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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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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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8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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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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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DUMMY

***

모든 질문에는 응답이 있다.

물론 모든 응답이 '승낙'의 의미는 아니다.

'승인', '기각', 그리고 '기다림'.

오늘도 내가 받은 응답은 ‘기다림'이다.


아리테에서 '준비'만 한 달, 드디어 얻은 실마리는 페니아 제국, 위시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반가운 사람, 미안한 사람, 부담스런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위시스에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은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가는 길 한복판에서 또 '기다림'으로 바뀌었기에.


물론 기다림이라고 해서 정말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아니다.

레이븐과 레이첼에 이어 까마귀 오오에게 까지 수련을 빙자한 학대를 당하고 있다.

이런 훈련이 계속되는 걸 보니 이번 여정도 보통은 아닌 것 같다.


***

길 바닥에 나앉고 기울었던 달이 다시 차올랐다.

드디어 위시스를 향해 출발이다.

그런데 웬걸?

저번처럼 까마귀 타고 가면 며칠이면 갈 길을 돌아 돌아 걸었다.


밤낮 추위와 더위를 헤치며 40일.

심지어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로!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다.


목숨을 담보로 한 훈련에서 얻은 것은 목숨에 대한 미련을 버린 것.

분명 죽을 법도 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매일 경험했다.

물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40일이었지만.


***

므두셀라 할아버지와 다같이 행선지를 정하고 정확히 100일째 되는 날 밤, 드디어 도착했다.

자연히 론과 메리의 집으로 향했지만 우리의 몰골이 말이 아니라 우릴 알아보지 못했다.


새미의 동생들은 모두 잘 자고 있다.

둘은 레이븐과 레이첼이 떠나기 전 줬던 반짝이는 돌로 장사를 시작했다.

수도에서도 제법 유명한 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명품에 일가견이 있는 메리와 충직한 노비...가 아니라 좋은 정보들을 가진 론의 조합은 근방에서 명성을 얻기에 충분했다.

명성은 순식간에 퍼져 제국 재상 헤이먼이 방문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때는 진짜 조마조마했어."

"우릴 못알아봐서 천만 다행이었지."

"아내를 빼앗길 뻔 했는데 다행이란 소리가 나와?"

"그런 뜻이 아니잖아..."

여전히 사이가 좋구나. 하하.


"며칠 전에는 하인을 보내서 재상 앞으로 올 물건이 있으니 오는 즉시 사람을 보내라고 하더라고."

"근데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아. 선금으로 은 한 달란트를 주지 뭐야?"

은 한 달란트면··· 엄청난 거금이다.


"그거 위험한 거 아닌가요?"

"그래서 조금 걱정이야. 전달하는 즉시 우리가 없어질까봐."

"일주일 뒤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하니 여유가 있으면 도와줘. 이런 말 하긴 미안하지만 우리도 지켜야 할게 생겨서."

그러고 보니 메리의 배가 좀 나온 것 같다?

설마.

"축하할 일이 생긴건가요?"

역시 그렇구나.


"이 일이 만약 잘 마무리 되면 한동안 쉬면서 아이들만 돌보려고 해."

하긴, 은 한 달란트면 한 푼도 쓰지 않고 17년을 모아야 하는 돈인데 그럴 만 하지.

"그건 그렇고 저희 줄 거 있지 않아요?"

"아, 참! 궁궐 문지기이신 모르드카이님이 네가 오면 전해달라고 이걸 주셨어."

퍼즐?


"제국 군인들이 가진 물건인데, 달빛에 비추어서 빛나면 본인의 근무시간이래. 괜히 어슬렁거리지 말고 빛날 때 가서..."

빛나네?

지금이다.

"일주일 남았으니 서둘러보죠. 다녀올게요."


***

반가운 사람에 이어 미안한 사람인가.

부담스런 사람만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너희는 왜 따라와? 나만 다녀와도 되잖아."

"저번처럼 또 사고치면 안된다구."

"그래. 둘이 또 한 판 하려는 거 아니지?"

"너희도 다 응답 받고 온 거잖아."

우리가 아리테에서 위시스로 온 이유.

모르드카이를 만나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다.

제국의 문지기, 모르드카이.

그 때를 생각해보면 내가 참 경우가 없었다.

물론 정말 절박했지만.

만약 다시 그런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또 그런 선택을 할 것이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오랜만이군. 이번에는 덤벼들 생각없나? 얼마나 성장했을지 궁금한데."

"사양하겠습니다. 저희에게 전하실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몹시 귀한 것이라 쉽사리 내어 줄 수는 없네. 이걸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최근에 말도 안되는 존재들을 상대하면서 느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도 있다는 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와 그렇지 않은 상.

물론 내 주위에는 후자들 밖에 없는 것 같지만.

므두셀라 할아버지 뿐 아니라 레이븐, 레이첼, 조니라는 아이, 그리고 저 문지기.


그래도.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합격! 사실 나도 자네와 정면승부를 하라면 이길 자신이 없군. 전과 많이 달라졌어.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깨우쳤으니. 자, 이걸 받게."

낡은 책.

귀한 종이에 범상치 않은 가죽으로 만든 덮개가 있는 걸 보니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다.


"페니아 제국이 세워지기 전, 제국에서 총리에 오르셨던 분이 있지. 그 분은 전 제국의 두 황제에 이어 건립된 페니아 제국의 황제 폐하 또한 보좌하며 나라를 다스리셨네. 두 제국의 세 황제를 거치며 세상을 다스린 이 분이야 말로 진정한 황제가 아니셨을까."

"정말 대단하신 분이네요. 그 분이 쓰신 책인가요?"


"이야기가 빠르군. 허나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비유를 풀이해 낼 지혜가 없네. 매일같이 기도를 올리던 중 자네에게 전달하려는 계시가 있었지."

"그런 지혜가 없는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꿈과 같은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자를 알지 못하나? 자네에게 전달하라 하신 것을 보니 아마 이미 만난 적이 있을 것 같은데?"


꿈...

꿈이라.

아!

"꿈 때문에 노예로 팔려간 소년을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걸리겠나?"

"케머 왕국이라는 곳에 있습니다."


"그럼... 오가는 것만 해도..."

툭툭.

옆에 있던 레이첼이 빙그레 웃는다?


"최대한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뭐, 그럼 기다리겠네. 조심하게. 그 책에 우리 민족의 미래가 담겨있으니."

"온 세상의 미래가 담겼을지도 모르죠."


레이첼의 지나가듯 하는 말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내가 뭐길래 이런 막중한 일을 맡은 것인가.

나는 단지 동생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면 족한데.


***

"진작 이렇게 했으면 되잖아."

"오빠, 잊었어? 권능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니란걸?"

그렇지. 그래서 더 이상한거야.

아리테에서 바로 순간이동하고 또 위시스에서 케머로 왔으면 될 것을...


"과정 속에 얻게 되는게 있다구. 우리가 아직 완벽하지는 않잖아. 다 성장하는 과정이지 뭐."

과정이라.


아.

내가 또 교만했구나.

저 언덕을 보니 다시 떠올랐다.

나의 시험이 시작되었던 곳.

실패로 인한 대가를 경험한 곳.


모리나에서 사흘길 떨어진 사막.

저 언덕에서 노예상을 보고 내 맘대로 덤벼들었다가 잡혔지.

밤이 되어 차가운 바람과 함께 씁쓸한 기운이 입안에 감돈다.


여기에서 케머 왕국까지 하룻길.

과연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그 아이는 이 책을 해독할 수 있을까?

이 과정은 나와 그 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

이 한 밤 중에 한 노인이 서 있었다.

케머 왕국 쪽을 바라보는 걸까.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말씀 좀 여쭤도 되겠습니까?"

"케머 말 못해? 나 이쪽 말 서툴러."

"제가 케머 말을 못해서요... 어르신은 할 줄 아십니까?"

"어릴 때 케머 40년 살아 이 말 보다 나아."

"그럼 혹시 케머 왕국 입국 심사를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가 들어가야 하거든요."


"나 거기 안가. 못 가! 나 죽어!"

할아버지가 역정을 내며 돌아선다.

그에게도 뭔가 사연이 있는걸까.


***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풍요로운 땅에 막대한 재력과 강대한 군사력, 위엄있는 건축물과 넘쳐나는 신상들.

페니아 제국이 공격적으로 확장해 얻은 드넓은 땅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대제국이라면, 케머 왕국은 규칙적으로 범람하는 강을 중심으로 건설한 풍요로운 수도 하나에 집중했다.

아마 단 하나의 도시만 두고 보면 최고의 부국은 케머 왕국일 것이다.


그런 나라의 왕의 호위대장인 포티퍼.

그리고 그도 어찌할 수 없는 아내.

그런 존재가 점찍은 것이 바로 내가 만나야 할 소년, 조셉이다.


이 성벽을 뚫고 왕의 호위대장의 집에 침범해 주인이 아끼는 종 한 사람에게 접촉하는 일.

모르긴 몰라도 아마 왕을 암살하는 것과 비슷한 난이도 아닐까?


"내 생각은 그래. 오오를 타고 성벽을 넘어 들어가서... 하..."

정말 하기 싫다.

그런데 이 방법 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노예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말 싫다.


"오빠, 이제 즐기는 거 아냐?"

"메리 누나도 있었으면 더 재미있었겠다구!"

"시끄러우니까 그만하고 빨리 시작해!"


"그럼 하루 안에 만나지 못하면 거기서 모이는거야."

해 뜨기 직전, 그 여명을 타고 날아올랐다.


***

쿵쿵쿵!

"우리 말을 알아들을 사람을 데려오시오. 우린 이런 사람이오!"

레이첼이 무려 므두셀라처럼 변장한 모습인데 어딘가 어설퍼보인다.

아무리 봐도 아이가 떼쓰는 것 처럼 밖에 안보이는데.


포티퍼의 집을 찾은 우리는 귀한 물건들을 들이밀며 말했다.

첫번째, 우리 언어를 쓰는 조셉이 나와준다면 가장 좋다.

실패.


한참을 기다리니 사람이 하나 왔다.

"누구인데 이 시각에 우리 주인을 찾아오셨습니까."


두번째, 선물 공세를 하며 정보를 얻고 기회를 본다.

"왕의 호위이신 포티퍼 장군을 존경하고 있어 이렇게 선물을 드리러 왔소."

"제게 주시면 전달하겠습니다."

"어허. 이게 어떤 물건인줄알고! 천한 것들은 만질 수 조차 없는 고귀한 것이네! 신의 가호가 없는 자는 만지는 즉시 불타고 말지!"

"그런 위험한 것을 어찌 주인께 주려 하십니까."


"설마 자네, 포티퍼 장군께서 신의 가호를 받지 못했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걸렸다.

"지금 당장 뵈어야겠네! 안내하게! 이 무뢰한 언행은 내 반드시 일러드리지."

"지금은 왕께서 비상 소집을 하셔서 부재중이십니다. 그리고 절대 그런 의도가..."

일단 집에 없는 것은 확인.


세번째, 내부로 침투한다.

"그럼 들어가서 기다리겠소."

"그것 또한 제가 그런 권한이..."

"뭐요? 그럼 나 같은 귀인을 밖에 세워두겠다는거요? 이거, 이거. 큰일날 사람이구만."

아무리 봐도 연기가 아니라 본심인 것 같다. 말투, 손짓, 부릅 뜬 눈과 역정을 내는 표정까지 모두 진짜다.

역시 괴롭히는데 일가견이 있다.


"그... 그럼 저희 안주인께 여쭙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종이 떠난 사이.

"들어가서 찾아볼게. 조금만 시간 끌어줘."

"다녀오라구. 잡혀서 진짜 노예 되지 말고."

"다녀오게나.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비네."

아주 연기에 심취했구나.


나는 케머의 노예 복장.

레이첼은 부자 노인의 복장.

레이븐은 집사장 정도 되어보이는 복장이다.

그렇다.


그들 틈에서 돌아다니려면 이런 복장을 입는 수 밖에.

복장이라 해봐야 천 조각 하나가 전부지만.

시원하기는 하다.


***

들인지 얼마 되지 않은 노예를 중요한 일에 쓰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허드렛일이나 교육을 받거나 하지 않을까.

아차.

내가 여기 말을 못하면 마주친 상대에게 뭐라고 하지?


아, 저기 우리 말 할 수 있는 그 종이다.

"아... 이럴 때 조셉이 있었다면 얼마나 든든했을까... 안주인께서는 너무 엄하신데... 조셉도 분명 안주인께 누명을 쓴 것이 분명해. 주인께서도 다 아시는 눈치고. 그런데도 하필이면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이라니... 나도 찍히면 어떡하지?"


기회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봐요."

"으... 으아아! 읍, 읍!"


작가의말

맞춤법 지적 환영합니다.


에이브: ***

에이미: ♥♥♥

이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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