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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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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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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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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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거대 세력(Great Force)(2)

DUMMY

“넌 여기 남아 있어라.”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요즘 왜 이렇게 의뢰에 구태여 따라오려는 거머리들이 많은 거지.

유논은 귀찮음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푸른 머리 여인-피오네는 당연한 사실을 말한다는 듯 내뱉었다.


“짐덩이가 되진 않을 겁니다. 제 한 몸 정도는 간수할 실력이 있습니다.”


유논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목 졸려서 죽기 직전까지 가지 않았던가, 라고 묻는 듯한 그 표정에 여사제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유논님께 비하면 보잘것없는 실력이지만, 부족하게나마 정화교단 공인 전투사제 직을 맡고 있습니다.”


정화교단의 전투사제라 함은 무예의 대가大家라 불릴 만한 신위를 지니고 있으며, 괴수나 오염된 것들과의 실전 전투경험까지 출중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직함이다.


유논의 비인간적인 신체능력에 밀려 아무것도 못하고 당한 전적이 있기는 해도, 그녀 또한 결코 평범한 인물은 아닌 것이다.


“글쎄. 일반적인 전투사제는 아닐 텐데.”


유논은 그녀의 검은색 사제복을 흘겨보며 툭 내뱉었다.

정곡을 찔린 듯, 잠시 멈칫하던 피오네는 이내 딱딱한 목소리로 자기어필을 계속했다.


“···저는 오랫동안 시장님과 함께 활동했기 때문에 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숨겨진 속사정 따위를 잘 알고 있습니다. 유논님께서 사건을 수사하시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아예 일리가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유논은 오랫동안 갈란 시를 떠나있었기에 자유도시의 최근 근황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무했다.

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도움이 되긴 할 것이다.

문제는 그녀를 믿을 수 있느냐······인데.


유논은 될 대로 되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아, 그리고.”


차가운 검은 눈이 여사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뜯어본다.


“날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그냥 마법사라고 부르도록.”

“알겠습니다, 마법사님.”


유논은 정중한 자세로 고개 숙이는 여인을 뒤로 하고 먼저 시청을 향해 걸어갔다.




* * *




멸망한 세상, 자유도시의 시민들에게 불타는 시청의 정경은 대단한 구경거리였다.

유논은 불의 마력에 취해 날뛰는 군중들을 헤치며 나아갔다.


“세상에······시청이 저렇게 되어버리다니. 시장은 살아있겠지?”

“시장이 저기서 죽었다면 자유도시가 진정으로 자유롭게 바뀌겠군. 바라 마지않던 일이야. 물론 그 괴물 같은 인간이 쉽게 뒤질 리 없겠지만. 보나마나 내일 또 웃는 얼굴로 나타날 걸.”

“괜히 갈란의 핏줄을 이은 게 아니지. 너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조만간 몬스터 웨이브가 닥치면 시장부터 찾게 될 걸?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가 없으면 갈란 시는 존속할 수 없어.”

“닥치고 좀 비켜라.”


마지막 말은 유논의 것이다.

그는 수다 떨고 있는 구경꾼들은 밀치고, 쉽사리 밀려나주지 않는 싸움꾼들은 면상에 주먹을 먹여가며 길을 뚫고 지나갔다.

그런 그의 뒤쪽으로 피오네가 재빠르게 따라붙는다.


“몬스터 웨이브가 얼마 안 남았나?”

“예. 최근 괴수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지라, 근 일주일 내에 대침공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확실히 시장이 없으면 골치 아파지긴 하겠군.”


갈란의 시장 에드워드 갈란은 몹시 특수한 능력을 지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종류의 돌연변이다.

그의 능력이 있었기에 어떠한 세력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도시가 탄생할 수 있었고, 또 그리 탄생한 자유도시가 끊임없는 괴수들의 침공으로부터 지금까지 버텨낼 수 있었다.


시장 단신의 능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형태의 방어체제를 지닌 자유도시이기에, 괴수들이 침공하기 전까지 시장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갈란 시는 끝이다.

아마 이 여사제 또한 그것 때문에 유논의 손을 빌리면서까지 급하게 시장을 찾으려 하는 것이리라.

이건 빠듯한 시간제한이 걸린 의뢰였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괴물들의 동시다발적인 침공이 일어나기 전에 실종된 시장을 찾아야만 한다.


유논은 입을 열었다.


“시장이 살아있다고 믿나?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습격을 받고 실종된 것에 불과하다고?”

“예.”

“무슨 근거로?”

“시장님은 그리 쉽게 목숨을 잃을 분이 아니십니다. 애초에 그분이 죽었다면 이미 갈란 시는 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요. 살아 계실 거라는 전제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결국은 아무 근거도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유논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시장에게 적은 없었나? 혹은 자유도시가 망하면 이득을 볼 법한 집단이라도.”

“잘 모르겠습니다. 중립 노선을 유지하던 분이시다 보니, 특별한 정적까지는 없었지만 시장님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집단들은 꽤 존재했던 것으로 압니다.”


중립 노선이라.

유논은 코웃음을 쳤다.

시장과 정화교회 간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산 증인이 저리 말하는 꼴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자유도시는 어떤 세력의 압박이나 간섭에서도 자유로운 도시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의 시장 또한 어떠한 외부 세력이나 집단과 결탁하지 않고 중립을 지켜야만 한다.

시장이 어느 한쪽의 세력에 치우치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도시는 자유를 잃어버릴 위기를 겪기 때문이다.

갈란의 시장은 정화교회의 인물과 함께함으로써 자유도시의 오랜 불문율을 깨 버린 것이다.


‘괴이쩍은 일이긴 하군. 아무리 시장의 능력이 특수한 경우라고는 하지만, 정화교회가 돌연변이와 손을 잡다니.’


정화교회는 방사능을 만악萬惡의 근원이자 정화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자연히 오염된 방사능 마력의 확산으로 탄생한 돌연변이들을 고운 눈으로 볼 리가 없다.

대부분의 정화교회 지부들은 돌연변이들을 ‘정화’가 필요한 대상이라 판단한다.

당연히도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정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유논은 광신도 집단인 정화교회가 용케도 강력한 돌연변이인 갈란 시장과 손을 잡은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


‘이번 사건, 수상한 점이 너무 많다.’


정화교회, 시장, 그리고 시장을 습격한 정체불명의 세력까지.

잔뜩 엉킨 실타래를 눈앞에 두고 있는 느낌이다.

심지어는 실종된 당사자인 시장의 행적마저도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정화교회와 끈끈한 관계를 구축하고 싶었다고는 해도, 자신이 행방불명이 될 시에는 저 여사제에게 전권을 거리낌 없이 위임할 정도로 신뢰가 두터웠다고? 게다가 내 정보까지 멋대로 넘겼나 본데.’


다른 것도 아니고 무덤까지 가지고 갔어야 했을 비밀인, 대마법사의 신분을 함부로 이야기하다니.

시장의 숨겨진 내연녀라도 되는 건가 싶어 유논은 골똘히 추리를 계속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까지만 해도 여자한테 헤픈 성향의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지. 여사제의 외모도 출중한 편이고. 혹은, 내연녀가 아니라면······.’


“아.”


어떠한 결말로 이어질 듯 했던 유논의 상념은 피오네가 전혀 놀란 것 같지 않은 목소리로 내지르는 탄성에 묻혀 버렸다.


“···뭐 떠오른 거라도 있나?”

“최근에 시장님이 7가지 세력들 중 하나에 관해서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언급?”

“예. 제국주의자들에 대해서, 신원이 확실한 제국주의자가 시청을 찾아오면 집무실로 안내하라고 하시더군요. 이유는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부탁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꼬맹이에 관한 것까지 이 여사제에게 말하진 않았나 보군.

유논은 골치 아픈 기색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시장이 아니라, 그 꼬맹이를 노린 습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제국주의자들 또한 용의선상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시장에게서 꼬맹이를 인도받고 황실의 새로운 직계 후손에 대한 정보가 퍼지지 않도록, 입막음을 위해서 그를 습격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들의 잔혹하고 제국중심적인 성향을 고려하면 몹시 개연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유논은 제국주의자들 중 저리 처참한 꼴로 시청을 무너뜨릴 수 있을 법한, 시장과 충돌해도 그를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을 하나 알았다.


‘설마, 섭정공이 직접 출두한 것은 아니겠지.’


만약 정말 그리 된 것이라면, 이번 건은 골치 아플 뿐 아니라 몹시 위험하기까지 한 의뢰가 될 것이다.


‘아직 속단은 이르다. 제국주의자들이 아닌 또 다른 세력이 꼬맹이의 혈통을 노리고 습격해왔을 수도 있고, 혹은 정말로 시장을 노리고 공격해온 것일지도.’


현재로서는 섣불리 무어라 결정내리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그리고 정보를 얻어내려면 역시, 사건 현장을 뒤져 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또 없었다.

유논은 마침내 군중무리를 다 밀어내고 불타는 시청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속은 타는 열기와 넘실대는 불길들로 가득했다. 도저히 멀쩡히 조사를 진행할 수 있을 환경이 아니다.

유논은 허공에서 빛나는 붉은빛의 보석을 꺼내들었다.


주변 가득히 넘실대는 염화에 흥분하듯 떨리는 그 보옥을 공중에 띄워놓자, 주변의 불길이 전부 회오리치듯 보석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유논은 순식간에 반파된 시청 건물 내부의 열기를 진압해 버린 붉은 보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급 마정석, ‘불의 심장’이다.


유논이 제국주의자들의 의뢰를 끝마친 후 마냥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특급 마정석 속 고갈된 불의 적색마나를 회복하기 위한 여러 다양한 가설들을 고안해 냈고, 지금 이것 또한 그 일환이었다.


‘불의 심장으로 하여금 불을 잡아먹게 해 적색마나를 채운다.’


간단한 발상이지만, 효과적이다.

유논은 어느새 특급 마정석 속 적색마나가 상당 부분까지 회복된 것을 확인하고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시청 내부로 들어서는 유논의 발길을 가로막을 만한 것은 이따금씩 떨어지는 건물의 잔해나, 유독가스 정도.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유논이 낙하하는 잔해에 다치거나, 유독가스에 위협을 느낄 리 없다.

뒤에서 따라오는 피오네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는 다른 사람 입장까지 그리 세세히 챙겨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목숨은 자기가 알아서 살펴야 한다.


마법사는 성큼성큼 시청 건물 중앙으로 들어가 주위를 살폈다.

여사제 또한 뜻밖에도 유독가스에 힘겨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따라온다.


‘특별한 전투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마법사의 정밀한 눈이 사건의 현장을 샅샅이 스캔하듯 읽어 내렸다.

압도적인 수준의 공간지각능력이 장소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시청을 화재가 일어나기 이전의 상태로 재구성한다.


유논은 온전한 모습으로 복원된 시청, 그곳에서 화재가 일어나고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기까지의 과정을 머릿속에서 수차례 돌려보며 쓸 만한 것들만 추려냈다.


‘불길이 처음 시작된 것은 최상층. 마침 시장의 집무실이 있던 장소군.’


집무실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현장의 손상이 너무 심해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다만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라 할 만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시장이 제대로 된 전투를 벌이지도 못할 만큼 손쉽게 제압당했다는 건가? 그런 수준의 실력자, 혹은 실력자들을 보유한 집단은 많지 않은데.’


유논은 계속해서 시장의 흔적, 그리고 꼬맹이의 흔적을 찾았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유논은 그을음 가득한 바닥을 살폈다.


아주 자그마한 먼지나 압력의 흔적까지도 읽어내는 마법사의 눈이 지상의 모든 발자국들을 인식했다.


‘저건 시청 직원. 이건 경비대, 이건 평범한 외부인······아하, 찾았다.’


유논은 그 수많은 발자국들-엇갈리고 또 엇갈리는 동선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무언가를 찾아냈다.


비슷한 시각에 시청 내부에 모였다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다섯 갈래의 발자국들.

어떤 것은 너무 컸고, 어떤 것은 평범했으며, 어떤 것은 발자국의 형태가 뭉그러져 있었다.

전부 특색과 개성이 넘치는 것들이다.


‘5인조다. 여자 하나, 남자 넷.’


유논은 그 중 대부분의 발자국이 어느 순간 갑자기 종적을 감춘 반면, 단 하나만 끝까지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형태가 괴상하고 푸딩이 퍼진 것 마냥 뭉그러져 있는 발자국이다.


유논은 불타다 남은 시청의 잔해 깊숙한 곳까지 그 흔적을 따라 들어갔다.

여사제 또한 떨어지는 건물의 파편들에 유의하며 조심스럽게 따라온다.


아직 화염이 잦아들지 않은 그 시청의 구석, 벽면에서부터 흐르는 검고 끈끈한 액체가 있었다.


‘타르?’


유논은 첫눈에 그 물질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불타는 시청의 내부에 남아있는 잔해라기에는 지나치게 이질적인 모습이다.

그 시커먼 점액질의 기름 웅덩이 속에서 무언가가 부풀어 올랐다.

타르의 방울이 솟아오르더니 점차 거대한 인간의 형태를 갖춘다.


유논은 이목구비와 팔다리가 불길 속에서 녹아내리는, 흉물스러운 체고 3미터짜리 거인의 형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크하하하하! 남녀 한 쌍이라. 갈란 시장의 최측근들 용기가 가상하군. 이런 불길을 뚫고 여기까지 올 줄이야!]

“시장님은 어떻게 된 거지.”


유논은 여태까지 한 것 하나 없으면서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앞으로 나서는 여사제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시장? 아아, 우리가 납치한 에드워드 갈란 선생을 말하는 게로군. 물론 잘 데리고 있지! 다만 오래는 못 갈 거야.]


타르-인간은 입 밖으로 검은 액체를 흘리며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이었다.


[곧 처형당할 예정이거든.]

“네놈들이 시장님을 납치했다고?”

[그래! 그는 어겨서는 안 될 불문율을 어겨 버렸어. 중립을 표명해 놓고선, 뒤로는 정화교단과 손을 잡았지! 지금 이 자리에 온 게 정화교의 사제인 것만 봐도 분명하군! 우리처럼 방사능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런 만행을 함부로 두고 볼 수 없었단 말이야!]

“방사능의 아이들Children of Radioactivity······!"


정화교의 사제는 마주하고 있는 상대의 정체를 눈치 채고 침음을 흘렸다.


방사능의 아이들.

핵전쟁과 방사능으로 무너진 시대에 등장한, 방사능을 사랑하고 숭배하는 미치광이들의 거대 세력.

방사능을 배척하는 정화교단과는 같은 4강強의 거대 세력 중에서도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견원지간과도 같은 사이다.

두 집단 간의 전쟁과 분쟁이 끊이질 않는 그야말로 숙적의 관계인데, 하필이면 그런 방사능의 아이들의 일원과 이 자리에서 마주쳐 버린 것이다!


[시장이 우리를 버리고 정화교의 후장을 핥았으니, 우리 방사능의 자식들은 그에 걸맞은 대가를 보여주어야겠지! 불타는 시청이 보이나? 자유도시 또한 그리 될 것이다. 시장은 도시의 무덤 위에서 처형당할 것이고, 창녀 같은 정화교단 또한······.]

“말이 많군.”

[응?]


유논은 짜증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거대한 형체의 타르-거인에게로 다가섰다.

거창한 연설이 도중에 끊기자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전신의 끈적한 액체를 일그러뜨린 타르-거인이 유논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견디기 힘든 악취와 함께, 웅웅 울리는 기형적인 목소리가 쏟아진다.


[넌 뭐냐, 꼬마야? 왜 어른이 말씀하시는 데 끼어드니?]

“시끄럽고······. 어이, 돌연변이.”

[도오올여어언벼어어언이? 지금 감히 방사능의 축복과 사랑을 받은 이 몸을 그런 모독적인 멸칭으로 불러? 꼬마야, 어르신께 혼 좀 나야겠구나!]

“꼬맹이 하나 본 적 없나? 검은 단발머리에 키 작은 열다섯 짜리 애. 이곳 시청에 있었을 텐데.”


푸하하하하하하하하-!


타르로 조형된 거인은 거창한 웃음소리를 토해냈다.

유논의 전신에 놈의 입에서 튀어나온 타르 덩어리들이 달라붙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검은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검은 단발머리 꼬맹이? 그게 뭔데! 먹는 건가? 맛있긴 하겠군! 꼬마 친구, 안타깝게 됐지만, 우린 그런 거 안 키워! 아마 불 속에서 죽었나 보지.]


귀를 울리는 느글거리는 목소리로,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덧붙인다.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면서, 불에 구워지면서, 온몸이 쪼그라들면서,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 그렇게 엥엥 울면서 타죽지 않았을까? 불나방처럼 말이야. 크하하하하하!]


유논은 놈의 박장대소에 눈가에 들러붙은 타르 점액을 떼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만하면 많이 참았고, 정보도 얻을 만큼 얻어냈다.

그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재롱잔치는 여기서 끝이다.


[그러니까 꼬마야, 네 소꿉친구는 여기 와서 찾지 말고 어디 창녀촌에서라도······어?]


유논은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타르-거인의 목을 베었다.


[어···얽. 역시, 평범한 꼬마는 아니었······?!]


굼뜨고 살찐 동체시력으로는 반응조차 하지 못할 은빛 검격이 지나치고, 타르로 된 얼굴이 바닥까지 흘러내려 철푸덕 떨어진다.

조종사를 잃어버린 시커먼 점액질의 거대 동체가 녹아내리며 웅덩이가 되어 타올랐다.

타르-거인은 애초에 존재한 적도 없었던 것처럼, 진득한 불꽃 속에서 태초의 무無로 돌아갔다.


유논은 은빛 장검에 묻은 점액 덩어리가 새빨갛게 타올라 기화되는 것을 바라보았다.


“방사능의 아이들이라······.”


작가의말

방사능의 아이들! 점점 세력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는군요. 요즈음 글쓰는 게 참 재밌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글쓰는 데에 투자하는 시간과 비례해서 게임할 시간이 함께 줄어든다는 점이겠지요.....그래도 오늘은 두번째 에피소드 구상을 끝냈으니 스스로에게 포상도 줄 겸 오랜만에 게임을 조금 즐겨볼까 합니다. 괜찮겠지요?

+17화, 거대 세력(Great Force)(1)에서  여사제-피오네가 시장의 납치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시장이 습격받고 실종되었다고만 알고 있는 것으로 설정이 수정되었습니다. 큰 틀에서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만, 소설 이용에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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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8 프리러너
    작성일
    20.05.30 17:29
    No. 1

    뭔가 타르거인 부분이 전개가 게임이벤트 같은데 이게 원래 이런건지 아니면 등장인물들이 다 거짓말하고 있어서 어색하게 느껴지는건지 모르겠네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7 생각.
    작성일
    20.05.30 17:38
    No. 2

    아마 다음화에서 어색하게 느끼셨던 부분이 설명되지 않을까요..? 하하. 항상 재밌게 읽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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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 세력(Great Force)(2) +2 20.05.30 3,001 10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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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막간-불사조(不死鳥, Phoenix) +18 20.05.27 3,240 12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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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Man Meets Girl(3) +8 20.05.25 3,439 135 22쪽
12 Man Meets Girl(2) +9 20.05.24 3,428 152 17쪽
11 Man Meets Girl(1) +12 20.05.23 3,530 157 14쪽
10 황야에서 피를 봐서는 안 된다(5) +19 20.05.22 3,579 160 14쪽
9 황야에서 피를 봐서는 안 된다(4) +16 20.05.21 3,646 135 19쪽
8 황야에서 피를 봐서는 안 된다(3) +4 20.05.20 3,702 138 12쪽
7 황야에서 피를 봐서는 안 된다(2) +6 20.05.19 3,907 143 17쪽
6 황야에서 피를 봐서는 안 된다(1) +5 20.05.18 4,257 144 15쪽
5 제국주의자들(2) +13 20.05.17 4,630 159 16쪽
4 제국주의자들(1) +22 20.05.17 5,320 181 20쪽
3 비정상들의 세상(2) +18 20.05.16 6,303 183 23쪽
2 비정상들의 세상(1) +51 20.05.16 7,830 218 19쪽
1 프롤로그-멸망한 세계의 마법사 +29 20.05.16 13,146 29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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