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연재수 :
360 회
조회수 :
190,490
추천수 :
4,145
글자수 :
2,037,868

작성
16.12.16 20:09
조회
619
추천
15
글자
10쪽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6]

DUMMY

학살조장이 보유한 경이로운 방어력은 단순히 피부가 질기고 근골이 튼튼한 것에서 비롯한 게 아니었다. 물론 인간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견고함을 지니긴 했지만, 그에게는 면역의 권능이 없었다. 육체의 한계점이 분명히 존재하며 데미지의 축적은 치명적이었다. 이런 그에게 전신·괴물 등의 타이틀을 붙여준 건 타고난 육체가 아닌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갑옷이었다.


그는 이 신묘한 힘을 딱히 칭할 수 없어 혼돈이라, 끊임없이 휘돌아 소용돌이라 했다.


인간만으로는 허기를 채울 수 없어졌을 때부터 그의 몸 속에는 특이한 기운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고작 한 줄기에 불과해 사지를 누비고 다니던 기운은 포식의 양에 비례해 늘어나다가 어느 시점부터 심장을 축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상하좌우 일정한 방향성도 없이 마구잡이로 휘돌던 기운은 충돌·분열·융합하며 기하급수적으로 세를 불리더니, 거대한 소용돌이로 화해 육체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노력의 산물일까, 아니면 타고난 능력일까?’


위험한 공격을 받으면 장기 등의 주요기관을 감싸 보호했고, 육체가 한계점에 부딪힐 때면 세포단위로 퍼져 나가서 그를 넘어서게 하였다. 고작 일부만 컨트롤 될 뿐 본체는 꿈적하질 않아 반쪽짜리 힘이었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면 반드시 움직였다.


한계점까지 끌어올린 소용돌이를 짓누르며 침투해오던 진혈이 막에라도 걸린 듯 멈춰섰다가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하는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학살조장은 소용돌이의 활동을 감지하는 순간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놀라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에 의해 밀려나가던 진혈은 순식간에 몸 밖으로 내뿜어졌고, 남은 건 목을 타고 흘러내리다 저지당한 다량의 핏물뿐이었다. 회전을 멈추고 바닥에 내려선 학살조장은 아지랑이같이 주위를 맴도는 혈무를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면, 이제..’


그는 본능의 속삭임에 따라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가는 핏물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그리고..


‘이럴 순..없어.’


어떤 악몽이라도 뿔 한쪽은 내놓아야 할 만큼 치명적인 공격이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무산되자 바토리는 경악을 넘어 허무함마저 느꼈다. 한데, 적에게 침투시킨 진혈 중 일부가 서서히 소멸되는 게 아닌가?


'아니, 그럴 리가.. 내 진혈을 먹었어?’ 생전 처음 느끼는 위화감이 목을 옥죄인다.


바로 그 순간 경악한 피식자의 적안이 새로운 먹잇감을 맛본 포식자의 흑안을 담아냈으니.. 발톱을 드러낸 짐승은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습관처럼 손을 뻗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마치 가면을 벗는 것만 같았다.


“나도 이제 인간 흉내는 그만둘 테니까, 마음껏 발버둥 쳐봐.”


눈앞의 적도 결국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자 그는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하고 원시적인 무기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갸름하던 턱선이 옆으로 확장되며 입가가 양쪽으로 1cm가량 찢어졌다. 최악의 상태가 아니면 굳이 인육을 먹을 필요가 없었기에 직접 식을 행하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그 역시 천적으로서 태어난 야수였던 것이다.


“네놈은 대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한 바토리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는 순간, 콘크리트 바닥이 또 한 번 비명을 터트렸다. 공간을 압축하며 돌진해간 짐승은 발을 차올려 적의 머리를 박살내고 그대로 찍어 내렸다. 반으로 찢어진 바토리가 그대로 흩어지려는 찰나, 굶주린 짐승은 커다란 아가리를 벌렸다. 그리곤..


‘이런 개 같은!’


혈무로 화해 흩어지던 중 어깨 어림을 뜯어 먹힌 바토리는 미칠 것만 같았다.


‘내가, 잡아먹힐 걸 두려워해야 하는 날이 오다니.’


포식자를 먹이로 하는 포식자, 그것도 이종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니.. 공격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듯 양팔을 벌린 채 서 있는 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빌어먹을,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대 포식자전이..’


살아있는 인간이 단 한 명도 없는 폐허에서 저런 괴물과 부딪힌 걸까? 그녀는 적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법?’


저런 방어력과 속도를 갖춘 적을 상대로 자신의 화염이 통할리 없었다.


‘벽 하나만 더 넘었어도 가지고 놀았을 텐데, 지금으로선 진혈만 낭비할 뿐이야.’


그래도 한 번 해볼거라고 어슬프게 모습을 드러냈다간 잡아먹히게 될 거라는 생각까지 들자 절로 욕설이 흘러나온다.


‘젠장, 이게 무슨..’ 그야말로 개 같은 상황이 아닌가? 궁지에 몰리니 과거 등한시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사실 그녀에게는 지금의 대치상태를 뒤집고 승리를 가져다 줄 만한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타고난 권능을 구체화한 형태라 혈인일 때 가장 빛을 발하는 칼날이었는데, 자그마치 아스모데우스의 손이 되게 한 재능이 그를 외면하게 하였다. 법 하나 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이런 놈이 나타날 줄 알았으면..’


’이럴 줄 알았으면..’ 후회라는 놈은 400년이 넘는 세월로도 잡을 수 없나 보다.


마지막 패, 침투마저 사용할 수 없게 된 자는 절망감에 위축되기 시작했다.


‘흑기사 같은 놈이 또 태어날 줄이야.’


그녀는 과거 자신에게 10년 간의 악몽을 선사했던 엽인을 떠올렸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곤 죽음과 회개, 그리고 서[書]에 관한 게 전부였던 괴물..


‘잠깐만, 서.. 그렇다면 설마 저자가?’


우연히 읽게 된 예언의 한 구절을 떠올린 그녀는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결정을 내렸다.


'그래, 일가의 명예를 등에 진 것도 아닌데 뭐 어때?'


넓게 퍼진 채 천천히 흘러가던 혈무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를 본 유리구슬에 옅은 긴장감이 어린다.


‘방법이 없어.’


그는 승자의 얼굴로 여유롭게 서 있었지만, 실은 조급한 상태였다. 승패의 결착 보다 이대로 적이 도망가면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게 그를 초조하게 했다. 망할 놈의 소용돌이는 언제 움직였냐는 듯 내부를 휘돌며 적의 진혈을 음미하고 있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만일 그가 시초로서의 능력을 자각한 상태였다면 또 달랐겠지만, 세상에 오롯이 홀로 선 그에게 타고난 권능을 알려줄 이 어디 있겠는가? 그 역시 가진바 권능조차 깨닫지 못한 어린 짐승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니 도주를 결심한 바토리가 왜 저렇게 천천히 흩어지는 지를 알 도리가 없겠지.


‘제발, 그냥 이대로 끝내자.’ 그래, 그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바토리 역시 매우 긴장한 상태였다.


이 밀실은 적의 지배력 아래 있었고, 안개화 된 상태로 자연스럽게 뚫고 나가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은 무의식 중에 행사하고 있다지만, 이 빌어먹을 놈의 상황을 인지하게 되면 저 괴물이 또 무슨 지랄을 할지 누가 알겠는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놈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그런 마음가짐으로 기어코 지배력을 벗어나려 하는 순간, 이제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흐려진 혈무를 향해 학살조장이 입을 열었다.


“바토리라고 했던가?”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피안개를 들이마시는 등의 바보짓이라도 할 줄 알았던 바토리는 뜻밖의 담담한 목소리에 잠시 고민하다가 거부감없이 답했다. 모호한 소리를 막 던져 놈의 주의를 돌린 뒤 여유롭게 벗어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으니까.


“그렇다, 나는 태초의 포식자가 해산한 다섯 번째 아이..”


위엄이 묻어나는 울림이 밀실을 가득 메운다.


“피에서 태어나 피를 탐하니 어미가 칭하길 괴물이라, 악마라, 저주받은 짐승이라, 이제는 흡혈귀라고 칭하지만 본디 가진바 이름은 바로 그것이니 어린 짐승아, 이제는 너의 차례다. 혼란 속에 정체성조차 찾지 못한 시초여.” 어차피 떠나기로 마음 먹은 거, 서에서 언급한 도전자에 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가져가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학살조장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대량학살 지역섬멸 특화대의 제1유닛을 이끌고 있다. 내세울 이름은.. 없으니, 학살조장이라 불러라.”


바토리는 그의 음성에서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읽고 그에 관해 물으려 했지만, 학살조장이 먼저 말을 이었다.


“다섯 번째라면 넷이 더 있다는 말인데.. 차에 실은 덩치와 너는 다른 종족인가? 일가나 왕가라 칭한 곳의 규모나 인원은 얼마나 되고 태초, 어미, 시초는 또 뭐지? 그리고 나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기에..”


대화를 하는 도중 혈무의 존재감마저 희미해지자 마음이 급해진 그는 두서없이 의문을 쏟아냈다. 하지만 바토리는 그의 말을 단호히 끊었다.


“애처롭구나. 처음이기에 선조의 지식과 타고난 권능도, 일족의 정체성마저 알지 못할 어린 짐승아. 그대가 정녕 혼돈을 품었다면 결국에는..”


그녀는 잠시 말끝을 흐렸다가 간단히 매듭지었다.


“그가 도전자의 탄생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만을 바라거라.”


그리곤 밀실에서 몸을 뺀 바토리는 아침이 오기 전에 봉인을 위한 제물을 구하려 서둘렀다. 한데 마침 들려온 담담한 목소리가 발을 붙잡았으니..


“최대한 멀리 도망가는 게 좋을 거야. 내게 단 한 번이라도 각인된 존재감은 세상 끝까지 추적할 수 있으니까.”


다급함을 숨긴 학살조장은 싸늘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작가의말

ㄱㄱ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포식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3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결착 : 혼돈의 시대] +4 16.12.16 617 24 11쪽
»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6] +1 16.12.16 620 15 10쪽
61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5] 16.12.16 603 16 12쪽
60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부셰] 16.12.16 533 11 12쪽
59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4] +1 16.12.16 588 12 11쪽
58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앵그르] +1 16.12.16 624 12 11쪽
57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3] +1 16.12.16 593 15 11쪽
56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구울] +2 16.12.14 724 10 14쪽
5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2] 16.12.13 640 10 12쪽
54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1] +2 16.12.13 625 13 13쪽
53 아프가니스탄 [붉은 여인.. 바토리, 인연] 16.12.12 694 11 13쪽
52 아프가니스탄 [붉은 여인.. 전운] 16.12.09 510 11 14쪽
51 아프가니스탄 [Soulmate..유린] 16.12.09 564 14 11쪽
50 아프가니스탄 [Soulmate..붉은 여인] +1 16.12.08 620 13 10쪽
49 아프가니스탄 [Soulmate..3] 16.12.08 531 11 12쪽
48 아프가니스탄 [Soulmate..2] +1 16.12.07 637 11 12쪽
47 아프가니스탄 [Soulmate..1] 16.12.07 621 13 13쪽
46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의지] 16.12.06 628 16 15쪽
4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성역] 16.12.06 588 14 15쪽
44 아프가니스탄 [학살조장..괴물] +2 16.12.05 635 13 14쪽
43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허무] +1 16.12.02 630 16 13쪽
42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8] +1 16.12.02 656 14 13쪽
41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7] +2 16.12.01 645 11 11쪽
40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6] +4 16.12.01 575 11 12쪽
39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5] +1 16.12.01 556 13 12쪽
38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4] +1 16.11.30 668 13 12쪽
37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격돌] +1 16.11.29 664 15 11쪽
36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3] +2 16.11.29 782 11 15쪽
35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2] +1 16.11.28 631 13 12쪽
34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1] 16.11.28 654 17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