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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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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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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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급발진 1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기분 좋게 눈을 뜬 경험이 얼마나 될까. 가물거리는 의식에 그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눈 뜨는 것도 싫었던 삶이었다. 바쁘게 살지 않으면 굶게 된다는 경험에 눈을 뜨면 바로 일어났던 그였다. 느긋하게 몸을 뒤틀며 그는 또 미소 지었다.


‘신기한 기분이야.’


가져본 적 없던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굼뜨게 몸을 뒤척이다 기분 좋게 일어난 그는 빈 옆 자리를 보고 멍해졌다. 행복감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차가운 아침공기가 그의 환상을 모조리 깨버리는 듯했다. 어제 하루의 기억이 모조리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그녀가 남긴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멀어지려던 행복감은 진하게 남은 여인의 잔향과 함께 다시 그를 감쌌다.


“.....간다고 말이라고 하지.”


혹시 메시지를 남겼을까 핸드폰을 든 그는 대출받으라는 메시지 몇 개를 지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열었을 때, 또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참.”


볼을 긁으며 다가간 식탁에는 그녀가 남긴 쪽지가 남아 있었다. 잘 차려진 밥상과 함께. 두근거리며 펼쳐본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즐거웠어요.]


다른 말은 쓰여 있지 않았다. 의자를 당겨 앉은 그는 이마를 쓸어 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결국... 일탈이었나.’


자신도 즐거웠으니 되었다 생각하지만, 쓰린 가슴은 쉽게 달래지지 않는다. 이 기억은 상당히 오래갈 터인데, 그때까지 어떻게 견딜까. 언제나 그는 혼자였고, 시간이 지나면 괴로움에 죽을 것 같은 시기도 지나감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걱정했다.


“너와 나만 남았구나.”


그래도 혼자는 아니다. 그는 집돌이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처럼 집돌이를 안고 싶었다. 눈치 빠른 집돌이는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쳐 버렸다.


“...매정한 녀석.”


빨리 잊기 위해선 다른 일에 몰두해야 함을 안다. 그는 밤에 일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일찍 눈 뜬 오늘 남은 시간 동안 미룬 눈에 대해 분석하기로 마음먹었다. 좁은 인간관계를 가진 그에게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온도변화... 시안물감... 아니, 시온인가? 시온 페인트...으음... 이런 것이 칠해진 건가. 투명한 곳에도 변화가 일어나나? 아니면 이건 그런 특성을 지닌 플라스틱인가....”


도료는 있지만 그 성질을 품은 반투명하고 경도가 높은 물질은 검색으로 찾아내지 못했기에 그는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성질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패디큐어?”


발톱에 칠하는 동영상을 찾아낸 그는 영상을 살폈다.


“유리조각을 붙인 것뿐이잖아? 음, 그럼 유리조각... 아!”


그는 도로 경계선 작업을 하던 때를 떠올렸다. 야간에 전조등에 반사되도록 도료에 유리가루를 섞던 것을 떠올린 것이다.


“그런 원리인가?”


유리가류가 섞인 스티커가 붙어 있어 빛에 따라 변화하나 싶었던 그는 곧 실망했다. 이렇게 화려한 특성을 지닌 물품의 본래 용도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혹시 이런 일에 종사하던 분인가? 이 물건을 팔던 분? 뭔지 모르지만... 장난감제조...”


그는 급히 사체에서 찾은 지갑을 꺼냈다. 그 안에 있던 명함에 사자의 직업을 특정할 단서들이 담겨 있었다.


“이름과 같은 명함은 한 장 뿐이군... 보험회사에 다니셨구나.”


연관성이 없었다. 실망하려던 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애들에게 주려고 산 장난감?”


핸드폰용 장신구도 사자의 나이대나 외형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여성적이라 볼 수 있을 만큼 아기자기한 것이었다.


‘그것도 애들이 사준 것이라면... 그런 취향을 가진 딸에게 주려고 반짝이는 눈동자를.... 선물로 줄 아빠는 없겠지.’


눈알을 선물로 준다니. 그는 웃었지만 혹시나 하며 검색해보았다.


‘딸에게 줄 눈알....’

“뭐?!”


눈알 모양의 젤리가 있었다. 혐오스럽지만 아이들이 좋아해 불티나게 팔린다는 리뷰의 영상들도 많이 보였다. 허나, 아무리 살펴봐도 그가 들고 있는 것과는 먼 재질이었으며, 무엇보다 먹을 수 있는 식품이었다.


“먹을 수...”


살짝 깨물어보고 그는 급히 침을 뱉었다. 하수구에서 꺼낸 것임을 떠올려서다.


“달지도 않고.... 흠, 모르겠군.”


두 시간 가량 고민하고 검색했지만, 눈 모양의 무언가의 정확한 형태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괜한 일에 시간을 끌었구나, 후회하며 그는 자리에 누웠다.


“킁...”


향기가 파고들어온다.


-와인을 사두셨군요.

-좋아하시잖아요.

-제가요?

-네, 집에서 와인향이 확 나던데요. 특히 주방 부근에서.


그는 사자에게 예를 다하려고 와인병을 뚜껑도 열지 않고 끓는 물에 넣었다 고백하지 못했다. 그녀가 사온 비싸 보이는 와인의 쓴맛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다.


‘이건 무슨 향일까.’


아직 남아 있던 여인의 향기가 그를 더 괴롭게 했다. 치우지 못한 책상위에 놓인 컵에 새겨진 입술을 보고 그는 자신의 입술을 손끝으로 만졌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급가속하며 그의 전신을 감싸려 할 때, 그는 다락에 놓인 사자를 떠올렸다.


“차라리 잘 되었지. 자수할 건데...”


만약 자신의 상황을 뒤바꿀 눈알이었다면, 지금 이 순간 더 괴로웠을까. 그는 이 순간만큼은 괴로웠을 것이라 확신했다.


마음이 뒤숭숭했기에 그는 이른 저녁 일하러 나섰다. 그의 출발지점은 버스로 여섯 정거장을 가야 나오는 동네의 번화가다. 자신의 동네에서 시작하면 아는 이들이 생길까 싶어 일부러 멀리서 시작하는 것이다.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일찍 술자리가 파한 손님을 잡고 그는 움직였다.


9시가 조금 넘자 콜이 넘쳤다. 골라잡을 수 있는 시간이라 그는 다음 행선지를 염두하고 콜을 수락했다. 11시가 조금 넘었을 때, 그가 사는 시로 가는 콜이 들어왔다. 허나 그는 일부러 더 먼 곳으로 가는 콜을 선택했다.


새벽 한시 반. 더는 돌아가지 않을 핑계를 찾지 못한 그는 집돌이가 걱정된다며 돌아가는 콜을 기다렸다. 그때 걸려온 전화에 그는 다시 멍해졌다.


‘언제...’


저장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핸드폰의 비밀번호를 걸어두지 않고, 지문인식을 통해 보호하는 그였다. 이름을 바꾸기 위해선 그의 엄지손가락을 핸드폰위에 올려야 한다.


‘잠든 사이에?’


그런 행위를 한 여인에 대한 거리낌은 없었다. 상상하며 귀여운 여인이라며 그는 미소 지었다. 그가 놀란 점은 다른 것이다. 자신이 그런 행위에 민감하지 못하게 잤다는 것이다. 그의 집 다락에는 시신이 있었고, 봄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무뎌진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끈기지 않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왜 연락 안 해요?


날선 목소리였다. 반가웠지만 그래서 더 믿기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화면을 보았다. 꿈인가 싶었던 여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인나씨.”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꿈인 줄 알았어요.

-네? 네에?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린다.


-저도요.


그녀의 목소리에 그의 몸이 녹을 듯 흐물거렸다.


-어디에요.

“지금... 용인이군요.”

-거기까지 왜 갔어요? 술 마셔요?

“아뇨. 일... 아... 저 대리운전 합니다.”


말이 없었다. 숨길 것을 그랬나. 작게 후회하면서도 잘했다며 그는 자신을 다독였다.


-몰랐어요.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거기서 집에 어떻게 가요?

“돌아가는 손님 있으면 가거나. 첫차타고 가요, 보통은.”

-그때까진 뭐하고요?

“핸드폰 게임해요. 피씨방 가거나.”

-원래 그렇게 멀리 다녀요?

“....오늘은... 그랬네요.

-전 집이에요.

“아... 피곤하실 텐데.”

-주소 불러주세요.

“....예?”

-갈게요. 불러요 빨리. 화내기 전에.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돌연 여인은 열부터 수를 세기 시작했다.


-다섯. 넷... 빨리요.


참지 못하고 다시 종용한다.


“인나씨.”

-저 안잘 거예요, 안자고 계속 통화할 거예요.


떼쓰는 아이가 되어버린 여인의 목소리에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입가엔 옅은 미소가 새겨져 있었다.


‘그래도 될까. 잠시만... 그래볼까.’


“괜찮은가요. 저...”

-빨리 말해요.


그는 하는 수 없다며 현재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녀의 집이 어딘지도 모른 채 말해놓고 그는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인나씨 어디 사십니까?”

-저 서울인데 가까워요.


머리에 저장된 지도를 떠올린 그는 적지 않은 거리라는 것을 계산해냈다.


“...무슨. 그만 두세요. 내일 또 일하셔야 하잖아요.”

-이미 출발했습니다.

‘빠르다...’


어쩌면 찾아올 준비를 한 채 차에서 전화를 한 것일까.


-목적지까지 사십. 오. 킬로미터. 남았습니다.


들리는 내비게이션 음성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요.

“오는 길 쪽으로 올라가는 차 있으면 타고....”

-안돼요. 거기에 기다려요.

“....조심해서 오셔야 합니다. 꼭.”

-아...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 운전 잘해요.


‘운전?’


문득 그는 여인의 직업을 떠올렸다. 시간을 확인하고 그는 오늘이 쉬는 날도 아닌데 가게가 일찍 문을 닫았나 싶었다. 그러다 또 생각이 닿은 것은 여인의 직업상 자주 접하게 되는 술에 대한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았나.’


이어진 생각은 다시 운전에 대한 것이다.


‘술을 마셨다면, 직접 운전하지 못하겠지. 그럼...’


그는 어딘지 위험해 보이는 남성이 몰고 온 차 문이 열리며 나타나는 여인을 떠올렸다.


‘그럴 수도 있는 건가...? 그 정도 급이면... 적어도 매니저급... 어쩌면 마담...’


생각이 거듭될수록 여인의 옷차림만 계속 바뀌어갔다. 가슴부위가 푹 파인 금박 드레스를 입은 여인.


드르륵! 탁!

-날씨!


정장을 입은 여인.


드르륵! 탁!

-날씨?


털 많은 코트를 입은 여인.


드르르르...

-타요.


“참나... 어째 위화감이 전혀 없을까.”


어제 함께하던 시간 동안 들은 여인의 이야기들이 그의 뇌리에 맴돌기 시작했다.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모두 진실은 아닐 것이라 예상하며 들으면서도 그는 여인의 말을 가슴과 머리에 꼭꼭 저장해 두었다. 일탈이라며,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라며 흘려들을 생각이었지만 부드럽고 듣기 좋은 목소리는 생생히 그의 안에 남아 버렸다.


“...오면 알겠지.”


한숨을 내쉬며 그는 각오를 다졌다. 만약 승합차와 함께 그녀가 나타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하자 다시 막막해진다. 과연 그 차량에 함께 타고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험악한 표정을 짓는 남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에 아랑곳 않고 여인은 그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는 상상도 들었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 덕에 그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차량에 뒤늦게 눈길을 줄 수 있었다.


“어! 저건가 보군.”


그는 앉아 있던 버스 정류장에서 나와 섰다. 그가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손을 흔들자 건너편에 있던 승합차가 급히 중앙선을 넘어와 그 앞에 멈춰 섰다. 과격한 운전방식에 그는 상상의 일부가 맞아 떨어진다 여겼다.


‘음?’


그는 옆문이 열리길 기다렸지만, 열린 것은 앞쪽 조수석 창문뿐이었다. 그는 생각 없이 문을 열려고 했다.


덜컥.


“어?”

“예? 아니... 길 좀 물어보려는데... 타시게요?”

“네?”


급히 차안을 본 그는 남성 혼자 타고 있음을 확인했다.


‘아닌가.’


“여기 명지대역이 어느 쪽입니까?”

“아, 명지대요. 쭉 가시면 됩니다.”

“얼마나 가야 합니까. 기름이 간당해서.”

“가깝습니다. 버스로 한정거장 반 정도...”

“다행이군... 아, 감사합니다.”


창을 올리며 차량이 빠르게 멀어질 때, 그는 그 흔적을 쫓고 있었다. 혹시 자신을 만나라고 여인이 보낸 차량은 아닐까 여전한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내가 명지대에 있다고 했나?’


한참을 보다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전조등을 켠 차량 한 대를 볼 수 있었다. 차량 앞쪽 그릴에 붙은 네 개의 원을 보고 그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무관한 차량이라 여긴 것이다.


“날씨!”

“음?”


그는 들리는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려야 했다. 하얀 외제차의 운전석을 열고 나온 여인이 손을 흔들자 그는 급히 다가가 섰다.


“왜 그렇게 빤히 봐요. 화장해서 몰라봤어요?”


솔직히 그렇다고 말할 뻔했다. 처음 보았을 때 진한 화장했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한 듯 안한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어제보다 더 예쁘게 보였다. 전문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어두운 톤의 정장도 그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요소였다.


“너무 보신다. 부끄러워요... 어서 타요.”


먼저 차에 오른 그녀를 보고 그는 조수석을 열고 올라탔다.


“정말.... 감사합니다.”


할 말은 마구 떠올랐다. 이 차는 뭐냐. 어떤 차냐. 본인 차냐. 가격은 도대체 얼마냐.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그는 주변상황을 훤히 보여주는 3D화면을 보고 주눅이 들어버렸다.


“추웠죠?”

“괜찮았습니다.”

“밥은요? 배 안 고파요.”

“...네.”


아무렇지 않게 구는 여인처럼 굴 수 없는 자신이 한심했다.


“딱딱해.”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우우.”


여인이 입을 내밀자 그는 볼을 붉혔다. 어제 분명 종일 함께 한 여인인데 그는 어색함을 느꼈다. 고급차에 앉은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서요.... 나 에너지가 부족해.”


농담을 서슴없이 던지는 것을 보니 내면은 같구나, 그는 생각했다. 그녀의 말에 용기를 내 가볍게 입을 맞추자 여인이 주먹을 불끈 쥐며 차량의 핸들을 잡았다.


“벨트 매세요.”

“예.... 그런데 인나씨으!”


차량이 가속하는 속도에 놀란 그의 몸이 뒤로 젖혀진다.


“잔소리 금지. 저 운전할 때 예민해요. 참고로 카라(KARA) 교육 수료했고요. C급이지만 출전자격도 있어요. 레이싱스쿨도 다녔고, 대회참가도 하려했지만....”


그는 아는 바가 없어 입을 열지 못했다. 친절한 여인은 그가 모를 것 같은 것들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가 막 이 차의 이름은 무엇일까 떠올리면 그녀는 차의 이름과 유래, 특징 등을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곤 했다. 그런 설명을 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운전하는 것을 보며 그는 작게 감탄했다.


‘나보다 잘하네.’


교통법규를 준수하며 여인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차를 움직였다. 그는 어떻게 40분도 안 걸려 여인이 도착했는지 그는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런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있어요?”

“네, 생각보다 많더군요. 방금 말한 심부름은 약과고요.”


두 사람의 대화에는 빈공간이 거의 없었다. 그는 대리운전을 하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덤덤히 말 해 그녀를 연신 웃게 했다.


“쯧! 양아치 새끼들.”

“네? 아... 그 사람들 참... 술 마셨나. 왜 저리 비틀...거려.”


여인이 욕도 할 줄 안다는 것도 그는 알게 되었다. 위태롭게 운전하는 운전자를 볼 때마다 여인의 입에선 상스런 욕이 가볍게 흘러나오곤 했다. 거의 본능적이며 무의식적인 행동임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를 볼 때면 다시 활짝 핀 꽃처럼 밝게 미소 지었으니까. 운전대 잡으면 성격이 변하는 부류구나 싶을 때, 여인이 말했다.


“왜 전화도 안했어요?”

“....아.”


‘갑자기?’


하던 이야기를 이어갈까 생각하던 그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자존심도 엄청 상하고. 내가 꼭 먼저 해야 하나 싶구... 정말 미워요.”


<즐거웠어요.>


그렇게 인연이 끝났다 여겼다. 그런 쪽지 한 장 남기고 간 사람에게 연락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는 그런 말을 전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결국 가식 섞인 변명이 나오고 말았다.


“일에... 일에 지장을 줄까봐....”

“저 11시에 출근해요.”


‘그렇게 일찍 가게에 나가는구나. 부지런하네...’


그는 보통 오후 늦게 아무리 빨라도 오후 2~3시경이 출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1시부터지만 일찍 가서 밥 먹고 준비하고 그래요. 아침에 나갈 때도 있지만, 보통 그래요. 늦게 끝나면 여덟시고, 빠르면 일곱시에 끝나요.... 외웠어요?”


‘여덟시? 다음날 여덟시라는 건가?’


“네? 아... 예.”


그는 급히 핸드폰을 열고 적었다. 슬쩍 여인을 본 그는 그녀처럼 미소를 지었다.


“주 오일 근무해요.”


‘여유롭게 일하는구나. 다행인가...’


직급이 높으니 이렇게 나올 수도 있고, 이런 고급차도 타는구나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주말엔 더 바쁘지 않나?’


“모...목요일에 쉬는 거죠?”


“아뇨. 그날은 임시 휴무였어요. 정기 휴일은 토, 일이고요. 보통 회사들하고 똑같아요. 토요일에 출근할 때가 가끔 생겨요.”


‘가끔인가...?’


참 특이한 유흥업소라고 그는 생각했다.


“네네...”


그는 빠르게 적고 다시 여인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여인이 웃었다.


“풋! 귀여워.”

“감사합니다....”


‘당신도요.’ 라고 말을 하려다 너무 친근한가 싶었다. 이름을 부를까, 더 좋은 호칭이 있을까 생각하다 그는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음... 휴가를 잘 안 써서 밀렸어요. 연차 오래 쓰면 팀장에서 밀릴까봐 안 쓰고 버티는 중이에요. 언젠가 쓰긴 해야 하지만.... 뭐, 결혼식이라도 하면 쓸까. 아니면...아... 미안해요.”


‘연차도 있구나. 특이하네.’


그는 결혼 이야기는 귀담아 듣지 못했다.


“예? 아...앞 보셔야죠.”

“넵!”


다시 정면에 시선을 둔 여인이 계속 힐끔거리자 그가 말했다. 왜 눈치 보는지 알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아요.”


결혼이라니. 생각해보지도 않은 문제다. 미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하고 싶어졌지만, 그는 다른 말을 꺼냈다.


“저 대리 운전합니다.”

“네? 아... 알게 되었어요.”


이미 아는 이야기를 왜 할까싶던 여인이 이내 깨닫고 답하자 그는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살폈다.


“실망하셨죠.”

“...네.”


‘역시 그렇겠지.’


“다른 일 할 생각 없어요?”

“아직은...”

“운전은 위험해요.”

“그...그렇죠.”


레이서가 되려고 라이센스까지 받은 여인이 할 말인가 싶으며 그는 웃었다.


‘위험하기에 그만두라고...그 뿐인가?’


잠시 후 여인의 대답에 그는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뭔가 다른 말이 나올 것이라 생각할 때 그녀가 말했다.


“오빠가 사고를 크게 당해서 한동안 입원했었어요. 중환자실에서 오래 있었거든요. 매일 걱정하느라 잠도 못자고 그랬어요.”

“아...”


정말 위험하다는 이유뿐일까? 직업에 대한 불만은 조금도 없을까 싶을 때 여인이 말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면 어떨까요? 아... 강도 들면 위험하려나. 그럼 뭘 해야 내가 안심할 수 있을까요.”

“안심...”


편의점이라도 괜찮다는 말에는 조금의 가식도 담겨 있지 않다고 그는 느꼈다.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기분은 좋지만 여전히 믿기지 않을 때 그녀가 말했다.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 하라면 화나겠죠?”


멍하니 보던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이 여자.... 좋다.’


여인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도 좋았다. 여인에게 의지한 삶을 상상도 해본 적 없던 그였다.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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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참치 2 +2 20.05.24 20 5 26쪽
30 참치 1 +2 20.05.24 20 5 19쪽
29 변태라서 나쁘지 않아 2 20.05.23 22 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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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관1 +2 20.05.20 26 6 21쪽
22 또 다른 단서 +3 20.05.20 30 9 23쪽
21 국밥집 2 20.05.19 29 6 25쪽
20 국밥집 1 20.05.19 32 5 21쪽
19 행복은 아프지 않다 3 20.05.18 29 7 16쪽
18 행복은 아프지 않다 2 20.05.18 24 5 14쪽
17 행복은 아프지 않다 20.05.17 26 3 17쪽
16 외출에는 신발이 필요하다 20.05.17 35 4 14쪽
15 호박이 찾아준 다서 20.05.16 34 5 19쪽
14 굴러온 복덩이를 걷어차는 방법 20.05.16 39 8 19쪽
13 급발진 2 20.05.15 39 9 26쪽
» 급발진 1 20.05.15 46 6 19쪽
11 오래된 집 20.05.14 53 6 20쪽
10 그들의 일탈 20.05.14 48 4 15쪽
9 수상한 여인 +2 20.05.13 56 7 15쪽
8 유품 20.05.13 51 5 21쪽
7 증거물 20.05.12 56 4 18쪽
6 유서는 반송처가 필요하다 20.05.12 72 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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