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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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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0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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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아프가니스탄 [Soulmate..3]

DUMMY

부대는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기에 구성원들의 충성을 원하지 않았다. 이 특수한 집단이 개개인에게 바라는 건 단 하나, 압도적인 능력에 의한 임무의 완수가 전부였다.


'실패와 패배, 죽음은 같은 단어다.' 가 대장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일 정도로 부대는 승리만을 원했다.


작전 기간이 아닐 때는 부대원들이 어떤 신분으로 무엇을 하든 간섭지 않았고, 각자의 위치만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면 국가 단위의 보호막을 제공해줬다.


'우리의 일원임을 드러내지는 못해도 자랑스러워 해라.'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는 대신 최고의 삶을 부여하고 원하는 만큼 즐기게 해주는.. 그게 설혹 살인이라고 해도 감싸주며 소위 1프로들의 삶을 영위하게 해주니 나름 멋진 삶이 아니겠는가?


‘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집단의 일원이다.’라는 경고를 빼놓고 보면 말이다.


모든 게 자료화 된 세상에서 한 집단이 어느 개인을 지워버리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물론 지인과 가족이 있겠지만, 제대로 된 서류와 두둑한 보상은 그들에게 망각의 당위성을 제공한다. 그래도 찾겠다면 서류철을 한 권 더 준비하면 그만이고, 부대는 아무런 부담 없이 장난처럼 그를 행하곤 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와 관련된 모든 움직임들.. 부대에서 제공한 신분을 말소시키는 작업을 속칭 지우개라고 불렀다. 죽음은 옵션이었고.. 만일 당신이 자신의 동료가 영문도 모른 채 지워지는 걸 목도한다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나는 저렇게 되기 싫어, 방법을 찾아야해.’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겠지.


사람들은 머리를 모았고 희박하나마 방법을 찾았다. 부대가 자신을 지우기 전에 스스로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아주 심플한 해답이 바로 그것이었고 유일한 길이었다. 해서 추적대는 지우개에 참여한 대원들의 경험을 데이터로 남겨서 분석하고 축적해가며 대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우리가 이러는 걸 부대 상층부에서도 알고 있다는 걸 명심해라. 하지만 묵인하지. 왜냐고? 도망자를 추적해서 잡을 때마다 부대는 완벽해질 테니까.’


그런 무섭고도 절망적인 사실과 함께 추적대가 제시한 데이터에는 세 가지 큰 교훈이 있었다.


‘네 가족이 살아 있다면 미끼다.'

‘네가 가진 모든 게 장애물이 될 거고 아는 모든 사람이 너를 배신할 거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죽이고 무조건 단독행동하라.’

‘네가 영위했던 것들, 네 통장 속 1페니까지도 기억 속에서 지우고 너 자신을 재창조하는 것만이 그나마 살길이다.’


위와 같은 교훈을 모토로 탄생한 게 바로 작전명 소멸이었다.


추적대원들은 비밀리에 자신만의 소멸을 준비했다. 자신의 등을 타인에게 맡길 계획 같은 건 아무도 세우지 않았다. 지우개가 발동된 순간부터 모든 걸 장애물이라 여기고 움직여야 했기에, 농장의 9시 지역을 맡고 있던 추적 5조장도 그렇게 움직였다.


“서둘러! 이미 추적은 시작됐을 거야.” 조원들에게 신경질 적으로 소리친 그는 간이 벙커와 주변을 둘러봤다.


조원 두 명은 이미 장비를 챙기고 드론을 회수하는 중이었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가 자신만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점검하고 있으리라는 걸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다들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조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보러 가야 해. 아직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단 말이야.’


하나 남은 혈육의 얼굴을 떠올린 그는 조원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 채 제거계획부터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소멸을 위해 준비해둔 아지트로 가려면 자금이 필요했고, 이곳 벙커의 군수품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삼등분 하기에는 애매한 액수라 누군가는 이곳에 남아야 했다. 혼자서 모든 물품을 지고 이동하는 건 또 불가능해서 다 죽일 수도 없었고..


‘일단 한 놈은 여기에서 죽이고 나머지 한 놈은 자금을 마련한 뒤에 제거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처음 보는 놈들이랑 조를 짜서..’


이번 작전에 함께 투입된 조원은 5번 대대에서 차출된 인원이라 상세한 전력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다.


‘두 놈 다 여간내기는 아닌 것 같은데.’


대머리에 험상궂은 2미터와 금발에 1.7미터의 동안은 그저 평범한 이상이었지만, 둘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단순히 살인을 많이 한 것과는 다른 종류의 섬뜩함이 느껴졌기에 그는 더더욱 신중을 기했다.


‘같은 대대에 있었던 놈들이라고 해도, 지우개가 발동된 이상 따로 움직이겠지? 한 놈을 일단 제거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대세에 따를 거야.’


머릿속을 정리한 5조장은 철수 준비가 마무리되어갈 때쯤 언성을 높였다.


“각자 마무리하면서 들어. 위성이 다시 작동하기 전에 최대한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일단은 우리 3명이 함께 움직이는 게 좋아. 남들처럼 혼자 움직이다가 제풀에 지쳐 죽지 말고, 협동하면 이 빌어먹을 놈의 나라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거다.”


그는 잠시 한숨 돌리며 조원들의 반응을 살폈다. 대머리는 반응이 없었지만, 금발은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였기에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그래도 내가 너희들보다 준비도 오래했고 연줄도 넓으니까, 무사히 국경만 넘으면 자금은 너희들에게 다 주겠다. 그런 뒤에 각자 계획한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생존할 수 있을 거다. 윈-윈, 이거 많이 들어봤잖아? 너희들 생각은 어때?”


대머리는 여전히 무반응이었고, 금발은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리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긍정이라 판단한 5조장은 양 손바닥을 두어 번 부딪치며 소리쳤다.


“좋아, 동의한 것으로 알겠다. 이제 빨리 정리해서 함께 움직이자, 서둘러!”


그는 여전히 대답 없는 조원들을 다그치며 등 뒤쪽으로 멘 소총을 자연스럽게 앞으로 돌렸다. 그의 첫 번째 목표는 벙커에서 약간 떨어져 드론을 회수하고 있는 무뚝뚝한 덩치였다.


‘그래, 죽여 달라고 용을 쓰는데,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타깃을 향해 천천히 총구를 돌리고 방아쇠에 걸친 검지에 슬그머니 힘을 주려는 순간, 간이탄약고를 바삐 정리하던 동안이 어느새 뒤로 다가와 불쑥 팔을 뻗었다. 그는 왼팔로 5조장의 이마를 감싸 머리를 뒤로 꺾고 오른손에 든 전투용 나이프를 그의 목에 꽂아 넣었다. 그리곤 속삭이길..


“이거 죄송합니다, 계획은 참 인간적이었는데 언행일치를 못하시는 것 같아서..”


귀를 핥듯 이죽거린 금발이 나이프를 옆으로 긋자 5조장은 고통보다 허망함에 신음하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흐릿해지는 시야 사이로 드론의 회수를 끝낸 대머리가 걸어오는 게 보인다.


“이런 씨팔 새끼가 멍청하긴! 우리가 너 같은 늙다리한테 당할 거 같아?”

‘우..리? 빌어먹을, 설마 했는데.. 저 둘의 관계를 미리 파악하지도 못했다니.’


이번 작전에 새로 배치된 조원들이 한통속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지우개 앞에서도 함께할 정도의 유대관계는 당연히 없을 거라고 단정지은 게 실책이었다.


‘고정관념이 날 죽일 거라던 대장의 말을 왜 잊었던 걸까? 빌어먹을, 죽어도 싸군. 죽어도 싸. 어쩌면 내가 없는 게 그 아이에게 나을 지도 몰라. 부디 내 자식은 이런 피비린내를 맡지 않길..’


자신의 목을 그은 나이프가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그는 널브러졌다. 한데, 마지막 순간에 이 노병이 떠올린 건 아쉬움이나 분노, 절망 같은 게 아니라 일종의 해방감이었다.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그가 마지막 순간에 얻은 깨달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직은 젊은 군인들이 그 답을 알게 된다면 제법 쓸만한 이정표가 되었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뒤늦은 깨달음은 혼자 안고 떠나기 마련이다. 옅은 미소마저 띤 채 식어가는 노병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대머리가 바닥에 침을 뱉곤 말했다.


“좆같은 늙은이가 끝까지 허세는.. 아, 씨팔! 부대는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어쩐다. 부셰, 너한테 계획이 있지?”


덩치 큰 대머리의 말에 금발 동안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그냥 좋게 생각해, 앵그르. 이번에 살아남으면 정말로 자유롭게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자유롭게?”

“우리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잖아.”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이거 근질근질한데.”


앵그르가 이를 드러내고 웃음을 터트릴 때, 부셰는 전투복의 보조주머니에서 기다란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그를 본 앵그르가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두꺼운 목을 쓰다듬으며 아쉬운 듯 말했다.


“이제부터는 나도 그런 거 하나 만들어야겠어.”


부셰는 뿌듯한 얼굴로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투명한 줄에 가지런히 연결된 수백 개의 손톱이 부딪치며 섬뜩한 소리를 낸다. 저 혐오스러운 물건이야 말로 그들의 지난 2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리라.


“그러면 너는 손톱 말고 발톱으로 해, 같으면 재미 없으니.”

“알았어, 그렇게 할게.”


순순히 끄덕이는 앵그르를 보며 미소 지은 부셰는 지도를 꺼내 탈출로를 확인하곤 귀에서 무전기를 빼 바닥에 던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무전기에서 어떤 회한을 담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버렸던 명예와 이름을 되찾길 기도하겠다. 나는, 그대들과 함께해서..


사실, 부셰와 앵그르에게 뚜렷한 소멸작전 같은 건 없었다. 이제 웬만한 행위로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어떻게 하면 충족시킬까 고민하고 행동에 옮기기도 바빴으니까. 또한 여기 부대가 그들이 도착한 마지막 낙원 같은 거라서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사태를 대비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우개 따위에 죽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었다.


‘우리는 강하거든.’


짐을 챙겨 움직이기 시작한 앵그르가 부셰를 보며 물었다.


“지우개라면 아마도 암살조가 오겠지?”

“그래, 그렇겠지.”

“그러면 소수겠네.”

“그럴 거다.”


부셰의 대답에 킬킬댄 앵그르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말했다.


“오는 족족 다 죽이면 되겠네?”

“바로 그거야. 소수 대 소수라면.. 학살조장급을 제외하곤 우리가 최강이다.”


둘은 서로를 보며 같은 색깔의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인근 시내로 이어진 비포장도로 중 가장 큰길을 따라서 당당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리석은 자만심인지, 아니면 진정한 실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인지는 부딪쳐봐야 알겠지만, 참으로 어리석고 오만한 행보임에는 분명한 듯했다.

아마도, 이미 골수까지 스며든 광기가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했으리라. 하나 또 둘의 모습을 보면, 어떤 선을 넘은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작고 호리호리하지만 온몸이 스프링 같은 부셰는 60kg이 넘는 군장과 드론을 등에 멘 채 개인화기를 손에 들었고,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띌 앵그르 역시 같은 무게의 군장과 개인화기 그리고 제블린 런쳐를 지고 가볍게 이동했다. 각자 100kg이 훌쩍 넘는 장비를 지고 있음에도 힘들거나 지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질 않았다.


설마, 부대에 들어와서 광기가 커진만큼 무력도 상승한 걸까? 한데 그들은 역겨운 변태짓이나 즐겼을 뿐이지 않던가? 혹시, 여기에다가.. 만류귀종이라는 말을 붙이면 돌을 맞겠지? 그래, 그건 아닐 게다. 어쨌든..


날이 저물 때쯤 그들의 호흡도 제법 거칠어졌지만, 걸음에는 속도를 더한 상태였다. 이대로만 가면 내일 낮에는 도시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그러면..


‘일단은 계집부터 하나 사서 좀 풀어야지, 이거 더는 못 참겠다.’


따위의 생각을 한 앵그르가 수통을 꺼내 입술을 적실 때, 부셰의 다급한 고함이 들려왔다.


“전방에 적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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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2] 16.12.13 640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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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아프가니스탄 [Soulmate..붉은 여인] +1 16.12.08 620 13 10쪽
» 아프가니스탄 [Soulmate..3] 16.12.08 531 11 12쪽
48 아프가니스탄 [Soulmate..2] +1 16.12.07 637 11 12쪽
47 아프가니스탄 [Soulmate..1] 16.12.07 621 13 13쪽
46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의지] 16.12.06 628 16 15쪽
4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성역] 16.12.06 588 14 15쪽
44 아프가니스탄 [학살조장..괴물] +2 16.12.05 635 13 14쪽
43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허무] +1 16.12.02 630 16 13쪽
42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8] +1 16.12.02 656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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