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정찰
미하엘이 한스에게 조종수석 뒷좌석에 있는 관측수석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이 곳이 관측수가 앉는 자리입니다."
한스가 앉아야하는 관측수 석에는 7.92mm Parabellum MG14 기관총이 후방으로 달려 있었다. 리히트호펜이 말했다.
"혹시 프랑스 놈들 전투기를 만난다면 바로 이 기관총으로 갈겨버리게."
한스의 표정이 굳자 리히트호펜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우하하! 그럴 일은 거의 없을테니 안심하게나! 이 친구는 최고의 에이스이고 정찰만 하고 금방 돌아올테니 말일세!"
한스는 미하엘이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가슴에 달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찌질한 모습이었다.
'왠지 별로 미덥지 않은데..'
한스는 조종사들이 쓰는 모자에 고글까지 위에 착용하고는 목에도 스카프를 매었다. 긴장은 되었지만 앞으로의 비행에 잔뜩 기대에 부풀기 시작했다.
'나도 조종사 같군!'
한스는 그렇게 관측수 석에 앉고는 고개를 돌려 미하엘에게 물었다.
"혹시 적 전투기를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되나?"
"30퍼센트 정도 될 겁니다."
한스는 자신의 자리에 달린 기관총을 바라보았다.
'설마 별 일은 없겠지?'
모든 군인에게 있어서 한번쯤 비행기를 타보는 것은 로망이었고 한스도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항공 사진 촬영으로는 제대로된 정보를 얻기 힘들다! 샅샅이 살펴봐야지!'
미하엘은 꼬리날개를 양옆으로 움직여보았다. 한스가 이걸 보며 생각했다.
'저걸로 방향을 조종하는군!'
미하엘이 그 외 문제가 없는지 항공기를 체크하고는 이상 없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프로펠러가 엄청나게 세게 돌며 정찰용 알바트로스 C.I는 천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알바트로스는 아래 위로 세게 덜컹거렸다.
'이..이거 생각보다 존나 흔들리잖아!'
"이거 멀쩡한건가? 흔들리는데!!"
프로펠러 소리 때문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악을 써야 했다. 미하엘이 외쳤다.
"원래 이 정도 흔들립니다!!!"
알바트로스는 점점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한스 목에 맨 스카프 또한 앞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이제 알바트로스의 바퀴는 땅에서 조금씩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더니 드디어 고도를 높이며 이륙을 시작했다. 한스는 뒷좌석에 앉아서 점점 작아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위이잉 위이이잉
덜컹 덜컹
'오...올라간다!!!!'
거센 바람에 스카프가 앞으로 흩날렸고, 한스는 지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항공 정찰로 촬영된 사진들이 컬러로 눈 앞에 나타났다.
'으아아아아!!'
막상 비행하기 시작하니까 후들후들 떨렸고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준장 체면에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뒤쪽에서는 계속해서 거센 프로펠러 소리가 났다.
'이..이거 추락하는건 아니겠지?'
한스는 용기를 내어 목을 길게 빼어 지상을 바라보았다. 이제 알바트로스는 독일군 포병대를 지나 2방어선 쪽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지그재그로 땅에 그어져 있는 참호가 광활하게 방어선을 이루고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참호 속에서는 슈탈헬름들이 징그럽게 여기저기서 움직이고 있었다.
위이잉 위이이잉
덜컹 덜컹
자칫하면 오줌을 지릴 것 처럼 두렵기는 했지만 한스는 용기를 내어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하고는 두 눈으로 지형을 관찰했다. 이렇게 직접 관찰하면 좋은 점은 지형의 고도까지 관찰할 수 있다는 것 이다.
한스는 지도를 보며 메모했다.
'좋았어! 비행기까지 탄 보람이 있군!!'
어느덧 알바트로스는 1방어선을 넘어 무인지대를 건너고 있었다. 무인지대 여기저기에는 아주 거대한 포탄 구덩이가 있었다. 한스는 이것 또한 지도에 표시해두었다.
'이 쪽은 구덩이 많으니 기동 힘들겠군..'
무인지대 여기저기에는 시커먼 시체들 또한 널려 있었다. 그 때, 프랑스군의 1방어선 쪽에서 대공포를 발사했다.
펑! 펑! 펑! 펑! 펑!
'으아아아악!!!!!!!!!!!!'
하마터면 지도를 떨어트릴 뻔 했지만 한스는 땀이 줄줄 흐르는 손으로 지도를 꽉 잡았다.
'흐아아...허억!!!'
펑! 펑!!
"아아악!!!오지 말걸!!!!!!!"
알바트로스 근처에서 대공포 포탄이 폭발했고 시커먼 팝콘 같은 연기가 생겼다. 알바트로스는 그 연기를 통해 지나갔다.
"켁!!켁!!"
한스가 외쳤다.
"돌아가!! 돌아가게!!!"
한스는 묵묵히 조종하는 미하엘에게 일종의 경외심을 느꼈다.
'파일럿들은 매번 이것보다 위험한 전투를!!'
하지만 미하엘은 현재 똥오줌을 지린 채로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고도를 높이겠습니다아아!!!!"
위이잉 위이이이잉
한스는 귀가 멍멍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침을 계속해서 삼켰다.
꿀꺽!
한스는 다시 카메라를 꺼내서 지상의 사진을 촬영했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
미하엘이 외쳤다.
"이제 선회합니다!!!"
알바트로스는 뒤로 포물선의 멋진 흔적을 남기며 선회하기 시작했다. 한스는 이제야 약간 안심이 되었다.
'좀만 있으면 돌아간다!!'
한스는 1초라도 빨리 땅을 밟고 싶었다.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거대한 축복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이다. 그 때, 한스는 우측 구름 사이로 무언가를 보았다.
"5시 방향!!! 저건 뭔가!! 5시 방향!!"
"네? 안 들립니다!!!"
구름 속에서 무언가 작은 것들이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한스가 외쳤다.
"5시 방향!!! 5시 방향!! 적 전투기 4대!! 저건 어떻게 해야!!"
한스의 말에 미하엘은 비명을 질렀다.
"우와와와왁!!!"
위이잉 위이이이잉
이미 프랑스 솝위드 카멜기 편대는 빠른 속도로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미하엘이 외쳤다.
"기관총으로 긁으십시오!!"
"뭐라고!!!!"
한스의 등은 물론이고 손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한스는 적 전투기가 오는 쪽을 향해 기관총을 긁었다
드륵
하얀 예광탄이 날라가다가 궤적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미하엘이 외쳤다.
"적당히 가까이 오면 쏘십시오!!!"
'으아..으아아아!!!!'
알바트로스 C.I의 최대 속도는 140km/h였고, 한스와 미하엘을 추격하는 솝위드 카멜 F.1의 최대 속도는 185.km/h였다. 한스가 외쳤다.
"점점 다가온다!!!"
"으아악!! 쏘십시오!!"
드륵 드르르륵
하지만 한스가 쏘는 기관총은 솝위드 카멜기를 맞추지 못했고, 이젠 솝위드 카멜기의 두 정의 빅커스 기관총에서 두 줄로 알바트로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스는 세찬 바람 속에서 두 개의 불꽃이 자신을 향해 번쩍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드륵 드르르륵
하얀 예광탄이 알바트로스 2m 옆을 스쳐지나갔고, 미하엘은 재빨리 알바트로스를 시계 방향 반시계 방향으로 번갈아 움직이며 회피기동을 했다.
'아아아아아악!!!'
미하엘은 시계 방향으로 90도, 반시계로 90도 기체를 흔드는 회피 기동을 반복했고 그 때마다 한스는 위장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한스는 혹시나 총알을 맞을까봐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으아..으허어...'
정찰 지도를 주머니 속에 넣어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회피 기동을 할 때마다 스카프는 사방으로 흩날렸고, 스카프가 아니었으면 어느 쪽이 지상인지 구분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솝위드 카멜기 편대는 편대 구성을 완벽하게 이루고 알바트로스를 향해 기관총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드륵 드르르륵
한 총알은 한스의 대가리 1m 옆을 스치고 지나가며 기체에 총알 자국을 남겼다.
쉬잇!
탕!
탕!
'우와와와왁!!!'
드륵 드륵 드륵 드르륵
한스는 기관총 사수 출신 답게 기관총을 적당히 끊어서 발사했다. 예기관총에서 발사되는 예광탄은 놀랍게도 솝위드 카멜기 편대의 편대장기의 날개를 맞췄다.
'맞춘 건가아아악!!!'
이제 알바트로스는 독일군 1방어선의 상공을 고고도로 날고 있었고, 지상에서는 대공포 사수들이 솝위드 카멜기 편대에 대공포를 발사했다.
펑! 펑! 펑! 펑!
솝위드 카멜기 편대는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다시 자신들의 비행장으로 비행했다. 한스는 아직도 기관총을 손으로 잡고 있었다.
'으아..으아아아...'
기체에 총알자국이 난 알바트로스는 비행장까지 도착해서 조심스럽게 착륙하기 시작했다.
덜덜 덜덜덜덜
바퀴가 위아래로 흔들리다가 대지 위를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알바트로스가 멈추고 한스는 여전히 공포에 질려 꿈쩍도 하지 않고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미하엘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대지에 입을 맞추었다.
'살았다!!!'
한스도 빨리 내리고 싶었지만 위장이 뒤집히면서 뒤늦게 멀미가 올라오기 시작햇다. 정비사가 한스에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한스는 애써 구토를 참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틀거리며 알바트로스에서 내렸다. 리히트호펜이 웃으며 외쳤다.
"비행은 즐기셨습니까?"
한스는 아무 말 없이 숨을 가다듬었다.
"허억..."
땅을 무사히 밟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알바트로스를 보니 기체에 총알 자국이 6군데나 나 있었다. 리히트호펜이 외쳤다.
"다음에도 정찰이 필요하면 언제던지 이용하십시오!"
한스가 말했다.
"괘..괜찮네. 항공 정찰 사진을 이용하면.."
리히트호펜이 작은 목소리로 수근거렸다.
"그래도 기분은 짜릿하지?"
"그..그렇네."
"다음 번에는 적 전투기를 격추해볼 수도 있을 걸세!"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죽어도 다시는 안 탄다!!'
한스는 군용 트럭에 올라탔고 출발 전 리히트호펜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리히트호펜이 고급 샴페인을 깠다.
"자네의 성공적인 첫 비행을 축하하네! 다음에도 꼭 타보게나!"
한스는 샴페인을 마시면서 말했다.
"그...멀미가 있어서 다음에는 아무래도 못 탈 것 같네!"
리히트호펜이 말했다.
"처음엔 어지러워도 몇 번 타다보면 중독될걸세."
"하하!! 그런가!!"
한스는 여전히 식은 땀을 흘리며 억지 웃음을 지었다. 시원한 샴페인을 마시다보니 어느 정도 멀미가 가라앉는 것 같았다. 리히트호펜이 외쳤다.
"혹시 전쟁이 끝나도 살아있다면 계속해서 친구로 지내자고!"
그렇게 한스는 군용 트럭을 타고는 자신의 사령부로 돌아가고, 후티어에게 유선으로 자신이 정찰한 것을 직접 보고했다. 전화기에서 후티어가 한스에게 외쳤다.
"아주 훌륭하네!"
후티어의 칭찬을 듣자 한스는 기분이 좋아졌다.
"항공 정찰 사진만으로는 전차 부대가 기동하기 좋은 지역과, 포를 배치하기 좋은 지역, 전사면, 후사면, 고도 차이 등을 정확히 관측할 수 없습니다!"
후티어가 말햇다.
"그러면 다른 사령관들도 자네처럼 직접 정찰기를 타고 지형을 정찰하는 것이 효과적이겠군!"
한스가 외쳤다.
"네!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다른 사령관들이 고생하던 말던 그건 내가 알바 아니다!'
전화기 속에서 후티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도 공세 전에는 그런 식으로 직접 항공 정찰을 해서 전술을 짜도록 하게!"
'???'
한스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네!"
'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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