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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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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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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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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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참치 2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마나에게 의심을 받을까봐 그는 밤새 차에 가보지 못했다. 출근 시간이 되어서야 그는 차에 올라타 공구함에 든 사자를 대면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조금만 견뎌 주십시오.”


그는 사자를 싼 포장을 벗겨냈다. 비닐에 싸인 사자가 괴로워 보여서다. 흉해진 얼굴이 보였지만 그는 크게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보다 흉한 몰골로 꿈에 나타나곤 했으니까.


“찾아드릴게요. 어떤 놈들인지 꼭 죄 값을 치르게 할게요. 성실한 가장을 죽게 하고, 가정을 파탄내고... 꼭 제가 잡아내겠습니다.”


비닐을 벗겨내던 중 그는 사자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이러지 마세요.”


그는 급히 사자의 팔을 눌러두었다. 작업하기 힘들 정도로 사자의 팔은 자꾸 위로 향하려 했다. 다시 만세형이 되고 싶은 것이냐며 그는 쓰게 웃었다.


“관이 작아요. 팔을 치켜든 채 들어가 계실수가 없어요. 당분간 참아주세요....아, 이해해 주셨군요.”


그의 말길을 알아들어 팔을 더는 올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작은 냉각기로 유지되던 짐칸의 공기가 그가 시동을 켜고 돌아가기 시작한 대형 냉각기로 인해 급속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공구함 뚜껑을 연 채 작업한 결과기이도 했다.


벗겨낸 비닐을 종량제봉투에 넣은 그는 사자 위에 속 뚜껑을 덮고 공구함을 닫았다. 열쇠를 채운 후 그는 공기구멍이 열려 있는지 확인하고 내렸다. 차를 돌리기 위해 몇 번이나 차를 움직여야 했던 그는 출근하기 위해 차로 다가서는 남자와 골목 아래에서 마주쳤다. 문제를 일으킨 차주였다. 그는 그냥 지나갈까 하다 차창을 내리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으....예.”


몇 번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차에 오르자 그는 피씩 웃으며 차를 움직였다. 다툼 없이 살기 위해선 싫은 이들에게도 살갑게 굴어야 한다며 그는 자신을 다독였다.


*


“오늘까지 해보니까 일이 생각보다 힘드네. 거리가 너무 멀어. 서울하고 나머지를 나눠서 두 대나 세대로 운영해야지. 이대로는 어렵겠어.”


첫날은 서울지역만 함께 다녔던 김씨는 월요일인 오늘은 마지막 코스까지 조수석에 올라타 있었다. 공구함을 보여 달라는 말에 기겁했던 그였지만, 냄새나서 열지 못한다는 말을 이해해준 덕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건 어렵겠습니다.”

“그래? 그럼 관두지. 정남아, 계약 파기하자.”


상대의 말에 김씨의 반응은 극단적이었다. 함께 자리를 한 체인점대표와 물류팀장등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냉동운송을 해야 하던 그도 마찬가지였다.


“전에 분명히 말했지. 이런 계약으로 우려먹지 말라고.”

“김사장님.”

“한사장. 예전에 내가 간간히 도울 때와 다른 이야기야 이건. 이렇게 기사를 부려먹으면 자네도 욕먹어. 열 시간 넘어도 욕먹는데, 17시간이라니... 이건 아니지.”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들이 해결되면, 시간은 단축될 겁니다.”


물류팀장의 말에 김씨는 콧방귀를 꼈다.


“주 삼일 근무라고 보다 적은 시간을 일한다고 생각하지?”

“예? 흠, 분명... 토일 모두 쉬기에.”

“토일 쉬는 날이 얼마나 될까? 지금이야 이렇지만 나중엔? 곧 여름 다가오면 횟집 찾는 손님 많아질 텐데, 그땐 물량도 늘잖아? 그뿐인가? 배송실수 생기면 정남이가 다 돌아서 해결해야 하지? 첫 출근 때도 그게 정남이 실수라고 넘어갔다며?”

“아니에요?”


그가 묻자 김씨가 안쓰럽게 보았다.


“이구... 라벨 다 붙어 있는데 물건을 잘못 넣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어? 물건 실을 때 내가 옆에서 같이 검수했고, 작은 것들은 선반에 빼두었잖아.”

“예, 분명.”


잘못 배송되었다는 말에 그도 이상하게 여기긴 했었다.


“그거 라벨링 실수한 거야.”

“그런...!”


김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는 김씨의 자신에 찬 표정을 보며 다른 이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눈치챘다. 김씨는 물류팀의 잘못을 의심했고, 의심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그를 확인하기 위해 김씨는 배송지를 찾아가 상자에 적힌 배송지 라벨을 사진으로 찍어 온 후였다.


“봐.”


박스의 용지에 분명 잘못된 체인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니.’


그처럼 한사장도 얼굴이 붉어졌다. 그 순간 그는 기시감을 느꼈다. 대표가 그리 크게 놀라지는 않다고 느꼈다. 알고 있던 것이라 여기며 실망감이 들었지만 사람을 이용하는 자들은 다 그런 것이라 여겼다. 원인을 알고 숨긴 두 사람에게 눈길이 쏟아 질 때 그가 말했다.


“실수는 할 수 있는 거죠.”

“정남아.”

“알아요. 그냥 넘어가면 계속 제 실수로 여겨지는 것도. 이건 그냥 넘어가요. 한번 실수한 것이고... 그걸 숨긴 것은 문제네요? 사과하시면 됩니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같이 일을 해야 할 분들이 절 속였다는 것은 화가 나니 사과 요구합니다.”


김씨는 그의 말에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사과해. 뭐해? 일 이따위로... 쯧! 정기사 미안하네. 나부터 사과하겠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만족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사장님. 그런데 계약 건은.... 당장 기사구하기도 어려운 거 아시지 않습니까.”

“알지. 아니까 그냥 내빼지 않고 이렇게 모여 앉은 거잖아. 정남아, 무리해서 일해도 너 죽으면 이 사람들은 그저 남이다. 그걸 명심하고... 고생 좀 할래?”

“예, 그럴 생각은 있습니다. 합당한 보상이 있다면.”


그의 말에 김씨가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합당한 보상이 문제지.... 보니까 실제로 운전하는 시간이 20시간에 가까워. 여기로 오가는 시간까지 법적으로 산재기준에 들어가는 시간인 건 다 알지? 직접 고용했으니 더 그래야지. 근로기준법 안 따져도 이거 하루에 삼일치 일을 하는 셈이야.”


‘삼일? 여덟시간이니까... 그렇구나!’


“일주일에 세 번이면 구일을 일하는 셈이지. 일주일이 칠일인데, 구일을 일한다고...쯧! 운전 중에 쉼 틈이 있어? 밥은 먹을 수나 있고? 에이, 사람들... 하루만 그렇게 일해 봐라.”


화를 내며 김씨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한 사장.”

“예, 김사장님.”

“.....물류비 아끼려고 일부러 이렇게 시간 짰나?”

“아닙니다. 그건...”

“쯧! 왜 이 회사가 소문 쫙 퍼져서 기사들이 기피하는지 생각 안 해 봤어? 들어보니 기사 불러서 서울만 돌리고 나머지는 직원들이 승용차로 돌렸다며? 그런데도 힘들다고 안 오는 이유를 몰라? 그런 일을 정남이한테 다 떠넘긴 거야? 나한테 그런 소문 안 들어올 거라 여겼어?”

“허... 김사장님. 아닙니다. 그런 것이...”


말없이 한사장을 보던 김씨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한 사장.... 참치 한 마리였어. 한 마리 사서 옮기려고 날 붙잡고 사정하던 것이 10년 전이야. 돈도 없으면서 부산까지 가서... 좋은 거 손님에게 먹인다고... 그 열정이 참 좋게 보였는데... 그래서 기름값만 받고 시간 빼서 갔다 온 거잖아. 돈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은 알지만, 자네 많이 변했어.”


“....죄송합니다. 제가 물류 쪽은 신경 안 썼다는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어렴풋이 알면서 원가 절감할 수 있다고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알면, 바꿔야지.... 바꿨어야지. 에이, 사람...”


연이은 질책에 한사장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예... 기사 채용해서, 지역 분류하고 정당한 근무시간이 되도록 만들겠습니다.”


“그건 당연히 할 일이고, 기사 구할 동안 고생할 정남이에게 보상도 해줘야지. 그리고... 사정을 알던 모르던 체인점 점주들이 정남이에게 채근하는 것은 뭐야? 그 사람들이 왜 물류기사를 닦달하게 하는데? 자신의 가게부터 가져오라고 아주 전화기에 불이 나던데? 순번 정해뒀다고 통보 안했어? 이게...쯧!”


높아지려던 목소리를 스스로 가라앉히고 김씨가 노한 눈으로 물류팀과 영업팀장을 보았다.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자 입을 다물고 있던 물류팀장이 사장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건 월요일이라서. 일요일까지 소진된 물량이 많아...”


“그게 잘못되었으면 본사에서 해결해야지! 왜 운전하는 사람이 전화 받게 해? 그러다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지는데? 전화번호를 왜 알려줬냐는 말이야. 물류팀에서 해결해야지 그런 항의전화는! 그리고 정말 급한 곳은 전처럼 승용차 이용해서라도 보내줘야 하는 거 아냐? 한사장. 내 말이 틀렸나?”

“아닙니다. 형님...김사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확실히 교육시켜서 시정하겠습니다.”

“그래. 해야 하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김씨의 태도는 강압적이었다. 그가 그만하라고 말리려던 차에 김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자네들 말이야. 내가 말할 때마다 표정관리 좀 하지 그래? 나 주주야.”


‘주주...? 어?’


그도 불려와 불만스런 표정을 감추던 팀장들과 직원들의 표정이 변했다. 김씨는 단지 사장과 친한 트럭운전기사가 아닌 회사의 직접 관계자였다.


“몰랐나? 한사장 말 안 해줬어?”

“예... 죄송합니다. 김사장님이 출자해 주셔서 제가 체인사업 시작한 것을 이 놈들은 모릅니다. 아는 직원들은 다른 일을 하느라.”

“그랬나... 뭐, 나도 수익이 생겨야 해서 잔소리 하는 거야. 전에 나도 체인사업을 해봤고, 한사장이 도와달라고 사정해서 내가... 이런 말들 해봐야 모르겠지. 한사장이 얼마나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그거 순간이야. 체인점이건 뭐건 이미지 나빠지면 바로 아웃이야.”

“잊지 않았습니다.”

“자네들도 잘 들어. 외식사업 쉬운 거 아니야. 두 번이나 말아먹은 내가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 제일 먼저 내 식구 챙겨야해. 배송기사라고 막 부릴 생각으로 가득차서는 뭘 한다고... 쯧.”

“죄송합니다. 김사장님.”

“됐어. 한사장에게 사과 받으려고 여기 앉아 있는 거 아니니까. 나도 수배해서 기사 구할 테니 서둘러서 사람 구해. 소문 쫙 퍼져서 했던 사람들은 안 오려고 할 거야. 그러니 차 작은 거 사서 서울 빼고 나머지 돌게 하던가. 아니면 당분간은 직원들이 고생해야지.”


그는 어느 곳에서나 고용주는 돈을 적게 주고 일은 많이 시키려 드는 것을 알기에 크게 화는 나지 않았다. 다만, 김씨가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을 것에 씁쓸함을 느꼈다.


“그만둬도 돼. 이런 걸 계약서라고 가져왔기에 내가 계약 뒤로 미루자고 한 거야. 전엔 일찍 가서 무슨 일 있었는지도 몰랐다가, 오씨 말 듣고 부아가 치밀더라고. 믿어서 정남이 넣어줬더니 완전히 뒤통수 맞은 꼴이지. 이런 일 관둬.... 그래, 그게 좋겠다. 일이 힘들고 안 힘들고를 떠나서 스무 시간 가까이 운전하면 격일로 쉬어도 몸이 성하지 않아. 몸 다 버려서 폐인 되어봐야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내가 다른 일 알아봐줄게.”


김씨는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으으... 멋있으시다. 멋있지만...’


비현실적이라 그는 생각했다. 너무 많은 일을 최근 겪었지만 그는 오늘의 일이 가장 기이하다 여겼다. 김씨의 말에 기쁘기도 했지만, 그는 현실을 보려 했다.


“보름 안에 사람 구하고... 그때까지 일한 것에 대한 급여책정 새로 하고... 이후에도 제대로 된 금액을 책정해주면... 제가 그만두면 두 분 관계 어색해지잖아요.”


“나? 난 상관없어. 저 사람 얼마간 안보겠지만, 또 술 한 잔 마시려고 찾아가면 되는 일이야. 한사장도 꿍한 사람도 아니고. 내가 투자한 돈이 작지 않아서 그거 다 받아낼 때까지는 싫어도 붙어있어야 하고. 크흐흐.”


쓰게 웃으며 김씨는 한사장에게 눈길을 보냈다.


“변한건가 걱정했는데... 아직까진 그렇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고. 아니다 싶으면 난 딱 잘라내 버리는 사람이라서.”


그는 김씨의 눈에 담긴 감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짐작은 해보았다. 자신의 믿음이 틀리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아닐까 그는 추측해 보았다. 그렇게 자신을 보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는 김씨와 오씨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을 돕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 단순한 동정심만은 아니란 것도 잘 안다. 믿어준 사람들이기에, 그런 이들이 소개해준 일이라 그는 더 소중하게 여긴다. 비단 시신을 숨기기 위해서 그가 이 일에 매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첫 일이라 그런지 그리 힘들다고 느껴지지는 않아요. 오늘로 이틀째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뭐, 그렇게 말하면.... 들었지? 계약서 다시 작성해서 가져와. 계약서 보고 정남이 출근할지 결정할 거니까. 이보다 좋은 자리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정남이도 여기 고집할 필요 없어.”


“네.”


집으로 돌아가 기다릴 생각이 없던 김씨 덕에 계약서는 즉석에서 수정되었다. 배송기사가 추가되는 유예기간도 정해지고, 구하지 못할 경우에 대한 사항도 자세히 기입되었다. 책임소재를 배송기사인 그에게 떠넘기던 문구들도 대부분 삭제되었다. 그렇게 꼼꼼하게 수정된 계약서에 그는 서명할 수 없었다.


“나가보게.”


어째선지 한사장이 직원들을 내보냈다. 직원들이 나가자 한사장과 김씨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며 소파로 몸을 눕혔다.


“이제 정신 차렸겠지?”

“죄송합니다. 형님.”


둘의 말과 변한 표정에 어리둥절해하자 김씨가 미소를 지었다.


“한사장이 부탁하더라고. 내가 배송실수 건으로 전화해서 난리를 쳤더니, 자신은 몰랐다고, 직원들 얼이 빠졌다고. 나도 주주고, 명목상이지만 이사이기도 하니까 정신 차리라고... 쇼 좀 부렸어.”


‘쑈...구나.’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그는 김씨에게 둔 시선을 돌렸다.


“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이야. 정남이가 원하면 다른 곳 소개해줄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바뀐 계약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리 썩 좋지는 않아. 첫 일은 힘들게 해야 다음 일이 쉬워서 고생하란 생각에 내가 조금 안일하게 둔 것이 미안해서... 편의점 할래? 그쪽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네.”

“아뇨. 전 이 일이 마음에 들어요.”

“뭐가 마음에 든다고.”

“저 회 좋아해요.”


폐기될 회를 얻을 수 있어 좋다는 말에 한사장이 돌연 눈물을 뚝 흘렸다.


“그 사람... 왜 울어.”

“아니 듣긴 했지만... 회덮밥 그거.... 아, 옛날 생각나고...”


한사장은 일을 배울 무렵 회덮밥이 먹고 싶어서 훔쳐 먹다 걸려 매질을 당한 적이 있었다.


“열여섯에 어머니가 소개해줘서 무작정 들어갔는데, 밥은 잘 먹겠구나 싶었지. 아니더라고. 회 뜨고 남은 뼈로 찌개 끓여서 그걸 삼시세끼 주고 지들은 나가서 쳐 먹고... 일식집이라 밥은 잘 먹겠다 싶었는데 살이 쭉쭉 빠졌지. 월급도 참...”


김씨가 들려주라 말하자 한사장은 거부하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나랑 설거지 담당이던 친구랑 둘이 회덮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냉장고에 있던 몇 점 넣고 비벼먹다가 그날따라 왜 그리 일찍 돌아왔는지.... 주방장에게 걸려서 많이도 맞았지. 맞을 일인가? 손님에게 내주면 안 되는 말라비틀어져가는 살점 몇 개 먹었다는 것이? 지들은 손님에게 내야 할 회를 덜어내서 술안주로 먹으면서....”


그는 그동안 멀어보이던 한 사장에게도 자신과 같은 경험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깨끗한 피부와 잘생긴 외모, 잘 어울리는 옷차림을 한 한사장은 고생 없이 살아온 사람처럼 보였기에 믿기 어려워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지만, 글썽이는 눈이나 회상하는 눈빛 어느 것 하나 과장되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도 뼈 부러지게 때린 적은 없었는데... 일도 못하고 일식집 구석방에 누워있는데, 어머니가 어떻게 아셨는지 쫓아와서 대판 하셨지.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그 곳 사장내외가 어머니 고향사람들이었는데 말이야. 어머니 보니 나도 설움이 팍 터져버려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 다 말해버렸지. 어머니가 또 화가 나서 난리도 아니었어. 난 그래도 계속 일하려고 했는데 어머니는 단호하셨지. 참 대단한 분이셨는데, 거기서 나오자마자 미안하다고... 울며 사과하시는데 왜 그리 서글픈지 참....”


‘그래도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있었구나.’


그는 다행이라 여기며 미소를 지었다. 그를 본 김씨는 깊은 한숨을 쉬었지만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 있는 한사장은 그의 미소를 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나 때린 주방장 찾아가서 멱살 잡고 때려 눕혔단 말에는 내가 그동안 쌓아온 원망도 사라졌었지. 그 후에도 술 먹고 똑같았지만... 그래도 내가 아버지 제사 챙기는 이유는 되었으니까....”


“독기가 생기더라고. 그러면 안 되지만, 그 놈들... 그런 놈들에게 잘 먹고 잘사는 모습 보여주고 싶어서 어머니가 반대하셨지만 또 다른 일식집에 취업했지. 거기 사부님도 무뚝뚝하고 참 정 없게 말했는데... 달랐어. 좋은 분이셨지. 내 손가락 잘릴 뻔한 것도 그분이 찾아내서 붙여줬고. 요양하라고 쉬게 해주시고, 월급은 한 푼도 안 깎고 주셨고. 독립할 때도 보태 쓰라고 거금을 내주시고.... 그분에게 참 많은 것을 배웠어. 여기계신 형님에게 배운 것처럼. 그분 덕에 독기도 빠지고 음식 만드는 놈이 손님에게 독을 먹일 거냐고... 좋게 먹일 생각 없으면 설거지나 하라고 하시던 분이지. 내 첫 칼도 그분이 사주셨고, 내 아내도...”


‘어...? 장인이었구나.’


“독립한 후에 난 직원들 회덮밥은 매일 먹였어. 나도 먹었지. 많이 먹었지만, 그때... 처음 먹은 그 말라비틀어져가는 회 한 점 맛은 안 나더라고.... 그게 숙성회를 시작한 계기야. 원래 초밥 재료 중에도 일부러 며칠 두고 쓰는 것들이 있지. 그걸 응용해서.... 크흐... 회덮밥에 질릴 수 있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네. 직원들도 질려서 못 먹겠다고 안 먹어. 고생 참 많이 했지. 같이 고생하며 가게 키웠는데, 끝까지 내 곁에 붙어서 도우려는 게 미안하더라고. 그래서 체인점 내려고 했어. 처음부터 녀석들 가게 하나씩 차려준다고 마음먹었으니까.”


자신을 보기에 그는 그랬군요, 하고 짧은 감상을 전했다.


“형님 덕이야. 가게가 어려워서 휘청거릴 때, 참치 해체 쇼를 보여주려고 부산에서 한 마리 사오려고 했어. 돈이 딱 참치 값뿐인데 그걸 어떻게 들고 와? 오다 녹으면 맛이 달라지니. 그땐 숙성회에 대한 수요도 없었고. 부산에서 처리할 장소도 없었지. 그래서 평소에 자주 오는 손님인 형님에게 매달렸지. 쉬는 날이라고 하시기에 그런 줄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던 일 모두 다른 기사 불러서 대체하고 날 도와주셨더군. 기막힌 일이지. 누가...”


울컥한 한사장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지. 그뿐인가? 체인점 두 번이나 말아먹었다면서 이것저것 알려주셨지. 발품 팔아서 직접 업체들도 소개해 주시고. 무슨 이득을 보면서 그랬으면 말도 안 해. 내가... 나중에 정말 형님에게 억지로 채권도 떠넘기고... 그랬더니 또 투자한다고 돈을 턱 내놓으시고... 그 덕에 순탄하게 올라왔는데...”


그의 말은 어느새 스스로에게 향하고 있었다.


“돈 맛 들어서 많이들 변하더라고. 믿었던 녀석들 그렇게 쳐내고 원망도 듣고, 지킬 것은 지켜야 봐주지.... 반찬 다시 쓰지 마라. 손님을 무시하지 마라. 재료값 아끼지 마라. 그게 뭐가 힘들어? 덜 벌면 되는데, 조금만 욕심을 버리면 나도 좋고, 제 놈들도 좋잖아?”


시선이 돌아왔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몇 번이나 봐줘도 알아주지 않아.... 결국 내보냈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더니 어디 남의 주방에서 칼질이나 하고, 뚝배기나 옮기고... 멍청한 놈들. 그렇게 독하게 여기까지 온 건데... 나도 변했는지. 그래, 나도 변했어.... 아, 형님... 죄송합니다. 앞에서 괜한 소리나 했습니다.”


“나야 백번은 들었지. 그 레파토리. 동생이 아무리 그래봐야 정남이 고생한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예.... 압니다.”


이 사람들은 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그는 눈을 피해 자신의 신발을 보며 생각했다. 고통은 상대적이다. 누구나 자신의 고통을 가장 크다 느낀다. 그는 떠올린 생각을 많은 경험을 한 두 사람 앞에 꺼내 보이지 않았다.


“정남씨.”


부름에 그의 눈은 테이블에 둔 계약서로 잠시 향했다. 정날이라는 이름이 뚜렷하게 쓰여 있는 그곳에서 눈을 떼고 그는 한사장을 보았다.


“네. 사장님.”


“도와달라고 말하면 나쁜 놈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정당한 대가를 주고 고용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그러니 과하다 여겨지는 부분이 나오면 내게 직접 말하게. 형님에게 말하면 내가 욕부터 들으니 꼭 내게 먼저 말해줘.”


“그건 아니지. 나도 이사인데. 명목상이지만.”


“체인점 문의가 많이 들어와서 고민중이었는데, 배송시스템 안정되면 그땐 확 늘릴 생각입니다. 그땐 형님도 다른 일 그만두시고 도우셔야 합니다.”


손발이 꼬이는 훈훈한 대화에 그는 멋쩍은 미소만 연신 지으며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나 운이 좋은 걸까. 만세형이 내게 행운을 가져다주시는 걸까.’


이런 인연들이 정말 자신에게 이로운 것일까. 그는 어디론가 계속 끌려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


“육백!”


급여가 확 올라선지 그는 매일 힘차게 눈을 뜰 수 있었다. 들려야 하는 체인점의 수는 줄지 않았다. 체인점 허가에 깐깐한 한사장이 그동안 교육시킨 체인점주들에게 허가를 내줬기 때문이다. 수는 오히려 늘었지만 그가 담당한 구역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너무 멀어 한참을 가야했던 곳들은 모두 물류팀에서 자체 배송중이다. 그는 서울지역을 돌고 집으로 향하는 방향에 있는 다섯 곳만 들리면 된다. 곧 인원이 충원되면 그의 일은 더 줄어들 것이다.


“덕분인지 아닌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요새 너무 바빠서 범인 찾기에 소홀해 보이시겠지만, 나름대로 찾고 있어요. 비싼 차 동호회는 인증샷이 필요해서 마나씨 차로 가입하려고 했는데, 넘버까지 올라가야 한데서 포기했어요. 일억육천이 넘는 차래요. 검색해보고 놀라서...인나씨 차가 더 싸다니... 칠천도 싼 것은 아니죠? 네...옵션 제하고 그 가격이면.... 아, 대신 그런 차를 개조해주는 업체에 대해서 알아냈어요. 가까운 곳에... 이 도시에 그런 가게가 한 곳 있더라고요. 딱 한곳... 우연일까요.”


그는 굳은 사자의 곁에 꽃을 하나씩 놓았다.


*


일요일에 특별 배송이 있다고 나갔다가 참치 한 마리를 지점에 보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였다. 한사장이 직접 해체 쇼를 해주기 위해 둘이 참치 한 마리를 싣고 서울의 지점에 도착했었다.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동네에 개업한 지점이었는데 비싼 차들이 주차장에 즐비했다. 그는 참치를 옮겨주고 그 자리에서 퇴근하면 되었다.


“밥이라도 먹고 가라니까.”

“저 오늘 이사 돕기로 해서요.”

“그래? 아쉽네. 내 칼솜씨 보여주려고 했는데.”

“다큐멘터리 많이 봤어요.”

“관심 있어?”

“아뇨. 참치운송이라기에 찾아보다가...”

“하하하! 정말 엉뚱하긴. 아, 잠시만. 명석아! 박사장!”


지점주를 불러 한사장은 그가 좋아한다는 회를 챙겨주었다. 좋아하긴 하지만, 어째선지 가는 지점마다 회를 줘 집안 냉동실이 가득 차 있던 그는 난감함을 감추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소스랑 야채도 챙겨줄까?”

“아, 많이 있어요.”

“뭐... 더.”

“저 가볼게요.”


가려는 그를 붙잡고 한사장은 특별 보너스라고 돈을 챙겨 주었다.


‘...죄송합니다.’


한사장이 그를 좋게 본 이유는 그의 성실함이나 김씨와의 인연 때문만은 아니다.


-딱 맞네! 일부러 만든 건가?!


공구함을 본 한사장은 그 크기가 참치를 넣기에 매우 적당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열지 않으려는 그를 설득해 연 한사장은 운송할 참치를 그곳에 넣자고 말했다. 방수액 핑계를 댔지만 한사장은 직접 냄새를 맡는 성의까지 보였다. 더 핑계를 대면 속판을 들고 사자를 보게 될까봐 그는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사자와 참치를 분리했다. 비닐을 깔고, 얇은 돗자리고 깔고, 여름에 쓰려고 사둔 담요까지 깔았다.


-그렇게 정성들이지 않아도 괜찮은데.... 거긴 묶을까?


괜찮다며 한사장은 꼬리와 아가미에 줄을 연결해 공구함에 고정시키는 정성을 보였다. 그렇게 배송된 참치였다.


-와 저 크기 봐!

-저렇게 큰 걸 자를 건가봐.


환호하는 손님들 속에서 당당히 참치를 끌고 들어가는 한사장과 직원들을 보며 그는 참담함을 느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그가 사자를 위해 산 꽃은 그때 한사장이 준 특별 보너스의 일부다. 나머지는 그날 마나의 짐을 나르며 식사비등으로 사용했다. 잘 냉동된 꽃으로 사자를 장식해주고 그는 다시 속 뚜껑을 닫았다. 혹시 또 참치를 옮길 수 있게 될까봐 비닐도 새 걸로 깔았다. 뚜껑을 닫으려던 그는 무슨 생각에선지 공구함 속으로 몸을 넣었다. 한기가 지속되는 곳에서 그는 가만히 누워 생각했다. 1cm도 안 되는 철판 아래에 사자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는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만세형... 너무 힘들다.’


그는 숨죽여 울었다. 흘러내린 눈물은 금세 얼어버리며 긴 자국을 남겼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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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짖는 소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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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카센터 1 20.05.25 19 3 14쪽
» 참치 2 +2 20.05.24 20 5 26쪽
30 참치 1 +2 20.05.24 20 5 19쪽
29 변태라서 나쁘지 않아 2 20.05.23 22 4 21쪽
28 변태라서 나쁘지 않아 1 20.05.23 22 4 15쪽
27 주차장 2 +4 20.05.22 27 6 18쪽
26 주차장 1 20.05.22 20 4 25쪽
25 만세형 20.05.21 22 5 23쪽
24 관2 20.05.21 22 5 29쪽
23 관1 +2 20.05.20 26 6 21쪽
22 또 다른 단서 +3 20.05.20 30 9 23쪽
21 국밥집 2 20.05.19 29 6 25쪽
20 국밥집 1 20.05.19 32 5 21쪽
19 행복은 아프지 않다 3 20.05.18 29 7 16쪽
18 행복은 아프지 않다 2 20.05.18 24 5 14쪽
17 행복은 아프지 않다 20.05.17 26 3 17쪽
16 외출에는 신발이 필요하다 20.05.17 35 4 14쪽
15 호박이 찾아준 다서 20.05.16 34 5 19쪽
14 굴러온 복덩이를 걷어차는 방법 20.05.16 39 8 19쪽
13 급발진 2 20.05.15 39 9 26쪽
12 급발진 1 20.05.15 45 6 19쪽
11 오래된 집 20.05.14 53 6 20쪽
10 그들의 일탈 20.05.14 48 4 15쪽
9 수상한 여인 +2 20.05.13 56 7 15쪽
8 유품 20.05.13 51 5 21쪽
7 증거물 20.05.12 56 4 18쪽
6 유서는 반송처가 필요하다 20.05.12 72 7 20쪽
5 떠나기 위한 준비 20.05.11 95 7 17쪽
4 다락과 세혼 +1 20.05.11 110 8 22쪽
3 공존 +1 20.05.11 130 1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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