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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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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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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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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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유품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잘하면... 아니, 아니지. 아직 그게 뭔지도 몰라. 모르지만... 어쩌면...’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그 희망의 정체도 모르지만 그는 구명줄을 본 아이처럼 설레고 있었다. 숨이 가빠오고 심장이 터질 듯 뛰어 도착한 곳은 집돌이가 크게 짖었던 삼거리 도로가였다. 멈춰선 그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그가 모르는 긴 역사가 담긴 길이 만나는 곳이었다.


이곳은 과거 소규모 부품공장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땅값이 비싸지고 경영 악화와 도산이 이어지며 하나 둘 문을 닫은 공장지대에 사차선 도로가 놓이며 발전이 시작되었다. 삼거리를 기준으로 건너편 북쪽지대가 가장 빠르게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고, 블루칼라가 득실거리던 곳에 화이트칼라에 넥타이를 맨 이들이 거리에 더 많아졌다.


그 다음으로 신축건물들이 생기기 시작한 곳은 남쪽의 이차선 도로를 사이에 둔 두 곳 중 서쪽지역이다. 시청건물이 들어서고, 이 후 여러 관공서가 서쪽 지역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확고한 고객층이 생기자 식당과 유흥가도 빠르게 늘어났다. 북쪽에 오피스텔과 원룸촌 등이 생기는 동안에는 동쪽지역은 여전히 부품공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폐업해 문을 닫은 곳이 많아 휑한 느낌을 주는 골목들이 많았다. 그곳에 집창촌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공장은 주로 낮에 가동되기에 밤낮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곳이 되었다.


시대가 변하고 단속이 집중되었다. 곧 시에서 폐쇄명령이 떨어졌다. 집창촌은 음지로 사라져 갔다. 그 후에는 먹자골목으로 불리며 도시의 주요 번화가에 속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유흥문화를 즐기는 이들이 주로 찾는 지역이 되었다.


그가 선 곳은 밤이 되면 통행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는 술집이 밀집한 골목에 접한 곳이다. 아직 밤은 아니지만 제법 사람이 다니고 있었다.


‘너무 많은데...’


보는 눈이 많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큰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한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라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는 길 건너 편의점으로 향했다. 인적이 뜸해지면 행동할 생각이었다.


편의점은 도로의 얼굴이 되어주는 전면에 선 빌딩의 일층에 자리해 있다. 다른 빌딩에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부지가 편의점의 앞마당이 되어 있는 이유는 건물주가 편의점의 주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편의점 앞마당은 편의점과 가까운 횡단보도를 기점으로 쭉 늘어서 있는 정차된 택시의 기사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어서 오세요.


밝은 아르바이트생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고 작게 속삭이듯 마주 인사한 그는 낯선 배치도에 자리에 멈춰 섰다. 그가 자주 찾던 곳이 아니었기에 주변부터 둘러보는 것이다. 어렵지 않게 원하는 품목이 놓인 곳으로 찾아갈 때, 뒤에서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타인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라 돌아보지 않고 움직였다. 마침 배도 고팠기에 그는 컵라면과 김밥 한 줄을 사서 먹을 준비부터 했다.


-정말?

-그랬다니까. 난 또 회사 사장 아들인 줄 알고...

-너무했다. 그렇다고 연락하면 죽여 버린다고 말하다니.

-말한 것은 아니고, 톡으로 남겼지. 그리고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얼마나 집요했는데.

-나도 집요한 사람 만나봐서 알아. 피곤하지.


그가 사용해야 할 전자레인지 앞에는 잘 차려입은 여인들이 떠들고 있었다. 저게 유행인가 싶은 독특함이 있었지만, 미의 기준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 그는 느꼈다. 그는 잠시 기다렸다가 그녀들이 기기들에 용무가 없음을 확인하고 말했다.


“죄송한데, 비켜 주시겠습니까.”


정중한 그의 말에 여인들이 작게 미안하다며 옆으로 물러났다.


‘예의 바르네.’


말투와 풍기는 분위기 등에 그는 난항을 예상했었다.


-아저씨가 전세 냈어요?

-웃겨 정말.


라는 등의 괜히 시비를 걸까 두려워하기도 했다. 예상 밖으로 예의바르게 피해주었지만, 그녀들은 멀리가지는 않았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컵라면에 물을 받고 김밥을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그거 먹고 괜찮아요?”


처음엔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몰랐다. 시선이 느껴져 그는 급히 답했다.


“예? 저...저요?”

“네. 아저씨요.”


아저씨라 불릴 나이였나. 그런 외형을 하고 있나. 잠시 생각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뭐...”

“잘 챙겨 먹어야 해요.”

“아...예...뭐...고맙네요.”


‘오지랖은...’


일하며 사회성 없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였다. 남과 다르게 행동하면 밀려나고 미움을 받게 됨을 잘 알기에 더 조심했다. 관심이 없어도 관심 주는 척, 반갑지 않지만 반가운 척 굴었다. 그의 실생활을 아는 이들에겐 놀라운 일일 것이다. 다행이도 그를 제대로 아는 이는 세상에 집돌이 뿐이다.


그는 대리운전을 할 때도 손님들과 곧잘 대화를 한다. 친절해야 항의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무리한 억지를 부리지 않으면 들어주는 편이다. 집으로 가기 전 음식을 사서 가자는 말도 가볍게 들어준다. 싸우기 싫기에. 도착하고 헤어지면 보지 않아도 될 이들이지만, 그래서 더 편하게 대한다.


평소에 오지 않던 낯선 편의점이었다. 비싸지 않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려는 참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되는 이들 속에 있던 여인이 걱정하며 바라본다. 그리고 말을 건다. 그는 적잖은 수치심을 느꼈다. 그녀의 걱정은 결코 온당하지 않다 생각했다. 보여주기 위해 남을 위로하는 이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그도 많이 겪어 본 유형이다. 그들은 자신이 남을 이렇게나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어 한다. 동정할 필요 없이 잘 사는데 안쓰럽게 보며 뭔가 해주려 한다. 그가 보기에 말을 건 여자가 그런 유형이었다.


여인은 무리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 여자에게 울분을 표하거나, 거칠게 말해선 안 된다는 상식을 그는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마음에 없는 감사를 표한 것이다. 아직 김밥을 데우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에. 15초가 유독 길게 느껴졌다.


“착한 척은.... 미친년.”


속내를 대신 말해주는 여인을 그는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게 살폈다. 앞서 말을 건 여인보다 호감 가는 인상이었다. 그녀의 말 때문에 그런 생각에 닿았음을 그는 인식하지 못했다.


“나둬, 지 스타일인가 보지.”

“저 아저씨 내 스타일인데?”

“나도 저런 스타일 괜찮아. 편안해 보이고.”


자신을 두고 하는 말들에 그의 볼은 붉어졌다. 수줍어하는 그 모습에 여인들은 더 기쁘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들은 다른 손님이 들어오자 뚝하고 사라졌다.


-....라이트 하나 주시오.

-사천....


그는 담배 사러 들어온 낯선 남성에게 속으로 감사를 표하며 김밥과 컵라면을 들고 벽에 붙어 있는 테이블로 갔다. 그 위치는 건너편에 있는 그가 목표로 한 우수관 뚜껑이 잘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거의 정면으로 마주보는 위치에 우수관 뚜껑이 놓여 있다.


‘점점 많아지는군...’


그의 눈은 다시 길을 살폈다. 보도를 걷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었다.


‘지금은 안 되겠어. 12시 넘어야 발길이 끊어지는 곳이니...그때 다시 오자.’


집에서 먹을 것을 하는 후회를 하며 그는 김밥을 꺼내 입에 넣었다.


“전화번호 줘요.”


진한 향수냄새와 함께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런 일에 놀라 굳은 그는 경직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처음 그에게 관심을 준, 거짓 선의로 가득 차 있다 여겨지는 여인이 있었다.


‘놀리고 싶은가?’


귀찮은 일에 얽히기 싫어 그는 거절을 선택했다.


“저...전화 없는데요.”

“거짓말. 아까 핸드폰으로 시간 확인하는 거 봤어요. 줘요.”

“....왜요?”


진심으로 궁금했던 그가 묻자 여인은 살짝 눈을 흘겼다.


“마음에 들어서요. 줘요. 안주면 큰 소리로 떠들 거예요.”

“....왜요...?”


뭐라고 떠들까. 궁금해 그냥 둬볼까 할 때,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냥요. 줘요.”


음료를 사로 온 택시기사들이 그를 힐끔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는 떼쓰는 어린애 같은 여인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이 몰리는 것도 거북해서다.


“....왜 안 받죠?”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줄 몰랐던 그는 진짜 번호를 알려주었다. 여인은 확인전화를 걸고 난 후 직접 그의 핸드폰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미...쉘?”

“오늘만 미쉘이에요. 풋!”


웃으며 나간 여인은 곧 무리에 합류했다.


-받았어?

-꺄하하하!


그들 속에서 왁하고 웃음소리가 들리자 그는 혀를 찼다. 자신이 놀림감이 된 것인가 싶었다. 허나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여인이 다가선 순간 그는 설렘을 느꼈다. 만약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때라면, 진지한 자세로 여인의 행동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집에 시체만 없다면 말이다.


*


0시를 기다리며 그는 자신이 어떤 생각과 목적으로 그곳에 가려는지 다시금 확인해 보았다. 혹시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자수하기 싫어 이유를 찾는 것인지 생각했다.


‘뭐가 되었든... 확인은 해보자고.’


*


밤늦은 시간. 도로가에 앉아 우수관 뚜껑을 열려는 남자. 누가 봐도 수상하지만 수상하게 보는 이는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적었고, 본다 한들 만취한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가 선 도로가는 그런 곳이다. 건너편에는 택시들이 서 있지만 그가 있는 쪽에는 택시가 정차하지 않는다. 횡단보도를 건널 만큼 의식이 있는 손님을 태우기 위한 택시기사들의 노하우였다. 멋모르고 세웠다가 눈총을 받는 기사들도 있다. 그들도 곧 술집에서 막 나온 이들이 얼마나 진상을 부릴 수 있는지 깨닫고 다시는 정차해 손님을 태우려 들지 않게 된다.


그 덕에 그는 조용히 엎드려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저 사람도 토한다. 크헤헤헤!


취한 남자의 말에 그의 행위는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그 말을 들은 후 그는 사람이 지나가면 헛구역질을 해댔다.


“우엑... 우욱...”


밤이 되자 피어오르는 우수관의 향기가 역하기도 했기에 자연스러웠다. 먼지가 달라붙어 꽉 물린 뚜껑은 무게도 가볍지 않다. 예상하고 집에서 작은 빠루(쇠지렛대)를 가져온 덕에 그는 어렵지 않게 뚜껑을 젖힐 수 있었다. 떨어진 뚜껑을 한쪽에 조심스레 밀어두고 그는 주변을 살폈다. 건너편 보도위에 선 택시기사들이 종이컵을 들고 마시며 떠드는 것 외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좋아.’


그는 급히 손을 뻗었다. 그가 노리는 물체를 눈여겨 본 후에 넣은 것이다. 허나 그가 손을 밀어 넣으며 쓰레기더미를 건드리는 바람에 그의 목표는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 버렸다.


‘젠장.’


핸드폰 불빛으로 그를 확인한 그는 손을 더 뻗을 준비를 했다.


“뭐 하십니까?”


소매를 걷어 올려 팔을 내리려던 동작으로 그는 굳은 채 얼굴만 돌렸다.


‘경...찰...’


경찰복을 입은 두 사람이 그에게 손전등을 비추고 있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선생님.”

“저....저는...”

“장경장 보면 모르나.”

“예? 경사님?”


그는 둘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며 보았다.


“뭔가 떨어트리신 거지. 맞지요?”


사투리 발음이 섞인 경사의 말에 그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흔한 일이지. 우수관 구멍이 작아 보여도 별게 다 들어가. 나도 십년 전에 핸드폰 떨어트렸다고 신고 받고 꺼내 준 적이 있어. 그 왜 있잖아. 무식하게 커다란 폰.”

“아... 벽돌... 그렇군요. 그럼 제가 도와...”

“괜찮습니다!”


그의 뚜렷한 거부 의사에 경찰 두 사람이 작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취객은 아니시고...”

“저 대리입니다. 대리운전.”

“아! 아, 그렇겠군요. 이런 곳이니... 그런데 안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예. 거의 잡았습니다.”

“그럼...”


그는 경찰이 떠나겠지 생각했다. 허나 경찰 둘은 그가 우수관 뚜껑을 열어둔 채 떠날까 곁을 떠나지 않았다. 취객이 발이라도 빠져 떨어지면 큰일이기에. 또 이렇게 허가 없이 우수관 뚜껑을 여는 일은 불법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처벌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냥 갈 수는 없었다. 그들이 떠나지 않자 그는 난감해졌다.


‘어쩌지...’


이미 원하던 것은 손에 쥐었다. 하지만 경찰들에게 그걸 보여줘야 한다. 잃어버린 것이 뭐였냐고 물을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그는 급히 머리를 굴렸고, 하나의 방법을 찾아냈다.


“이건가... 아닌데, 이건가...”


일부러 시간을 끌며 그는 손목을 흔들었다. 중력에 의해 시계가 그의 손목 끝으로 밀려나왔다. 본래 시계를 차지 않던 그였다. 그가 찬 시계는 아버지가 죽기 전 차고 있던 것이다. 유명상표도 아니고, 디자인도 오래되어 아무도 차지 않는 그런 시계다. 심지어 그의 부친이 죽던 시각을 알려주며 멈춰있기도 하다. 급작스럽게 쓰러지며 충격을 받아 고장이 난 것인데, 그가 유품으로 돌려받은 후 깨진 유리만 갈아 넣은 후 보관한 것이다.


차고 나온 이유는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서이며 용기를 얻기 위해서다. 존재하지 않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니다.


-오늘까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사?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고 할 생각도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냉정한 말을 내뱉고 너무했나 싶었던 그는 포장할 수단으로 시계를 택했다. 아버지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표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는 것이다. 그도 인식하는 위선이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한 합리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항상 극단적인 상황까지 대비해야 했던 삶이기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만약 새어머니의 가족과 재산분쟁이 일 때, 그가 아버지에 대한 연대가 전혀 없다는 점이 밝혀지면 불리할지 모른다는 과한 생각에서 시작된 행동이다. 가끔 차던 시계를 그는 최근 더 자주 차게 되었다. 멈춰있는 시간은 사망시각을 알려준다. 그건 죽음을 떠올리게 하고, 집에 있는 시체를 연상시켜준다. 그를 떠올리면 두려운 일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시계를 차고 일을 나갔을 때 전보다 손님의 진상을 더 잘 참을 수 있게 되는 효과를 그는 느끼곤 했다.


만약 그의 아버지가 가죽 줄을 선호했다면 그는 한손만 쓸 수 있는 상황에서 시계를 풀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막일을 하는 이들은 손에 땀이 차기 마련이다. 그래서 금속줄을 더 선호한다. 막노동판에서 시계는 활용도가 높다. 밥 때를 정확히 알려주기 때문이다. 무거운 핸드폰보다 편리한 수단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다. 고용인들은 밥 때에 인색하다. 그래서 스스로 밥을 찾아 먹어야 한다. 모두 시계를 차는 것은 아니다. 자주 부딪혀 깨지는 경험이 많은 이들은 시계를 차지 않는다. 그는 막노동판에서 전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시계나 목걸이 반지도 차지 않고 다니는 것을 보았었다. 자주 시간을 물어보던 그들에게 손목이 터져나갈 수 있어 금속제를 착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들었었다. 목수였던 그의 아버지는 다행이도 시계를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우수관 위쪽 벽에 문질러 시계 줄을 풀어낸 그는 시계가 흘러내리자 손에 쥐었다. 그 후 본래의 목적이던 물품을 잡았다.


“으으...거의 잡은 것 같은데... 이건가...”


밀어 올렸던 소매를 내리기 위해 팔목이 긁히기까지 했다. 손을 움직여 그는 목적한 물건을 소매로 밀어 넣었다. 소매에 안전하게 들어간 것을 느끼고 그는 손을 빼기 시작했다. 꺼내려던 순간 그는 경찰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는 시계를 바닥에 던졌다 잡았다.


“찾았습니다.”


그는 보란 듯 시계를 내보였다. 먼지와 흙이 잔뜩 묻어 있어 누가 봐도 아래에서 꺼냈구나 싶은 물건이었다. 그가 시계를 내밀자 젊은 쪽 경찰이 한발 다가왔다.


“시계군요.”


그리곤 시계를 유심히 보려했다. 그는 일어나는 동작을 취하며 손을 당겨와 짚었다. 그리고 다시 앉아 우수관 뚜껑을 제자리에 넣었다. 그 움직임으로 그가 품에 넣어 둔 쇠지레대가 두 경찰의 눈에 포착되었다. 나이 많은 경찰이 슬쩍 눈짓을 보내자 하급자인 장경장이 입을 열었다.


“빠루를 챙겨 오셨군요.”


‘직접 묻냐, 멍청이.’


속으로 욕하며 경사가 나섰다.


“아, 이상하게 볼까봐 숨긴다고 숨겼는데... 유품이라서요.”


그의 말에 경사의 발걸음이 멈췄다.


“유품... 시계 말이군요.”

“예, 보시면 알겠지만...”


그는 보란 듯 시계를 내보였다.


“이런 시계라 차고 다니기도 하지만 가끔...부끄러워서 벗기도 하는데... 주머니에 넣었던 것을 다시 끼려다 여기다 떨어트렸습니다. 낮에 떨어트려서 꺼내려다 뚜껑이 열리지 않아서 집에 가서 빠루 챙겨서 나왔는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더군요. 그래서 밤에... 이렇게 다시 와서 찾은 겁니다.... 혹시 물에 쓸려나가면 어쩌지 생각에 잠도 못자고... 좋은 물건도 아니라 그냥 찾지 말까 생각했지만... 안되겠더군요.”


그는 자신의 오늘 행적을 그대로 전했다. 그는 오늘 이곳에 세 번 찾아왔다. 혹시 경찰들이 여기저기에 놓인 감시 카메라를 통해 그 행적을 보게 될 것을 우려해 꺼낸 말은 아니다. 모든 진실을 다 꺼내지 않았을 뿐, 그가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다. 시계를 가지고 다닌다고 없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법정 공방에서 유리해진다는 생각도 과하다 느끼고 있었다. 시계를 잃어버리면 다시 찾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했었다.


그때 장경장이 말했다.


“시계가 멈췄군요?”


경사도 아버지의 시계를 가지고 있다. 차고 다니지 않고 집에 모셔두었지만, 그에겐 각별한 물건이다. 감정이입이 되자 눈시울이 붉어진 경사는 이내 웃으며 다가왔다. 장경장의 감성을 파괴하는 말과 시선을 가리고 그 앞에 섰다.


“먼지가 많이 묻었습니다.”


자신과 동조하며 경사는 그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시계가 멈췄습니다. 급성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런...”


울컥한 나머지 경사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병원에서 돌아가셨기에 정확한 사망시간을 알지만 근무 중이었던 그는 갑자기 가실지도 몰랐기에 대비하지 못했다. 경사는 손을 올려 그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 주고 돌아섰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장경장은 그런 경사의 조치가 못 마땅했지만, 그가 떠나기 전까지 입을 다물고 참았다.


“경사님. 신분조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 없는 새끼...”


힐난의 눈이 이내 부드러워진다.


“너라면 그런 싸구려 시계 하나 찾으려고 맨홀 열겠냐? 그 시계가 롤렉스라도 되어 보이디?”

“그건 아니지만, 흉기가 될지 모르는 물품을 소지한 채....”

“넌 모르겠지만 난 저 사람 알아.”

“아...아십니까?”

“그래.... 일년 전인가... 서에 들어와서 길을 헤매고 있었지. 뭘 찾나 싶어서 보니 여순경에게 사망신고 하러 왔다더군. 그래서 기억 나.”

“동사무소에서도 가능한 일을 왜...”

“이미 처리되었는데 잘 몰랐던 거지. 어디서 잘못된 정보를 얻었거나. 급사의 경우 경찰에도 신고해야 하는 절차가 있으니. 그게 없으면 염도 못하지.... 아직 일 년인데.... 아니지, 벌써 일년이군. 젊은 사람치곤 참.... 가자. 근무 끝나면 술 한 잔 해야겠다.”

“예, 예....”


경사가 움직일 때, 뒤쳐진 장경장은 잠시 우수관 뚜껑을 바라보았다.


‘개를 데리고 다녔는데....’


장경장도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낮 순찰 중 만났던 사람이다. 개가 입마개를 하지 않아 지적하자 거듭 사과했던 이였다.


‘흰 개라고...했지.’


*


다음날 비번이었던 장경장은 경사와 가볍게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며 전화기를 들었다.


“...나다... 왜긴... 너 어젠가 개 이야기 했지? 개가 갑자기 짖었다고. 그래, 흰 개였지? 응? 색은 잘 모르겠다고? 니가 흰개라고... 아아, 알았다. 짜증 그만 내.... 그래 별일 아니다. 더 자라. 그래... 내일 비번이다. 나도 자야지.... 그리로 갈게. 자고 보자.”


장경장은 전화기를 내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가 선 곳은 우수관 뚜껑 앞이었다. 그의 눈은 우수관 뚜껑에서 천천히 교차로에 선 신호등에 닿았다. 그곳에 그가 선 방향을 비추는 CCTV가 달려 있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작가의말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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