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집천하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cuslaa
그림/삽화
리건
작품등록일 :
2020.11.17 09:21
최근연재일 :
2021.02.15 09:00
연재수 :
137 회
조회수 :
342,781
추천수 :
8,166
글자수 :
841,799

작성
20.11.24 09:00
조회
3,342
추천
55
글자
13쪽

결사의 각오 (상)

판타지 소설로 송나라 역사를 배우다!




DUMMY

이나자는 이 장군 사당을 떠나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나자의 집은 4진 6원(四進六院: 진은 문과 문 사이 공간을 가리키고 원은 마당과 정원을 뜻한다. 4진은 중문이 세 개 있고 마당이 여섯 개 있다는 뜻)의 큰 저택이었다. 돌아오자마자 후원으로 가지 않고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으로 갔다.


사랑에는 검은색 관복을 입은 아역(衙役:향리의 지휘를 받아 관아의 잡일을 하던 사람들의 통칭. 관노를 포함해서 문지기, 마부, 창고지기와 체포, 구인, 구금, 압송, 징수 등의 일을 하던 금졸 모두를 가리킴)이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가 바로 이나자의 사돈으로 여덟 번째 딸의 시아버지이며 성기현 관아에서 반두(班頭: 아역도 직군별로 분류되어 있었고 각 직군의 책임자를 반두라고 함)를 맡고 있는 황대류였다. 그의 본명은 기억하지 못해도 목 뒤에 달걀 크기만 한 혹이 있으므로 그의 별명은 절대 잊을 수 없다. 파란 핏줄까지 드러난 혹은 머리를 움직이면 같이 흔들려서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사돈 돌아왔소?”


이나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황대류는 손에 든 두꺼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여전히 거드름을 피우며 앉아서 주인이 객을 맞이하는 듯한 태도였다.


“이 장군 사당에서 마신 술맛이 어떠하던가?”


두 사람이 사돈지간이긴 하지만 이나자는 시골의 부자에 지나지 않았고 황대류는 현 진 압사의 심복이었다. 황대류는 주인도 아니면서 무례하게 굴었으나 이나자는 못 본 척 공수한 자세로 웃으며 말했다.


“사돈어른의 계책에 감사드릴 뿐이죠. 한채원 얼굴이 새파래지던데요.”


이나자는 자리에 앉은 다음 하인이 차를 다 따르기까지 기다렸다가 한숨을 쉬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오늘 저는 한채원네와 원수지간이 됐어요.”


황대용은 흥, 하고 이나자의 걱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실 그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 하지만 한채원이 세상 물정을 모르니 어쩌겠나. 어쨌거나 한채원은 섬서가 본향도 아니고 외지인이라서 뒤를 받쳐줄 친인척도 없는데 겁낼 게 뭐 있어?”


“그런데 한 씨네 셋째가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입도 뻥끗 안 하데요. 외지에 가서 2년이나 유학하고 왔으니 권세가들과 교류가 있었을지 어찌 압니까? 일이 틀어질까 걱정이······.”


이나자는 눈썹을 찡그렸다. 한아리의 밀방망이는 피하면 되지만 한강의 눈빛과 표정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열여덟 살 된 햇병아리가 무슨 대단한 권세가와 사귈 수 있었겠나? 게다가 어떤 권세가 감히 진 압사를 누를 수 있겠어?”


황대류는 꺼릴 것 없다는 듯 냉소를 지었다.


“사돈은 마음이 그리 약해서 원, 생각해 보라고. 진주에 언제 진사가 나온 적 있었어?”


이나자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헤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쫄딱 망한 가난뱅이 서생만 많이 봤지요.”


“진사도 못 되고 관학에도 못 들어가고 평생을 가난뱅이 서생으로 살지. 사오십 세가 될 때까지 시험만 냅다 치러 다니고. 운이 좋으면 조정에서 불쌍히 여겨 특주명(特奏名)을 받을 수는 있어. 그렇다 해도 실세 자리는 넘볼 수도 없고 어디 가서 뭘 가르칩네, 그런 거나 하지 별거 있겠어. 그런 초라한 서생쯤이야 진 압사까지 귀찮게 할 거 없이 내 손가락 하나로도 눌러 죽일 수 있어.”


이나자도 어디서 들은 것은 있어서 특주명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나이가 사오십이 넘을 때까지 경성 과거에 계속 떨어지는 거인이 있으면 지방 장관이 그들의 이름을 조정에 보고했다. 그러면 천자가 특별 교지를 내려 그들에게 진사 시험보다 훨씬 간단한 시험을 치르게 하고 그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에게 작은 관직을 주는 제도였다.


특주명 진사는 특히 섬서성 지역에 많았다. 조정은 과거에 떨어진 선비들이 서하에 투항할까 두려워 특히 더 배려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전시(殿試:과거 시험 맨 마지막 과정. 미리 답안지를 올리고 난 후 황제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으로 이때 1등 한 사람을 장원(状元)이라고 함)에서 쫓겨난 장원(張元)과 과거에 수차례 떨어진 오호(吳昊)가 이원호를 끌고 와 섬서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일이 있었다. 지금도 서하의 조정에는 섬서 지방에서 도망간 한인 관료들이 많이 일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원한을 품은 서생들이 가장 무서웠다. 그래서 송 조정은 그들에게 작은 보상이라도 주어서 달래려 했다.


“하늘을 한번 쳐다보라고. 진주에 문곡성이 보이기나 해? 한 씨네 셋째가 기껏해야 특주명이나 받아 오겠지. 진사가 되고 싶다고? 그 집 조상 무덤에 파란 연기가 날 때까지 기다려보라고 해!”


황대류는 고개를 저어 혹을 흔드는 것으로 한강의 운명을 평생을 가난뱅이 서생으로 살 팔자라 판결해 버렸다.


이나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돈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마음이 놓여요. 그럼 전에 의논했던 대로 한채원이 현리 아전으로 오면, 손실이 많은 곳으로 차역을 줘서 밭을 팔지 않을 수 없게 해 주세요.”


황대류는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모든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사돈은 안심하게. 한채원이 현에 오기만 하면 알아서 살뜰하게 보살펴 줄 테니까.”


이나자는 듣고 싶었던 소리를 듣자 만족스럽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한채원은 농사를 잘 지어요. 그 사람 말대로 한 사람들은 남들보다 수확량이 두 배가 되더란 말입니다. 만일 그 사람 밭이 우리 밭 중간에 있어서 우리 밭을 양분하지 않았거나 전매를 절매로 돌리기만 했어도 내가 이렇게 박하게 나갈 이유가 없어요.”


“원래 보리밭 한 묘에는 분뇨 한 마차면 되는데, 채소밭은 최소 세 마차는 갖다 부어야 한단 말이야. 그런데 한 씨네가 30년 동안 농사지으면서 거기다 쏟아 넣은 비료가 사람 키 높이는 될걸. 강남에 있는 상등급 밭보다 훨씬 기름지다 이 말이지······.”


황대류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사돈, 걱정마세요.”


이번에는 이나자가 황대류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북산에 있는 땅이야 어차피 딸아이 분값 하라고 따로 떼어놓은 것이니 며칠 후에 그 땅문서를 보내드리지요.”


“음······.”


황대류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는 뜻이었다. 북산에 있는 밭과 강변의 한채원네 밭은 소출이며 땅값이 하늘과 땅 차이만큼 컸다.


“그리고 그 한 씨네 양낭 말입니다. 한채원이 벼랑으로 몰리면 팔게 돼 있어요. 그러면 사돈 시중들라고 보내드리고 말고요.”


황대류는 마침내 웃었다. 어찌나 기분이 좋았던지 목에 달린 혹이 심하게 덜렁거렸다.


“이제 한 집안인데 네 일 내 일이 따로 있겠나. 나에게 맡겨 두게. 이 황대류가 언제는 일 처리를 대강 한 적이 있었냐고? 북산의 밭이야 며느리 것인데 내가 뭐 한다고 그걸 탐하겠어. 단지 한 씨네 그 양녀가 영리해 보이니까 그러는 거지······.”


황대류가 짐짓 깨끗한 척을 하자 이나자마저도 역겨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술잔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


“사돈 말씀이 맞습니다. 맞아요! 자, 한 잔 드시지요.”


두 사람은 소원이 다 이루어진 것처럼 미리 축하주를 마셨다. 주거니 받거니 웃고 떠들다가 삼경이 지나서야 잠이 들었다. 그렇게 두꺼비와 혹부리는 죽이 아주 잘 맞았다.


* * *


이나자와 황대류가 한 씨네를 어떻게 할까 얘기하고 있을 때 장군 사당에서 벌였던 술자리를 끝내고 한 씨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와 한 방안에 모여 앉아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나자가 처음에는 내 이름이 쓰인 공문을 조금 전에 받았다고 했다가 잠시 후에 셋째가 아파서 두 달이나 미뤄준 거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류괴수가 거들고 나서니까 또 현에서 차역을 확정해서 요구한 것은 아니니까 나 대신 누가 가도 된다고 또 말을 바꾸더라고. 몇 마디 말을 하는 새에 세 번이나 말을 바꿨으니 모두 헛소리가 아니고 뭐겠어.”


한 씨네 안방에서 한천육은 분이 안 풀려 씩씩대며 말했다. 이나자는 한 씨네 땅을 뺏으려고 눈도 깜박하지 않고 연달이 앞뒤가 안 맞는 거짓말을 했다. 이제는 체면이고 뭐고 가리지도 않겠다는 뜻이었다.


“말이 순하면 사람이 잡아서 타고, 사람이 착하면 아무나 구박하기 일쑤라고 했어요. 당신은 이나자가 헛소리해댈 때 그 작자를 밟아 죽여버리지 않고 뭐 했어요? 칼 들고 그 집구석에 가서 너 죽고 나 죽자 하던가요!”


한아리의 성질은 화약에 불을 붙인 것처럼 화르르 타올랐다. 그녀는 말을 할 때마다 밀방망이를 휘둘렀다. 쇠붙이를 덧씌워도 그렇게 밀착시키지는 못할 만큼 그녀의 손과 밀방망이는 일체가 되어 있었다. 이나자가 너무 빨리 도망가는 바람에 뒤쫓아 가서 한 대 패주지 못한 게 못내 한스러웠다.


“무슨 소리! 관아에 잡혀가면 어쩌려고!”


한천육은 고개를 흔들었다. 한아리의 말대로 앞뒤 안 재고 무슨 일을 저지를 만큼 아둔한 사람이 아니었다.


“셋째 앞길 막으면 안 돼.”


한강은 옆에서 뭐라 하든 시종 침묵했다. 장군 사당에서는 빙긋 웃기까지 하며 자신만만하게 굴었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그러나 침착한 표정 뒤에 불이 활활 타고 있다는 것은 가족들도 몰랐다. 소매 속에서 두 주먹을 하도 꽉 움켜쥐고 있어서 손바닥에 피가 통하지 않았고, 금방이라도 날아가 사람을 베어 버릴 것 같은 두 눈썹은 보이지 않게 떨리고 있었다.


한강도 이나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채소밭을 탐내는 것도 모자라 운낭까지 넘보다니! 갖은 악랄한 수단으로 자기 집을 패가망신하도록 몰아가고 있는데 분노하지 않는다면 제정신일 리가 없다.


이런 수모를 당하는 건 권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상주 한 씨(相州韓家:한기의 집안)의 후손이었다면 누가 감히 업신여길 수 있었을까? 관중에 이름을 날리고 있다면 이나자 따위가 감히 괴롭힐 엄두나 내겠는가?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어! 한강은 이를 악물었다.


어떤 방법을 쓰던 관복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나자가 이렇게 몰아붙이는데 지금 이론 정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천천히 학문을 연구할 시간이 없어졌다 해도 한강은 두렵지 않았다. 이 시대는 문인이 득세하던 때라 진주성에 관리가 백여 명은 될 테고 그중에 문관도 있을 것이다. 배운 것도 있고 재능도 있고 외모도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뒤에는 명망이 높은 스승도 있었다. 이나자 따위가 감히 건드리게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천천히 걸어가고자 했으나 사정이 급하게 되어 좀 더 빨리 걷게 됐을 뿐이다. 그래도 문제없다. 사람들에게 한강을 건드리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리라!


가만히 있던 한강이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어머니, 이나자를 칼로 찌른다고 끝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직접 나서야겠어요. 아전차역 소환 문건이 느닷없이 온 이유를 알아보려면 성안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이나자가 황대류나 진거의 힘만 믿고 수단을 쓴 게 맞을 겁니다. 차역을 받는다 하고 성에 가서 살피다 보면 뭔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집에 가만히 앉아 걱정만 하고 있을 수 없겠어요.”


만일 그 말을 한천육이 했다면 한아리는 버럭 화를 냈겠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의 말이라 즉시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내키지 않았다.


“그러면 이나자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거 아니냐? 아이고 됐다. 네 아버지가 성안에 아는 사람이 좀 있으니까······.”


한강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버지는 연세가 있으시니 제가 가서 한번 부딪쳐 볼게요!”


“그건 안 돼!”


한아리와 한천육은 대경실색했다. 아들이라고는 저 하나밖에 없는데 만일 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누가 자기들 장례를 치러줄 것인가? 한천육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셋째야, 네가 병이 다 나은 것도 아닌데, 나이도 열여덟 밖에 안 된 애가 어딜 간다고 그래?”


한강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마을에만 있어 봐야 아무런 기회도 오지 않을 것이다. 밖으로 나가야만 살길도 찾고 이나자와 그 배후에 있는 황대류과 진거 일당을 손볼 기회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공명을 얻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나가야 했다.


이 시대 사람들은 고향 땅을 떠나는 일을 무척 두려워해서 현의 서리와 마을 이장이 괴롭혀도 치욕을 그대로 참고 살았다.


한강은 일반 백성들과 달랐다. 선비들은 천하를 여행하며 세상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건 유교의 창시자로부터 내려온 전통이기도 했다. 더욱이 자신은 본래 후세에서 왔으니 고향을 등지고 타지로 떠나는 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을을 떠나 성으로 가는 일쯤이야 밥 먹고 물 마시는 일 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재집천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덕현방 군기고 (상) +4 20.11.26 3,194 54 12쪽
17 음모 (하) +5 20.11.25 3,247 57 12쪽
16 음모 (상) +4 20.11.25 3,198 64 12쪽
15 결사의 각오 (하) +5 20.11.24 3,312 52 13쪽
» 결사의 각오 (상) +3 20.11.24 3,343 55 13쪽
13 비장군 사당 (하) +4 20.11.23 3,392 64 13쪽
12 비장군 사당 (상) +3 20.11.23 3,530 60 13쪽
11 문무를 겸비한 선비 (하) +9 20.11.20 3,694 64 13쪽
10 문무를 겸한 선비 (상) +4 20.11.20 3,757 63 13쪽
9 가족 (하) +7 20.11.19 3,709 60 13쪽
8 가족 (상) +5 20.11.19 3,831 62 13쪽
7 다른 세계에서 맺은 인연 +10 20.11.18 3,955 70 12쪽
6 가난이 꺽을 수 없는 기상 (하) +8 20.11.18 4,032 74 15쪽
5 가난이 꺾을 수 없는 기상 (상) +9 20.11.17 4,376 64 13쪽
4 등잔불 (하) +12 20.11.17 4,622 58 12쪽
3 등잔불 (상) +6 20.11.17 5,359 57 12쪽
2 재난 후에 만난 세상 +8 20.11.17 6,524 70 13쪽
1 옥곤 진인 +19 20.11.17 9,424 10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