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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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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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5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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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급발진 2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계속 웃자 여인은 또 볼멘소리를 냈다.


“왜 웃어요. 전 진지한데...”

“인나씨...”


웃음을 거두고 그는 진지하게 불렀다. 부르고 나서 이 호칭이 가장 입에 잘 달라붙는구나, 그는 생각했다.


“저희 만난 지 이틀째인데.”

“삼일. 두시잖아요. 삼일 지났어요.”

“네... 삼일인데 진도가 너무 빠르지 않아요?”

“....실망했어요?”

“아니... 실망이 아니라... 우리 서로에 대해 모르잖아요.”

“알아 가면 되죠.”


차분히, 천천히 라는 말이 빠져 있었다. 성격이 매우 급한 여인인가 생각해보지만, 그가 하루를 함께 지내며 느낀 여인은 차분한 성격이었다. 안고 있지만 안겨 있는 느낌을 주는 여인이었다. 지금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끼는 그였다. 가시방석 같던 차의 편안한 시트도 온전히 느껴질 정도로.


“인나씨.”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녀가 가진 직업 때문일까. 그도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경험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는 인나를 만나며 그에 대한 생각이나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았었다.


위험한 일을 가담시키려는 치밀한 계획이라는 상상도 잠시 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미스캐스팅이지.’


인나가 자신을 이용하는 것이라 해도 그는 어느 정도는 받아 줄 생각을 가졌다. 좋은 꿈처럼 달콤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었기에. 그는 여전히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실여부를 떠나 인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뚜렷한 이유가 그의 집 다락에 존재한다.


“인나씨, 저는...”

“아우... 저 조급하다고요. 서른이 되니까 다 조급해져요. 날씨 못 잡으면 다신 시집 못갈 것 같고.”

‘조급해져서...’


설득하려는 그의 말을 여인은 특유의 부드럽고 높고 뚜렷한 음성으로 덮어씌운다.


“나, 날씨 좋은 날은 많을 것인데...요.”


툭 농담을 던져 막아보려 하지만 그녀의 눈빛공격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우리 그럼, 그냥 살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때 대화해보는 건 어때요?”

‘살자니... 동거?’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지만 내용은 대범하다. 그는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사기성 짙은 계약서를 받은 기분을 느꼈다. 술을 마셨을까? 그는 술집에서 여인이 어떤 모습으로 손님들을 대할까 상상하려다 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머리 아파요? 쉬세요. 의자 눕혀 드릴게요.”

“아니, 괜찮아요. 인나씨 얼굴 보니 잠도 다 날아가네요.”

“왜요... 화장 지워졌어요?”

“크으...그게 아니라... 좋아서요.”


잠시의 정적. 여인은 귀엽게 어깨를 들썩였다.


“....꺄아! 선수다! 여러분 선수가 여기 있어요!”


밝은 그 모습에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다 잊고 웃었다. 그녀의 집 앞에 서기 전까지.


‘허? 왜...? 아니... 왜? 어째서?’


집돌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갈 줄 알았던 그였다. 그게 아니면 적어도 동네로 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인나는 그를 데리고 서울로 들어갔다. 서울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문구를 보고 그가 물었지만, 인나는 예쁘게 웃으며 운전에 집중했다. 도착 후 주차장이 운동장만하다 느끼던 그가 보자 인나는 또 예쁘게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그리곤 그의 팔짱을 끼고 끌고 움직였다.


“이...인나씨? 여기는...어...디?”


그가 다시 얼빠진 표정으로 묻자 인나는 말했다.


“집에서 갈아입을 옷가지고 나오려고요.”

“아... 그럼 기다릴게요.”


말을 하면서도 그는 계속 끌려가는 중이었다.


“같이 올라가요. 들고 올 게 많아요.”


그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혼자 사는 집이니 괜찮겠지 싶었다. 경황 중에 끌려가느라 그는 지금 인나가 가지고 나온다는 옷의 의미를, 동거가 확정되어가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


‘뭐야 여긴. 집이 왜 이렇게 커?’


아파트라는 곳은 좁은 공간을 활용해 실용적으로 쓰는 곳이라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날씨 집 마루는 너무 넓어요!


대청마루에 대한 자부심도 깨지고 말았다. 그리고 큰 집에 인나 혼자 살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현관에 사람이 나와 있었으니까.


“엄마 안 잤어?”

“이 미... 네가 자다 말고 갑자기 뛰쳐나갔는데 잠이 와? 그리고...”


인나 엄마의 눈은 뒤따라 와 멍하니 선 그에게 향했다.


“그건 뭐... 누구시냐.”


사람취급은 해주신다며 그는 감사했다. 허나, 누구라도 그는 확답할 수 없었다. 인나와 어떤 사이인지 그도 확신하지 못했기에.


“내 애인.”

“허...”


인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인나의 말에 그의 입이 살짝 벌어져버렸다. 인나 엄마도 그랬다.


“들어오세요, 날씨. 엄마 차라도 내드려. 나 옷 챙겨서 나가야 해.”

“뭐? 야, 이 미... 아이고, 머리야. 저기... 들어오세요.”

“예? 예...그러겠습니다. 그럽죠...네...”


그는 급히 들어섰다. 신발만 벗고 서 있자 인나모친이 그에게 손짓했다. 그는 손짓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처럼 철저히 지시에 따랐다. 소파에 앉은 후에야 그는 조금 안심했다. 긴장이 풀린 순간 나타난 사람을 보기 전까지는.


‘아, 아버지도 계시구나.’


잠에서 방금 깬 듯한 인나의 아버지가 나와 그 앞에 앉았다.


‘언니도...’


졸린 눈을 비비고 나온 그녀의 언니도 그 앞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엄마가 차를 가져와 그 앞에 두고 앉았다.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는 속으로 수를 세고 있었다. 침묵은 57초 간 이어졌다.


“이름이 뭔가.”

“정... 날. 입니다.”


또렷하게 말하려 끊어 내뱉고 그는 다시 말할 준비를 했다.


“이름은 예쁘네. 나리...”


‘그러니까 이는 왜 자꾸...’


도대체 사람들은 왜 내가 말하지 않은 발음까지 넣어 부를까. 그는 슬쩍 인나의 언니를 보고 자매가 무척 닮았다고 평가했다.


“나이는.”

“서른 셋입니다.”

“부모님은.”

“안 계십니다.”

“형제는.”

“.....”


형제가 있다 말할까. 그는 고민하느라 빨리 답하지 못했다.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것은 아니었는지 이내 다른 말이 나왔다.


“이런 밤중에 인나가 데리고 들어온 남자는 자네가 처음이네.”

“예...”


저도 이런 상황 처음 겪습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있었다.


“이거야 말로 홍두깨 같은 일이지만... 저 아이가 커오며 이보다 더한 일은... 있었나?”


남편의 질문에 아내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표정을 보고 더 큰 일도 있었음을 직감했다. 그때 인나 언니가 말했다.


“애인이라잖아.”

“크흠... 애인이라니. 남자친구 데리고 온 적 있었나?”

“아빠, 그걸 말이라고 해? 집 앞까지 찾아와서 허락해달라고 했던...”

-언니, 잠깐 들어올래?


방에 들어간 인나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의 언니가 깜짝 놀라며 급히 움직였다.


“기이하군.”

‘예, 기가 막힙니다.’


그도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는 인나의 추진력에 놀라는 중이었다. 그리고 의심이 짙어져갔다. 도대체 자신의 무엇이 마음에 들어 이런 일까지 벌이는 것일까.


‘사기꾼일까? 신종 꽃뱀일까? 이들은 가족사기단일까?’


그때 그녀가 나타났다.


덜덜덜덜....


커다란 짐 가방을 끌고.


“...여행가니?”

“아니, 집 나가.”

“어디 가는데?”

“애인 집.”

“...미치... 너, 엄마랑 대화 좀 하자.”


한숨을 쉰 인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곧이어 들려오는 날선 목소리보다 눈앞에서 노려보는 인나 부친에 더 신경을 쓰는 중이다.


“직업이 뭔가.”

“지금은... 대리운전하고 있습니다.”

“미래계획은 뭔가.”

“미래.... 별 생각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참... 내 마음에 들지 말게 말하라고 듣기라도 했나? 아니면....”

“부친께서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음...”


-아, 시끄러워. 무슨...


또 다른 이가 나타났다.


‘다 같이 살고 있었구나.’


얼굴 한쪽에 화상자국이 있는 남자였다. 그는 단번에 인나의 오빠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

“인나 애인이란다.”

“예? 푸! 인나가 애인을 데려왔어요? 이 밤중에? 이게 무슨 장난... 장난인가?”


곧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다가와 소파에 앉았다.


“무슨 일을...”

“넌 조용히. 내가 질문 중이었다.... 계속 해보게.”


그는 인나의 오빠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술이라도 내주고 말하라고 해야지.”

“그럴까?”


정말 술이 간절한 순간이었지만 말을 꺼낸 인나오빠도 동조한 부친도 정말 내줄 생각은 없었나 보다. 그들도 정신이 없고 상황파악이 안 되는 중이었다.


“그런데 정말 인나 남친, 애인이야? 뭔가 내가 생각한 이미지가 아닌데? 녀석이 데려오면 기생오래비처럼 매끈한 녀석을...”

“그건 너잖아.”


인나부친의 말에 그는 속으로 인나의 유머감각은 유전이구나 생각했다.


“아버지도 참... 우리 집안 노리고 들어온 백수 같은 놈이면 다리를 부러트린다고 말할 땐 언제고.”

“자네, 그런 사람인가?”


인나의 화법도 유전이라 생각하며 그는 답했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듣지 못했고... 저는 그런...아닙니다.”


무슨 집안인지도 모른다. 제법 사는 집이라는 것은 집을 보고 알게 되었지만, 그래서 주눅이 들었지만 그는 억울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나.”


장난스럽게 웃던 인나 오빠의 표정이 굳자, 그는 나쁜 사람들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예. 작년에 돌아가셨을 때... 그때 처음 아버지를 보...뵈었습니다. 영정사진으로.”

“흐음... 복잡한 가정사를 지녔나 보군.”

“예. 예상하시는 그대로 일 겁니다. 어머니는 일찍 도망가시고, 전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다가 군 제대 후에 지금까지 혼자 살았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장례를 치르고, 그런 이야기입니다.”

“....고생했다는 말은 쉽게 하지 않겠네. 난 자네가 아니니 자네의 삶을 알 수 없는 것이지.”


머리가 무거워져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을 본 적 없어 당황하기도 했다.


“우린 자네가 낯설고 어렵네. 누군지 모르지. 경계심이 가득하지.”


‘저도 그렇습니다.’


제발 알아달라고 그는 눈으로 호소했다. 눈을 들어서 마주봐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는 용기 내 볼 수 없었다. 그래도 푹 숙였던 고개를 들긴 했기에 인나부친은 그의 표정을 살필 수 있었다.


“자네 표정 보니... 대충 예상은 가는군.”

‘뭘 어떻게 예측했을까.’


그는 선입견가진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자주 받아왔다.


“솔직히 말하겠네.... 난 그럭저럭 큰 회사의 사장이네. 은퇴해도 될 나이지만 일하는 것이 즐거워 여전히 매일 출근하네. 난 내 일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고, 일을 하면서 가족에게 신경을 많이 썼네. 부족함을 느낀 적도 있겠지만, 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네.... 딸 아들 공부 잘 시켰다는 말도 들었네. 셋 모두 하지 말라는 취미를 가져서 마음고생도 시켰지만, 내심 착한 아이들이지..... 난 그 심성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네. 바르게 커줘서 감사하고 있네.”


차를 한 모금 마실 때, 그도 급히 찻잔을 들어 타는 속을 달랬다.


“그래서 걱정도 컸지. 인나는 막내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나 걱정을 많이 하던 아이네. 내 말... 이해하겠나.”


“동정심으로 다가섰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 있다는 말씀이라면.... 예, 이해했습니다.”


그도 그럴지 모른다고 여겼다. 컵라면 먹는 모습에 반할 여인은 없을 테니까.


“돌려 말했는데 이해하는군.... 만난 지 얼마나 되었나.”


“삼일...입니다.”


“그래, 삼년을 만나면... 삼일?”

“아버지, 절 보셔도 전 모릅니다.”


부자가 서로를 보며 놀라다 다시 그를 주시했다.


“삼일이라니....?”

“그제 저녁 8시경에 처음 만났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오빠의 질문에 그는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는데 말을 걸더군요.”

“말을 걸었다? 먼저 말을 걸었다고? 허...!”

“인나가? 술 먹었나?”

“술은... 모르겠네요.”

“뭐라고 하던가?”


부자의 연이은 질문에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음... 그건 인나씨에게 물으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제가 말하면 오해하실 수 있기에.”

“그 말이 더 안 좋은 상상이 들게 하는군.”

“이해합니다.”


그들이 침묵할 때, 방안도 조용해졌다. 곧 엄마의 손을 잡고 나온 인나가 그 손을 놓으며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아빠.”

“싫다.”


무엇을 예감했는지 즉답했지만, 인나는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아빠, 인나는 오늘까지 함께 살아줬으니 이제 그만 혼자 살래요.”


통보했다. 그 혼자만 그런 말투에 놀랐다. 익숙한지 가족 모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혼자 살랬지. 남자랑 살라고 안했다.”

“아빠. 우리가 무슨 애들인 줄...아시나요? 오빠랑 언니도 그만 시집 장가 보내세요. 나이가 사십이 다 되어가는 오빠를 왜 계속 끼고 사세요.”

“아직 치료가 덜 끝났잖아.”


슬쩍 엄마가 끼어들었다.


“그건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오빠, 왜 말 안 해?”

“인나야... 지금은 그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이 아닌 것 같다. 넌 지금 날 이용해서 네 상황을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어.”

“내가 독립한다는 말은 스물 다섯부터 했어.”

“그때 하라니까 왜 안하고.”

“이제 한다니까?”

“그러니까, 너 저 남자랑 산다는 거잖아?”


남매의 눈싸움에 그는 숨조차 편히 쉴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말해야겠어? 대리운전 한다며.”

‘그렇죠. 저 대리운전 합니다.’


그는 곧 예상하는 말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너 저 남자에게 연봉 얼만지 말했어? 남자들 자존심을 넌 몰라. 들으면 놀라면 끝인 줄 알아? 자격지심 생겨서....”


‘어...’


그는 생각해보지도 않은 문제를 거론하는 인나오빠에게 호감을 느꼈다.


“누가 여기서 오빠 이야기 듣고 싶다고 했어?”

“인나야, 오빠에게 말이 심하구나.”


엄마의 말에 인나는 입을 살짝 깨물었다.


“00시에 대지면적 이백, 연면적 칠십 이상의 단독주택.”

“갑자기 무슨 말이냐?”


그도 자신이 사는 집의 넓이를 상속하며 알게 되었었다. 그전까지는 대지 면적이니 연면적(건축물 바닥을 합한 면적)이니 하는 단어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알아들었지만, 인나가 왜 그걸 말하는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잠시 동안은.


“날씨가 사는 집이야.”

“응? 00시?”

“00시라면.... 땅값 장난 아닌데. 시외인가?”

“시외라고 해도 못해도 이십, 적어도 삼십억 이상은 해. 이백평 이상이면.”


방에 있던 인나의 언니가 나오며 말했다.


“인영이 말이라면 맞겠지....”

“확실해. 거래해본 곳이라 알아. 아, 특이한 곳이 한곳 있기는 한데, 거기만 아니면 대충 비슷해.”


‘인영. 인나...’


인이 돌림자면 오빠 이름은 뭘까 싶으며 듣던 그는 인영이 말하는 특이한 곳이 자신이 사는 폐촌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그건 인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나의 눈짓을 보고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말하지 말라는 건가... 그래야 하나.’


그는 갈등했다.


-저 폐촌삽니다! 그러니 안녕히 계십시오!


그렇게 외치고 달려 나가 찬 공기를 자유롭게 마시는 상상을 하던 그의 눈에 인나가족의 달라진 표정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와 다른 분위기가 인나의 부모님에게서 흐르고 있었다.


“살 집은 있다는 것이군.”

“그리 넓진 않은 것 같지만, 둘이 살기엔 좁지 않으려나?”


그런 반전분위기가 그는 더 의아해졌다.


‘설마, 집만 있으면 딸을 주시는 겁니까...’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이들이 불확실한 부동산 정보로 딸을 털썩 넘긴다는 것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만난 지 삼일밖에 안되었다는 말을 잊은 것은 아닐까? 그는 그 점을 상기시켜줘야 하나 생각했다.


‘허...’


인나 가족이 그를 보는 눈빛도 약간은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런 눈빛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에겐 절대 인나를 집에 들일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집에 시체가 있어요! 시체라고요! 제가 죽인 것은 아니지만, 제 개가 죽였을 수도 있고, 잘못하면 제가 죽였다고 누명쓰고 사형 당할지도 모른다고요!’


집에 시체가 있는데 어떻게 함께 살겠는가. 그 시신을 처리해야 하고, 또 자수도 해야 하고.... 예상하지 못한 난관 앞에서 내려앉았던 공황상태가 올라오려 했다. 속이 울렁거렸기에 그는 급히 놓인 찻물을 들어 마셨다. 그 모습에 인나가 동요했다.


“나 결혼 못하고 죽는 꼴 보고 싶으세요!”

“쿠...예?”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지를 때, 누구보다 그가 놀랐다. 그녀의 가족은 인나의 이런 모습을 보았는지 그처럼 놀라지 않았다.


“결혼이라니.”

“결혼한다고?”

“정말?”


그의 시야에 잡힌 가족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라졌다. 언니와 엄마의 반기는 얼굴, 아빠와 오빠의 굳은 얼굴. 그는 굳은 얼굴을 한 부자를 속으로 응원했다.


“저 이 사람하고 살 거라고요. 허락하세요.”

“무...에...”


너무 기가 막혀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있기는 할까 싶었다. 그대로 입 다물고 있다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지자 그는 입을 열수 있었다.


“저기... 인나씨. 아까도 말했지만 저희 만난 지 삼일입니다. 인나씨가 서른살이 되며 뭔가... 조급함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절 이렇게 아무 준비 없이 부모님께 데리고 온 것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도 놀라신 것 같고요. 그리고 저...”


“이야기도 없이 데리고 왔나봐.”

“어쩐지.”


그는 차라리 집에 시체가 있다 말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인나의 직업에 대해 떠올렸다. 이들은 딸이 술집에 나가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왜 그런 점은 말하지 않을까. 혹시 이들은 인나에게 붙어서 그동안 고혈을 빨아먹고 산 것은 아닐까? 커다란 이 집도 인나의 고통과 괴로움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과한 상상이 아니란 생각이 자꾸 들어 그는 인상 좋은 이들이 밉게 보였다. 아주 잠시 동안.


‘정말 그럴까? 정말 인나씨는 그런 일을 하는 걸까? 이렇게 단란한 가정인데. 양친 모두 멀쩡해 보이는데. 오빠도 언니도 어긋난 사람 같지는 않은데...’


한편으론 어딘지 어긋난 부분들이 보였다.


“날씨. 나 지금 싸해요. 무슨 생각해요?”

“예? 아니.... 너무 당황스럽네요. 지금 상황이.”

“죄송해요. 마음이 급해서 앞섰어요. 그냥 오늘 밤에 짐 싸서 찾아가려다가...”


결정된 사항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웃지도 못했다.


“전화도 없기에 불안하고... 혹시 다른 여자가 있나 싶고... 이렇게 매달리는 제가 한심하기도 하고.”


-엄마, 쟤 저거 우울증 아냐?

-입 다물고 있어.


“언니.”


모녀의 대화에 끊어진 인나의 목소리는 고개를 돌렸다 돌아온 후 다시 떨렸다.


“그냥 제 말대로 해줘요.”

“예, 예에?”


왜 또 결론이 그렇게 되어버릴까.


“그래, 그냥 그렇게 하세.”

‘뭘 말입니까?! 말리셔야지요!’


이게 막내의 위력인가. 그는 가족의 의사를 눈빛 한 번에 바꾸는 인나의 능력에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꿈인가...?’


슬쩍 허벅지를 꼬집는 모습이 인나에게 포착되었다.


“그렇게 싫어요, 제가?”

“예에? 인나씨... 정말...”


이젠 두려움이 느껴져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만약에 제가 저희 집이 어떻다, 그래도 만나 달라, 그렇게 말하면 순순히 왔을까요?”

“계산한 겁니까?”

“아뇨. 즉흥적이었어요.”

“짐 싸고 있었다면서요?”


멈칫했지만 이내 인나의 눈엔 전보다 강한 의지가 담겼다.


“예. 그건 각오한 것이고요. 솔직히 말할게요. 저 삼십년을 부모님 품안에서 컸어요. 간섭이 너무 심하세요. 한국에 유학 왔을 때도 쫓아오셨어요.”


‘음?’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그는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인나의 말은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되었고, 그는 만난 후부터 그녀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있었다.


“어리면 이해를 해요. 서른인데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를 하세요. 불안하셔서 그렇겠죠. 밤늦게 끝날 때가 종종 있으니까요. 예, 저 막내에요. 막내라 더 불안하실 것도 알아요. 알지만... 그게 너무 스트레스일 때가 많아요.”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싶을 때, 인나가 고개를 돌려 부모님을 보았다.


“저 이사람 집에 들어갈래요. 가서 룸쉐어 할래요. 혼자 사는 것보다 좋지 않아요? 만나봤고 살 곳도 봤고, 살인마도 아니니까요.”


그는 뜨끔해 고개를 숙였다. 그를 본 인나의 부모님은 그가 인나의 말에 동조 한다 여겼다. 고개를 숙이며 허락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본 것이다.


“꼬박꼬박 월세 내고 살게요. 가보면 알겠지만 제가 어릴 때 살던 할머니 집 생각나는 집이에요. 화단은 없지만... 날씨. 화단 꾸며도 돼요? 꿈이었어요.”


“예? 그거야 뭐....”


“봐요, 허락 받았어요.”


‘예? 아니 화단만...’


허락은 화단에 관한 것이었지만 인나는 그 해석을 포괄적으로 했다. 그는 멍하니 그런 인나의 화술에 휘말려 휘청거리고 있었다.


“함께 살지만 두 분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손만 잡을게요. 가끔 키스만 하고. 그 정도면 되겠죠?”

“피임한다면 뭐....”

“여보.”


아내의 말에 노한 음성을 내던 인나 부친은 더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당신 때문이잖아. 인나 회사까지 쫓아가고... 낙하산이니 뭐니 소문 돌게 해서 마음고생 시키고. 주엽씨한테도 자꾸 인나 일하는데 찾아가달라고 부탁했지?”


“그런 적은... 없소. 그 녀석이 어릴 때부터 인나를 예뻐해서...”


“쯧... 애가 서른이에요. 인영이처럼 노처녀로 늙게 하려고요?”


“엄마, 나 서른다섯이야. 아직 젊어....”


인영의 말은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 듯했다.


“인나야. 약속해. 피임 꼭 해.”

“엄마...”

“만약을 위해 정자보관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너도 모르니 함께 보관하면 되겠어.”

“응...알아볼게.”


모녀가 손을 꼭 잡으며 훈훈한 분위기가 감돈다.


‘비현실적이야.’


자신이 엮인 일인데 그는 TV속 드라마 장면을 보듯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이게 꿈이 아니면 뭐가 꿈일까.


“결혼허락은 더 두고 보자.”

‘아, 인나씨는 두루 유전자를 이었구나.’


인나 모친의 말에 그는 나오려는 헛웃음을 감추려 허벅지를 꽉 쥐었다.


“만난 지 삼일이라면서. 그런데 정말... 도대체 뭐가 좋은 거니? 네 방에 있던 연예인 닮은 구석도 없고.”

“그 이야기는 왜 하세요. 어머니.”


그는 창을 열고 뛰어내리면 어떨까 생각중이다.


‘피임, 동거...? 결혼? 뭘 보관한다고?’


이렇게 개방적인 대화는 드라마에서도 본 기억이 없었다.


“흠, 뭐 눈빛도 선하고... 그거야 모를 일이지만. 집 주소 적어두고. 이번 주말에 짐 옮겨줄 때 쫓아가 볼 테니까.”


“엄마...흐으...고마워, 엄마...”


“울기는.... 내가 말했잖니. 너 좋을 대로 살라고. 엄마처럼 일찍 결혼해선 후회한다고... 그 말에 너희가 너무 얽매였던 것은 아닌지 사실 걱정도 했다. 결혼 전에는... 후에도 네 아빠가 이렇게 고지식한지도 몰랐고.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지. 너 쫓아다니던 그...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그 녀석은 마음에 안 들었어.”


-나도.

-응, 나도 그 사람은 별로더라.


“살아보고 결혼상대 정하라고 말하던 것도 나였고...”


그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래, 당긴 김에 쇠를 두드린다고 했으니.”


‘그건 아닙니다... 소뿔을 뽑는 것이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아참, 내일 출근이잖아? 그럼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고....”


그것만은 안 된다. 어서 이 지옥을 벗어나야한다. 그는 다급해져 급히 말했다.


“애완견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개 키우나?”


부드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계속 노려보던 아버지의 것이었다.


“예...?”

“아빠, 이 사람 유기견 데리고 와서 기르고 있어. 엄청 예뻐. 사진 보여줄까?”

“험... 어디 보자.”


언제 찍었을까. 그는 집돌이가 다양한 포즈로 찍힌 사진을 힐끔거리며 놀라고 있었다. 심지어 드러누워 배를 보인 사진까지 있었다.


‘이 개.... 이 놈이... 난 깔보고... 이놈...’


심한 배신감이 들었던 그는 곧 손을 감싼 온기에 놀라 깨어났다.


“그래... 개 키우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지.”


왜 눈물을 글썽이실까. 차라리 조금 전처럼 차갑게 봐 주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제발 이 상황을 누구라도 끝내달라고 그는 간절히 빌었다.


“유기견을 키우는군. 장하네. 장해.”

“....감사합니다.”


그 후의 일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갔다.


-짐이 왜 그리 적어? 더 챙겨 가.

-내 차 작잖아.

-그럼 아빠차로 가. 아니, 같이 가줄까?


“인나씨? 다음에 또 챙기면 되겠죠?”


그는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만 막았다. 그러다보니 정작 중요한 점들을 놓치고 말았다.


“꺄! 너무 신나요. 우리 동거하는 거죠? 그렇죠? 꺄아! 나 너무 두근거려요.”

“흐...예...흐흐...”


그는 잠시 정신을 잃었었다. 깨어났을 때 그는 익숙한 풍경 속에 선 자신을 보았다.


‘아 담이구나.’


담장 옆에 선 인나의 자동차를 보고 그는 참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다. 이런 비싼 차가 긁히기라도 하면 어쩔까 생각하며 그는 인나의 짐을 꺼내고 있었다.


“...나 뭐하고 있는 걸까.”


혼자 중얼거리던 그는 향기와 함께 다가온 여인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여기 주차해도 괜찮아요?”

“....예? 예. 괜찮습니다. 집 앞 주차구역이기도 하고... 여기 주민이 저 혼자라... 저 혼자만 주차가능 구역이기도 합니다. 제가 신고하면 다른 차들은 다 불법주차로 견인되죠.”

“그럼 저도 서둘러서 주민등록 해야겠네요.”

“그...하하하! 그렇죠? 네. 하하하...”


순간 울컥했지만 그는 여인의 미소에 따라 웃을 뿐이다.


*


“아빠가 개를 무척 좋아하세요. 그런데 키우다 죽고 그게 싫어서 기르지는 못하고 매일 동영상만 보고, 유기견 보호센터에 후원하시고 그런 낙으로 사세요. 그래서....”


옆에 누운 인나의 말도 그는 귀담아 듣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지... 이제 어쩌지....’


시체는 다락에. 그의 옆에는 온기를 주는 따스한 여인이 있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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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변태라서 나쁘지 않아 1 20.05.23 21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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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만세형 20.05.21 22 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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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관1 +2 20.05.20 26 6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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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국밥집 1 20.05.19 32 5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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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발진 2 20.05.15 39 9 26쪽
12 급발진 1 20.05.15 45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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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들의 일탈 20.05.14 48 4 15쪽
9 수상한 여인 +2 20.05.13 56 7 15쪽
8 유품 20.05.13 50 5 21쪽
7 증거물 20.05.12 56 4 18쪽
6 유서는 반송처가 필요하다 20.05.12 72 7 20쪽
5 떠나기 위한 준비 20.05.11 95 7 17쪽
4 다락과 세혼 +1 20.05.11 110 8 22쪽
3 공존 +1 20.05.11 130 1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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