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매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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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깃
작품등록일 :
2019.10.3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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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3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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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매우 쉬운 난이도

DUMMY

퇴근 시간이 20분이나 지났다.

허나 아직도 진재진은 사장에게 붙들려 잔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자꾸 이딴 식으로 할 거야? 어? 주인의식을 좀 가지라고 몇 번이나 말 했어?”

“죄송합니다.”


딱히 진재진이 잘못한 건 없다.

이건 그냥 화풀이다. 손님이 많이 없어 심통이 난 사장이 진재진에게 화를 푸는 것 뿐.

진재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말대꾸를 해 봐야 퇴근만 더 늦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앵무새마냥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좀 똑바로 하자. 똑바로. 어휴··· 퇴근 해. 내일 일찍 오는 거 잊지 말고.”


꾸벅 고개를 숙이고 매장을 벗어난 진재진의 얼굴이 구겨졌다.

마음 같아서는 사장의 면전에 대고 욕을 해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해고 당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구한 일자린데.’


전역 후 자취생활이 시작 됐다.

자의로 시작한 게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군 생활 도중에 집안 사정이 확 기울었다. 가족들이 함께 살던 집은 이미 다른 이의 소유였고, 부모님은 작은 반지하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안재진이 함께 살 정도로 여유롭지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진재진도 옥탑방에서 자취를 시작하고 곧바로 일자리를 알아보았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애초에 마땅한 특기도 없는 고졸인지라 안정적인 취업은 힘들었고 알바마저 구하기가 어려웠다.


가는 곳 마다 이미 사람을 구했거나 면접 이후 죄송하다는 연락만 주었다.

가끔씩 막노동을 나가긴 했지만, 일이 없어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았고, 어쩌다 일을 하고 나면 일주일을 앓아 누웠다.


그러다 자취생활 2개월만에 간신히 이 PC방에서 알바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는데, 이걸 그만두면 또 다시 일 자리 구하는 것이 막막해 지리라.


한숨만 내쉬며 걷던 진재진이 허름한 5층 건물 앞에 멈춰섰다.

그 건물을 올려다보던 그가 또 한 번 한숨을 내쉬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옥상에 도달했을 때는 한숨이 아닌 거친 숨이 쉴 새 없이 새어나왔다.


‘언제쯤 이사를 가려나.’


이 5층 건물 옥상에 불룩 솟은 낡은 방이 그의 거처.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생활에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사를 가고 싶은데, 월세나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PC방 알바를 해 봐야 남는 돈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이사를 갈 돈이 있다면 먼저 부모님의 생활을 편하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

지금 상황에서 이사는 그야말로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옷을 벗고,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욕실로 들어서던 중.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는 그의 모친. 불안감을 느낀 진재진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재진아. 퇴근 했니?)

“네. 지금 막 집에 왔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그럼. 먹었지. 그런데 재진아··· 이런 말 하기 정말 미안한데··· 재현이······.)

“그 새끼가 또 돈 달래요?”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긍정의 침묵이었다.

진재진의 얼굴이 아까보다 훨씬 구겨졌고, 손바닥이 그 얼굴을 쓸어내렸다.


“또 사고쳤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친구들 끼리 여행을 가고 싶어 해서. 나중에 엄마가 갚을 테니까··· 재현이한테 30만 원만 보내 주면 안 될까?)


진재현은 진재진의 두 살 터울 남동생이다.

얌전하고 내성적인 진재진과 달리, 어려서부터 활발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는데, 장점이라기 보다는 단점··· 아니, 문제점에 가까웠다.


중학생 무렵부터 질 나쁜 패거리를 형성하여 틈만 나면 사고를 쳤고, 고등학생 무렵에는 명품이니 브랜드니 주제에 맞지 않은 사치를 부렸다.

문제는 부모님이 자식에게 너무 약하다는 부분.

진재현의 어지간한 요구는 다 이뤄졌고, 학생 때부터 집안의 재정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리고 올해 스물이 되고 부터는 경우가 더 심해졌다.

차를 사 달라느니, 혼자 살 수 있는 오피스텔을 구해 달라느니. 게다가 자꾸만 사고를 치고 돈 나갈 일을 만드는 사고뭉치.

집안 사정이 확 기울어버린 원인이 진재현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울어가는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더 악회시키는 것이 더 악질적이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집안 사정 뻔히 알면서··· 여행?’


부모님은 반지하, 형은 옥탑에서 생활하는 와중에도 등골을 쪽쪽 빨아먹으며 제법 넓은 원룸 생활을 하는 녀석이, 돈을 받아서 여행까지 가겠다니?

통화 상대가 모친이 아닌 진재현이었다면 정말 끔찍한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

진재진은 솟구치는 분노를 꾹 참아내며 말 했다.


“엄마. 제가 알아서 말 해 볼게요.”

(재진아. 너무 그러지 마. 재현이도 그런 시기가 있는 거라고 생각 하고······.)


진재진은 자신의 동생이 이 정도 꼴통으로 성장한 데에는 부모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진재현을 감싸는 것만 봐도 그랬다.

정말 사랑하고 감사한 부모님이지만, 이 문제에서 만큼은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허나 그렇다고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재현이처럼 굴었어도 똑같이 감싸 주셨을 테니까.’


진재현만 감싸는 게 아니라, 자신 또한 똑같이 생각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나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께 어찌 화를 낸단 말인가?


“···알겠어요. 걱정마세요. 지금 입금 할 게요.”


결국 진재진은 그동안 반복 되어온 순환을 이어갔다.

통화를 종료하고, 모바일 뱅킹을 통해 진재현에게 30만 원을 입금 했다.

이제 남은 돈은 4만 5천 원. 월급까지는 2주가 넘게 남았는데, 과연 이 돈으로 생활이 가능할까?


‘이러다 그 망나니 새끼 때문에 우리 가족이 다 길바닥에 나 앉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버지께서 열심히 일 하시고, 어머니께서도 식당 일을 하고 계신다. 거기에 진재진까지 알바를 하는 상황이지만, 가정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진재현. 그 망나니 같은 놈을 몰래 패죽이고 묻어버리면 상황이 달라질까?

아니면 제발 정신 차리라고 진심으로 설득해야 할까?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인생 좆같네.’


답답한 마음을 견디지 못 한 진재진이 현관을 나섰다.

옥상에 자리한 평상에 드러누운 그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태우는 것인데, 막상 담배를 태우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조차 답답하게 느껴졌다.


‘돈도 없는데 담배나 쳐 태우고··· 잘 하는 짓이다.’


그 생각마저 답답했다.

그는 단 한 번도 말썽을 일으킨 적 없는 착한 아들이었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비행이라 부를 요소가 있다면 흡연 하나.

술도 마시지 않고, 쓸 데 없이 돈을 쓰지도 않는 그의 유일한 사치이자 일탈.

건강문제와 별개로, 그 유일한 것 조차 마음 편히 누릴 수 없다는 현실이 참으로 답답했다.


‘···어?’


뿜어진 연기를 바라보던 진재진의 공허한 눈동자에 빛이 들었다.

밤 하늘에 느닷없이 펼쳐진 유성우 때문이었다.


‘어어?’


평소에는 달도 잘 보이지 않는 탁한 밤하늘에 별똥별이라니?

살면서 별똥별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지금 펼쳐진 것은 별똥별 하나가 아니라 여럿으로 이루어진 유성우였다.

그것도 순식간에 끝난 게 아니라, 마치 영원할 것처럼 계속되고 있었다.

그 신비로운 광경에 넋을 놓고 있던 진재진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두 손을 모았다.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는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다.


‘제발··· 인생 좀 쉽게 살게 해주세요!’


그리고 유성우보다 몇 배는 더 신비로운 것이 나타났다.

마치 컴퓨터에서나 볼 법한 화면이었다.


『인생 난이도가 VeryEasy로 변경되었습니다.』


“···어?”


그리고 거짓말처럼, 영원할 것처럼 쏟아지던 유성우가 사라져버렸다.

새카만 하늘에는 별 하나 걸려있지 않았다.



***



진재진이 가장 어려워 하는 일 중 하나가 수면이었다.

정확하게는 원하는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는 게 정말 어려웠다.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VeryEasy 난이도 효과!』

『원하는 시간에 눈을 떴습니다!』

『숙면을 통하여 최상의 컨디션을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진재진은 ‘잠들자’고 결심한 순간 곧바로 잠에 빠졌다.

그리고 지금. 정확히 자신이 원하던 오전 6시 정각에 눈을 떴다.


‘···꿈이 아니었구나.’


눈을 뜨자마자 나타나는 화면.

유성우에 소원을 빌고 나타난 그것은 자고 일어난 지금도 나타났다.

꿈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환각 같은 것도 아니었다.

오전 1시 쯤 잠들었으니, 딱 5시간만 수면을 취한 셈.

그럼에도 그는 12시간도 넘게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은 상쾌함을 느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살아오며 쌓였던 피로가 모두 싹 풀려버린것만 같은 개운함!

그야말로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즉 화면에 나타난 내용은 진짜다.


굳! 모! 닝! 빠빠빠 빰 빠!


기상보다 한 발 늦게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듣기 싫은 소리를 곧바로 꺼버린 진재진이 침을 꼴깍 삼켰다.


‘난이도가··· VeryEasy라고?’


어제도, 오늘도, 난이도 VeryEasy라는 화면이 자꾸 나타난다.

고졸이지만 그 정도 기본적인 영단어는 알고 있었다.

VeryEasy. 직역하자면 매우 쉬움.


‘그럼 정말 소원이 이뤄진 건가? 인생이 쉬워진 건가?’


일단 잠드는 것과 일어나는 것이 쉽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고작 5시간의 수면만으로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상쾌함마저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모든 것이 이렇게나 쉽고 효율적으로 변하는 걸까?


‘아, 일단 준비하자.’


진재진은 PC방의 주간 알바생이다.

그의 근무 시간은 오후 3시부터 11시 까지.

하지만 어제, 점장은 오전 근무를 맡으라 말했다.

제안도 아니고 부탁도 아니었다. 진재진의 의사따위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은 명령.

알람까지 맞추고 일찍 일어날 준비를 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오늘의 근무 시간은 오전 7시 ~ 오후 3시 까지. 출근 까지 1시간이 남았다.

진재진은 곧바로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섰다.

곧장 씻진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망할놈의 피부.’


그의 외모는 나쁘지 않다.

부모님의 지인들이 말 하길 연애 할 적에는 선남선녀 소리를 제법 들었다 했고, 당장 동생이 나쁜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 중 하나도 준수한 외모였다.

소위 조금 노는 학생들은 얼굴을 아주 많이 따지니까.


형제가 골고루 유전자를 나눠 받았으니 진재진 역시 나쁜 외모가 아니었지만··· 피부가 문제였다. 언제나 여드름을 비롯한 트러블이 가득하다.

사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도 그의 피부였다.

피부과를 가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럴 돈이 어디 있겠는가?

그냥 폼클랜징으로 꼼꼼하게 얼굴을 씻고 스킨, 로션을 바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 번 더 한숨을 내쉰 진재진이 따듯한 물로 샤워를 시작했다.


『VeryEasy 난이도 효과!』

『세정으로 인해 신체가 청결함을 되찾습니다!』


“···어?”


이번에도 난이도 효과가 나타났다.

기분 탓일까? 얼굴의 거품을 씻어내고 거울을 바라보니··· 피부가 조금은 진정 된 것 같았다.


‘···진짜로?’


허둥지둥 샤워를 마친 진재진이 스킨과 로션을 발랐다.


『VeryEasy 난이도 효과!』

『관리로 인해 피부의 문제가 안정되고 있습니다!』


“허······.”


기분 탓이 아니었다.

거울을 바라보니 울긋불긋한 문제들이 실시간으로 진정되는 것이 보였다.

완전히 사라진 수준은 아니었지만, 놀라운 효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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