐야?’


너무 갑작스러운 전투였다고는 해도 순식간에 자신의 머리를 부숴 소멸지경까지 몰고 간 걸 생각하면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혈인이 통하지 않는 상대가 왕의 검들 말고 또 있었어?’


일가와 건곤일척의 승부를 내기도 전에 이딴 꼬라지가 된 게 믿기지 않았지만, 현실은 더러워도 현실이라 일단 해결책부터 찾아야 했다. 다행히도 막 죽어 부패 등의 손상이 거의 없는 여성의 시체를 두 구나 발견했기에 그녀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애들이 이것까지 먹어 치웠으면 진짜 암울할 뻔했어, 일단은 몸부터 회복하자.’ 그녀는 이 전장에서 가장 은밀한 장소로 권속들을 부른 뒤, 두 번째 전투를 바삐 준비했다.


밀실을 가득 메우며 들어왔다가 한곳으로 뭉친 혈무는 바닥의 최고급 융단에 장기를 반쯤 뱉은 채 널브진 남성의 시체를 지나, 킹사이즈는 될법한 침대 위에서 맴돌다가 인간의 형상으로 화해 바닥을 디뎠다. 머리카락과 온몸의 피부, 근육의 일부가 없는 혈인의 모습은 끔찍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였지만, 당사자는 썩 만족하는 듯했다.


“역시 회생의 술이야, 거의 다 회복했네. 이것들로 보충하면 충분하겠어.”


그녀의 혈안에 억울하게 죽은 처녀들이 비치는 순간, 시체 안에서 검게 굳어가던 혈액이 모조리 뿜어져 나왔다.


'죽은 피는 피부미용에 별로거든.'


분수처럼 솟아오른 핏물은 다섯 갈래로 나뉘며 수증기처럼 흩어졌다가, 방안의 벽과 천장을 붉게 물들이면서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겨 넣었다.


‘이거로 시간을 좀 벌고..’


마침 부셰와 앵그르도 밀실로 들어서자 그녀는 철문을 닫으라 명하고 육체를 회복하기 위한 술식을 시전했다.


“멋지군, 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


여유롭게 광장으로 들어서던 학살조장은 뇌리에 각인된 적의 존재감이 삽시간에 사라지자 일단 걸음을 멈췄다. 지난 십수 년간 전장을 누비면서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이라 당혹스러우면서도 반가웠다. 전장에서의 흥분을 하나하나 잃어가던 그에게 이번 상대는 너무나도 신선했다.


‘그래, 자신의 위치를 감추는 게 전투의 기본이지.’


기하급수적으로 존재감을 높여가다가 요란하게 울곤 함께 자취를 감춘 둘까지 떠오르자, 절로 소름이 돋는다. 그들의 강함 때문이 아니라, 여태껏 쌓아온 상식을 단박에 뒤엎는 게 마치 첫 전장에 섰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좋군.”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조원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찬찬히 훑었다.


‘시체가 하나도 없는 건 그 둘의 짓이겠지? 그래서 존재감이 커진 건가?’


인육을 먹는 건 별다른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개의치 않고 적을 쫓았다. 빠른 은신이 가능한 건물부터 살피며 브리핑 속 조감도와 단 하나뿐이던 설계도면을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진다.


‘안타깝게도 저곳뿐이네.’


낯 뜨거울 정도로 단순하게 만들어진 콘크리트 건물로 방향을 잡는 순간, 그를 감지한 바토리는 꽉 닫힌 강철문을 비롯한 벽과 천장에 새긴 은폐술식을 보며 욕설을 흘렸다.


“빌어먹을, 괴물놈. 서둘러야겠어.”


그리곤 죽은 여인들의 매끄러운 등에 각기 손을 가져다 대자, 아직은 세월의 손을 타지 않은 처녀들의 보드라운 피부가 흐물흐물해지며 그녀의 손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팔을 타고 어깨를 넘어서 정확히 같은 부위에 자리 잡은 뽀얀 살결이 새로운 육신에 적응하려 꿈틀거릴 때, 추적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게 느껴졌다.


‘여기가 몇 층짜리였지?’


그래도 다 둘러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잠시 머뭇거리던 놈이 지하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어휴, 징글징글하네 이 괴물 같은 놈.”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시체의 신경과 근육까지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 자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내장을 바닥에 쏟은 시체를 보며 군침을 흘리는 앵그르에게 문밖을 지키라고 명했다. 그리곤 죽어 시체까지 유린당한 여인을 보며 헐떡이는 부셰에게 그들을 섭취해 생명력을 더 보완하라고 지시하며 회생술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자 막 강철문을 열고 나서던 앵그르가 고개를 푹 떨군다.


‘뭐야, 설마 삐진건가? 왜 이곳에서는 이상한 일만 벌어지는 거지?’


주인의 명을 들은 권속은 다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명령에만 집중하는 게 정상이었다. 한데, 좁아지는 문틈 사이로 양손에 시체를 들고 허겁지겁 먹는 부셰와 바닥의 시체, 그리고 자신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는 구울의 행태는 뭐란 말인가?


‘저게 무슨.. 혹시 선을 넘은 건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가정이었지만, 영육의 주인인 자신을 향해서 조금이나마 불만을 표출한다는 게 그냥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 능력이 미천한데 선을 넘었을 리는 없어. 그런데 뭐 저따위로 행동해? 색욕에 미친 놈들이라서 그에 걸맞은 방식으로 최후를 선사하고 권능을 주입한 뒤에.. 젠장, 다 맞게 했는데 뭐가 잘못된 거지?’


곧 생사를 담보한 결전을 벌여야 했기에,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구울의 행태가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억지로라도 생각을 추스르려 할 때, 침대시트에 뭍은 파편까지 싹 훑어먹은 부셰가 눈앞에 떡 하니 서서 입을 여는 게 아닌가?


“주인님, 저놈이 좀 모자라서 그렇지, 말 한마디면 저처럼 목숨까지 바칠 겁니다.” 바토리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길게 한숨을 뱉었다.


탈인한 구울이 상대의 표정을 읽고 마음을 짐작해서 말까지 거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과 흡사하면 할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는 게 구울이었으니까. 시초의 구울은 홀로 나라를 다스렸다하지 않던가? 그런데..


‘이놈들은 이제 막 태어났잖아? 혹시 원래 구울이었는데, 내가 봉인을 깼다거나.. 뭐, 그런 거 아니야?’


다시금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헛웃음을 흘릴 때, 회복을 위해 필요한 재료의 전이를 끝낸 술식이 다시 진혈로 화해 손등으로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좋아, 조금만 더 집중하자. 아직은 시간이 있어.”


그녀는 다짐하듯 중얼대며 회복의 술에 집중했다. 이제 자신의 일부가 된 피부, 근육, 신경과의 동조만 끝내면 회복을 마무리 지을 수가 있었다. 만일 재료가 살아있었다면 이식과 동조의 술을 펼칠 필요도 없었겠지만, 이런 시체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자라나고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던 외관이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가며 그 매혹적인 여인을 다시 세상에 선사하는 순간, 앵그르가 적의 등장을 알렸다.


‘역시, 저놈도 우연히 이곳에 온 게 아니었어.’


같은 포식자라 할지라도 완성과 동시에 권주에게 귀속돼 존재감이 사라지는 구울이나, 술식으로 자취를 감춘 자신을 쫓아 이곳으로 온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놈이 절대지경에 든 사술사라면 모르겠지만.. 싸우는 방식을 봐선 아니야.’


아마도 자신처럼 네 번째나 그와 관련된 일 때문에 왔을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한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건, 놈이 자신의 구울이나 짐승을 죽인 자들과 같은 편일 거라는 생각은 아예 배제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게, ‘저런 괴물이 있는데, 미사일과 총알로 악몽을 죽인다고?’ 라는 물음 앞에서 어떤 답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놈의 정체는 뭘까?’


단순히 미지의 적이라 상정하고 전투를 치르기에는 상대가 너무 위험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가 명언이 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그만 단서라도 찾아보려 머리를 굴렸지만, 400년의 세월 속에도 저런 괴물은 없었기에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어쩔 수 없지, 앵그르를 희생해서라도 놈의 전투방식을 한 번 봐야겠어.’


링에 오른 파이터는 볼 수 없는 주먹을 밖에선 쉽게 보고 훈수까지 둘 수 있지않던가? 그녀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오른쪽 눈만 뜬 채 권속과 이어진 심령의 통로를 활짝 열었다. 그러자 눈 안쪽으로 핏물이 차올라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일렁이더니,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앵그르와 시야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기다란 복도 끝에 자신의 머리를 부순 놈의 모습이 보이자 절로 이가 갈린다.


“이번에는 다를 거다.”


놈은 역시나 여유롭게, 특유의 개 같은 걸음걸이로 거침없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사이 어디서 옷도 구했는지 조금은 작아 보이는 검은색 바지에 전투화, 피로 물든 타이트한 반소매 티셔츠까지 걸친 게 괜히 눈에 더 거슬렸다.


‘마음 같아선 앵그르에게 놈을 짓이기라 하고 싶지만, 무리야. 미완의 방패가 저 괴물을 상대로 과연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까? 그래도 나처럼 한 방에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녀는 태생부터가 구울인 게 분명한 권속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자신을 저토록 칭송하는데 어찌 믿음을 주지 않으랴.


‘우리 주인님같이 위대한 존재를 왜 진작 만나지 못했을까?’


앵그르는 구울이 된 자신의 모습에 너무나도 만족한 상태였다. 수컷으로서의 정체성에 항상 혼란을 주곤 했던 관음증[때때로 그는 행동하는 부셰의 율동을 보며 자위를 즐기고는 했다.]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식인의 충만함은 신천지[新天地]로의 문을 열어줬다.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인다니까?’


그냥 미사여구가 아니라, 새롭게 받은 눈으로 보는 세상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핏빛으로 물들어 있어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주인의 은총으로 가지게 된 강인한 육체는 또 어떤가? 건물 1층 홀에서 시체를 파먹고 있는 쥐들의 움직임까지 감지돼 머릿속에 그려진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정말로 멋진 능력이에요. 무조건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그 어떤 먹잇감도 놓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양손이 뻐근해지고 군침이 돌았다. 어디 그뿐인가? 온몸 가득한 생명력과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파괴적인 힘, 어둠을 관계치 않는 시야 등.. 주인님께서 준 이 놀라운 능력으로 전장을 휘젓는 날을 그리며 헤벌쭉 웃음을 흘리던 그는 새로운 먹잇감이 복도의 삼분지 일쯤 오자 섬뜩한 살의를 흘렸다.


작가의말

공지에서 언급한 대로 끝까지 달리겠습니다. 소수정예 님들  ㄱ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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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6] +1 16.12.16 620 15 10쪽
61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5] 16.12.16 603 16 12쪽
60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부셰] 16.12.16 534 11 12쪽
59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4] +1 16.12.16 588 12 11쪽
58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앵그르] +1 16.12.16 624 12 11쪽
»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3] +1 16.12.16 594 15 11쪽
56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구울] +2 16.12.14 724 10 14쪽
5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2] 16.12.13 640 10 12쪽
54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1] +2 16.12.13 625 13 13쪽
53 아프가니스탄 [붉은 여인.. 바토리, 인연] 16.12.12 694 11 13쪽
52 아프가니스탄 [붉은 여인.. 전운] 16.12.09 510 11 14쪽
51 아프가니스탄 [Soulmate..유린] 16.12.09 564 14 11쪽
50 아프가니스탄 [Soulmate..붉은 여인] +1 16.12.08 620 13 10쪽
49 아프가니스탄 [Soulmate..3] 16.12.08 532 11 12쪽
48 아프가니스탄 [Soulmate..2] +1 16.12.07 637 11 12쪽
47 아프가니스탄 [Soulmate..1] 16.12.07 621 13 13쪽
46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의지] 16.12.06 628 16 15쪽
4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성역] 16.12.06 588 14 15쪽
44 아프가니스탄 [학살조장..괴물] +2 16.12.05 635 13 14쪽
43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허무] +1 16.12.02 630 16 13쪽
42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8] +1 16.12.02 657 14 13쪽
41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7] +2 16.12.01 645 11 11쪽
40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6] +4 16.12.01 575 11 12쪽
39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5] +1 16.12.01 556 13 12쪽
38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4] +1 16.11.30 668 13 12쪽
37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격돌] +1 16.11.29 664 15 11쪽
36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3] +2 16.11.29 782 11 15쪽
35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2] +1 16.11.28 631 13 12쪽
34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1] 16.11.28 654 1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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