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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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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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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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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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3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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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변태라서 나쁘지 않아 2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그는 설명하지 않고 마나가 스스로 결론 내리기를 기다렸다. 다채로운 표정이 마나의 얼굴에 떠오를 때 그는 초조해져 자꾸 열리려는 입술에 힘을 주었다.


“왜 하필...”


마나의 눈이 다락으로 향했다. 마나가 자신이 이끄는 결론에 도달했음을 깨닫고 그는 준비한 말을 꺼냈다.


“저도 남자니까요.”

“뭐... 이해는 해요. 하지만.... 왜 다락이냐고요.”


빈 방이 많은데 왜 다락에서 성욕을 해결했냐는 질문이었다.


“같은 공간이 아니라 생각되어서요.”

“공간...?”

“층으로 나뉘어 있잖아요.”

“....보통 화장실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을 끌며 마나는 민망해했다. 허나 진실을 숨기려 스스로 터부시되는 행위를 했다고 말하는 그보다 민망하진 않을 것이다. 수치심보다 큰 두려움으로 그를 이겨내고 있을 뿐이다.


“마나씨가 사용한 공간에선... 오해를 받게 될까 봐요.”

“누가 그런 오해를... 다락 간다고 상상이.... 흐음...”


자세히 따지고 들어가려니 민망해져 마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가 원하던 반응이었다.


“왜 그리 당당해요?”

“....네?”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에 그는 당황했다. 그리고 곧 자신의 반응이 정상적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침착해야 해.’


그는 자신을 달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야동 보는 것은 인나에게 미안하지 않아요?”

“....그건.”


마나의 말에 그의 마음엔 폭풍이 몰아쳤다.


‘맞아... 중요한 것은 인나씨였는데. 마나에게만 집중해버렸어...’


마나가 사용한 공간에선 그녀의 잔재를 쫓아 행위에 몰두했다는 오해를 받을까 꺼낸 답변이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행위를 연상시킬 사이트를 찾아 급히 보인 것도 그 때문이다. 마나는 급히 보느라 몰랐지만, 그가 보여준 이미지의 여인들은 마나와 연관되지 않을 법한 여인들이었다. 그가 너무 깊이 생각했기에 피부 톤이 어두운 여인들만 꺼내 보였다.


“인나 사진 보고는... 어렵나...”


‘그게 정답이었어!’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고, 알았더라도 방법은 없다. 그는 인나의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적어도 그가 편히 꺼내 볼 수 있는 사진은. 사진은 있지만 전화번호부 프로필사진뿐이다. 그 사진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또 어떻게 보는지 그는 알지 못한다.


“사진이.... 없습니다.”


급히 답하며 그는 마나를 살폈다. 탐색하듯 보던 마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알았어요. 하던 일마저 하... 아니, 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요. 이런 말도 이상하네...”


몇 번 입을 달싹이다 마나는 미소 지었다. 스스로도 어색함을 느꼈는지 급히 지웠다. 자신이 쿨하고 개의치 않겠다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지만, 그는 그 미소에 깊은 자괴감을 느꼈다.


“전 더 잘게요.”


억지 하품을 하며 방으로 들어가는 마나를 보고 그는 천천히 계단에 주저앉았다.


‘...이게 아닌데.’


잘 풀리긴 했으나 상당히 괴이한 오해를 심어주었다. 그는 자신이 마나에게 보여준 이미지를 보고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하필 흑인일까.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는 바랐다.


머리가 아파오자 그는 냉장고로 걸어갔다. 냉동실 문을 열고 머리를 넣은 이유는 단순히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였다. 허나, 그 순간 그는 만세형을 떠올렸다.


‘이렇게 추워도 되는 걸까.’


죄책감을 떨치기 위해 그는 땅 속은 더 춥다고, 이내 죽으면 아무것도 못 느낀다는 과학적 상식을 떠올렸다. 정말 그럴까 의심하면서 괴로움과 죄의식을 떨구려 애썼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 쪽은 다 팔렸잖아.’


그를 다시 움직이게 한 원동력은 마나로 인해 발생한 부끄러움이었다. 연인의 친구. 그것도 매우 가까운 여인에게 (하지도 않았지만 했다 믿게 만든) 자신의 은밀한 행위를 들킨 것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여전히 그의 몸에는 치렁치렁 죄의식의 사슬이 달려 있었지만, 움직일 수는 있었다.


*


마나가 잠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안방으로 들어간 그는 마루를 통해 움직이는 것은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창문으로 나가야겠어.’


안방은 남쪽을 향해 커다란 창문이 달려 있다. 서쪽에도 창이 있지만 작아서 그의 몸이 빠져 나갈 수는 없다. 남쪽 창문은 이불장과 옷장 사이에 놓인 TV선반 위에 위치해 있다. 장롱들이 창의 일부를 가리고 있지만 손이 닫지 않게 밀착되어 있지 않다. 허나,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듯 창문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채 닫혀 있었다.


창을 열기 위해 TV선반위에 올라선 그는 곰팡이가 낀 창틀을 보며 힘주어 당겨 보았다.


-삑!


1cm 움직이는데 상당한 힘이 들어갔다. 그는 행동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큰 소리가 나는 창을 열면 마나가 눈치 챌 수 있다. 창은 이중으로 되어 있고, 나무틀인 안쪽과 달리 밖은 오래된 새시로 되어 있다. 어떤 것이 더 큰 소음을 유발할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뭐하나 쉽지 않다며 서쪽 작은 창을 보던 그는 고개를 흔들며 문고리를 잡았다. 조용히 손잡이를 돌리자 내부의 부속들이 부딪히며 작지 않은 소리가 난다. 이를 깨물어 봐도 그 소리들을 감출 수 없었다. 포기할까 싶던 그는 머뭇거릴 수 없는 이유를 떠올렸다.


마나가 부르기 전 그는 만세형의 몸 일부를 풀장 밖으로 꺼내두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만세형의 몸에 눌려 풀장의 물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또 만세형을 따라 흘러내린 물도 걱정했다. 그대로 두는 것은 사자에 대한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도 그를 쉼 없이 움직이게 해주었다.


삐걱거리는 마루를 가로질러가며 그는 제발 마나가 깊이 잠들었기를 빌고 또 빌었다. 허나 그의 바람과 달리 마나는 깨어 있었다.


‘흑인이었어.’


잠이 들 무렵 자신이 보았던 화면에 나온 외국인의 특징을 떠올리자 그녀는 더 잠들 수 없었다. 생각할수록 정신이 맑아지며 혼란해졌다.


‘인나야. 어쩌면...’


속단하지 말자고 그녀는 생각을 흔들어 떨구려 했다. 허나 의심은 점점 짙어지다 어느새 그의 취향은 흑인여성이 아닐까란 결론에 닿아가고 있었다.


‘사귄 경험이 있었나? 아니면...’


어떤 경로로 그렇게 되었을까. 마나는 고민하다 문득 그의 말을 떠올렸다.


-처음 봤을 땐, 분명 마나씨가 제게 더 매력적으로...


‘아!’


인나와 그가 만나던 날, 마나는 갸루라 불리는 일본문화의 극단적인 화장법으로 자신을 꾸몄었다. 그녀들이 찾아가려던 클럽은 매월 특별한 컨셉을 정해 이벤트를 벌인다. 복고풍 패션이 컨셉이었던 날이었고, 일본인이기도 한 마나는 돋보일 욕심에 갸루풍 화장을 했었다. 피부가 흰 편인 그녀는 짙은 파운데이션으로 톤을 어둡게 했다. 그것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삐걱.


그런 생각을 하던 때, 바닥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그가 오고 있다는 상상을 하며 그녀는 이불을 눈 아래까지 끌어 당겼다.


‘들어오면 어쩌지.’


두근거리며 기다리던 그녀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자 슬쩍 이불을 내리고 문을 보았다.


삑.


또 다시 소리가 들리자 급히 이불을 당겼던 마나는 돌연 이불을 소리 내지 않고 걷었다. 그리곤 슬쩍 자세를 취했다.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한 것인지, 유혹하는 자세였는지는 그녀만 알 것이다. 곧 소리는 아까보다 먼 곳에서 들려왔다. 자신에게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부끄러워져 마나는 이불을 당겨썼다.


‘올 리가 없지.’


그가 오길 기대한 것일까. 자신의 행동에 헛웃음이 나오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는 그가 편안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도록 배려하기로 했다.


-크으으으...


‘음?’


계단을 오르려던 그의 귀로 옅은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갑자기?’


본래 코를 고는 사람이었을까. 어딘지 어색한 소리였다.


그는 남자들과 숙소생활을 자주했기에 진정한 코골이들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잘 알고 있다. 마나가 내는 소리는 너무나 주기적이며, 또 불규칙적이다. 의도적으로 내는 소리라는 것을 간파한 그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뭐야... 왜 저러냐고?!’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는 멈춰선 채 고민했다.


‘왜 코를 고는 척하지? 코를 일부러 곤다는 것은.... 자신이 자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겠지? 그런데 왜? 왜 그.... 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서? 그래도 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은 기회가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나올 생각은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헉!’


그는 급히 방문을 살폈다. 살짝 열린 방문으로 마나가 핸드폰으로 동영상촬영을 하고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해서다. 허나, 그런 행동은 금세 들킨다고 그는 확신했다.


‘카메라는 어두운 곳에서 자동으로 라이트가 켜진다.’


핸드폰이란 문명의 도구를 오래 쓰지 않았던 그였다. 자주 동영상촬영을 하지만, 자세한 옵션에 대해선 고민해보지 않았다. 플래시 기능을 끌 수 있다는 것도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 덕에 그는 안심하며 위로 향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마나의 배려에 감사하며.


*


그는 만세형을 옮기는 것을 미루기로 했다. 소음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뒤에 남을 냄새와 흔적들도 급히 치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시간도 부족했다. 5시에 출근한다고 했던 그였는데, 새벽 3시 30분을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마나가 깊이 잠들었다고 해도 무거운 만세형을 계단으로 옮기기 전, 좁은 다락 입구를 통과하는 것만으로 큰 소동이 일어날 것을 직감했기에 미루기로 한 것이다.


미뤘지만 조치는 취해야 했다. 밤의 서늘한 공기가 만세형을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지만, 낮이 되면 풀릴 것이다. 그보다 그에게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것은 간이풀이다. 유아용 간이풀에 구멍이 나 있었다. 나무 바닥의 튀어나온 못에 긁혀 찢어져 있었고, 그곳으로 물이 새고 있었다. 수압에 의해 눌려 많은 양이 새진 않지만, 다락 바닥은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이 물은 어떻게 치워야 할까...’


방법을 고심하던 그는 집 밖에서 본 지붕에 나 있던 작은 창을 떠올렸다. 다락이 복층이던 때, 현관이 북쪽에 위치했을 때에 전망을 위해 만들어진 작은 창이었다. 꽤 오래전 알게 된 사실인데 잊고 지냈었다. 낮에는 옅지만 빛이 들어온다는 것을 떠올리며 그는 자신의 기억을 확신했다. 문제는 창으로 다가갈 방법이다. 창은 수많은 잡동사니 뒤에 존재한다. 그가 생각한 호스를 통해 물을 외부로 배출하는 방법을 쓰려면 어떻게든 고무호스를 창밖으로 내놓아야 한다.


‘돌겠군.’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란 낡은 옷을 들고 와 바닥을 적시는 물기를 닦는 것이다. 그는 안방으로 움직여 안 쓰는 옷과 이불을 들고 다락에 올라왔다. 만세형은 다락입구에 이불을 깔고 눕히고, 그는 풀장의 구멍위에 무엇에 썼는지 모를 쇠뭉치를 올렸다. 그 후 주변으로 흘러나온 물기를 닦고 이불을 둘러 물기를 흡수하게 했다.


다락을 내려와 문을 닫으며 그는 마나를 어떻게 밖으로 내보낼지 고민했다.


*


5시. 그가 시동을 켜고 떠나는 소리를 마나는 들었다. 옅은 잠이 들었던 마나는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담 위로 보이던 그의 차가 보이지 않자 그녀는 마루문을 열었다. 그 순간 집돌이가 밖으로 나갔다.


“어디...가...아. 나도 쉬야 해야겠다.”


문을 연 채 화장실에 들어갔던 그녀는 여전히 마당에 있는 집돌이를 불러들이고 마루문을 닫았다.


‘조용하다.’


한기와 정적이 그녀의 정신을 급히 깨웠다. 그가 있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에 그녀는 집돌이에게 다가섰다.


“집돌아. 언니랑 같이 있어줘야 해. 알았지?”


집돌이가 손을 핥아주자 용기가 난 마나는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다락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뭐가 있어서 그렇게 부시럭거린 걸까.”


호기심이 들자 그녀의 발걸음이 다락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에 첫 발을 올린 채 위를 본 그녀는 어두울 것이란 생각에 방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들고 나왔다. 빛을 계단에 비추자 사물이 더 또렷하게 보이지만, 빛이 닫지 않는 곳은 더 어두워졌다.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지닌 채 마나는 계단을 한발 한발 올라갔다. 곧 위로 밀어 열리는 문이 나오고, 그녀의 손이 문에 닿았다.


“....잠깐 보기만 할 거니까.”


힘주어 밀지 않아도 쉽게 올라가는 문을 한손으로 지탱한 채, 그녀가 계단 위로 발을 올렸다. 머리를 쑥 올리며 본 광경은 어둠뿐이었기에 그녀는 급히 다른 손에 쥔 핸드폰을 올렸다.


“앗!”


공간 감각이 떨어지는지, 공포 때문인지, 서툰 손짓에 핸드폰이 떨어져 버렸다.


“마마!”


놀란 그녀가 급히 계단에서 뛰어내려 핸드폰을 살폈다.


“....아, 다행이다.”


기능에는 문제가 없었다. 핸드폰의 가치보다 그 안에 든 추억과 사회성이 그녀에게 더 값진 것이다. 그걸 잃는다는 두려움은 미지의 공간을 탐험하려다 느낀 것보다 큰 것이다. 상대적 두려움을 이겨내자 용기가 생겼다.


“...볼까.”


다시 올라가려니 귀찮음이 인다. 설 잠을 잔 덕에 졸리기도 했다. 고민은 오래지 않아 끝났다. 그녀는 호기심이 일면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시 문 앞에 선 순간 그녀는 타인의 영역을 살피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느꼈다.


‘인나를 위해서야.’


그의 성적 판타지. 혹은 취향이 인나에게 악한 영향을 준다면 헤어지게 만들 것이라 생각하며 그녀는 문을 위로 올렸다. 그리고 손을 유의해 움직여 어둠을 쫓았다.


“....!”


너무 놀란 그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


집에서 멀어진 그는 우선 차에 기름을 채웠다. 물류센터를 겸한 체인사업본부 가까운 곳에 회사 차량들이 월 결제하는 주유소가 존재한다. 그도 이용하기로 한 곳이지만 그곳까지 가기엔 멀고, 쉬는 날이라 회사에 갈 일도 없었기에 그는 동네 주유소에서 적은 양만 주유했다.


“휴지도 안주다니.”


적은 양을 넣었다고 차별하는 주유소를 그는 다신 오지 말 곳으로 기억해 두었다.


그는 차를 움직여 트럭이 자주 서고, 비용이 적게 드는 주차장을 찾아보았다. 유료주차장들에 부담을 느낄 때쯤 졸릴 때 이용하기 좋은 갓길소개라는 개인블로그를 찾아냈다. 개인블로그에 소개된 장소가 가까웠기에 찾아간 그는 빠져나가는 차량들을 보고 잠시 기다렸다. 그와 달리 일하기 위해 움직이는 이들이었다. 차량이 적당히 빠졌다 싶었을 때, 그는 나무 아래에 차를 세웠다.


‘못 참겠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차 뒤로 돌아간 그는 문을 살짝 닫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공구함을 침대삼아 잠이 들었다.


*


6시간이나 잘 줄은 몰랐던 그였다. 더 잘 수 있었지만 그는 타의에 의해 깨어났다.


“죄송합니다.”

“아니, 피곤하신 거 아니까 뭐라고 안하는데... 놀랐습니다. 정말.”


그가 차를 세운 곳에 평소 그 자리에 주차하던 이가 도착했다. 낯선 차가 자신의 자리에 서 있자 기분도 상하고, 무슨 일을 하는 차인지 보려던 차주가 살짝 열린 문으로 화물칸을 본 것이다. 공구함 밖으로 나와 있던 그의 발 한쪽도.


놀란 차주가 신고해 출동한 경찰이 그를 깨웠다. 경찰들도 신고를 받고 시체가 아닌가 걱정했다고 한다. 공구함 속에 들어 가 자는 트럭기사는 좀처럼 볼 수 없으니까.


“그런데 참 잘 만들었네요. 무슨 관 같지만...”

“형태는 그래도 안락합니다. 스티로폼패드 깔면 등이 따뜻하고.”

“저건 뚜껑인가요?”

“네, 모기장 대용으로.”

“어... 참, 제가 차에서 잠든 기사분들 여러번 봤지만, 이렇게....”


경찰도 신고한 차주도, 그도 웃었다.


“단속 없는 곳이라도 도로입니다. 새벽이라면 모를까, 이런 낮에 차가 서 있으면... 무슨 말인지 아시죠?”

“예.”

“주의하세요. 조회해보니 사고이력도 없고, 술도 마시지 않으신 것 같으니....”


그는 거듭 감사하다며 경찰을 떠나보냈다.


“더 자도 되요.”


신고한 차주가 미안해하며 그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이제 일 해야지요.”

“몇 탕이나 뛰기에...”

“때에 따라서...”

“나도 같은 일 하지만 무리하면 나만 손해에요.”

“예, 조언 새겨듣겠습니다. 선배님.”

“선배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신고한 차주는 그에게 피로회복제도 주었다.


*


‘상황부터 살펴야겠지.’


집으로 가는 길가에 멈춰선 그는 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잤어요?”


한참동안 신호가 간 후에 전화를 받기에 그가 물었다.


-날씨.

“예, 마나씨.”

-....내가 다 이해하려고 해도요.

“....네.”


불안감이 엄습하자 그는 주먹을 쥐었다.


-후우, 미안해요. 궁금해서 봤어요.


“....뭘....보신 건데요.”


-미안해요. 다락...


그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이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멍해진 탓에 그는 마나의 목소리만 듣고 있어야 했다.


-다양한 성적판타지를 지닌 사람들에 대해서 들었고, 저도 경험해봤어요.


“....예? 예, 뭐...뭐라고요?”


-후우... 봤다고요. 그 풀장.


“풀장...?”


시신을 본 것은 아니구나. 봤다면 이렇게 통화할 수 없겠지. 그는 사라져버린 희망의 단서를 꽉 쥐고 말했다.


“예, 풀장.”


-추운데 물에서 떠서... 그런 거죠? 자위의 형태가 그 정도면... 알아요. 빠져들면 버릇, 습관처럼 그렇게 되는 것을. 인나가 있다가 갑자기 사라져서 더 그런 거죠? 제가 나타나서 매력적인 몸매도 막 보여주고... 미안해요. 제 잘못이 커요. 그래도요. 날씨.... 아무리 그래도....


‘이 여자... 무슨 오해를 하는 걸까?’


“네...”


-이젠 끊으셔야 해요. 그렇게 자위를 지속하면 건강에도 안 좋아요. 아니...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안 좋지 않을까요? 춥잖아요.


“아...아?”


-저 인나 친구로써 그건 용납 못하겠어요. 날씨가 흑인여성에 대한 판타지를 품고 있다는 것은 이해할게요. 하지만 풀에서... 춥잖아요. 그걸 인나가 돌아온 후에도 계속 할 건 아니죠?


“예....에? 아... 자위... 아! 아?”


-전 반대하겠어요.... 저 지금 물건 사러 백화점 나와 있어요. 퇴근하고 몇 시에 들어와요?


“늦게 가겠지만....”


-그럼 안 되겠네... 제가 보고 있는 동안에 치우는 건 부끄러울 것 같아서 자리 피해주려 했는데...


“아! 오늘은 일찍 끝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치울 수 있죠?


“무...물론이죠. 치우려고 했습니다.”


-아, 그랬구나. 치울 겨를이 없었어요?


“네네. 인나씨도 오고, 일도 바쁘고, 마나씨도 갑자기 오고.”


-아아. 내 잘못이었구나. 제가 갑자기 안 갔으면 알아서 치우고 내게 들키지도 않았을 텐데.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예.”

-친구들 만나서 놀고 있을게요. 치우고 연락 주실래요?


‘너 집 있잖아! 왜 다시 오는데! 왜!’


“....예, 그러겠습니다.”

-인나에게는 숨길게요. 들어보니 인나 만나기 전 그렇게 자신을 위로...

“여보세요? 아, 여기 난청지역인가보네... 잘 안 들리네요. 제가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듣기 민망해 그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


“....젠장... 완전 변태로 찍힌 거잖아.”


‘살인마보다는 나은가.’


쓰게 웃으며 그는 집으로 차를 몰았다.


*


집에 마나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도 그는 마나가 혹시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았나 의심이 들어 주변을 살폈다. 그러던 중 왜 마나가 만세형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만세형은 위로 들려 열리는 문 뒤쪽에 눕혀져 있었다. 낮에도 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거기에 이불로 포장되어 있어 더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무엇보다... 변태인 내 성적취향을 알게 되었기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호스를 연결해 물을 빼내며 그는 한숨을 거듭 내쉬었다. 물을 빼내는 동안 그는 만세형을 마루로 옮겼다. 그리고 크게 생각하지 않고 마루를 통해 밖으로 나가려던 그의 눈에 훤한 마당이 보였다.


“....제정신이 아니네.”


낮에 시신을 옮기려는 자신을 책망하며 그는 머리를 굴렸다.


“사람이 아무리 오가지 않는다고 해도.”


주차하러 오는 이가 있을 수 있다.


“아? 잘 된 일인가?”


신고해 견인한다는 겁을 준 이후 주차하는 이가 없어졌다. 그는 혹시나 하며 밖으로 나가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짓을 했나 싶었는데... 잘 한 일이군.”


그는 차를 움직여 옆문과 대문을 가까이 붙였다. 밖으로 열리는 구조의 문이라 상당한 거리를 떨어트려놓아야 했다. 그러자 지나가는 이들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결책은 곧 스스로 찾아냈다. 문을 완전히 열어 차벽에 붙이면 열고 닫을 필요가 없어진다. 차문을 고정시키고 그는 대문 가까이로 차를 붙였다.


“정남인가?!”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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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오래된 집 20.05.14 53 6 20쪽
10 그들의 일탈 20.05.14 48 4 15쪽
9 수상한 여인 +2 20.05.13 55 7 15쪽
8 유품 20.05.13 50 5 21쪽
7 증거물 20.05.12 55 4 18쪽
6 유서는 반송처가 필요하다 20.05.12 72 7 20쪽
5 떠나기 위한 준비 20.05.11 94 7 17쪽
4 다락과 세혼 +1 20.05.11 109 8 22쪽
3 공존 +1 20.05.11 130 1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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