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전형 사령관
라인하르트가 보고했다.
"현재 미군의 르노 FT 경전차 수가 아군보다 많고, 미군 측에서는 정확한 마을의 지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아군 전차 부대가 진입하는데 많은 저항을 받고 있습니다."
한스는 방금 전에 교전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젠 놈들도 우리 쪽 전차 부대가 쓰는 전술을 쓰고 있네. 무작정 진입하다간 아군 피해가 커질 수 있네."
'시가전 쪽에선 방어자 쪽이 지극히 유리하다..이렇게 가다간 아군 전차 부대만 피해를 입고 공세는 실패한다!'
한스가 말했다.
"일단 12구역까지만 점령을 완료하고 그 이상 진격한 부대는 퇴각한다! 아군 전차 부대의 전력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작전 참모 퀴힐러가 말했다.
"현재 보병과 전차 부대 사이에 근접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병력 손실 없이 퇴각하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한스는 결국 다시 장갑차 밖으로 나간 다음 라인하르트 부여단장에게 말했다.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자네한테 지휘권을 인계한다!"
라인하르트가 식은 땀을 흘리며 한스를 바라보았다.
'망할 놈의 여단장 같으니..'
퀴힐러 또한 한스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완전히 정신 나갔군..'
한스는 예비대로 놔두었던 르노 FT 전차 중에 한 대에 전차장으로 탑승하고는 보병 소대에게 명령했다.
"17번 길로 내 전차와 자네 보병 소대가 같이 진격한다! 여태까지 보전 협동 전술과는 다르게 자네들이 먼저 양쪽으로 벽에 붙어 전진하여 전차 기동로를 확보하면 내 전차가 그 뒤를 따라가겠네! 놈들은 주로 건물 고층에 기관총을 거치시켜두었네! 자네들이 벽에 붙어있거나 골목에 엄폐해있을때 르노 FT 전차가 장거리에서 적 기관총 진지를 사격하겠네!"
한스가 보병들을 둘러본 다음 외쳤다.
"17번 길로 22구역에 간 다음 19번 길로 복귀한다! 이번 작전의 목표는 아군 전차 부대를 무사히 퇴각시키는 것 이다! 절대 무리하게 교전하지 않는다!"
그 때 한스는 보병 소대 틈에서 지크프리트 4인조를 발견했다.
'저 새끼들은 왜 맨날 내 눈에 띄는 거야!!'
올라프를 포함한 지크프리트 4인조는 랄 분대장을 따라 허리를 숙이고는 은밀히 이동했다. 랄 분대장은 잽싸게 골목 사이에 엄폐한 다음 손짓하는 식으로 보병들은 은밀하게 전진했다.
사방에서 총 소리가 메아리쳤고, 랄 분대장이 식은 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확실히 아군 부대가 무사히 퇴각할 수 있으려면 이 쪽에서 제대로 엄호해줘야겠군..'
중간 중간에 아군 부상병들 또한 들것으로 빠르게 이송되었다. 올라프가 속으로 생각했다.
'왜 보병이 앞에서 전차 몸빵을 하는 거야!!! 난 장갑도 없는데!!'
앞에서 랄 분대장이 손짓했고 올라프, 로베르트, 크리스티안, 호르스트는 순서대로 구불구불하게 물결을 그리며 재빨리 이동했다.
'헉..허억!!'
사방에 깨진 창문들이 병사들을 향해 나있었다. 보병들은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창문들을 주시하며 앞으로 전진해야 했다.
한스의 전차는 그렇게 전진하는 보병 소대를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다. 한스는 관측 슬릿을 통해 유심히 주변을 관찰했다. 우측 길목으로 갔던 첨병 하나가 잽싸게 이 쪽으로 달려와서는 팔을 역 V자로 하고는 크게 흔들었다.
'저 쪽에 기관총이 있군..'
보병들은 허리를 숙인채로 어두운 쪽 벽에 붙어있었고 한스의 전차는 그 사이로 지나갔다.
츠츠츠 츠츠츠츠
한스가 조종수의 우측 어깨에 발을 올려놓고는 외쳤다.
"우측으로 꺾고 정지한다!!"
츠츠 츠츠츠 츠츠
한스는 포신 각도를 조절하고는 멀리 보이는 건물의 2층 창문을 향해 고폭탄을 장전하고 발사했다.
퍼엉!!
엄청난 열기와 함께 뜨거운 탄피가 비좁은 르노 FT 내부에 떨어졌다. 르노 FT는 엄청 비좁기 때문에 탄피가 떨어질 때 발에 떨어질 확률이 높았기에 주의해야했다. 고폭탄은 공기를 가르고 날아가서는 한참 떨어져 있는 건물의 2층 창문을 박살냈다.
쿠과광!!
엄청난 폭발과 함께 창문 밖으로 뿌연 먼지가 구름처럼 뿜어져 나왔다. 보병 소대장이 어깨를 움츠린 자신의 소대원들에게 골목으로 우회해서 전진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빨리!! 빨리 가!!"
한스는 다시 고폭탄을 장전하고는, 미군이 기관총을 거치해두었던 건물의 1층을 조준해서 발사했다.
펑! 쉬이이잇! 쿠과광!!
한스가 외쳤다.
"좋았어!! 전진해!!"
츠츠 츠츠츠츠
이제 보병들이 알아서 건물을 점거할 것 이었다. 그 때, 누군가 장갑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탕! 탕! 탕! 탕!
한스는 재빨리 해치를 열었고 보병이 외쳤다.
"적 전차 접근 중!!"
한스가 조종수에게 외쳤다.
"선회!! 선회한다!!"
츠츠츠 츠츠츠츠 츠츠
적 전차는 이미 이 쪽을 향해 빼꼼히 포신을 겨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스의 르노 FT 전차는 선회를 완료하지 못하고 측면을 노출한 상태였다. 포탑을 아무리 돌려도 적 전차가 먼저 포탄을 발사할 것이 분명했다.
한스가 외쳤다.
"후진!! 후진해서 골목으로 들어가!!"
츠츠 츠츠츠
한스의 르노 FT 전차의 차체가 골목으로 후진하기 시작하였고, 차체의 측면 앞부분만 골목 밖으로 빼꼼히 노출한 상태였다. 한스가 외쳤다.
"빨리!! 빨리 후진해서 엄폐.."
순간, 미군의 르노 FT가 먼저 포탄을 발사했다.
퍼엉!!
쉬이잇
그 포탄은 한스가 타고 있는 르노 FT의 궤도 맨 앞부분을 스치고 지나가며 아작을 냈다.
카가강!!!
만약 포탄이 20센치만 뒤쪽으로 발사되었다면 르노 FT 앞부분 좁은 공간에 앉아있는 조종수의 대가리를 터트렸을 것이 분명했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르노 FT가 진동했고 한스와 조종수는 두개골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아아악!!!'
조종수는 자신의 양쪽 귀를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한스가 조종수의 등을 발로 찼다.
"후진!! 후진!!"
하지만 한스도 양쪽 귀를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머리 속에 골이 울렸다.
디이이잉 ㅡㅡㅡ
조종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궤도가 박살났습니다!!"
순간, 적 전차가 다시 철갑탄을 발사했다.
퍼엉! 쉬이잇
이 철갑탄은 르노 FT의 앞부분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스가 포탑 뒷부분에 있는 해치를 열고는 외쳤다.
"이 쪽으로 탈출해!!"
보통 조종수는 앞부분에 있는 해치를 열고 탈출하는데 지금으로선 앞부분으로 빠져나갔다간 뒤질 것이 분명했다. 한스는 뒷부분 해치를 열고는 탈출했고, 똥오줌을 지린 조종수 역시 그 쪽으로 탈출했다.
"으어어...으버버..."
아군의 르노 FT가 반대편에서 적 르노 FT를 격파했다.
콰과광!
그렇게 독일군은 12구역까지만 점령을 완료한 상태로 교전을 멈추고 퇴각했다. 현재 양 쪽에서 계속해서 포격이 퍼붓고 있었다. 한스는 사령부로 쓰기 적당한 눈에 띄지 않는 석조 건물을 찾고는 공병들에게 시켜서 혹시 지뢰가 없는지 수색하라고 했다. 공병들은 꼼꼼하게 수색을 마치고는 이상 없다고 보고했다. 한스가 물었다.
"혹시 조심해야 할 곳이 있나? 이젠 안심해도 되겠지?"
공병 소대장이 외쳤다.
"아무리 수색을 마쳐도 갑자기 폭탄은 터질 수 있습니다!"
한스는 손에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공병 소대장이 한스에게 땅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염산과 구슬을 이용해서 폭탄을 만들면, 구슬이 염산에 천천히 다 녹을 때쯤에 폭탄이 갑자기 폭발합니다! 이런 폭탄이 숨겨져 있으면 갑자기 폭발해서 건물을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한스가 물었다.
"보..보통 며칠 정도 걸리나?"
"그것은 폭탄마다 다릅니다!"
공병 소대장이 경례를 하고 돌아갔다. 한스는 찝찝한 기분으로 새 사령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쉬자..'
한스는 직접 수정한 지도를 윙거에게 주고는 복사해서 각 소대장에게 배포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바이스, 슈바르츠, 바이스 전차 대대장들에게 말했다.
"이제 놈들은 아군 전차 부대가 썼던 양각 전술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다. 훈련도 잘 되어 있으니, 놈들의 양각 전술에 말려들지 않도록, 이동 전에 첨병이 진로를 관찰하도록 한다!"
잠시 뒤, 타 부대 사령관들이 사령부에 와서 한스로부터 보고를 듣고는 앞으로의 전술을 논의했다. 한스는 강력한 포격 지원을 요청했다.
"알겠네. 내 확실히 지원하지."
코흐 소장이 한스를 보며 말했다.
"자네는 직접 현장에서 전투를 벌인다고 들었네! 그 말이 맞는가?"
한스는 식은 땀을 흘렸다. 폴프 소장이 웃으며 말했다.
"칭찬일세! 자네 같은 야전형 사령관은 전쟁에서 매우 귀하네! 자네 같은 인재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군!"
한스는 막상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야전형 사령관이라는 말은..'
코흐 소장이 외쳤다.
"나 같은 참모형 사령관이야 흔하지만 자네처럼 직접 발로 뛰는 야전형 사령관은 흔하지 않지! 앞으로도 계속 자네를 믿겠네!"
옆에 있던 윙거가 속으로 생각했다.
'파이퍼 여단장한테 계속 구르라는 소리군..'
잠시 뒤, 폴프 소장과 코흐 소장이 파이퍼 여단의 사령부 밖으로 나와서 돌아가면서 쑥덕거렸다.
"저런 멍청한 놈!!"
"이등병 출신이라 장성급까지 올라가서도 구르는군!"
"원래 한 번 구르던 녀석이 계속 구르더라고!"
한스는 자신이 비웃음 당하는 것도 모르고 혼자서 흐뭇해했다.
'야전형 사령관이라는 것은 사령관에게 있어서 최고의 칭찬이다!'
한스는 책상 위에 노획한 M1918 브라우닝을 올려놓았고, 그 순간 에밀라와 어머니로부터 온 편지는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윙거가 편지를 주워서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았고 라인하르트 부여단장은 이 광경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전술은 뛰어나지만 저 자가 사령관 자리에 있는 것이 아군에게 좋은 것인지 모르겠군..'
한스는 M1918 브라우닝을 면밀히 살펴보며 말했다.
"이건 노획하면 상당히 유용할 것 같군.."
순간, 갑자기 인근에서 중포탄이 터졌다.
쿠과광!쿠광!
사령부 건물이 덜덜 떨렸고 탁자 위에 커피잔의 수면이 진동했다. 한스는 어깨를 움찔했다.
'이...이 건물 제대로 지어진건가?'
쿠구궁! 콰광! 쿠구궁!
병사들은 제각기 건물 고층에서 자리 잡고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여기 저기서 화염이 치솟으며 건물들을 붉게 비추었고 길게 그림자가 드리웠다.
한스는 창 밖으로 이 광경을 보며 머리가 식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쿵 쿵 쿵 쿵
이 때, 랄 분대장이 졸고 있는 지크프리트 4인조를 개머리판으로 치며 깨웠다.
"일어나!일어나게!"
하지만 지크프리트 4인조는 랄 분대장이 자리를 뜨자마자 바로 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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